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요약
Nov 30, 2025

위로의 메시야로 오신 예수
(이사야 40:1-8)
주원영담임목사
우리가 해마다 성탄을 맞이합니다. 성도님들께서는 성탄의 의미를 어떻게 마음에 새기고 계십니까?
아마도 성도들에게는 내 마음과 내 인격과 내 생활이 변화되는 것이, 진정한 성탄의 의미일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사 40:1).
어떻게 위로해야 합니까? 무엇으로 위로할 수 있을까요?
참 지도자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찾아주는 진정한 지도자가 보이지 않지만, 성경이 이 문제에 대하여 확실한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사 40:5). 메시야적 대망(Messianic Expectation)입니다. 메시야가 참 소망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많은 부분에서 종말론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종말론적 신앙의 핵심은, “복음”입니다. 그 복음이 이사야 40:9-1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사 40:9-10). “아름다운 소식(사 40:9)”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장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사 40:10).” 이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또한 복음의 핵심은 “사죄”입니다. 죄 사함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40:2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사 40:2).
믿는 사람들은, 가장 큰 사랑인 “용서”를 복음의 핵심이라고 외치야 합니다. 밝은 소망이 메시야의 세대에 임할 것을 외치라고 말씀합니다. 메시야의 오심이, 바로 용서의 시대가 임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많은 문제들 앞에서,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를 조목조목 따지고 비판하면서 미래를 말합니다. 이러한 시시비비를 통해서는 절대로 미래는 보이지 않습니다. 과거를 청산해야 미래가 보인다고 하는데, 과거를 청산할 길이 없기에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멀리 미래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초월하여 죄인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은총을 사모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모습이 진정한 성탄을 준비하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이 어떠한 상황이더라도 그것들을 들추어내시는 것이 아니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없었던 것으로 여겨주시고 용서해 주시는 바로 이 모습이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음입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받아드리는 준비된 자세를 성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탕자의 비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탕자가 집을 나갔다가 돌아옵니다. 그가 돌아온 것은 실낱같은 미래에 대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어떻게 대해 주실지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들을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의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나는 아버지께 죄를 지었기 때문에 아들의 자격이 없습니다. 아들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머슴꾼의 하나로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는데도 말입니다(눅 15:21).
아들의 생각은 당연합니다. 머슴의 자격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 모든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 아들이라고 합니다. 죽었다가 살았고, 잃었다가 얻은 아들이라고 하면서 잔치를 베풀라고 종들에게 말합니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눅 15:24).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떤 분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도 믿습니다.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 하나만을,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자로 생각하십니다.” 이렇게 말한 “어거스틴”의 말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그렇게 사랑하십니다. 외아들처럼, 외동딸처럼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그 엄청난 사랑을 받아들이고 누리기만 하면 됩니다. 이 진리도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복음이신 오실 예수를 영접하려면 ◉낮아져야 합니다. 낮아지고, 낮아지고, 또 낮아져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오시는 주님을 올바로 영접할 수가 없습니다. 끝까지 겸손해야 합니다. 깨끗하게 마음을 비우시고 낮아지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골짜기가 높아지게 됩니다. 믿으시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만 하시면 소망이 있습니다. 그분이 나를 아들이라고 불러주시면 나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분이 나를 사랑하는 딸이라고 불러주시면 나는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딸입니다. 누가 뭐래도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확실한 주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만왕의 왕으로 오시는 주님을 영접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사 40:3).
굽어진 마음과 편견과 오해들을 다 지워버리고, 순진한 마음으로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 모습이 성도의 자세입니다(Acceptance). 성탄을 준비하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왜 힘듭니까? 왜 이렇게 어려운 겁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참다운 위로는, 죄 사함에 있고, 참 사랑에 있고, 그리고 만나주심에 있습니다. 그 위로를 주실 그분이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를 만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면서 우리의 모든 문제들을 대신 담당해주시고 우리에게 위로와 참 평안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위로를 받아들이는 길은, 자신을 완전히 부정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리고 새로운 소망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Nov 23, 2025

교회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삶
(마태복음 16:13-20)
주원영담임목사
역사를 살펴보면, 교회는 역사 속에서 잘하기도 하였고 잘못하기도 하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빛과 같은 교회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던 때는 없었습니다. 빛과 같은 교회는 언제나 어둠 속에서도 그 모습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빛은 세상의 소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하는 교회가 때로는 주님의 기대와 사람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때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교회가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는 이유는, 교회의 주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본문 18절 말씀이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 16:18). 예수께서는 교회를 향하여 “나의 교회(My church)”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모습을 생각하면서, 이 시간 성도들이 교회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겨야 할 이유를 생각해 보면서 다짐하려고 합니다.
