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요약
Jan 8, 2025

신년특별새벽기도회 4
치료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라파)
출애굽기 15:22-27 (시편 23:3)
주원영담임목사
학자들은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에게는 성장통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도들도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성장통을 경험합니다.
출애굽기 14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가는 믿어지지 않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소개합니다. 바로의 압제에서 살았던 삶에서 온전히 해방되는 경험과 함께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너는 구원을 체험한 것입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게 되었고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쁨을 경험했습니다. 모든 것이 새로워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저들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함을 따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약속의 땅을 향하여 행진하는 순례자가 되었습니다. 신바람 나는 새 인생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감동은 불과 사흘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홍해를 건너 행군한지 사흘 만에 그들이 “마라”라는 땅에 도착해 목마름을 해결하고자 물을 길어 마셨지만, 그 물은 마실 수 없는 쓴 물이었습니다. 저들의 입에서는 원망과 불평이 터져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지금 성장통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섭리 속에서 허용하신 고통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저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치료의 하나님, “여호와 라파”가 되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출 15:26).
치료해 주시는 라파의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❶구원함을 받은 후에도 광야길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40년 여정 중에서 가장 위대한 체험은 홍해를 건넌 사건일 것입니다.
그러나 홍해를 건넌 사건은 여행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었다는 사실입니다(출 15:22). 하나님의 은혜로 홍해를 건넜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수르광야”라고 부르는 사막이었습니다. 물론 저들의 여정은 가나안이라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한 여정이었지만, 그 길은 매우 길고 지치게 하는 광야 길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은,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건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이 사건은, 우리가 지금부터 천성을 향하여 걸어가야 하는 신앙의 여정을 시작했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성도가 된 우리는 인생의 광야 길을 통과하면서 천국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가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원의 경험을 두 가지로 비유합니다. 하나는 출생의 비유이고(생명의 탄생은 경이로운 일이지만 경이로움과 함께 잘 자라야 한다는 숙제를 가지고 있음), 또 하나는 결혼의 비유입니다(화려하지만 새로운 한 가정을 시작한다는 의미).
구원함을 받은 것은 우리가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게 되었기 때문에 위대한 사건이지만, 그 소망은 광야 길을 무사히 지난 후에야 이루어지는 약속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광야 길을 가면서 배워야 할 것은 ❷부르짖는 기도, 간절함을 드리는 기도를 배우셔야 합니다.
특별히 부르짖는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이유는 인생의 길을 가는 동안 부르짖을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너무나 많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부르짖을 일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홍해 바다를 기적적으로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래하고 춤을 추었지만, 사흘 만에 상황이 바뀝니다. 노래하던 입에서는 원망과 불평이 터져 나옵니다. 춤추던 손은 그들은 가슴을 치며 탄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는 이유로 인생의 고통이나 위기에서 면제된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환난의 면제가 아니라, 환난에서의 승리입니다(요 16:33).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광야)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 16:33).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당신의 뜻이 있기에, 우리의 인생길에 환란을 허용하십니다. 그러나 결국 승리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저는 이 약속을 믿으면서, 주님께서 주신 승리의 방편이 “기도”라고 믿습니다. 부르짖는 기도 말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가셔서 출애굽기 15:2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백성들의 원망하는 소리를 들은 지도자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기록된 “부르짖다”는 말은, 내 속에 있는 것을 다 쏟아낸다는 말입니다. 지금 나에게 다가오고 있는 걱정과 염려와 불안들을 하나님 앞에 다 쏟아내고 하나님께 맡기라는 말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다 쏟아내고 맡기면서 부르짖을 때, 여호와께서 우리를 고통에서 건지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렘 33:3 민 14:28). 부르짖을 때 그가 우리를 곤경에서 구하시고, 부르짖을 때 그가 우리를 사망에서 건져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모세가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해결책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의 끝자락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밝히십니다.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출 15:26). 하나님께서 당신 스스로를 “치료하시는 여호와. 야훼 라파”라고 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건강이 주어지고, 말씀이 주어지고, 기회가 주어졌을 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보좌 앞에 나아와 하늘을 향해 손을 들고 부르짖어 기도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부르짖는 기도와 함께 또 하나 배울 것은 ❸어떤 상황에도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출 15:25-26).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하시고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마실 수 없는 물을 마실 수 있는 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고 지키며 의를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마라의 샘터에서 이런 고통을 허락하신 이유가, 그들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지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맑은 하늘과 같을 때에는 누구나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비바람과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과 같이 어둡고 힘들고 어렵기만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믿음이 “진짜 믿음”입니다. 바로 이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광야와 같은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이 배워야 할 믿음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부르짖는 기도와 함께 제배워야 하는 것이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4가지 유익을 주십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딤후 3:16-17).
