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설교 요약

May 31, 2026

어찌하여 행하지 않느냐?
(누가복음 6:46-49)

주원영담임목사

우리의 귀에 들리는 명품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반응들을 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서 저런 모습이 보인다면 어떨까?

명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명품을 가지지 말라는 말도 아닙니다. 도가 넘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두 가지의 모습은 보여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성도님들께서 교회에 오셔서 하나님께 예배에 드리는 것, 그리고 힘들고 어려울 때에도 감사의 조건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 그 모습이 예수 믿는 사람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지금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가장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함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내리시는 평안, 돈이 많아서 얻는 평안이 아니라 어려움과 폭풍 속에서도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세상을 이기는 평안, 염려와 근심을 다 하나님께 맡길 때 누리는 평안,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 잠든 것 같은 평안, 바로 이 평안이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는 성도 여러분. 기쁠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경우일지라도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펼친 본문을 보니, 예수님께서 질문을 하십니다. 아니 이렇게 책망하십니다(눅 6:46). 너희들은 나에게 주여 주여 하면서 말은 잘하는데, 도대체 내가 가르친 대로 행하지는 않는구나. 너희들이 내 제자라면 내가 하는 말을 생활 속에서 보여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택하셨을 때 제자들이 배와 그물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행하고, 예수님을 따라 어디든지 가겠으며, 예수님을 주로 섬기겠다고 분명히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삶에서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신대로 행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에는 열매가 있어야 하고, 말은 바르고 좋아야 하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상처를 주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행함이 있는 믿음의 기초위에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집을 지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만 그렇게 가르치시고 물으신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묻고 계십니다. 지금 어떤 상태이냐구요? 반석 위에 집을 짓고 있느냐구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할 뿐 아니라, 그분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받아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자신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잘못 관리하면 망칩니다. 실패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진심으로 잘 도와줄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맡겨도 될 사람, 우리를 올바르게 인도해 줄 사람 말입니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그분께 우리의 삶을 맡길 때, 그분께서는 나의 모든 삶에 개입하시고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 주실 것입니다. 성공의 삶을 살게 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바라기는 내 삶을 그분께 맡기셔서 성공하는 삶을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믿음의 표현이 있어야 하고 삶에서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이 표현과 실천은 ◎우리의 생각 속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표현과 실천은 ◎우리의 말 속에 담겨져 있어야 합니다(눅 6:45). 마음 속에 가득한 것, 머리 속에 꽉 차 있는 것이, 입으로 나온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말하려고 하면,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예수 믿는 사람다워야 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 표현과 실천은 ◎우리의 행동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겨야 합니다. 예수를 닮은 모습이 보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예수를 위한 수고를 감당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때문에, 천국의 소망을 가진 것 때문에,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손해가 있어야 하고, 희생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예수쟁이입니다. 믿으시고 삶에서 조금의 손해가 있더라도 기쁨으로 감당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곳에 투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지혜로운 건축자는, 보이지 않는 것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땅이 얼마나 튼튼한지, 기초는 얼마나 튼튼히 해야 하는지를 면밀히 살핍니다.

예수 믿는 것도,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인들에게는 기초가 중요합니다. 주일을 성수하는 것, 예배를 정성으로 드리는 것, 하나님의 것이 어떤 것인지를 구별하는 것, 이것들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봉사하는 것에도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에게 뿌리를 내린 사람은, 어떠한 어려움들이 다가오더라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세상의 어려움이나 유혹이 아닙니다. 세상의 어려움이나 유혹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서 하나님을 섭섭하게 해드릴까봐 두려워해야 합니다.

이런 거룩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정말 신실한 성도입니다. 오늘 말씀과 같이,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성도의 삶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대로 살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말씀대로 살 수 있습니까?

어렵지 않습니다. “예수님이셨으면 어떻게 하셨을까?” 이 생각을 한 번만 하면,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잘 설명해 준 하박국 선지자를 소개하면서 마치려고 합니다. 그가 탄식합니다. 아무것도 없다고 탄식합니다, 그러나 탄식은 이내 찬양으로 바뀝니다. 힘들고 어려워서 탄식하던 하박국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합 3:17-19).

