설교 요약
Jan 25, 2026

사랑하라는 새 계명
(요한복음 13:34-35)
주원영담임목사
함께 예배를 드리는 성도님들 중에는 6·25 전쟁을 경험하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쟁중의 있었던 사건들 중에서 1·4후퇴(1951.01.04.)를 경험하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특별히 마지막 피난선이 떠난 “흥남부두의 이야기”는, 우리 어른들의 가슴속에 뼈저리게 남아 있을 것입니다.
전쟁이 한창 진행되고 중에, 피난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흥남부두에서 미군이 제공한 배를 타려고 아우성하였고 수 많은 사람들을 태운 배는 우여곡절 끝에 부두를 출발했습니다. 부둣가에서는 배를 타지 못한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르면서 통곡합니다. 배를 타지 못한 것이 곧 죽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떠나가는 배에서는 찬송 소리가 들립니다. 그 찬송 소리는, 배를 탄 기독교인들이 “이제, 우리는 살았구나”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찬송 소리였다고 합니다. 성도님들은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있으십니까?
신앙의 훈련도 많이 받았고, 성경적인 지식도 많이 싸였고, 교회생활도 모든 면에서 성숙했다고 하지만, 이웃을 생각하는 우리의 삶은 그리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이라는 것을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들어서 알고 있지만,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왜 안될까? 왜 말씀대로 그렇게 살지 못할까?” 그래서 마음이 괴롭습니다.
이유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서 “예수의 냄새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의 냄새가 났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다고 말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교회 안에서까지도 예수님의 사랑을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교인들이 교인들을 무서워합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교회 안에서 교인들끼리 서로를 싫어하는 것은 다반사이고, 무서워서 말을 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마, 교회가 구원의 문제를 가르칠 때, 잘못 가르쳤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구원받는 조건은, 오직 믿음 밖에는 없다.”
예. 맞습니다. “믿음은 구원을 받는 필수조건”입니다. 예수께서 나의 구주가 되시고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저와 우리 모두를 구원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사랑하라는 새 계명도, 믿음처럼 구원의 필수조건이고 필수과목인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성도들이 선택과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도 여러분 새 계명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3:34절 말씀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이 말씀이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는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은 믿음만을 구원의 조건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물론 에베소서 2:8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이 사실은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5:22절에서는 조금 다른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형제에게 노하고, 욕하고, 업신여기는 자는 “지옥에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영생을 얻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천국에 가지 못하고, 지옥에 간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도 구원을 받고, 사랑으로도 구원을 받는다는 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표현은 틀리지만 믿음과 사랑은 같은 말입니다. “믿음이 곧 사랑”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당연히 예수님처럼 행동하며 살아갑니다. 예수의 냄새가 납니다. 형제를 사랑합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은, 조금도 양보할 수 없는 구원의 필수조건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단순히 믿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반드시 행위를 동반합니다. 믿음뿐만이 아니라,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을 정말 믿는다면, 반드시 동반되어 보여져야 하는 것이 있는데, 원수를 용서하는 모습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이웃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믿음과 사랑은 쌍을 이루면서 함께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3:34-35절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우리의 삶에서 이와 같은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이 보여질 때, 참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8:21-35절에서 10,000달란트를 탕감 받은 비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비유는, 돈의 가치를 말씀하시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용서받은 것이 값으로는 환산될 수 없는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을 돌아보세요. 십자가의 은혜를 깨달았을 때에는, 흔들리는 나뭇가지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같고, 풀 한 포기를 보아도 하나님의 섭리인 것 같고, 만나는 사람들 모두를 사랑하겠다는 마음이 불일듯했던 경험들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의 시간이 1년이 흐르고, 10년이 지나고, 2~30년이 넘어가면서, 은혜를 받았을 때의 그런 감격적인 모습은 어느덧 사라지고, 사람들을 볼 때마다 짜증나고 화나고 미워하는 마음이 드는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변한 모습으로 어떻게 형제를 용서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다고 확신하십니까?
