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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약

Oct 10, 2026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옥합을 깨뜨린 여인
(마가복음 14:3-9)

주원영담임목사

오늘 본문에 기록된 사건이 일어나던 상황은, 바로 폭풍우가 몰아치고 뇌성이 울리던 밤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책을 구하며 이르되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막 14:1-2). 당시의 대표적인 종교인들이었던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던 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밤에,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감사의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본문에 기록된 이 사건에 대하여 요한복음 12:3절에서는 이 여인의 이름을 “마리아(나사로의 누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러나 마가는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여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의 헌신은 숨겨질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이 되고 말았습니다. 9절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막 14:9). 주님께서는 친히 옥합을 깨트려 감사를 드린 이 여인을, 하나님 나라 역사의 가장 소중한 존재로 인정하시고 세워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된 헌신과 참된 감사는 어떻게 드리는 것일까요?

◉할 수 있는 곳에서 드리는 것입니다.

할 수 있는 곳에서 드리는 헌신과 감사가 참된 헌신과 참된 감사입니다.

성경은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을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나병환자였던 시몬이 예수님에게 치유함을 받은 것을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예수님을 모시고 대접한 잔치였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식사는 일상의 식사 자리가 아니라 시몬의 가족들이 공개적으로 예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자리였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보다는 요한복음 12:1-2절 말씀이 조금 더 객관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3절 이하의 말씀에서는 마리아의 헌신을 소개하였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잔치는 “예수님을 위한 잔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식탁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지 나흘 만에 살려주신 나사로도 있었습니다. 시몬의 집에서 열린 이 잔치는 그야말로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은혜를 경험한 자들이 정성으로 준비한 잔치였다는 말입니다. 죽었던 오빠가 주의 은혜로 다시 살아난 것을 감사해서, 불쌍하게 살았던 이웃 시몬이 고침을 받은 기적을 경험한 것에 감사해서, 그리고 전해주신 말씀으로 구원을 체험하고 인생의 새 소망을 얻은 것에 감사해서 준비한 잔치였습니다. 그러기에 마르다와 마리아가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함께 이 잔치를 준비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아낌없이 드리시고 헌신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특별히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 수 있는 것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나는 무엇으로 감사할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던 마르다와 마리아가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결정했습니다. 마르다는 이전과 같이 잔치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오래도록 고이 간직해온 옥합을 주님께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할 때 사용하려고 준비했을 것입니다.

성경은 이 향유의 가치가 300데나리온 이상이었다고 기록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막 14:4-5). 당시 평범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1데나리온이었으니까, 이 향유는 일반 노동자의 일년 봉급에 해당되는 금액입니다. 오늘의 가치로 계산하면 약 ₩45,000,000-₩60,000,000정도 되는 금액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샐러리 맨의 일년 봉급에 해당하는 헌신이었는데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그 귀한 옥합을 깨뜨렸습니다. 그리고 그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 위에 부었습니다.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헌신이었고 해야 할 헌신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함께 있던 많은 사람들이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말합니다(막 14:4). 그러나 주님의 생각은 다르셨습니다(막 14:6). 이어서 주님께서는 이 일이 아름다운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기억하시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막 14: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있는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드릴 때, 주님께서 기억해 주십니다. 드릴 것이 있을 때, 마리아처럼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이 은혜를 맛보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 수 있는 때에 드리는 것입니다.

본문은 이 여인이 옥합을 깨고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 드린 때는 유월절을 2일 앞둔 때였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막 14:1). 그러니까 본문의 사건은 유월절 시작 이틀 전인 수요일에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체포되어 십자가로 가시기 9일 전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만일 마리아가 예수님께 그날 이 사랑의 헌신을 드리지 못하고 주님의 임종의 소식을 들었더라면, 그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러나 마리아는 이 기회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가는 이때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막 14:8).