하박국의 이 고백이 성도님들의 고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y 24, 2026

성도의 삶. “예”하는 긍정의 신앙.
(고린도후서 1:15-22)

주원영담임목사

우리의 삶을 돌아보니 모두가 고슴도치와 같습니다.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어려움과 외로움 때문에 이웃들과 함께 이 어려움과 외로움들을 털어버리려고 하다가, 때때로 의도하거나 계획하지 않은 상처를 주고 받으면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별수 없이 고슴도치처럼 거리를 두고 살아가게 됩니다. 또한 감당할 수 없는 상처를 받으면, 그때부터 우리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입을 닫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상처 주는 사람들로 가득한 공동체에 대하여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바울 사도가 이와 같은 삶을 경험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나고 그리스도인이 되고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후에 받은 가장 큰 상처는, 그에게서 복음을 전해 들은 사람들 중에 자신을 배척하는 사람들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고린도 교회에 이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본문은 이런 비난과 오해에 대한 바울 사도의 해명입니다. 한마디로 이 해명의 내용은 “나를 믿어 주십시오. 우리 서로 믿고 삽시다.” 이 말입니다. 우리가 상처가 많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믿고, 긍정적인 삶을 선택하고 살아가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하는 마음으로 긍정적인 모습의 삶을 살아가야 할 이유는 ◉하나님 때문입니다(고후 1:18).

나는 미쁘신(믿을 수 있다 신실하다) 하나님을 믿는 사도인데, 그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나를 믿어달라는 말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과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말입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지연된 것은, 너희들을 축복해 주는 만남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고후 1:23). 이어지는 2:1절 말씀에서 바울 사도의 간절하고 진실한 이 마음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내가 다시는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노니(고후 2:1).

또한 바울 사도는, 너희와 두 번 만남으로, 더욱 큰 기쁨과 은혜를 얻도록 하고 싶다고 말합니다(고전 1:15-16). 그러니까 나를 믿어 달라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서로를 믿지 못하면, 삶이 감옥과 다름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때때로 이웃을 향한 믿음이, 배신으로 돌아오고 또 하나의 상처로 돌아온다 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유는, 인간이 비록 범죄하고 타락했을지라도 그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형상 중의 하나가 “신실함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는 그 마음으로, 우리의 이웃들을 믿고 살아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조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으로 주위의 사람들을 믿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예하는 마음으로 긍정적인 모습의 삶을 살아가야 할 이유는 ◉예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보다 우리 인생들의 약점과 불완전함을 잘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증거가 당신의 외아들 예수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통해 언약을 이루시고 약점이 많고 불완전한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 계획이 본문 고린도후서 1:19-20절에서 밝힌 증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창조하신 인간이 범죄했다고 해서 인간을 버리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셨습니다. 죄인이지만 이해하여 주시고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믿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예수님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만이 소망이십니다.

때때로 힘들더라도, 때때로 어렵더라도, 우리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 앞에 예하시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우리도 이웃에 대한 믿음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예(Yes)”하셨습니다. 늘 순종하셨고 늘 긍정적인 삶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보여주신 말씀들을 마음에 새기고, 늘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믿고 아멘하는 긍정의 삶을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예하는 마음으로 긍정적인 모습의 삶을 살아가야 할 이유는 ◉성령님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을 믿어 달라고 호소하면서, 그 이유가 우리 마음 속에 거하시는 성령님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후 1:21-22).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들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아직도 죄인의 모습으로 늘 실수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도 바울 사도는, 죄인의 모습이고 실수를 하고 살아가는 자신을 믿어달라고 합니다. 이유는 자신도 자신을 믿을 수가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의 부족한 부분까지도 하나님의 선을 이루는 도구가 되게 하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이 말씀을 믿고 성령님을 의지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어지는 로마서 8:27-28절 말씀을 보니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께서 간구하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7-28).