성도들이 교회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함입니다(눅 19:10).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를 세우는 일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아직도 미성숙한 제자 베드로와 그곳에 있는 제자들을 향하여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렇게 고백하자, 이 모습을 보신 주님께서 한 사람의 헌신에서 교회의 미래를 보신 것입니다(마 16:18).
교회에 많은 성도가 모인다는 것은, 복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지고 있다는 것이지만, 이 모습만이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아닙니다. 교회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적은 성도일지라도 진정으로 헌신된 성도가 있기 때문에 교회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교회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려 오셨기 때문입니다. 믿으시고, 교회를 세워가는 일에 성도님들의 인내를 쌓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자신있게, 주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에 저도 끝까지 참석했다고 큰 소리로 말씀드리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들이 교회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을 뿐 아니라, 교회를 세우시고자 당신의 생명을 버리셨다고 증거합니다(엡 5:25).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셨다는 말입니다. 그 결과로 오늘날 우리의 교회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사도행전 20:28절 말씀에서 교회를 가르쳐 “자기 피로 사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행 20:28).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는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교회에서, 당신의 이름을 찬양하고 당신께 기도를 드리는 당신의 자녀들을 사랑하십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를 사랑하시는 분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나님의 성전을 지켜주시는 분들입니다. 많은 성도가 예배를 드리거나 한 명의 성도가 예배를 드리거나 관계없이 예배를 사랑하고 예배 속의 모든 사역에 함께 해 주시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위하여 진실한 희생을 드리시는 분들입니다. 시간적으로 물질적으로 헌신하고 봉사해 주시는 분들입니다.
교회는 이런 분들에 의해서 지켜지고 세워지고 그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럴 것입니다.
그렇기에 교회를 사랑하는 비결은 단순합니다.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희생을 드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를 위하여 희생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못하셨다면 주님께서 피 값으로 세우신 교회를 위하여 희생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이 모습을 기쁘게 보시고 주님께서 힘을 주실 것입니다. 희생할 수 있는 결단을 주실 것입니다. 공동체의 주인의 모습인 헌신자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희생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실 것입니다. 기쁨을 주시고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이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Nov 16, 2025

새롭게 주시는 축복을 받으려면
(시편 37:3-7)
주원영담임목사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하면, 놀라운 성공과 행복과 보람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낭패와 실망과 불행을 초래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어제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Forget yesterday). 지나간 시간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 잊어버려야 합니다. 지난 것들을 계속해서 생각하면서 그것들에게 집착하면, 내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일을 믿어야 합니다(Trust tomorrow).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들이 내일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되어도, 내일을 기대하지 못하면 삶이 더 힘들어질 것입니다.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건강한 사람은, 언제나 내일을 생각합니다. 미래 지향적이고, 항상 긍정적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것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Living today).
성도 여러분. 지나간 과거의 잘한 것과 실패한 것들을 다 잊어버리시고, 새롭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시면서,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풍성하게 받아 누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새롭게 주시는 축복을 받으려면 ◉염려와 근심을 다 주님께 맡기는 삶을 살기로 다짐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말합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염려와 근심에 짓눌려서 평화와 기쁨을 잃어버리면, 결코 행복한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보람있는 삶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염려와 근심에 짓눌려 사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성도 여러분. 살아가는 동안 때때로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삶의 짐을 짊어져 주실까?” 이런 생각이 드시면, 예레미야 33:2-3절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2-3).
그래서 그분 하나님을 신뢰하는 다윗은 고백합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 55:22). 바울 사도도 말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성도 여러분. 모든 염려와 근심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으면, 주님께서는 책임져 주시지 않습니다. 문제들을 주님 앞에 맡길 때, 주님께서 그 일을 책임져 주시고 해결해 주시고 염려와 근심에서 벗어나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우리의 짐을 맡기는 방법이 “기도”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주시는 축복을 받으려면 ◉우리의 모든 길을 여호와께서 인도해 주시도록 맡기는 삶을 살기로 다짐해야 합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시 37:5-6). 잠언 기자도 말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6).
성도 여러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려면 ◎순종해야 합니다. ◎사심을 버려야 합니다.
