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요약
Jan 5, 2025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⓶
(창세기 25:19-26)
주원영담임목사
기독교는 고백의 종교입니다. 때문에, 시인해야 할 때는 시인하고, 고백해야 할 때는 고백하고, 선포해야 할 때는 선포하고, 명령해야 할 때는 명령하고, 독백을 해야 할 때는 독백을 해야 합니다. 그 마음으로 2025년 영원한 교회 표어를 외쳐보겠습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아멘.
우리가 표어를 힘차게 외쳤지만, 왜 야곱의 하나님일까? 하는 의문을 지워버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신 제사를 드린 아벨이 있고, 하나님과 300년 동안이나 동행했던 에녹도 있고, 하나님께 의롭다 칭찬을 받으면서 120년에 걸쳐 산 위에 방주를 지은 노아도 있는데 왜 야곱의 하나님이 되시기를 원하셨을까?
성도 여러분. 이럴 때는 야곱이 살았던 그 시대로 돌아가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의 역사를 거슬러 살펴보면, 야곱은 BC 2006년에 태어나서 147살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원전 2006년으로 가보아야 합니다. 야곱이 살았던 그때, 그 환경과 사건 속으로 돌아가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야곱의 출생에 대하여 성경에 창세기 24:21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창 25:21). 그런데 창세기 25:20절과 26절 말씀을 보니, 야곱과 리브가가 하나님께 간구한 시간이 얼마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간구할 때와 간구를 들으셨을 때의 시간 간격은 최고 20년이었습니다. 이삭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즉시 응답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정확하지는 않을지라고 20여 년이 흐른 시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입니다.
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25:22절 말씀을 보니 어머니가 태중에 아이를 품었는데, 태중에서 아이들이 계속 싸웁니다. 이 모습을 새 번역 성경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내가 너무나 괴로워서 어떻게 살겠느냐(창 25:22).
그래서 이삭과 리브가는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절히 기도합니다. 여호와께 묻자온대.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문제를 가지고 간절히 기도하는 저들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저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그분은 ◉우리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에게 간절한 소원이 있고, 우리 안에 있는 어려움과 고통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를 때에, 이삭처럼 리브가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그 간구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고 해결해 주십니다.
그분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 14:28).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 이 모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들이 우리의 삶에서 이루어지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어지는 창세기 25:23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창 25:23).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관례는 장자가 모든 경우에 먼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해가 되지 않고 상상이 되지 않는 말씀을 하십니다. 둘째 아들을 큰 아들로 만드시겠다고 하십니다. 왜 야곱입니까?
이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야곱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야곱의 하나님이 되어주신 그분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작은 자의 하나님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야곱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셔서 당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알려주시는데 “작은 자의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 “약한 자의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 “어린 자의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 “축복을 받을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자의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
당시 사회적인 전통과 사람들의 생각에는 장자였습니다. 장자로 태어난 것은 자신의 노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장자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특권을 누립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약한 자의 하나님이 되겠다. 나는 작은 자의 하나님이 되겠다.”
약하십니까? 부족하십니까? 작다고 생각하십니까? 야곱의 하나님은 작은 자의 하나님되심을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이 또 말씀하십니다. ◉나는 택한 자를 절대 버리지 않는다.
우리가 약해서 넘어지고 쓰러지기도 하고 범죄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우리를 포기하거나 버리지 않으시고 다듬어 가시면서, 끝까지 동행하시면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다 “야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절대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야곱이 엉뚱한 일을 해도, 야곱이 연약한 길에 서 있어도, 끝까지 함께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을 이스라엘로 만들어 주셨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습니다. 그분의 섭리와 간섭도 믿습니다. 그렇지만 고통과 고난 앞에서 가만히 있어서는 안됩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니느웨가 범죄했지만, 왕을 비롯한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금식하며 회개하는 시간을 가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돌이키셨습니다(욘 3:10).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께 말씀 앞에 몸을 벽으로 향하고 간절히 기도하였을 때, 그 기도를 들으시고 생명을 연장해 주셨습니다(왕하 20:5-6).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할 때에, 야곱이 간절히 기도할 때에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야곱의 하나님은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작은 자의 하나님이시고 약한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택하신 자를 절대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025년 한 해 동안, 이분 주님과 동행하시는 성도님들의 삶이 되셔서 그분께서 내리시는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리시는 시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Dec 31, 2024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⓵
(시편 46:7-11)
주원영담임목사
하나님께서 또 다시 우리에게 복된 새해를 열어주셨습니다. 새롭게 열리는 2025년 한 해 동안, 성도님들의 가정과 삶의 현장에, 우리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5년동안 영원한 교회가 붙잡았던 표어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2020년 : 여호와께서 내게 관계된 것을 완전케 하시리라 (시 138:8).