그러므로 살아가는 동안 때로는 상처를 받기도 하도 배신을 당하기도 하지만, 낙심하거나 원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나를 위하여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요셉의 사건입니다.

형제들에게 배신당하고, 죽음의 구덩이에 던져지고, 보디발의 아내에게 모함을 당하고, 옥중에서 관리들을 돕고 그들의 출소를 도왔지만, 그들에게 잊혀짐을 당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복수를 꿈꾸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인생을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을 믿고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갔습니다. 언제나 이웃을 도우면서 살았습니다(창 45:5. 7-8. 41:38).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오늘 설교의 제목에 대한 해답을 찾은 것 같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그리고 죄 많은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긍정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 “예”하는 신앙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았습니다.

“성령 충만”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고 성령의 감동으로 매일 매일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고 냉소적인 광야와 같은 현실에서도, 요셉처럼 긍정의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예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긍정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은, 하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 때문입니다. 성령님 때문입니다.

삶의 힘든 일이 있더라도 삼위일체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시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시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이웃에게 상처를 받았더라도 삼위일체 하나님을 생각하시면서 용서를 선택하시고 믿음과 사랑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은 삶의 모습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세상을 이기는 긍정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늘 삼위일체 하나님 앞에서 예하며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는 성도님들 모두에게 이 은혜가 삶의 모든 시간 속에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y 17, 2026

신앙인의 삶. 넓은 마음.
(고린도후서 6:11-13)

주원영담임목사

인간의 마음은 크게 나누라고 하면, “열린 마음”과 “닫힌 마음”으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 완전히 열린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도 없고 완전히 닫힌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열린 마음을 “넓은 마음”이라고 부르고, 닫힌 마음을 “좁은 마음”이라고 부릅니다.

왜 우리에게서 이런 마음이 보일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표현으로 말씀드리면, 상처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처는,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나에게 주기 때문에 생기는 것만은 아닙니다. 스스로 만드는 상처도 있습니다. 스스로 오해하고, 일방적으로 판단하고, 이웃들에게 비정상적으로 반응하면서, 스스로 마음을 좁히고 닫아버리는 경우 때문입니다.

문제는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직면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어떻게 넓은 마음과 열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13절 말씀이 우리에게 그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고후 6:13).

성도 여러분. 마음을 넓혀야 한다는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넓은 마음은 ◉거룩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넓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거룩을 포기하는 세속화를 의미하는 삶이 아닙니다. 넓은 마음은 내 생각과 내 가치와 내 신념이 중요한 것처럼,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가치나 신념도 존중해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모습을 관용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빌 4:5). 이 말씀은 신념이나 가치를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의 말씀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넓은 마음을 오해하지 않도록 고린도후서 6:14-18절 말씀을 통하여 그 이유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강조하는 것은, 불신자의 가치관과 성도의 가치관은 근본적으로 같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빛과 어둠은 함께 할 수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여호수아 25:14-15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이든 우상이든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본문 17절에서 부정한 것을 피하고 부정한 세속화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구별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고후 6:17).

성도 여러분. 넓은 마음은, 평화를 원한다는 생각으로, 진리와 양심을 포기하면서 세상의 모든 것과 어울리는 삶을 뜻하지 않습니다. 좋은 것이 좋다고, 적당하게 모든 가치관을 혼합하여 세속화하는 소위 혼합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의 삶을 살아가시는 동안 하나님을 닮아가는 거룩을 포기하지 않는 넓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넓은 마음은 ◉은사와 생각들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마음입니다.