우리의 힘으로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용서할 수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이유가 없었습니다. 사랑하라고, 노력하라고 하셨으면 됐겠지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믿는다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정말 나와 함께 계시고, 내 주님이 되시고, 내 생명이 되시는 경우에만, 십자가의 사랑이 나를 통해서 흘러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냥 용서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복음을 주시면서 영생을 주시면서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짐을 함께 져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고백하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내 생명이 되신다는 사실을 우리의 입으로 고백하기만 하면, 그 말씀이 우리에게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내 힘으로 용서하려고 하면 할 수 없지만, 예수가 내 생명이 될 때, 용서는 결코 힘든 것이 아닙니다. 희생이나 손해도 아닙니다. 무거운 짐이 아니라, 놀라운 축복이자 행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계명을 마음에 새기시고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제자가 되는 방법입니다. 이 말씀, 새 계명을 늘 마음속에 간직하시면서, 진실한 신앙생활을 하시는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Jan 18, 2026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사무엘상 7:12)
주원영담임목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원한 교회는 평범하지 않은 말씀을 2026년 성도님들과 함께 붙잡고 모든 어려움들을 이겨나가려고 합니다. 사무앨상 7:12절 말씀입니다. (에벤에셀)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이곳에 교회를 세우고 지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목회를 해오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저렇게 도움의 손길을 펼쳐주셨음을 경험했습니다. 돌아볼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 은혜를 생각하던 중 문득 머리 속에 두 사람이 떠 올랐습니다. 한 사람은 “바르실레”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모세”였습니다.
먼저 ◉“바르실레”라는 사람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사무엘하 19:31절 이하의 말씀을 보시면 바르실레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바르실레가 나이가 많았다고 기록하였습니다. 바르실래는 매우 늙어 나이가 팔십 세라(삼하 19:32). 내 나이가 이제 팔십 세 (삼하 19:35).
바르실래에 대하여 알려면, 사무엘하 15-19장에 기록되어 있는 다윗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과, 반역이 평정되어 다윗이 다시 왕궁으로 귀환하는 이야기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백성들의 마음을 도둑질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아버지 다윗 왕을 왕궁에서 쫒아내는 반역을 일으킵니다. 다윗 왕은 예루살렘 동쪽에 있는 동문을 열고 도망합니다. 기드론 시내를 건너 겟세마네를 지나 감람산으로 도망을 갑니다.
성경은 도망하는 다윗 왕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다윗이 감람 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가니라(삼하 15:30). 아들에게 왕의 자리를 빼앗긴 것이 너무나 부끄럽고 창피해서 머리를 가리고 울면서 맨발로 도망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일이 있자, 많은 사람들은 압살롬의 편에 섰습니다. 므비보셋의 종이었던 “시바”라는 자가 그랬고(삼하 16:1-4), “후세”라는 자가 그랬습니다(삼하 16:19). 사울의 친척이었던 “시므이”도 다윗 왕을 향하여 피를 흘린 자라고 사악한 자라고 돌을 던지면서 저주를 퍼붓습니다(삼하 16:5-8). 그리고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 왕의 후궁들을 욕보이는 일을 서슴없이 행합니다.
왕이었는데, 아들의 반역 때문에 도망하고 있는 다윗 왕의 모습이 얼마나 부끄럽고 얼마나 창피했겠습니까?
그때 “바르실래”라는 사람이 “소비”와 “마길”과 함께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도망하는 다윗을 도와줍니다. 잠자리와 먹을 음식들을 가지고 다윗을 찾아옵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맨발로 도망하는 다윗에게 필요한 것들을 챙겨준 것입니다(삼하 17:27-29).
너무나 창피해서 얼굴도 들지 못하고 도망하던 다윗이 얼마나 고마웠겠습니까?
