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요약
Apr 6, 2025

하나님의 뜻 ⓸
(데살로니가전서 5:16-22)
주원영담임목사
우리는 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에게 소원을 가지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고 하십니다(롬 12:2).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데, 그 뜻을 분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을까요?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않는 것이고(살전 5:19). ◉예언을 멸시하지 않는 것입니다(살전 5:20).
그런데 성경은 이것들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말합니다. 21-22절 말씀입니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1-22).
성도 여러분. 기록된 “좋은 것”은 나에게 유익되고 도움이 되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닙니다. “좋은 것을 취하라”는 주님의 말씀의 뜻은, “내 생각과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택하라.” 이 말씀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좋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 예를 누가복음 10장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윗에게서 좋은 예를 찾을 수 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의 싸움입니다. 다윗이 가지고 있는 것이 골리앗의 모습과는 비교도 되지 않지만, 다윗은 담대하게 말합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 17:45).
골리앗의 손에는 칼과 창과 단창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것이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소년 다윗은,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기에 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선택한다고 생각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가지고 전쟁터에 나아갔던 것입니다. 바로 이 모습이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습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내 마음에 모시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은 선택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택은 일반적인 것이지만, 어떤 선택은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 그 사람의 미래가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선택하여야 하는지에 대하여 분명하고 선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 (마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좁은 길을 가는 자의 결국은 “영생”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신 말씀은, 넓은 의미에서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마태복음 5:1절을 보시면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충격입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은 이미 모두 다 좁은 문을 선택하고 좁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자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에게 주님께서 좁은 길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다 좁은 길로 걸어가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를 믿고도 넓은 길을 걸어가는 자가 많다는 말입니다. “예수 믿는 것”과 “예수 믿는 자의 삶”은 다른 것이라는 말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출발은 참 좋았습니다. 믿음의 역사가 있었고 사랑의 수고도 있었고 소망의 인내도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그 교회를 향하여 내가 더 이상 너희들에게 할 말이 없고 쓸 말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넓은 길을 선택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바울 사도의 표현이 달라졌습니다. “더욱 힘써라. 더 많이 해라. 범사에 감사해라.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예언을 폐하지 말라. 그리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택해라.” 이렇게 말입니다. 좁은 문을 선택했고 어느 정도 좁은 길을 걸어왔지만, 지금은 넓은 길을 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바울 사도가 이렇게 권면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선택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옳은 것 같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선택을 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유는 이사야 55:8-9절 말씀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 55:8-9).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시고, 좁은 길로 걸어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뜻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언을 멸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택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시고 살아가기로 다짐하시는 성도님들에게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부어주시는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r 30, 2025

하나님의 뜻 ⓷
(데살로니가전서 5:16-20)
주원영담임목사
말씀을 묵상하면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하여 살아왔고, 누구의 뜻을 위하여 힘써 왔는가? 나를 위하여 자신의 아들까지 주신 그분의 뜻을 따라서 살아왔는가?” 성도님들께서는 어떠십니까?
다윗은 평소에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시 143:10). 이것이 다윗의 소원이었습니다. 이 소원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이 소원을 따라 살려고 힘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그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행 13:22). 그리고 그를 목동의 자리에서 위대한 이스라엘의 왕의 자리에까지 올려주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라는 말입니까?
하나님의 뜻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살전 5:18). ◉성령을 소멸하지 않는 것입니다(살전 5:19).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또 하나의 하나님의 뜻을 확인합니다. ◉예언을 멸시하지 않는 것입니다(살전 5:20).
예언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말씀”입니다(계 1:3). 그래서 이 말씀에 가감을 하는 자는 용서함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계 22:18-19). ◎그 옛날 당대의 의인이고 설교자인 노아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120년 동안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들었습니다. 그런데 전하는 말씀을 들은 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세상천지가 물로 심판받게 된다는 경고를 믿지 않았습니다. 결과는 물의 심판이었습니다(벧전 3:20). ◎소돔 성에 하나님의 불의 재앙이 경고되었습니다. 그런데 롯의 사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창 19:14). 결과는 불과 유황의 심판이었습니다.
하지만 ◎니느웨 성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경고의 말씀 앞에서 저들은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엎드려 회개했습니다(욘 3:5). 그 결과는 앞의 두 경우와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가 거두신 것입니다.
본문 말씀을 눈여겨 보셔야 합니다. “말씀”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예언”이라고 한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지 말라” 이렇게 기록하지 않고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고 기록한 이 부분입니다.
왜 그렇게 기록하셨는지를 묵상하던 중에 데살로니가서에 특별히 강조된 단어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강림한다”는 단어입니다(1:10. 2:19. 3:13. 4:15. 4:16. 5:2-3. 5:23).