바울 사도가 이 편지를 보낸 고린도 교회는 영적 은사가 충만한 교회였지만, 파벌이 나누어지고 그것 때문에 다툼이 있었던 혼란스러운 교회였습니다(고전 1:11-12). 어떤 교인은 아볼로의 명쾌한 성경 해석에 끌려 아볼로파에 속하였고, 어떤 교인은 베드로의 안수해 주심으로 은혜를 받은 후 게바파 곧 베드로파의 사람들과 함께 했습니다. 어떤 교인은 바울 사도가 처음 전해 준 복음의 감격을 간직하여 바울에게 충성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바울파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교인은 우리는 어떤 사람도 추종하지 않고 그리스도만 신뢰하겠다고 해서 그리스도파를 만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나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충고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고전 1:13)

성도 여러분. 교회에는 다양한 은사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양한 은사와 재능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은사를 받은 성도들을 사용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은사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사람을 쳐다보게 될 때, 불필요한 파벌을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고전 3:5-6).

좁은 마음은 내가 받은 은사만 강조하고 다른 사람이 행하는 은사는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넓은 마음은 나에게 없는 은사를 받은 다른 사람이 있음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인정하고 그리고 그들과 함께 교회에 덕이 되고 주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데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모습이 넓은 마음을 가진 성도의 모습입니다.

이와 같은 넓은 마음을 가지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권면한 넓은 마음이 무엇입니까?

받은 은사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의 의견보다도 그리스도를 높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줄 아는 마음, 바로 이 마음이 넓은 마음입니다.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높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교회를 하나되게 하는 이 넓은 마음을 가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넓은 마음은 ◉편안한 소통의 장을 마련해 주는 마음입니다.

바울 사도는 편안한 소통의 장을 열어주기 의하여 자신의 입부터 열겠다고 말합니다.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고후 6:11).

성도 여러분. 마음이 닫히면 제일 먼저 입을 닫습니다. 부부도 그렇습니다. 갈등이 생기면 제일 먼저 대화가 단절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 상황을 끝내려면 둘 중에 누군가가 말을 시작해야 하는데 자존심 때문에 왠만해서는 먼저 말하지 않습니다.

“소통형 인간(감창옥저)”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 중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통하지 않으면 통한다.” 이 말입니다. 앞의 “통(通)”은 소통할 통이지만, 나중의 “통(痛)”은 아플 통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내가 먼저 입을 열겠다고 하면서 이 편지를 쓴 것입니다.

바라는 것은, 성도님들의 삶에서 이 말씀을 잘 살피시면서 깊은 묵상과 함께 실천하는 모습이 나타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정의 달을 지내면서 혹시 좁은 마음으로 등을 지고 있는 가족들이나 친지들이나 교우들이 계십니까?

가까이 다가가 보시기 바랍니다. 대화를 시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편지를 써보시기 바랍니다. 중보기도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하려고 힘써 보시기 바랍니다. 이 모습이 성경이 말하는 넓은 마음으로 이웃을 품고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넓은 마음”. 이 마음은 주님께서 주신 마음입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께서 이 마음을 넘치도록 주시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y 10, 2026

이런 부모. 이런 자녀.
(민수기 20:22-29)

주원영담임목사

우리는 매년 5월이 되면 어버이 주일을 지킵니다. 한 사람 “앤나 잘비스”라는 여성 신앙인의 헌신으로 우리가 어버이 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이날은 그 의미를 잊어버리고 상업화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유래를 가지고 있는(유래는 요약에 기록하지 않음) 어버이 주일에, 이스라엘의 지도자이며 한 가정의 아버지였던 아론의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에 대하여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가데스를 출발한지 얼마되지 않아, 지도자인 아론의 죽음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말씀 속에서 우리가 생각하고 깨달아야 하는 진리는 ◉“모든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을 평가할 때 칭찬이나 격려보다는 흑백의 논리로 잘잘못을 따집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명확하고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모든 믿음의 선진들 중에서 흠이 없는 사람을 찾아보세요.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사실을 모르셔서, 그들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믿음의 선진들이라고 세우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허물을 보신 것이 아닙니다. 좋은 점을 보셨습니다. 장점만 보신 것이고, 순종하는 모습을 보신 것입니다.