이런 상황인데, 왕궁에 있던 압살롬은 지금의 후한을 없이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버지를 죽이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는 도망하는 아버지를 지름길로 뒤쫒습니다. 그런데 그가 가장 아끼고 관리했던 아름다운 긴 머리카락이, 그만 상수리 나뭇가지에 걸렸고 나무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신하 요압장군의 부하들에 의해서 나무에 매달린 채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압살롬의 반란이 평정되자 다윗은 왕궁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웁니다. 그때 다윗 왕은 제일 먼저 바르실래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바르실래를 불러서 말합니다. 하지만 바르실래는 정정히 다윗 왕의 부탁을 사양합니다. 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윗사람에게 음식을 차려드리다)하리라 바르실래가 왕께 아뢰되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사옵겠기에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삼하 19:33-34). 그리고 내가 갈 곳은 왕이 계시는 호화로운 예루살렘 성이 아니라 내가 태어난 고향이라는 말입니다(삼하 19:39).
참 아름답고 멋있고 감동이 있는 모습입니다.
바르실레는 부자였습니다(삼하 19:32). 그럼에도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가진 것이 있다고 거만하거나 잘난척하지도 않았습니다. 겸손했습니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도와줍니다. 댓가를 바라지 않고 도와줍니다. 시대의 상황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올곧게 진실하게 바르게 살아갑니다.
지금까지 도우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바르실래가 머리 속에 떠 올랐고, 바르실래처럼 살고 싶은 생각이 들은 것입니다. 겸손했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던 바르실래처럼 살기를 소원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머리 속에 떠 오른 또 한 사람은 ◉“모세”입니다.
모세가 80세가 되었을 때, 그의 형편은 이러했습니다.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출 3:1).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던 모세의 귀에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호렙이라는 산이 있는데 그곳에는 하나님께서 나타나신다는 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그분 하나님을 만나겠다는 마음으로 호렙산을 찾아갑니다. 기다립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모세는 포기하지 않고 호렙산을 계속해서 돌고 돕니다. 아마 30년은 훌쩍 넘어 40년 가깝게 그렇게 기다리면서 살았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었지만 모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산을 주목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호렙산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한 나무에 불이 붙었습니다. 그런데 그 불이 다른 나무나 풀로 번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불꽃 가운데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불에 타고 있는 나무 가까이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또 다시 음성이 들리고 모세가 대답합니다.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출 3:4-5). 그리고 모세를 부르신 분이 자신이 이런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출 3:14). 나이 80이 된 모세에게 사명을 주시는 현장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모세는,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나를 지켜보셨고 지금까지 나를 인도해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로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이 일이 있은 후,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방법으로 모세를 붙잡아 주시고, 그의 걸음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바로 앞에서 10가지 재앙들을 내리시는 기적을 보여주셨고, 홍해를 갈라주셨습니다. 아말렉을 이기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는 기적도 나타내셨습니다. 모세는,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나의 걸음을 인도해 주시고 지켜주시는 분이심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르실래의 겸손한 삶의 모습. 모세의 충성된 삶의 모습. 이 모습들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도움의 손길을 펼쳐 인도해 주신 은혜를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사무엘상 7:12절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에벤에셀의 하나님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삼상 7:12). 그래서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에벤에셀의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영원한 교회와 성도님들의 삶을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은 에벤에셀 하나님의 도우심이 계속되기를 원하신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본문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삼상 7:12). 사무엘이 돌을 세웁니다. 특별히 “세운다”는 단어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세운다는 이 단어는 “만들다. 올리다. 구축하다. 짓다.” 이런 뜻를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사무엘이 입술로만 에벤에셀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돌을 세우는 모습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돌을 세운다는 말씀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세요. 제단을 쌓고. 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창 12:7-8). 제단을 쌓았다는 것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는 말입니다. ◎그의 아들 이삭은 어떠했습니까? 거처를 옮겨가면서 우물을 팝니다. 그리고 제단을 쌓습니다(창 26:25).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의 아들 야곱은 또 어떠했습니까? 야곱도 돌을 세웁니다(창 28:18). “하나님께서 이곳에서 나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신다.” 이 믿음으로 돌을 세웁니다. 뿐만 아니라 야곱은 가는 곳마다 돌을 세웁니다. 가는 곳마다 제사(예배)를 드립니다(창 31:45. 35:14-15). 이에 야곱이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창 31:45). 야곱이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창 35:14-15).
