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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May 19, 2024

우리가 꿈꾸는 교회
(여호수아 8:30-35)

주원영담임목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아이 성 전투에서 실패한 이유는 아간의 잘못 때문이라고만 생각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아간의 잘못 때문에 이스라엘 공동체에 어려움이 찾아온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간의 문제는 표면에 드러난 문제일 뿐입니다. 내면적인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교만했습니다. 인간의 경험을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어도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 결과가 아이 성 전투에서의 패배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아이 성과 같은 작다고만 생각했던 문제들이 우리의 가는 길에 발목을 잡게 됩니다. 큰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겸손하시기를 바랍니다. 내 노력과 내 경험을 앞세우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모습이 아이 성을 정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아이 성을 정복한 저들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서 갈릴리바다 위쪽인 북쪽으로 올라갑니다. 왜 에발 산과 그리심 산이 있는 북쪽으로 올라갔을까요?

하나님께서 지난날 모세를 통하여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신 11:29). 그리심 산은 숲이 우거진 산입니다. 그러나 에발 산은 보시는 대로 민둥산입니다. 돌산입니다. 가시와 엉겅퀴가 자랄 뿐입니다. 그렇기에 그리심 산에 올라간 사람들은 복을 받을 것이지만, 에발 산에 올라간 사람들은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심 산에 가는 것만으로도 축복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정말 놀라운 진리 하나를 발견합니다. 여호수아 8:30절 말씀입니다. 그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 산에 한 제단을 쌓았으니 (수 8:30). 축복을 선포하는 그리심 산에 제단을 쌓은 것이 아니라, 저주를 선포하는 에발 산에 제단을 쌓습니다.

왜 에발 산입니까? 축복의 산인 그리심 산에 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하지 않습니까?

당시에는 지파별로 움직였기에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자파에 소속되어 있기에 당연히 그리심 산으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에발 산으로 갔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여호수아가 왜 에발 산으로 갔습니까?

우리가 그 이유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저주의 산이 축복의 산으로 변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장소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에발 산에서 드렸던 제사가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교회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을 주십니다.

❶교회는, 교회 본래의 모습이 간직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교회는 변질되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가르치시고 고치시고 전파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셨습니다(마9:35).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중의 몇몇 교회는,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을 내세웁니다. 웅장함을 자랑합니다. 부자됨을 자랑합니다. 교회의 본래 모습이 사라졌다는 말입니다.

❷교회는, 어떤 경우에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호수아 8:34-35절을 보세요. 여호수아가 축복과 저주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다고 기록하였습니다(수8:34-35). 균형잡힌 교회의 모습입니다. 영성학자 필립얀시는 교회의 존재 이유를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교회는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하여야 하고(예배), 교회를 위하여 존재하여야 하고(훈련. 교육), 세상을 위하여 존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증거하는 삶을 사는 것).

❸교회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본문을 잘 보시면 어느 틈엔가 그리심 산에 있는 사람과 에발 산에 있는 사람이 모두 한곳에 모여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가 되었습니다. 한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모두 머리를 숙이고 있습니다. 말씀을 낭독하는 소리만 들리고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선포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섬기는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위하여 기도하시고 힘쓰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May 12, 2024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는 부모
(잠언 4:20-27)

주원영담임목사

부모는, 존재한다는 것, 살아계신다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분들입니다. 이미 세상을 떠나셨다고 해도 가슴 속에 영원히 계신 분들입니다. 요즘 좋은 아버지들의 모임이라는 모임이 운영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은 그 모임을 통하여 좋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지켜야 할 계명이라는 것들을 발표하고, 그것들을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모든 내용들이 맞는 말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것들만이 전부일까요? 더 오랫동안 기억되고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없을까요?

오늘 본문은 아버지 다윗이, 아들 솔로몬에게 권면하고 가르쳤던 내용의 말씀들이지만, 모든 부모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말씀에서 아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의 이 가르침을 좋은 추억으로 가슴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다윗의 경륜이나 지혜나 발자취에 비하면 아들 솔로몬은 그야말로 간난아이에 불과하지만, 다윗은 이제 성년이 된 아들 솔로몬에게 모든 것을 다 맡기고, 그가 잘 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뒤에서 조용히 바라보며 응원만 하고 있습니다. 기도했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되고 부모가 된 우리가 깊이 생각하고 본받아야 할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워싱턴 장로교회를 담임하셨던 “조나단 머츨러” 목사님은, 미국교회의 신세대인 젊은 청소년들의 대부분이 자신의 부모의 신앙생활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들은 이런 것들이라고 말합니다.