아론의 생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존경받았던 이스라엘의 지도자였지만, 오늘 본문은 므리바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사건으로 인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음을 안타깝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아론은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가고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므리바 물에서 내 말을 거역한 까닭이니라(민 20:24)

아론의 부족함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출애굽하여 시내산근처에 도착하였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그곳에 머물러 있었던 백성들에게 금송아지를 만들어주고 섬기도록 했던 사람입니다(출 32장). ◎뿐만 아니라, 모세가 구스 여인을 두 번째 아내로 맞이했을 때, 미리암과 함께 모세를 비방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건에 연류되어 있는 아론이었기에,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아론이 이스라엘의 최고의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민 20:29).

오늘 어버이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들의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십니까?

우리의 부모님들도 인간이시기에, 완전하지 못한 모습들을 많이 보이셨을 것입니다. 자식들이 볼 때, 약점이 많고 허물도 많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우리들이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도록 삶의 유산을 남겨 주신 분들입니다. 자식들을 키우시는 일에 모든 정열을 다 쏟으셨던 분들이십니다. 그분들을 향하여 부족하다고, 틀렸다고, 자신있게 말할 자격이 있는 자녀들은 한 분도 안 계실 것입니다. 그렇게 말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부모님들을 주변의 사람들과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조금의 허물 때문에, 지금 나를 이곳에 있도록 해 주신 부모님들의 아낌없는 헌신을 외면해 버리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론의 죽음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입니다.

아론의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은 ◉“믿음의 사역은 계승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앙하는 믿음이 자녀들에게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넓게 생각하면, 부모님들은 우리들의 선배입니다. 인생의 선배이고 신앙의 선배입니다. 그렇지만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의 삶의 대부분은, 인생의 후배들인 자녀들을 통하여 계승되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어질 것입니다. 물론 그분들이 하시던 것을 모두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부모님들의 삶은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계속 이어지는 계승입니다. 아론의 죽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 모세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말씀을 따라 아론과 그의 아들인 엘르아살과 함께 호르산에 오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역사의 계승식을 합니다(민 20:26-28).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아버지와 아들이 임무를 교대하는 순간입니다. 너무도 엄숙하고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성경적으로 부모의 죽음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육신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부모는 없어졌지만, 동시에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계승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이 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아버지이면서 선배인 아론을 계승하여, 후배이며 아들인 엘르아살이 지도자의 상징인 제사장의 옷을 입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이며 선배인 아론이 이루지 못했던 가나안을 향한 여정을 아들이 대신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지도자 아론의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지도자 아론이 자신의 겉옷을 벗겨 자신의 아들인 엘르아살에게 입혀주는 모습을 보면서, 비록 내 맘에 꼭 맞지 않는 부모일지라도, 약점과 헛점 투성이인 부모일지라도, 그래서 때로는 외면했던 부모일지라도, 그분들은 이렇게 생각하면서 살아오셨을 것입니다. “내가 포기하면 아들도 포기하게 될까봐, 이를 악물고 달려왔다고.” 자식을 위하여서는 자신의 몸까지도 버리실 각오가 되어 있으신 분이 바로 우리의 부모님들이고 나의 부모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자녀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그분들에게 눈이 되어드리고, 그분들의 손이 되어드리고, 그분들의 발이 되어드리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바로 이 모습이, 오늘 본문을 통하여 믿음의 자녀들에게 가르쳐주시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아론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교훈입니다. 기억하시고 이와 같은 삶을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에베소서 6:2-4절의 말씀을 기억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네 아버지와 네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2-4). 아멘.

주소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문인로 57 삼풍동 상가 302호

​온라인 헌금

​신한은행 140-011-881970

​예금주:대한예수교장로회 영원한교회

전화번호

031-262-2674

 EMAIL

​예배시간안내

주일예배         1부   오전 11:00

                       2부   오후   2:00

수요찬양예배           오후   7:30

금요기도회              오전 11:00

새벽기도회(월~금) 오전   5:30​

© 2024 영원한교회 l All Rights Reserved.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