이처럼 믿음의 조상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행동합니다. 돌을 세우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꿇어 엎드리고, 간절함을 표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 사무엘상 7:12절 말씀의 주인공 사무엘이, 바로 믿음의 조상들인 이분들의 후손입니다. 그리고 사무엘도 미스바에 돌을 세우고 있습니다. 미스바에 모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돌을 세웁니다.
성도 여러분. 미스바는 그 옛날 야곱이 돌을 세운 곳입니다(창 31:45). 그리고 바로 그곳 미스바에 사무엘이 돌을 세우고 기도를 드립니다(삼상 7: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여기까지 도우신 에벤에셀 하나님의 은총을 입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믿음의 조상들처럼 돌을 세우는 것입니다. 돌을 세우는 일에, 예배를 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에벤에셀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 주십니다.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우리의 삶을 도우실 것입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에벤에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필요할 때에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의 간절한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해 주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엘로힘이십니다.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 엘로힘의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이레의 하나님이 되시고, 때로는 라파의 하나님이 되시고, 때로는 닛시의 하나님이 되시고, 때로는 샬롬의 하나님이 되어 주십니다. 그리고 살아가는 동안 항상 에벨에셀 하나님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를 인도하시고 지켜주십니다. 순간순간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의 걸음을 인도해 주십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서,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이삭처럼, 야곱처럼, 그리고 사무엘처럼, 돌을 세우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돌을 세우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예배할 때에, 전능하신 엘로힘의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개입하셔서 에벤에셀이 되어 주실 줄 믿습니다.
이 은혜가 성도님들의 삶의 모든 영역에 함께 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Jan 11, 2026

여기까지 도우신 에벤에셀 여호와
(사무엘상 7:5-12)
주원영담임목사
성도 여러분. 영원한 교회 2026년 표어입니다. “에벤에셀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시면서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이름으로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 중에서 제일 많이, 그리고 가장 즐겨 사용하시는 이름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셨습니다. 그 이름이 창세기 1: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엘로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1). 그분의 이름을 엘로힘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위대하다. 높은 분이시다. 전능하신 분이시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전지하신 분이시다.” 이런 뜻입니다.
살아가시면서 때때로 너무 높아서 넘을 수 없고, 너무 강해서 쓰러뜨릴 수 없는 벽 앞에 서 있을 때가 있습니다. 심한 풍랑 때문에 삶이 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두려움이 찾아오기에 잠을 이루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삶에서 이와 같은 경우가 우리에게 찾아올 때, 엘로힘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전능하신 엘로힘의 하나님 찾으시기 바랍니다. 전능하신 엘로힘께서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손을 붙잡아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강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능력이 많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엘로힘, 바로 그분은 모든 이름 위에 가장 귀하고 뛰어난 이름을 가지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엘로힘이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소개하는 책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성품을 이름으로 계시하시는 책입니다.
지난시간 말씀드린 것과 같이(참고 : 영상. 요약) 그분 ◉엘로힘은 “여호와 이레”가 되시는 분이심니다(창 22:14). ◉엘로힘은 “여호와 라파”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이 시간 또 다른 엘로힘이 어떤 분이신지를 생각하려고 합니다.
◉엘로힘은 “여호와 닛시”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출 17:15-16).
4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종살이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던 중, 철 병거로 무장한 훈련된 아말렉 군사들을 만납니다. 모두가 이스라엘의 참패를 예측할 수 있었던 전쟁이었지만, 이스라엘이 이깁니다. 군사 훈련이라고는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오합지졸과 같은 이스라엘이 이깁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눈 앞에 펼쳐졌습니까?