성도 여러분. 치유의 은혜는 무조건의 은혜가 아니라 조건적인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병 고침을 받고 기도 응답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은 우리의 인생에 고통과 관련하여 이중적인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예방”이요, 또 하나는 “치유”입니다. 말씀대로 살면 고통에서 우리를 지킬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통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를 원하고 건짐 받기를 원하신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을 붙잡고 순종하겠다고 결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때 우리는 영적 성장을 맛보게 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고통은, 영적 성숙을 위한 성장통이라는 말입니다.
고통 속에서도 순종하겠다고 결심하고, 마라에서 일어나 앞으로 행진한 시작한 저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려 주셨습니다.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출 15:27). 조금 전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라에서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이유는, 엘림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눈에는 내일의 희망이 보이지 않지만, 엘림이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마라와 같이 고통이 있고 아픔이 있는 삶의 현실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부르짖어 기도하면, 순종의 삶을 살기로 결단하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우리 곁에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병든 몸을 치유하십니다. 우리의 병든 마음도 치유하십니다. 우리의 관계도 치유하십니다. 가정도 치유하시고, 직장도 치유하시고 사업장도 치유하십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이름은 “여호와 라파”입니다. “치료의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아멘.
Jan 7, 2025

신년특별새벽기도회 3
평강의 하나님 (여호와 샬롬)
사사기 6:19-24 (시편 23:2)
주원영담임목사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어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화라는 뜻을 가진 “샬롬”이라고 대답한다고 합니다. 아마 전쟁이나 갈등이 많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
하지만 학자들은 샬롬이라는 단어가, 단지 갈등이 멈추거나 전쟁이 중지된 그런 의미만은 가지고 있는 단어가 아니라고 합니다. “완전하다. 건강하다. 성취하다.” 이런 의미까지를 내포하고 있는 단어라고 말합니다. 둘러싸고 있는 모든 상황들이 해결되어서, 그 평안을 온전하고 충분하게 경험하는, 충만한 은혜의 상태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샬롬으로 오셨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가장 어두웠던 시대는 “사사시대”였다고 말합니다. 그런 상황의 때에 하나님께서는 농사를 짓고 있었던 “기드온”을 선택하셔서 어려움에 빠져있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사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기드온이 너무나 감격해서 제단을 쌓았고, 그 제단의 이름을 “샬롬”이라고 불렀습니다(삿 6:24). 평강이라는 뜻을 가진 여호와 샬롬은, 기드온이 부른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기드온은 샬롬의 하나님을 만났고, 샬롬의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인생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도, 하나님을 만나면 인생이 바뀝니다. 샬롬의 하나님을 만나시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필요한 샬롬은 어떤 것들이고, 언제 필요할까요?
❶삶의 터전이 흔들리고 무너질 때, 샬롬이 필요합니다.