성도 여러분. 봉사를 할 수 있는 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할 수 있을 때 해야 합니다. 헌신의 때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할 수 있을 때 해야 합니다. 사랑의 때도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할 수 있을 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파도가 몰려올 때를 놓치지 말고 응답해야 합니다. 감사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어쩌면 이런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주님을 위해 사용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고이 간직하고 있었던 가장 소중한 것을 드렸습니다. 마리아처럼 할 수는 없을지라도, 우리에게 주신 건강, 우리에게 주신 재능, 우리에게 주신 물질, 우리에게 주신 열정. 이것들을 가지고 ◉사용하고 드릴 수 있는 곳에서 정성으로 드릴 수 있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신 것들을 아깝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흔들어서 차고 넘치게 되돌려주시는 그분을 믿고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드릴 수 있을 시간은 우리 평생에 계속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할 수 있는 때에 드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의 모습이, 말씀드린 것과 같이, 드릴 수 있는 곳에서, 드릴 수 있는 것으로, 드릴 수 있을 때에 드릴 때,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부족하지 않고 차고 넘치게, 그리고 풍성하게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마리아가 그런 마음으로 드렸을 때에, 그의 드림이 복음이 전해지는 모든 곳에서 기억되듯이, 우리의 드림이 주님께서 기억해 주시는 드림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저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상급이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Oct 3, 2026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
(마태복음 15:21-28)

주원영담임목사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가끔 버림받음에 대한 두려운 생니다. 이러한 불안한 생각들이 우리의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말입니다. 특별히 신앙인들에게 이런 생각은, 죄의식과 연관되어 삶에서 뚜렷하게 표현되어 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아담에게서도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창 3:9-10).

정신의학자들은 이런 경우가 심해지는 현상을 “보더라인 성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 라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경우에서 이런 증상은 애매모호하기에, 딱히 이것이라고 말하기가 어려워서 “경계선상의 성격장애(보더라인 성격장애)”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생각하려는 말씀에는, 버림받는다는 두려움을 믿음으로 잘 극복하고 마침내 큰 은혜를 받은 한 여인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하마터면 이 여인은 버림받을 뻔했지만, 버림받지 않고 예수님께 인정을 받고 큰 칭찬을 받고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2,000여 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믿음의 본이 되는 여인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간, 이 여인이 버림받지 않고 은혜를 받은 이 사건을 생각하면서, 이 여인이 극복한 장애물들이 무엇이며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생각하면서 교훈을 얻으려고 합니다.

이 여인이 극복한 어려움들은 ◉현실적인 냉대였습니다. 냉혹한 현실을 극복한 것입니다.

이 여인이 살고 있는 곳을 가나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마가복음 7:26절 말씀에는 조금 더 자세히 기록하였습니다.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막 7:26). 수로에 속한 보니게 지역에서 살고 있는 여인이라는 말입니다. 두로와 시돈이라는 해안 도시에서 살던 여인이었다는 말입니다. 지금의 레바논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선민이 아닌 이 여인이, 귀신들인 어린 딸을 데리고 고침을 받기 위해서 예수님께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간절한 부르짖음에 별로 관심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노골적으로 이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을 방해하고 있습니다(마 15:23).

살아가다 보면, 우리들도 종종 이런 상황을 경험합니다.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 보아도 문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그 어떤 방법도 보이지 않습니다. 모두가 나를 반대하고 넘어뜨리려는 적들처럼 느껴집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로 이 여인이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계속 예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간청합니다. 그리고는 두 마디 말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마 15:22). 주여 저를 도우소서(마 15:25). 이 여인의 기도가 마침내 주님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기도를 예수님을 감동시킨 예수님께 드린 기도라는 불렀고,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여인의 기도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앞을 어려운 일이 가로막고 있을 때, 견디기 힘든 냉혹한 현실이 두려움을 줄 때, 이 여인처럼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여 나를 도와 주시옵소서.” 내가 믿고 의지하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들으시고 기적을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이 여인이 극복한 또 하나의 어려움은 ◉자존심의 상처였습니다. 현실에서 받은 자존심의 상처를 극복한 것입니다.