그래서 주변을 살펴보니, 멀리 산 위에서 지도자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손을 들고 기도하니 이스라엘이 이깁니다. 하지만 모세의 손이 내려오면 이스라엘이 아말렉에게 밀립니다. 이 모습을 본 아론과 훌이 모세의 양손이 내려오지 않도록 양쪽에서 부축합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이 놀라운 모습 앞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습니다. 그리고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을 높입니다. 깃발을 흔들게 하시는 여호와 닛시의 하나님 되심을 찬양합니다.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출 17:15).
성도 여러분. 2026년 한 해 동안 성도님들 모두가 승리의 깃발을 흔들게 하시는 닛시의 하나님을 바라보시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때때로 이렇게 저렇게 패배하고 넘어지고 쓰러졌을지라도, 2026년 한 해 동안에는 가는 곳마다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시는 일마다 승리하시는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엘로힘은 “여호와 샬롬”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삿 6:24).
출애굽 시대가 끝나고 사사시대가 되자,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세우셨습니다. 큰 용사라고 말씀하시면서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삿 6:12). 그럼에도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해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 하나님께서 또 다시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삿 6:16). 그런데 기드온은 여호와의 사자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표징을 구합니다(삿 6:17). 안타까워하신 하나님께서는 표징을 구하고 두려워하는 기드온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고, 말할 수 없는 평안을 주셨습니다(삿 6:23).
놀라운 평강의 은혜를 입은 기드온은 그 자리에 제단을 쌓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여호와 샬롬이라고 부릅니다(삿 6:24).
기드온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칼과 창도 가지지 않고 나팔과 항아리와 횃불만 가지고 300명의 군사와 함께 전쟁터에 나갑니다. 그리고 외칩니다(삿 7:18). 기드온의 이 믿음을 보신 하나님께서 승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삿 7:12).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샬롬의 은총을 입었습니다. 샬롬의 은총을 입고 나아간 기드온에게 이와 같은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6년 성도님들 모두에게 이 샬롬의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엘로힘은 “에벤에셀”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삼상 7:12).
엘리 제사장이 나라의 지도자로 있던 사사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나이가 많았기에,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살지 못하고 있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아버지를 대신하여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엘리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아들들을 올바로 인도할 힘을 잃어버린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런 시간이 흐르면서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처음 전쟁에서 패배합니다. 4,000명의 군사가 희생을 당했습니다(삼상 4:2). 그러자 홉니와 비느하스는 아버지 엘리 제사장께 말씀드리지도 않고 하나님의 궤를 전쟁터로 가지고 나갑니다. 하나님의 궤가 있는데 설마 하나님께서 전쟁을 지게 하시겠는가? 하는 인간의 생각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 전쟁은 이스라엘의 참패로 끝났습니다. 30,000명의 군사가 피를 흘리며 죽었습니다(삼상 4:10). 홉니와 비느하스도 전쟁에서 죽었고 법궤는 불레셋에게 빼앗겼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엘리 제사장은 의자에 앉아 있다가 넘어져서 목이 부러져 죽습니다(삼상 4:18). 그리고 비느하스의 아내는 이 소식을 듣고는 난산 끝에 아이를 출산합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이라고 짓고는 이내 죽고 맙니다(삼상 4:20-22). 나라의 위기가 닥친 것입니다. 풍전등화와 같았습니다. 백성들은 너무나 두려워합니다. 어찌할 줄을 모릅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세우십니다. 늘 성전을 지켰던, 한나의 아들이었던 “사무엘”이었습니다. 그는 온 백성을 미스바에 모이도록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삼상 7:3). 사무엘의 이 외침에 백성들이 반응합니다(삼상 7:6).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삼상 7:10).
사무엘은 이 놀라운 모습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돌을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웁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소리 높여 찬양합니다. 에벤에셀이라고 부릅니다(삼상 7:12).