※2021년 :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사 9:7).
※2022년 :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시 46:10). 코로나라는, 믿기 싫고 견디기 힘든 그런 시간이었지만 주님께서 하나님 되심을 믿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가만히 기다렸습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주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2023년 : 주께서 생명의 길을 네게 보이시리라 (시 16:11).
※2024년 :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무너지리라 (슥 4:7). 우리 모두의 삶 속에는 이런저런 모양의 큰 산들이 있지만 우리는 담대히 외쳤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말합니다.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능력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영으로만 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면 어떤 큰 산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을지라도 평지가 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수행의 종교가 아닙니다. 입을 열어 고백하는 종교입니다. ◎시인하는 것입니다(롬 10:9). ◎고백하는 것입니다(마 16:16). ◎선포하는 것입니다(막 11:23). ◎명령하는 것입니다(막 4:39). ◎독백하는 것입니다(마 9:21). 시인해야 할 때는 시인하시고, 고백해야 할 때는 고백하시고, 선포할 때는 선포하시고, 명령해야 할 때는 명령하시고, 독백해야 할 때는 독백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에,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큰 산이 산산히 무너져 평지가 될 줄 믿습니다. 골리앗을 향하여 소년 다윗이 외칩니다(삼상 17:45). 그때 골리앗이 쓰러졌습니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철홍성 여리고 앞에서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외쳤습니다. 그때 성이 무너지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태양과 달을 향하여 머무르라고 명령했을 때에 태양과 달이 머무르는 믿을 수 없는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시 81:10).
새롭게 열려지는 2025년도에는, 약속의 말씀들을 굳게 붙잡고 우리의 입을 열어 고백하고 외치는 은혜가 성도님들의 삶에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가 붙잡고 입을 열어야 하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말씀을 읽어가는 중에, 시편 46편의 말씀이 제 마음에 울렸습니다.
시편 46편의 표제를 보시면 “알라못에 맞춘 노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알라못은 크게 외치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고라 자손들이 기록했다고 합니다. 민수기 16장을 보시면 고라 자손들은 처음에는 반역자들이었습니다(모세를 향하여. 땅이 갈라져서 250명의 사람들이 땅속으로 빨려들어감. 염병이 돌아서 17,400여 명이 전염병으로 죽음.)
그런데 그런 가운데 살아남은 몇몇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전을 찾았고 성전을 섬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고백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시 46:7.11). 고라 자손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불렀을까? 왜 전능하신 하나님을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불렀을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읽어 내려가다 보니, 고라 자손들은 다른 성경에서도 하나님을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시 84:8). 성전에서 하나님을 노래하고 찬양하는 아삽도 하나님을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시 75:9. 시 76:6. 시 81:1. 시 81:4). 다윗도 하나님을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시 20:1).
성도 여러분. 고라 자손들이 하나님을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아삽도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다윗도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저들이 왜 하나님을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간절히 불렀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묵상해 보셨습니까? 혹시 이 부르짖음에 하나님의 깊은 뜻이 숨겨져 있지는 않을까요?
물론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출 3:6).
하나님께서는 수 많은 자녀들을 두셨지만, 오직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불려지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오직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불려지기를 원하셨는지를, 2025년 한 해동안 우리가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야곱의 이야기는 창세기 25장에서 3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부분을 보시면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을 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상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창 32:27-28).