사사기 6:1절 말씀을 보니 악을 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깨우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웃에 있는 미디안 족속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침략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전쟁을 해서 이스라엘을 점령한 것이 아니라, 파종할 때가 되면 낙타와 같은 짐승들을 동원해서 씨를 뿌린 밭을 다 뒤집어 엎는(초토화시키는) 그런 침략이었습니다. 한번만 그런 것이 아니라 칠 년 동안을 매년 그렇게 했습니다. 때문에 칠 년이라는 시간동안 이스라엘은 도저히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비열한 사람과 그 사람들이 꾸미는 교활함 때문에 관계가 무너집니다. 일터와 사업장이 점점 힘들어집니다. 가정까지도 흔들립니다. 바로 이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가 샬롬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어려움들이 회복되어지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이 샬롬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회개없는 회복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악을 행하였기 때문에 그것을 깨우쳐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칠 년 동안이나 미디안을 사용하셔서 침략을 받게 하셨습니다. 결국 자신들이 악을 행하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회개했다는 말입니다(삿 6:6). 이스라엘의 이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이때부터 회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삶의 터전에서 어려움과 고통 때문에 삶이 흔들리고 힘들지라도, 그것은 나를 망하게 하고 파괴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신 나를 깨닫게 해서 관계를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간절하심이라는 사실을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건강하고 풍요로운 미래를 향하여 다시 일어서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파괴가 아닙니다. 새롭게 창조하시려는 간절한 몸부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호 6:1).
삶의 회복이 필요하신 성도님들이 계시면, 샬롬의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잘못되고 부족한 것들을 회개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께서 회복의 은혜를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➋삶의 소명이 힘들게 느껴질 때, 샬롬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간절히 부르짖는 당신의 백성들을 보시고는 회복을 준비하셨습니다. 어려운 위기를 이겨낼 수 있도록 가난한 농부의 아들 기드온을 지도자로 세워주셨습니다(삿 6:12).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큰 용사”라고, “위대한 용사”라고 하시면서, 함께 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반문합니다(삿 6:13).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는데 왜 미디안 때문에 이 나라가 이런 상황이 되었느냐고 묻습니다. 이 말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6:14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삿 6:14).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사용하셔서 어려움에 처해있는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겠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선뜻 순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힘이 없다고 합니다(삿 6:15).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제부터 너를 힘이 있는 자로 만들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큰 용사로 만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실 때, 눈 앞에 펼쳐진 현실만을 보고 걱정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은 능치 못함이 없으심을 믿고 순종의 자리로 나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일도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래의 비전을 가지시고 찾아오십니다. 기드온에게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확신을 받은 기드온이 하나님을 만난 그곳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여호와 샬롬”이라고 불렀습니다. 이후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대로 순종함으로 이스라엘을 구하는 사사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평강의 하나님을 통하여 삶이 변화된 것입니다.
➌주의 임재가 두렵게 느껴질 때, 샬롬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것은, 말씀대로 순종하는데도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는 때가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분의 임재가 느껴지면,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앞섭니다. 아직 부족한데 나를 사용하시려는 것 같습니다.
바로 본문에 등장하는 기드온이 그런 상황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임재를 확인할 수 있도록 표징을 보여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천사가 바위 위에 고기와 떡(무교병)을 놓고 국을 부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손에 잡고 있는 지팡이로 그것들을 건드립니다. 그 순간 불이 고기와 떡을 태워버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자가 말씀을 전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삿 6:23).
이 말씀을 듣는 순간 기드온에게 물밀듯 밀려온 것이 있었습니다. 평안이었습니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평안이었습니다. 기드온은 벅차오르는 감격으로 그 자리에 제단을 쌓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여호와 샬롬”이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평화이십니다.” 이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다가도 막상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면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다 알고 계시면서도,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해주시려고 2,000년 전에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다 담당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평안을 주셨습니다. 두려움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에, 기쁨과 평안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샬롬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믿고 그분 앞에 나아오기만 하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평안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간절히 소원하는 것은, 주님께서 주시는 이 평안을 풍성하게 받아 누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Jan 6, 2025

신년 특별새벽기도회 2
준비해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 이레)
창세기 22:1-2. 13-14 (시편 23:1)
주원영담임목사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크고 작은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위기의 대부분은 우리들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측하지 못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 위기에 대한 반응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위기는 위험한 것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미래를 만나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묵상하는 내용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아브라함의 이야기입니다. 그에게는 기적으로 얻은 이삭이라는 외아들이 있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었지만, 그 아들을 하나님의 제단에 제물로 바쳐야 하는 위기가 닥쳐온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고난 앞에서, 어떤 원망이나 절망을 선택하지 않고 순종과 믿음을 선택합니다. 이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 그를 위기에서 건지시고 그 아들 대신 어린 숫양을 준비하셔서 제물로 바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새로운 미래를 열어 주시고 그로 하여금 많은 민족들에게 믿음의 아버지가 되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새롭게 하나님을 만난 그 땅의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불렀습니다(창 22:13-14).