간절하게 딸의 귀신들린 병을 고쳐주시기를 간청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을 향하여 개라고 말씀하십니다(마 15:26).

살아가다 보면, 이렇게 자존심의 상처를 받는 일이 참 많이 있습니다. 때로는 비참하기까지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자존심의 상처를 받았을 때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두 가지 반응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현실을 인정하고 살피면서 자신을 한 단계 높여놓는 모습입니다. 자신의 유익과 성숙을 도모하는 일입니다.

가나안 여인이 보여준 반응이 바로 두 번째 반응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간절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이 여인에게, 상처를 주는 것과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마 15:26). 그런데 이 여인은 주님의 말씀에 이렇게 반응합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마 15:27)

예수님의 말씀이 맞다는 말입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간절히 간구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나는 개입니다. 나는 개와 같은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여자입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당신에게 개들에게 주는 부스러기 은혜를 구합니다. 그 은혜라도 주시옵소서. 제가 그 은혜가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아가는 동안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이런저런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자존심의 상처를 생각하기보다, 그분의 긍휼하신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시고 경험하시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여인이 극복해야 했던 세 번째 어려움은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극복한 것입니다. 바로 다니엘의 세 친구가 보여주었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단 3:17-18).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심리적으로 버림을 받았다는 느낌을 받는 때는,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할 때입니다. 본문에 등장한 여인이 바로 그런 버림받음을 경험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여인이 간절히 부르짖습니다.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마 15:22).

그런데 이 부르짖음을 들으신 예수님의 반응이 냉담합니다. 반응이 없으십니다. 나는 절박한데, 그래서 소리높여 부르짖는데, 주님께서는 관심을 보이시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본문을 묵상하면서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상황이 이와 같을지라도 그 상황을 극복해야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처럼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합 2:3).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가까스로 냉혹한 현실을 인정하고 무너져버린 자존심이지만 참았는데, 이렇다 저렇다 말씀하시지 않고 무시합니다. 그러더니 기껏 하신다는 말씀이 이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마 15:24). 무시하는 것도 모자라서 아예 상대를 안 하시겠다는 선언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지금은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간절한 기도에는 꼭 응답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예수님 앞에 나옵니다. 엎드립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간청합니다.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마 15:25). 이 고백을 들으신 주님께서 이 여인을 칭찬하십니다.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마 15:28).

이 은혜와 축복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으로 간절히 주님 앞에 나오신 성도님들에게 넘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독교 작가 “필립 얀시”는 그의 명저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라는 책의 첫 장에서 애니 딜라드(Annie Dillard)의 시를 인용하는 것으로 그의 글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어두운 바깥에 앉아 있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별을 보기 원한다면 어두움이 필요합니다. 비록 별은 어두움을 필요로 하지도 요구하지도 않지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냉혹한 현실이 내 삶을 가로막고 있습니까?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기적을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자존심의 상처를 받으셨습니까? 그 상처를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자존감의 상처를 생각하기보다, 주님의 긍휼하신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피 흘리신 그 손으로 우리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 같으십니까?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으로 인내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도 우리를 실망시키시지 않으셨던 분이십니다. 반드시 응답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이와 같을 때 우리 귀에 이런 음성이 들릴 것입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사랑하는 내 딸아. 내가 너를 잘 안다. 네 기도를 들었다.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될지어다.

이 음성이 들려지는 은혜가 성도님들의 삶에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Sep 26, 2026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감사를 잊지 않은 사람
(누가복음 17:11-19)

주원영담임목사

성경에는 여러 번 반복해서 기록된 많이 단어들이 많습니다. 그중에는 “기억하다”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고 말합니다(시 103:2). 그러나 잊어야 할 것들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사 43:18).

그런데 살아가다 보면, 기억해야 할 것은 기억하지 못하고 잊어버리고 사는가 하면, 잊어야 할 것은 잊지 못하고 기억하면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 본문을 통해서 이 문제를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특별히 잊지 말아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본문에는 예수님을 만나 치유함을 경험한 열 명의 한센병(나병) 환자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열명이 함께 예수님께 치료해 주실 것을 간청했고, 이 간청을 들은 주님께서는 이들 모두를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치료함을 받은 열명중 오직 한 사람만 주님께 돌아와 감사를 드렸습니다(눅 17:15-16).