성도 여러분. 내 곁에서 도와주시는 분, 함께 해 주시는 분, 나의 걸음을 인도해 주시는 분. 이분이 나의 모든 것을 인도해 주시는 에벤에셀의 하나님이십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6년을 시작하면서 여호와의 이름, 엘로힘을 생각했습니다. 전능하신 엘로힘은, 때때로 여호와 이레가 되십니다. 때로는 여호와 라파가 되십니다. 때로는 여호와 닛시가 되십니다. 그리고 여호와 샬롬이 되십니다. 더 나아가서 그분은 여호와 에벤에셀이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 은혜들을 준비해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때를 따라 준비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치료하심이 필요할 때에 우리를 치료해 주실 줄 믿습니다. ◎승리가 필요한 자들에게 승리의 기쁨을 허락해 주실 줄 믿습니다. ◎특별히 평강이 필요한 자에게 평강의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 곁에 계셔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되어 주실 줄 믿습니다.
2026년, 이분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하고 풍성하게 경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이 축복이 성도님들의 삶에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축원합니다.
Jan 4, 2026

여기까지 도우신 에벤에셀 여호와
(사무엘상 7:5-12)
주원영담임목사
성도 여러분. 어떤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일까요?
주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어디를 가든지 먼저 평안의 복을 밀어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눅 10:5). 그 사람이 그 복을 받기에 합당하다면 그 집에 그 복이 머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빌어주는 복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눅 10:6).
우리는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할 수 있으면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복을 빌어주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유는 그 복이 나에게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옆에 계신 분들에게 복을 빌어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삼 1:2). 표어도 크게 외쳐보겠습니다. “에벤에셀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이렇게 한 번 더 복을 밀어드리면 좋겠습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민 6:24-26).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흙으로 지음을 받은 미약한 존재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창조주를 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말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교제를 가지기를 원하셨고,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알려줄 수 있을까? 생각하시던 중에, 이름을 통하여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야겠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의 이름을 통하여 당신을 우리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이름이 몇 가지나 될까요? 정확하게 몇 가지라고 말씀드리지는 못하지만, 성경을 보시면 하나님의 이름이 여러가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 하나님께서 제일 즐겨 사용하시고 제일 많이 사용하시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 이름이 창세기 1: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엘로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1). 엘로힘이라는 뜻은 위대하다는 뜻이고, 높은 분이라는 뜻이고, 전능하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전지하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의미들이 엘로힘이라는 단어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창세기 1장을 보시면, 엘로힘께서는 7일 만에 삼라만상을 창조하셨습니다.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셨습니다. 심지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까지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을 펼쳐보시는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은 엘로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로힘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시기를 가장 즐겨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삶에서 힘든 일들이 우리의 앞길을 막을 때, 엘로힘을 찾고 부르시기 바랍니다. 전능하신 엘로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강한 분이십니다. 능력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엘로힘은 모든 이름 위에 가장 귀한 이름입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엘로힘이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소개하는 책입니다. 성경은 이름으로 당신을 계시하시는 책입니다.
이 시간 엘로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를 깊이 생각하시고 그분을 만나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너희가 나를 찾고 찾으면 만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렘 29:13). 우리가 엘로힘이 어떤 분이신지를 찾고 찾으면, 우리를 만나주실 줄 믿습니다.
◉엘로힘은 “여호와 이레”이십니다(창 22:14).
어느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너의 아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나에게 제물로 바쳐라.”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지시하셨기에 변명하거나 빠져나갈 방법이 없습니다. 그 일이 있은 얼마 후에 아브라함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아들과 함께 모리아 산으로 향합니다. 그때 아무것도 모르고 아버지를 따라오던 이삭이 아버지께 묻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한 준비가 거의 다 된 것 같은데, 그런데 제물은 왜 없습니까?” 아마 그 순간 아버지 아브라함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질문하는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는데, 그 말을 어떻게 아들 이삭에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는 이렇게 둘러댑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창 22:8). 이렇게 둘러대고는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산에 올랐습니다. 그리고는 아들을 묶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제물이 바로 너라고 말합니다.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창 22:10). 창세기 22장의 말씀입니다.