이해하기 어려운 위기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인생의 길에서 우리의 미래를 보시고 아시고 준비해 주시는 이 하나님을 만나시는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의 미래를 준비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하신다면 ❶위기를 시험으로 받아드릴 줄 알아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대부분의 위기나 고통은, 하늘이 주시는 시험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시험문제를 내셨습니다(창 22:1).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인생의 시험은 찾아옵니다. 그러나 여러 모양의 고난이라는 인생의 시험을 통하여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부족한 것을 채움으로 성숙한 사람으로 세워갑니다. 삶의 위기와 고난은 인간을 겸손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기자는 말했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 1:2-4).
위기를 시험으로 받아드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기는 우리를 강건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신앙의 유익함을 줍니다. 위기를 통해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게 되고,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듬어집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의 끝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아브라함은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이 시험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격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도 아브라함처럼 복된 미래로 우리를 인도해 가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만나시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미래를 준비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하신다면 ❷위기를 믿음으로 맞설 줄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 죽음의 제단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때 아무래도 이상한 분위기를 느낀 이삭이 아버지에게 제물은 어디에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이 질문에 아버지 아브라함이 대답을 합니다(창 22:7-8). 아브라함은 아들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위기를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기와 아들에게 피할 길을 예비해 주실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22:5-6절 말씀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늘과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는 위기의 순간을 오히려 믿음으로 이긴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이 믿음을 우리가 배우고 가지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 제단에서 아들 이삭을 결박하고 칼을 들고 칼끝을 아들을 향한 그 순간 하나님의 천사가 소리를 발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을 보니, 하나님께서 어린 숫양을 준비해 주시고 그것으로 제물을 대신하게 하셨습니다(창 22:12-14). 그래서 그 제단의 이름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여호와 이레의 제단이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모리아의 제단에서 어린 양을 준비해 주셨던 그 하나님께서, 2,000년 전 유대 땅 예루살렘성 밖 갈보리 언덕에 또 하나의 제단을 준비하셨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던 우리 모두를 위하여 하나님 자신이 속죄의 제물을 친히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 제물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성도님들과 저를 심판하시는 대신, 자신의 아들에게 그 죄를 걸머지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희생의 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길을 예비해 주시기 위하여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1865년 4월 9일 미국에서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흑인들을 노예에서 해방시킨 링컨 대통령 부부는 닷새 후인 4월 14일 워싱톤 시내에 있는 포드 극장에 연극을 보러 갔다가 암살자의 총을 맞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시 그로부터 열흘이 지난 4월 24일 그의 시신을 링컨의 고향인 “일리노이주 스프링 휠드”에 안치시키기 위해 워싱톤 볼티모어 역으로 출발하기에 앞서서 그의 유해가 백악관 앞 펜셀바니아 애비뉴 길을 지날 때였습니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길가에 있던 사람 중에서 흑인 신사 한 분이 갑자기 고인이 된 링컨의 영구차가 지나가려고 하는 순간 두 손으로 자기 아들을 번쩍 안아 들고 이렇게 소리쳤다고 합니다. “아들아 잘 보아라. 저분이 너를 위해, 그리고 우리들을 위해 죽으신 거야. 결코 잊지 말아라. 저분의 죽음으로 너와 내가 자유한 인생으로 살게 된 것이란다.”
저는 오늘 이 흑인 신사의 말을 성도님들에게 전하려고 합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잘 보십시오. 그분의 피 흘리심과 그분의 희생으로 저와 여러분이 죄에서 해방되어 새 인생을 살게 된 것입니다.”