성경은 66권 중에서 5장으로 기록된 데살로니가전서이지만,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말씀이 가장 많이, 그리고 분명하고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재림(강림)의 책이라고 말해도 전혀 과한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성도 여러분. 성경은 모두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거의 전부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아직 한부분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이 예언만 이루어지면, 성경의 모든 예언들은 완성됩니다. 지금까지 모든 내용들이 다 이루어졌기에 남아있는 이 재림도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때문에, 예언이라는 단어는 넓게는 성경말씀 전체를 말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는 마지막 남아있는 한 가지 “주님의 재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0절에 기록된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넓은 의미로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지 말라는 뜻이지만, 좁은 의미로는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다시 오실 것이라는 이 사실을 멸시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강림한다는 “파루시아(헬:παρουσίᾳ)”라는 단어는, 강림한다는 의미와 함께 “가까이 나타나신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내 가까이 나타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강림하신다는 말씀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는 것”과 함께 “내가 주님께 가까이 가는 것”도 강림입니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전서 5:2-3절 말씀을 통하여 죽음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들을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것이 강림이지만, 내가 주님께 가까이 가는 것도 강림이라는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강림을 예언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육신을 가지고 있는 나는 인간의 순리에 따라 시간이 되면 죽게 되지만,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죽는 것과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이 두 가지는 모두 언제 일어날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들은 물론이거니와 하늘의 천사들도 이때를 모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4:36).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이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한 것은, 데살로니가전서 5:4절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살전 5:4). 주님의 재림과 나의 죽음이 도둑같이 갑자기 오는 것은 확실하지만, 어둠에 있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그날이 도둑같이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멘으로 받아들이시고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는 믿음의 자녀들에게는 그날이 도둑같이 임하지 않게 해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소원하는 것은, 우리를 향하는 하나님의 뜻인 주님의 강림을 맛보시는 은혜가, 오늘 예배에 참석한 모든 성도님들에게 확실히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r 23, 2025

하나님의 뜻 ⓶
(데살로니가전서 5:16-19)
주원영담임목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습니다. 1,600여 년에 걸쳐서, 40여 명의 저자들을 사용하시고, 10,000Km가 넘는 먼 지역을 함께 하시면서 3개의 언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학자들은 기록된 방법을 세 가지의 견해로 주장합니다. ◎기계적 영감설과 ◎동력적 영감설과 ◎유기적 영감설입니다. 대부분의 학자들과 성도들은 “유기적 영감설”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쓴 성경과 베드로가 쓴 성경의 수준이 다르고, 의사 누가가 쓴 성경과 요한 사도가 쓴 성경이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들의 표현들이 다릅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왕의 모습으로 기록하였습니다. ◎마가는 예수님을 종의 모습으로 기록하였습니다. ◎누가는 예수님을 사람의 시각에서 기록하였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믿고 성경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럼에도 4복음서의 주장은 모두 “예수가 인류의 구원자”라는 내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주제에 접근하는 방법은 각각 다릅니다. 바로 이런 모습이 “유기적 영감설”입니다.
이렇게 유기적 영감설로 기록된 데살로니가서이기에 19절 이하의 말씀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12절 이하의 모든 말씀이지만 줄이고 줄이면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더 요약하면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도님들의 삶의 현장에서 불평하려고 하면 모든 환경이 다 불평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하지만 말씀에 근거하여 성도님들에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삶의 현장에서 감사할 조건들을 찾으시고 감사하시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자에게 그 감사 속에 기적이라는 선물을 넣어 두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분문은 데살로니가전서의 결론 부분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8). 이렇게 기록하고는 펜을 놓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원래 저자이신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의 마음을 두드리기 시작하셨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 빠졌다고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다시 펜을 들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렇게 편지를 끝내고 펜을 놓았던 바울 사도가 다시 펜을 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부분을 더 기록한 것입니다. 19-22절 말씀입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살전 5:19-22).
18절까지의 내용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향한 더 강한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18절 이후에 기록된 내용들이라는 말입니다.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이 있다고 하십니다. “말며. 말고. 버리라.”
사도행전 5장에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고, 자신들도 재산을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현금이 손에 쥐어진 순간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현금이 손에 쥐어지는 순간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돈 다 가져다 바칠 것이 아니라 일부는 놔두고 바치자.” 이렇게 의논하고는 그 일을 실행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충만했던 베드로에게 이 사실을 알게 하셨습니다(행 5:3). 그리고 성령을 속인 아나니아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둡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 삽비라도 천연덕스럽게 아나니아와 똑같은 대답을 합니다(행 5:9). 그리고 삽비라도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둡니다.
성도 여러분. 이 이야기 속에 두 단어를 눈여겨 보셔야 합니다. “속인다”는 단어와 “시험한다”는 단어입니다. “분리하다. 나눈다. 떼어놓는다.” 이런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들입니다. 성령과 나를 분리한다는 말입니다. 성령과 나를 떼어놓는다는 말입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는 3가지 일을 하신다고 요한복음 16:8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깨닫게 하시리라) (요 16:8). 그리고 성령께서 이런 일을 하실 때에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들이 있습니다. ◎“양심”을 도구로 사용하십니다(행 23:1). ◎“환경”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십니다(욘 1:4). ◎“사람”이라는 도구도 사용하십니다(행 2:37). ◎때로는 미물까지도 사용하십니다(민 22:28).