이 모습을 보신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눅 17:17).

열 사람 중에서 단 한 사람만 감사를 잊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과거에 주신 은혜를 잊지 말고 돌아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이 감사를 잊고 사는 것은, 과거를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한센병(나병)에서 치유함을 받은 자들의 모습이 바로 과거를 망각한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지난 세월 속에서 겪어야 했던 수모와 불행을 기억한다면, 감사를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중의 오직 한 사람만 감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과거를 잊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눅 17:18).

그래서 예수님께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특별히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시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나는 그 아홉 사람 중에 있지는 않았을까요?

평생을 감사하면서 살았던 모범적인 사람이 성경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다윗입니다. 그가 평생을 감사하면서 살았던 이유가 사무엘하 7:1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삼하 7:18). 다윗이 평생을 감사하면서 살았던 이유는, 자신의 과거 모습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왕의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가난한 목동으로 고생했던 그 과거를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한걸음 더 나아가, 보다 근본적이고 영적인 과거를 잊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에베소서 2:11-12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엡 2:11-12). 바로 이 모습이 우리의 과거이기에 바울 사도가 이렇게 권면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나간 시간들을 잊지 마시고, 그 시간 속에 개입해 주셨던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인자하심의 은혜를 기억하시고 감사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감사를 잊지 말고 살아야 할 이유는 ◉현재의 감동을 붙들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순간순간의 감동을 붙들고 사는 사람들만이 경험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다시 한번 살펴보니, 한센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열 명 모두에게는, 믿음이 있었고 순종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과 순종이 저들의 병을 치료했습니다(눅 17:14). 그래서 나머지 아홉 명에게도 감사해야겠다는 마음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인가 나의 병을 치료해 주신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기 위해서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감사하는 것을 미루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미루지 않았습니다. 지금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제사장에게 달려가는 도중에, 걸음을 돌려 곧장 예수님께 달려 온 것입니다. 그는 현재의 감동을 현재의 감사로 드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삶의 시간들을 감사하는 영성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으시다면 현재의 감동에 민감하십시오. 성령께서 감화하시고 감동하시는 대로 행하십시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지금 감사하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인생은 언제나 감동일 것입니다. 오늘도 감동이고 내일도 감동일 것입니다. 이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감사를 잊지 말고 살아야 할 또 하나의 이유는 ◉미래를 기대하며 살아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아직 살아가야 할 시간이 많이 남았습니다. 남아 있는 삶의 시간들(여정)을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말할 것도 없이 감사할 줄 아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을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감사할 내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현재를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감사할 미래가 주어집니다. 그래서 스펄전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촛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에게는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에게는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에게는 햇빛도 필요 없는 영원한 천국을 주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치료해 주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던 발걸음을 돌려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한 이 사람에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눅 17:19). 육신의 질병을 치료해 주신 것을 감사했더니, 영혼의 구원까지 보장하여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미래의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오늘의 답답한 현실을 극복하고, 새 미래를 열고자 하신다면, 멋진 감사의 제단을 쌓으십시오. 그러면 성령께서 우리의 미래를 멋지게 열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동역자 여러분. 지난온 시간 동안 나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주신 그 감동으로 오늘도 천국의 행복을 누리고 살아가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미래에 우리에게 영원한 천국을 주실 것을 믿는 믿음으로 감사를 드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은혜를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생각해 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Sep 19, 2026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준 두 여인
(누가복음 10:38-42)