살아가시는 동안 우리의 옛 모습인 탐욕과 정욕을 그대로 가지고 살아간다면 결코 성령님의 인도하심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성도님들께서 삶의 모든 문제들을 전능하신 창조주 여호와께 맡기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형통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주시는 축복을 받으려면 ◉큰 꿈과 큰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기로 다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시 81:10). 하나님을 향해서 큰 꿈을 가지면, 하나님께서 필요를 채워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성도님들을 축복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쓸 모든 것들을 풍성하게 채워주신다고 약속하신 이 말씀을 굳게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염려와 근심을 모두 다 주님께 맡기는 삶을 살기로 다짐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의 모든 길을 여호와께서 인도해 주시도록 맡기는 삶을 살기로 다짐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큰 꿈과 큰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기로 다짐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렇게 살기로 다짐하는 성도님들에게, 하늘 문을 여시고 감당할 수 없는 축복을 부어주시는 은혜가 풍성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Nov 9, 2025

본 받고 싶은 멋진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상 24:1-7)
주원영담임목사
사람들에게는 때때로 자신에게 아픔과 상처와 억울함을 준 대상들이 있습니다. 원수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번 시원하게 복수하고 싶은데, 체면 때문에, 기회가 없어서, 기회가 있다고 하여도 힘이 없어서, 특별히 예수를 믿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고 사는 답답함이 우리들에게 종종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통쾌하게 복수할 기회가 있고 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억제하고 복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답답해하거나 속상해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훌륭한 사람일 것입니다. 정말 존경할 만한 사람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다윗이 아직 어린 소년이었을 때 누구도 감히 대적하지 못했던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을 상대로 물맷돌을 들고 이렇게 말하면서 나아갔습니다.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삼상 17:45).
이 일이 있은 후 다윗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아졌고(삼상 18:7), 사울 왕은 나라에 큰 공을 세운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삼상 18:8-9). 그러자 이 일을 알게 된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하여 도망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한번은 다윗이 “엔게디”라는 사막에 있을 때였습니다. 사울 왕이 군사 3,000명을 이끌고 다윗을 잡겠다고 그곳까지 쫓아 왔습니다. 그리고 사울 왕이 개인적인 용무가 있어서 다윗이 숨어 있는 굴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다윗에게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사람이 만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기회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부하들은 다윗에게, 이 상황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라고 말합니다(삼상 24:4). 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기름 부어 왕으로 삼으신 이를 내가 함부로 손대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합니다(삼상 24:6). 보통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다윗이 왕이 된 후에, 한번은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하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다윗 왕은 급하게 성을 빠져나와 기드론 시내를 건너 도망을 합니다. 그때 사울의 친척인 “시므이”라는 사람이 길가에서 도망하는 다윗을 저주합니다(삼상 16:7). .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삼하 16:7). 다윗의 신하 “아비새”가, 저 못된 시므이를 당장 처 죽이자고 말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삼상 16:9-10).
다윗이 복수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수를 금하셨다는 말씀을 믿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똑 같은 방법으로 복수를 합니다. 아니 더 심한 방법으로 복수를 합니다. 가해자는 피해를 입힌 만큼만 정직하게 갚아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출 21:23-25. 롬 12:17.19.21), 대부분의 사람들은 독하고 악한 마음을 가지고 더 심하게 복수를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사울 왕이 굴에 들어왔을 때 칼로 사울 왕의 목을 베지 않고 가만히 그의 옷자락을 조금 베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 때문에 마음이 찔렸다고 말합니다(삼상 24:5).
다윗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자신을 억울하게 하지 않으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공정하게 심판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부럽습니다. 닮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윗처럼 하나님만을 생각하면서 복수하지 않는 마음, 더 나아가서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성도님들께서도 이런 모습을 보여준 다윗을 마음속에 깊이 새기시고 닮아가시기를 힘쓰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살아가는 동안, 싫은 사람, 미운 사람, 복수하고 싶은 원수같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복수의 기회인 줄 알고 단칼에 그동안 쌓였던 억울함과 울분과 손해와 스트레스를 갚아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윗처럼 살아가시기를 원하십니다. 용서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사랑해 주면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다윗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힘이 없고 권력도 없는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사울 왕까지도 용서한 다윗을 생각했습니다. 멋있습니다. 정말 멋있습니다. 본받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원수까지도 사랑했던 다윗을 본받기로 다짐하는 결단이, 함께 예배를 드리는 성도님들과 영원한 교회에, 넘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