그날 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싸워서 이겼다는 이름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이제 야곱은 더 이상 야곱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았고, 그의 12 아들들을 통하여 12지파를 이루었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야곱을 이스라엘로 부르신 것은, 야곱을 이긴 자로 승리한 자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약속대로 야곱은 이긴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자를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허물까지도 덮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간구와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축복해 주시고 승리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바로 이 하나님께서, 야곱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2025년 한 해 동안 야곱의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깊이 개입하셔서, 우리의 허물을 덮어주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강하게 해 주시고, 우리의 부족함도 채워주시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인도해 주시고, 우리에게 승리의 면류관을 씌워주시는 하나님으로 다가오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개입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이스라엘이 되게 해 주시고, 승리자가 되게 해 주시고,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붙잡고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때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야곱의 하나님으로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허물과 연약함과 부족함까지 다 덮어주시고 우리에게 새 은혜를 입혀 주실 줄 믿습니다. 야곱을 이스라엘로 삼으신 하나님께서, 야곱된 나를 이스라엘로 삼아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도 야곱처럼 부족하기 그지없는 자일지라도,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신다고 외치면, 그 외침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가 되셔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간섭하시고 축복해 주셔서 우리도 이스라엘이 되고 승리자가 되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이 은혜가,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면서 2025년을 하나님께 맡기는 성도님들 모두에게 넘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Dec 29, 2024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평지가 되리라
(스가랴 4:5-10)
주원영담임목사
스가랴서에는 스가랴가 본 8가지 환상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오늘 본문 앞에는 5번째 환상인 “순금 등잔대와 두 감람나무의 환상”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환상은 세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성령의 역사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이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한 역사이다.”
영원한 교회는 이 환상에 이어지는 4:7절 말씀을 2024년 표어로 붙잡았습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평지가 되리라”
성도 여러분. “큰 산”은, 장애물을 말하고 있습니다. 스룹바벨 앞에 우뚝 서 있는 큰 산은,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 것들”입니다. 지금 성전을 건축해야 하는데,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게 하는 너무나 많은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그 내용이 에스라 3-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성도님들의 삶의 여정 중에 이런저런 높고 큰 산과 같은 고통과 시련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을 때, 이 말씀을 기억하시고 담대하게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평지가 되리라.” 아멘.
바벨론과 싸워 이긴 “고레스”가 “파사 왕국”을 세우고 왕이 되면서 70년 동안이나 바벨론에서 포로의 모습으로 눌려 살았던 이스라엘을 향하여 칙령을 발표합니다(스 1:1-4). “너희 유대민족들은 고국으로 돌아가도 좋다. 그리고 무너진, 너희가 섬기는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해도 좋다.”
성도 여러분. 고레스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칙령을 발표한 것입니다. 기적입니다. 생각하지도 못한 기적의 칙령입니다.
그래서 스룹바벨과 함께 포로의 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백성들이 무너진 성전을 건축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어려움과 방해꾼들 때문에 그 일을 진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스가랴에게 환상을 보여주시면서 깨닫게 하신 환상이 바로 본문 앞에 기록된 다섯 번째 환상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해서 봉헌하려는 저들 앞에서, 모든 어려움들은 해결되어 평지가 될 것이다. 환상을 통하여 이 진리를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평지가 되리라.”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슥 4:7).” 저들이 성전을 준공하면서 머리돌을 세으면서 감격의 찬송을 올려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고백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찬양합니다(슥 4:6).
성도님들의 삶에서도 저들과 같은 이런 고백이 터져 나오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9절 말씀을 보니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어려움이 많을지라도, 스룹바벨과 함께 시작한 이 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스룹바벨의 손이 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은즉 그의 손이 또한 그 일을 마치리라 (슥 4:9).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계획하신 일을 시작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시작하셨으면 그 일을 끝내시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니까, 15-6년동안 지지부진했던 성전 건축의 일이, 불과 4년 만에 완성되었습니다.
성전을 짓기 시작할 때에는 작은 돌 하나하나를 쌓으면서 시작했을 것입니다. 미미해 보였을 것입니다. 성전을 건축하는 일을 방해하는 자들이 이런 모습을 보고 비웃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스룹바벨은 다림줄을 잡고 그 일을 총지휘했습니다. 그리고 은혜 가운도 마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을 시작하시는 “알파(Α)”이신 동시에, 끝마침이 되시는 “오메가(Ω)”이심을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도님들을 축복합니다. 성도님들께서 하시는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면 실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축복으로 회복하고 번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감당하는 자에게 은총을 베푸십니다.