이 예수를 우리의 구주와 주님으로 확실히 믿으면, 이 예수를 십자가에서 속죄의 어린양으로 준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위하여 삶의 위기와 고난을 희망의 미래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고난의 건너편에 있는 새로운 희망의 미래, 축복의 미래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미리 준비해 주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께서, 성도님들의 삶에 늘 함께 하시는 은혜가 넘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Jan 5, 2025

신년 특별새벽기도회 1
목자가 되신 하나님 (여호와 로이) (시편 23:1-6)
주원영담임목사
오늘 함께 합독한 시편 23편은, 성경 전체에서 요한복음 3:16절 말씀 다음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이 말씀을 조금 깊이 묵상해 보면, “여호와는 내 인생의 해답이시다.” 이 선언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시편 23:2-6절 말씀은, 인생의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답이 되시는가를 보여주시는 말씀들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약 60회에 걸쳐 하나님께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여호와 로이)” 이름으로 등장하십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인생을 양이라고 표현합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사 53:6). 이 말씀은 우리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양과 같아서 삶의 문제들은 목자되신 하나님(여호와 로이)께서 완벽한 해답이 되어주신다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양 같은 인생들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 인생의 문제는 ◉두려움입니다.
양은 동물 중에서 겁이 많은 동물입니다. 양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늘 두려워하고 초초해 합니다. 그래서 양과 같은 인생에게 가장 큰 문제가 바로 “두려움”이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 모두는 살아가는 동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고없이 찾아오는 사고나 재난, 그리고 신체적인 질병들이 그것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인생의 골짜기와 같은 두려움을 위하여 보험이라는 것을 듭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여호와 로이)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 23:4).
성도 여러분. 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전지전능하신 여호와께서 저와 성도님들의 목자가 되어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면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래서 “목자이신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 로이”는 인생의 두려움에 대한 완벽한 해답이십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인생의 문제는 ◉더럽혀짐입니다.
양은 언제나 온순하고 깨끗한 동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양은 그렇게 깨끗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지독한 냄새가 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인간이 다 양과 같다고 말합니다. 멀리서 보면 다 선량하고 깨끗해 보이지만 가까이 가보면 별수 없이 인간의 냄새가 납니다. 때로는 더러운 악취가 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5절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목자이신 여호와께서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당시의 기름은 양의 상처를 치료하는 약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육체의 상처는 기름으로 어느 정도 치유되겠지만, 영혼의 상처는 무엇으로 치유해야 합니까?
우리의 영혼의 소생은 우리의 죄 문제가 해결될 때 비로소 가능한데, 그분만이 이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시라고 말합니다. 죄로 더렵혀진 영혼을 깨끗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1). 죄로 인하여 더럽혀진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유일하고 완벽한 해답은,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생명을 대속의 제물로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목자가 되시는, “여호와 로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인생의 문제는 ◉방향감각의 상실입니다.
성도 여러분. 양은 상당히 부지런한 동물입니다. 그러나 양의 치명적인 결함은 방향감각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다른 동물들은 집을 떠났다가도 집을 찾아오지만 양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인간이 양과 같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목자만 있으면 해결됩니다. 목자만 잘 만나면, 목자가 양의 발걸음을 인도해 줍니다.
시편 23편의 주어는 “그가” 입니다. 선한 목자이신 여호와 하나님 그가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그렇게 번역되지 않았지만 영어 성경에는 반복적으로 “그가”라는 인칭 대명사가 등장합니다. “그가 우리를 푸른 풀밭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고. 그가 우리를 의의 길(올바른 길)로 인도하시고. 그는 마침내 우리를 여호와의 집으로 인도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성도님들의 목자가 되십니다. ◉두려움에 잡힌 나. ◉더럽혀진 나. ◉방황하는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셨고 지금 하늘 보좌에서 우리들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목자가 되시는 이분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주인이십니다. 우리의 주인되십니다. 이분을 의지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세상, 앞을 볼 수 없는 이곳 세상에서, 2025년 한 해 동안 기쁨으로 승리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