◉주일예배나 교회수련회 기간에 맞춰 여행을 떠나는 부모. ◉예배시간에 몇 번씩 시계를 들여다보는 부모. ◉자녀 앞에서 목회자에 대해 험담을 내뱉는 부모. ◉십일조나 감사헌금을 제대로 하지 않는 부모. ◉교회를 자주 옮겨 다니는 부모. ◉예배시간에 습관적으로 지각하거나 조는 부모. ◉기도하지 않는 부모. ◉섬김의 자리에 나아가지 않는 부모. ◉예배가 마치기가 무섭게 칼같이 교회를 빠져 나가는 부모. ◉말만 앞세우는 부모.

만일 우리의 이런 모습들이 자녀들에게 보여진다면, 자녀들이 부모인 우리에게서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믿음의 본만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말이 아니라 그 길을 앞장서서 걸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지혜롭고 겸손하게 자녀들은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는 모습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귀한 부모로 존경을 받고 기억되게 될 것입니다. 기억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잘 반죽된 한 덩이의 찰흙이 있으면 그 찰흙으로 원하는 모양을 아름답고 멋있게 빚어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찰흙이 굳어져 버리면, 그 모양을 바꿀 수 없습니다. 바로 우리의 자녀들은 마치 찰흙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어른들에게 잠언 22:6절 말씀을 통하여 당부합니다.

다윗은 아들 솔로몬이 어렸을 때부터, 그를 믿음으로 양육하기에 힘썼습니다. 자신이 임종하기 직전까지도 그렇게 했습니다. 솔로몬이 장성했을 때까지도, 그가 아들의 손을 붙잡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가르쳤습니다. 그러고 역대상 28:9절을 통하여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라.” 다윗은 국사를 책임지고 있었던 왕이었기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떠난 후에도 아들 솔로몬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이어가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솔로몬이 지금 아버지를 떠올리고 있습니다. ◉약하고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는 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향하여 묵묵히 기대하고 기다려주시는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생명을 다하여 신앙의 유산을 남겨주려고 애를 썼던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라고 말합니다(시127:3). 우리가 잘 키워야 합니다.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키우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자녀들이 먼 훗날 우리를 그리워하고, 존경하고, 기억하는 그런 발자취를 남기는 지혜로운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어야 합니다. 육신적으로만이 아니라 신앙적으로 그런 유산을 남겨주는 부모가 되셔야 합니다. 이와 같은 부모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May 5, 2024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는 부모
(잠언 4:1-6)

주원영담임목사

오늘 본문에는 왕의 자리에 있는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을 추억하고 있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때가 솔로몬의 생애 중에서 후반부라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아버지 다윗은 3-40년 전에 세상을 떠난 상태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 아버지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본문 4절 말씀입니다.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 (잠 4:4). 이어지는 9절 말씀입니다.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셨느니라 (잠 4:9). 아버지가 이렇게 자신을 교훈하고 훈계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다윗의 가르침을 아들인 솔로몬이 지금 떠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에게도 세월은 비켜가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흐르니까 아들 솔로몬도 어느덧 아버지 나이가 되었고, 그때 그는 아버지 다윗으로부터 받은 바 그 가르침을 자신의 아들들에게 그대로 전합니다. 아니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전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버지는, 단지 육신의 아버지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로마서 8:15절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육신적인 교훈만이 아니라, 영적인 교훈도 주고 있다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아들이었던 솔로몬 왕이 아버지의 어떤 부분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성경을 통하여 다윗과 솔로몬의 모습을 살펴보면, 아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에 대하여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역대하 1:8절 말씀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말하되 주께서 전에 큰 은혜를 내 아버지 다윗에게 베푸시고 내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니 (대하 1:8). 어머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솔로몬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완벽했을까요? 매사에 존경받을 만한 아버지였고, 어머니였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다윗이 행한 일들을 아들 솔로몬이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사무엘하 11:24절에 기록된 남의 아내를 취하기 위하여 부하를 시켜 그 여자의 남편을 교묘하게 전쟁터에서 전사하도록 한 일(삼하11:24). 사무엘하 24:15절에 기록된 교만한 마음으로 인구조사를 한 결과로 칠만 명이 죽게 되었던 끔찍한 사건(삼하24:15).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일들을 다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들어서 알고 있고 기록을 보아서 알았을 것입니다. 또한 어머니 밧세바에 대한 일들도 대부분 알고 이해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허물투성이였던 부모님의 모습을 아들이었던 솔로몬은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가 부모에 대해서 좋은 감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셨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내게 너무나 귀한 어머니였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면서 그분들의 가르침에서 떠나지 말라고 자신의 자녀들에게 교훈합니다.