주원영담임목사

본문에 나타난 마르다가 일 중심의 사람이었다면, 마리아는 전형적인 인간 중심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기록을 볼 때, 마르다는 항상 서서 일하는 모습으로 등장하지만(눅 10:38), 마리아는 항상 앉아서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으로 설명되고 있기 때문입니다(눅 10:39).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는 사역의 현장에는, 언제나 이와 같은 두 가지 유형의 사람이 모두 필요합니다. 교회에도 가정에도 그리고 신앙의 공동체에도 이 두 가지 모습의 사람이 모두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성도님들께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오해하는 큰 실수는, 마르다는 잘못했고 마리아는 잘했다는 판단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듣고 묵상하는 것이, 봉사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런 해석을 올바르다면, 우리들이 섬기는 교회에는 질서가 없어지고, 모든 일이 엉망진창이 되고, 지저분하고, 주님께서 맡겨주신 그 어떤 사역도 감당할 수 없게 되고 말 것입니다.

본문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도, 주님께서는 결코 마르다의 섬김 그 자체를 잘못되었다고 평가하지 않으셨습니다.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눅 10:41).

주님께서는 마르다가 많은 일을 하는 것을 질책하신 것이 아니라, 많은 일로 인하여 염려와 근심에서 해방될 수 없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문제는 마르다의 영성에 조금 부족한 면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르다의 영성에 마리아의 영성이 합쳐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두 여인의 서로 조화된 영성을 회복하려면, 우리의 섬김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져야 한다는 말입니까?

◉성취하는 것보다 존재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날은 물질적 가치관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사회입니다. 이와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 많은 소유하고, 더 많은 성취를 이루면, 인생이 행복하게 된다고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그리나 우리는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5).

성경적 가치관에서는, 존재하는 것이, 소유하는 것보다 언제나 앞서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3:16-17절 말씀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딤후 3:16-17).

바울 사도가 말하는 성경의 유익은 먼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고, 그 다음에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선한 일들이 되도록 우리를 온전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인격의 온전함이 행위의 온전함보다 먼저라는 말씀입니다. 일반적인 표현으로,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만이 자신을 주님의 자녀다운 사람으로 만든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반면에 마르다는 여러 가지 많은 일을 함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염려와 근심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마르다는 존재하는 것이 일하는 것(행위)보다 먼저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마르다와 마리아의 모습을 묵상하면서, 지금까지 신앙생활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 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얼마나 성숙한 성도가 되었는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성취보다 존재에 집중하셔야 합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비교하는 것보다 나에게 주신 사명에 집중해야 합니다.

마르다의 불평과 원망은 “비교함” 때문이었습니다. 자신과 동생 마리아를 비교한 것입니다(눅 10:40). 그래서 “C.S.루이스” 교수는 사탄의 가장 예리하고 비열한 무기가 바로 비교의식이라고 지적한 것입니다. 비교의식 때문에 우리는 존재의 기쁨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섬김의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봉사의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만일 마르다가 비교에 열중하기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집중하였다면, 존재의 기쁨과 봉사의 기쁨과 섬김의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예수님으로부터 더 큰 칭찬과 더 큰 축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마르다가 자신의 사명이 “섬기는 것”이라고 확신했다면, 자신에게 아직도 일할 수 있는 건강이 있다는 것을 감사했을 것이고,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것도 감사했을 것입니다. 주님을 직접 자기 집에 모시고 대접하게 된 것이 너무나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르다는 주님에게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주님 발치에 앉아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동생 마리아에게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서 감사하는 마음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은, 늘 비교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이제부터라도 비교하는 것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주신 사명을 집중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불평하기보다 먼저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모습은 정말 대조적입니다. 마르다의 마음이 분주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동생을 비난하고 원망하고 고발하고 있습니다(눅 10:40). 이런 모습과는 달리 마리아는 언니 마르다의 모습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다만 시선을 주님께 고정시키고 그분께서 하시는 말씀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눅 10:39).

그래서 주님께서는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눅 10:41-4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에는 창조자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 있습니다. 바라기는 성도님들 모두에게, 오늘의 말씀과 같이 좋은 편을 택하는 주의 귀한 자녀들이 되셔서 그분이 주시는 은혜에 흠뻑 젖는 삶을 살아가시는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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