이 진리를 믿으시고, 살아가시는 동안 힘들지라도, 때로는 어려울지라도, 그래서 내 힘과 내 능력으로 되지 않아서 포기하고 싶을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능히 이길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으로 나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믿음으로 나아갈 때에,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큰 산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무너져 평지가 되는 은혜가 성도님들의 삶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Dec 25, 2024

하늘에서 들려온 노래
(누가복음 2:8-14)
주원영담임목사
Merry Christmas
성탄절은 예수님께 경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께 경배하며 영광을 올려드리는 날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예수님의 탄생을 경배하기 위하여 오신 성도님들이야 말로, 올바르게 크리스마스 알고 크리스마스를 지키시는 분들이라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도님들께서는 성탄전야에 드려진 촛불예배는 “오스트리아”에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시골에서 살고 있었던 가난한 수선공이 이웃을 도우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는데, 주님께서 탄생하시기 전날 “주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다 주셨는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생각을 하고는 실천에 옮겼습니다. 촛불을 창가에 밝힌 것입니다. 이 가난한 수선공의 뜻을 알기 시작한 동네 주민들이 성탄 전날이 되면 모두가 자신들의 집 창가에 촛불을 켰습니다. 이것이 성탄전야의 드리는 촛불예배의 시초가 된 것입니다.
◎산타크로스는 “트루키”의 선행의 삶을 살았던 “니콜라우스”가 세상을 떠났을 때 사람은 그를 성자라고 불렀습니다. 그후 트루키 사람들은 니콜라우스의 정신을 기억하며 성탄절이 되면 모두 다 따뜻한 옷을 입고 양말 속에 선물을 넣어주었던 풍습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오고 있는 것입니다. ◎성탄 트리는 “독일”에서 성탄절 나무를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크리스마스실은 “덴마아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카드와 선물은 “영국”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성탄절이 되면 남녀노소 그리고 어디서나 불려지는 성탄절 캐롤중의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있습니다. 이 곡의 유래는 이렇습니다. 성탄 전날 밤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시골 한 조그마한 교회에서 성탄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오르간이 갑자기 고장이 났습니다. 당황한 오르간니스트는 자신의 친구 “요셉 몰”을 찾아가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의논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오르간 없이 연주할 수 있는 곡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주의 부모 앉아서 감사기도 드릴 때. 아기 잘도 잔다 아기 잘도 잔다.” 그리고 그날 밤 그 성탄절 예배에서 이 곡이 연주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캐롤송이 2,000여 년 전 그날 베들레헴에서 울려퍼졌던 천사들의 캐롤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2,000여 년 전 그날 밤, 유대 들녘에서 목자들이 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주의 사자가 나타나서 목자들을 환하게 비추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두려워 떠는 목자들에게 하늘에서 큰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 2:10-11). 그리고 이런 찬양이 울려 퍼집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눅 2:14).
그 캐롤 중에서 우리는 놀라운 캐롤의 메시지를 찾았습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 2:11).
우리들은 이 한 구절의 메시지를 통하여 ※구주 탄생이 왜 온 백성에게 미치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는지? ※왜 우리가 기쁘고 즐거워해야 하는지? ※성탄이 왜 메리 크리스마스인지를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구주 탄생이 왜 온 백성에게 미치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성경은 그분이 오늘 오셨다고 증언합니다. 이 말씀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 그분이 오셨습니다.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그분께서는 시간과 공간의 세계에 얽매이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이 오늘 시간 세계 속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분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에게 큰 기쁨이고 좋은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는 기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분이 다윗의 동네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동네에 오셨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약속된 장소에 오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래전 예언의 말씀대로 약속된 장소에 오셨습니다(미 5:2). 하나님께서 구원자를 보내주시는데 아무 곳에서나 태어나게 하시고 약속된 베들레헴에 태어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곳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이 구원자라는 것이 증명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베들레헴은 고통받는 자들을 대표하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베들레헴에 탄생하셨다는 것은, 고통받는 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찾아오셔서 그 고통을 물리쳐 주실 것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성탄은 메리 크리스마스(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입니다.
아무리 구주라고 할지라도 나와 상관이 없다면, 나에게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될 수가 없습니다. 좋은 소식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늘의 천사는 분명하게 말합니다. 너희를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주님께서 탄생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주님의 탄생은 우리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것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주님의 나심을 축하하는 예배를 드리면서 하늘에서 울려퍼지는 그 음성을 듣는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 2:11).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눅 2:14). 이 메시지가 성도님들의 가슴 깊이 새겨지는 말씀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메시지가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되고 복음이 되는 말씀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