이처럼 성령께서는 양심을 이용하시기도 하시고, 환경을 사용하시기도 하시고, 사람을 통하여 마음속에 메시지를 주시기도 하십니다.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런데 그 성령을 소멸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나겠습니까?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딤전 4:2).
양심에 화인을 맞은 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양심에 화인을 맞은 자에게 일어나는 현상을 두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외식함(겉으로만 좋게 꾸미는 것)”과 “쉽게 거짓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내 삶에서 보여지면, 내 양심이 점점 굳어져 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양심이 점점 굳어져 가면 환경에 대하여서도 둔감해집니다(욘 1:11). 그러다 보니 누군가가 이야기를 해 주어도 들리지 않습니다. 들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와 같은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룟 유다와 같은 이런 자에게 나타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기쁨이 없습니다. 기도가 없습니다. 감사도 없습니다. 이유는, 성령을 분리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걷어차 버렸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소멸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서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소멸하는 자에게는 이런 모습이 없다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신앙의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면서 특별히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소멸하지 않는 모습도 하나님의 뜻임을 기억하시고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아시고 순종하면서 그 뜻대로 살아가기를 힘쓰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r 16, 2025

하나님의 뜻 ⓵
(데살로니가전서 5:16-18)
주원영담임목사
성경 중의 성경이라고 불리는 로마서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11장까지는 우리가 어떻게 택함을 받았고 구원을 받았는가에 대하여 말하고 있고, 12-16장까지는 택함을 받고 구원을 받은 성도가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신 12장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면, 그래서 내 생각대로 행동하면, 그 행동은 사상누각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 교회에 향하여, 오늘도 신앙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리고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고 말합니다. 특별히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3절 말씀을 보니, 저들에게는 행동하는 믿음이 있었고 땀과 수고와 희생이 있는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이 있었고 영원한 천국을 사모하면서 참고 인내하는 소망이 있었습니다(살전 1:3). 그래서 바울 사도가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살전 1:4). 이어지는 5-8절 말씀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데살로니가서를 묵상해 가면, 바울 사도는 저들에게 당부하는 말들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됩니다. 더 많이 힘써라(4:1). 그렇게 행하기를 내가 권한다(4:10). 손으로 힘써서 일해라(4:11).
바울 사도는 조금 전까지 할 말이 없고 쓸 말이 없다고 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뜻을 헤아렸고 그 뜻대로 살았다고 했습니다. 모범적이고 훌륭한 성도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말합니다. 더 많이 힘써라. 그렇게 행하기를 내가 권한다. 손으로 힘써서 일해라. 무엇인지 모르지만 저들에게 부족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리고 바울 사도는 마지막으로 충고와 권면의 결론을 말합니다. 5:18절 말씀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8). 바울 사도가 말한 이것은 5:12절 이하에 기록된 말씀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들을 좁히고 좁히면 16-18절에 기록된 말씀일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들이 하나님의 뜻이지만, 더 좁혀서 한마디로 말한다면, “범사에 감사하라.” 이 말씀이라고 단정할 수 있습니다. 다 중요한 하나님의 뜻들이지만, 그중에서 제일 중요한 하나님의 뜻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내가 받은 것이 있고 내가 누리는 것이 있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믿음에는 역사가 있어야 하고, 사랑에는 수고가 있어야 하고, 소망에는 인내가 있어야 하듯이, 진정한 감사는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살아가는 동안 정말 피하고 싶은 일들이 우리 앞에 펼쳐질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이 우리 앞에 닥칠지라도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감사”인 줄로 믿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행복은 감사라는 문으로 들어와서 원망이라는 문으로 나간다.”
오늘 우리 앞에 어떤 환경이 가로막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를 표현하기만 하면, 그 현장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적을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시편 50:23절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 50:23). 하나님 앞에 감사의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그 모습을 기쁘게 받으시고,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펼쳐 보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영혼의 구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모든 문제들이 회복되는 것까지도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감사의 제사를 드리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진정한 감사에는 기적이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감사는 누구를 위하는 것입니까?
감사는 나를 위한 것입니다. 감사로 영광을 돌리는 자들의 영광을 받으신 하나님께서 내 삶의 현장에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십니다.
미국의 26대 대통령이셨던 루우즈벨트 대통령은 나라가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었지만,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이런 말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험하고 고생스러운 시대에 초라한 경제력을 가졌던 우리 조상들에 비하면 지금 우리는 훨씬 편하고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의 위기는 좋은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데 있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언제 감사해야 하고 왜 감사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시는 귀한 연설입니다. 마음속에 새겨지는 말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어령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사하는 행위는 공을 벽에 던지는 것과 같다.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할 때, 그 감사는 언제나 나에게 돌아옵니다. 기도의 응답으로 돌아옵니다. 질병의 치료로 돌아옵니다. 문제의 해결로 돌아옵니다. 차고 넘치게 돌아옵니다.
이 감사가 우리의 삶 속에서 항상 이어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