성도님들께서는 혹시 부모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계시거나 오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부모도 나와 똑 같은 인간입니다. 약한 부분이 있고, 나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을 수도 있고, 다른 부모들에 비해서 자랑스럽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약점 많은 자신의 부모를 “좋은 부모”로 기억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성도님들의 부모가 연로하시더라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부모님들께서 원하는 것은 별것 아닙니다. 자주 보기를 원하십니다. 나이가 많아들면 영육 간에 추위를 느끼기 때문에 자주 찾아뵈야 하는 것입니다. 따뜻하게 해 드려야 합니다. 부모님께서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하늘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아가실 수 있도록 잘 도와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잠언이 우리에게 교훈하는 것이고,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엡 6:1-3).

지혜자가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교훈하시는 말씀들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심으로,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축복을 풍성하게 받아 누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Apr 28, 2024

아홉은 어디 있느냐?
(누가복음 17:11-19)

주원영담임목사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물으면 사람들의 대답은 모두 다를 것입니다. 건강, 돈, 명예, 명예, 자녀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요즈음은 요즘은 반려동물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을 볼 때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관심” 때문입니다. 아무 생각이 없고 아무런 관심이 없으면, 아무것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아무 생각 없는 듣고 잊어버리는 그런 성도님들에게, 왜 예배와 말씀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예수님의 제자 누가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예수님의 관심은 어디 있는지”입니다(눅17:17).

예수님의 관심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돌아온 한 사람 사마리아 사람보다 돌아오지 않은 9명에게 있다고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올바른 성도의 자세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하는 것은, 성도님들께서도 9명 중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감사한 것은, 내가 9명이 되었을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나를 생각하시고 걱정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또 하나 생각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관심은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결론은 다 알고 계실 것입니다. 당연히 9명에게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1명의 행동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아가면서 은혜를 모르면 안됩니다. 특히 성도들은 우리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은혜를 잊어버린 자가 9명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문제가 해결되니까, 마음이 바뀐 것입니다(눅17:17-18). 그래서 예수님께서 안타까워하신 것입니다.

저들에게는 간절한 간구가 있었고, 믿음도 있었고 순종도 있었습니다(눅17:12-14). 그런데 고침을 받고 나니 은혜를 잊었습니다. 그저 기쁘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안타까워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 순종, 믿음은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러나 기도와 순종과 믿음은, 반드시 감사라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은혜를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감사하는 모습은, 구원의 완성이며 성도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억해야 하는 것은 성도들이 가장 범하기 쉬운 잘못이 “잊어버리는 것”이라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잊어버리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은 다른 사람을 위한 말씀이 아니라, 바로 나를 향한 말씀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존 맥스웰”은 말했습니다. “만족하는 사람은 자신이 받은 복을 하나씩 헤아려 본다. 그러나 어떤 일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남들이 받은 복을 세워보면서 자신에게는 아무런 즐거움도 없다고 불평한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감사는, 내게 있는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만, 그것보다 더 귀한 감사는, 다음으로 미루지 않고 지금 이 시간에 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제단에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한센병자와 다를 바 없는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은혜를 잊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9명은 어디있느냐고 물으시면서 제자의 길을 가르쳐 주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늘 기억하시고 진실하게 신앙생활을 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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