그때 너무나도 급하셨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나님께서 당황하셨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머뭇거릴 줄 아셨는데, 단호하게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에 너무나도 놀라신 것입니다. 당황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반복해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입니다(창 22:11-12).
아브라함이 칼을 멈추고 말씀대로 뒤를 돌아보니 나뭇가지에 양 한 마리가 뿔이 걸려서 도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 숫양으로 이삭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창 22:13). 이렇게 믿을 수 없는 너무나도 놀라운 일을 경험한 아브라함은,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불렀습니다. 창세기 22:14절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창 22:14).
성도 여러분. 엘로힘이신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이레이십니다. 그분은 오늘 나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아시고 준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이 전능하신 엘로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무엇이 가장 필요하십니까?
여호와 이레이신 하나님께서 성도님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2026년에 준비하고 계실 줄 믿습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이 목말라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샘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창 21:19). ◎한센병(문둥병)으로 인하여 나아만이 힘들어할 때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계집종을 그 집에 준비하시고 일하셨습니다(왕하 5:3). ◎사르밧 과부가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한끼 식사를 하고 생의 마지막 시간을 준비하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그 집에 보내시고 삶의 위기를 이길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왕상 17:13-14). ◎엘리멜렉이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가족들을 이끌고 모압으로 내려갑니다. 하지만 그의 꿈은 산산조각이 되었습니다. 그때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고향으로 돌아온 나오미와 룻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시간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룻 1:22).
내가 믿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여호와 이레가 되셔서, 나와 내 가족들을 위하여 필요한 것들을 예비해 놓으셨다는 것을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엘로힘은 “여호와 라파”가 되시는 분이십니다(출 15:26).
하나님의 은혜로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들어섰습니다. 물이 필요했지만, 아무리 찾아보아도 주변에 물은 없었습니다. 어쩌다가 겨우 우물 하나를 발견했지만, 그 우물의 물은 먹을 수가 없는 물이었습니다. 그러자 저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한 나무를 지시하셨고, 모세는 그 나무를 꺾어서 우물에 넣었고, 그 우물의 물은 먹을 수 있는 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저들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을 계시하십니다(출 15:26).
전능하신 엘로힘께서 자신을 치료하는 여호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 라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엘로힘이신 그분은 우리의 모든 문제들을 치료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 앞에 나아가기만 하면, 어떤 질병이나 어떤 문제들도 치료를 받습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죄의 문제를 치료받습니다. 우리 모두는 사탄으로부터 죄의 화살을 맞아 영의 사람의 몸 곳곳에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머리에서 발끝까지 상한 흔적 뿐입니다. 이사야 1:6절 말씀입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이 상처들을 치료할 수가 없습니다. 이 상처들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의 공로로만 깨끗함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의 은혜로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시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분 앞에 나아가기만 하면 ◎육체의 질병과 육체의 약함을 치료받습니다. 육체적인 질병의 치료함이 필요하신 성도님들에게 예수님의 피 묻은 손길의 어루만져 주심이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치료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기만 하면, 라파의 하나님께서 다가오셔서 우리의 약한 부분들을 깨끗하게 치료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입에서는 할렐루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 주십니다.
그분 앞에 나아가면, 육체의 질병과 약함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도 치료해 주십니다. 나 혼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고민하는 마음의 상처까지도 치료해 주시는, 이 하나님을 만나시는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엘로힘이십니다. 준비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치료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새롭게 맞이하는 2026년은, 이분 엘로힘과 동행하시면서, 그분께서 주시는 인도하심과 치료하심의 축복 속에서 감사하면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에서는 행복과 기쁨만이 넘치는 성도님들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