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요약
Jan 12, 2025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 시로다 ⓷
(창세기 28:10-15)
주원영담임목사
우리가 지내온 삶의 시간들을 돌아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평생의 2-3번의 삶의 전환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그 인생은 완전 달라집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의 삶의 전환점은 어디였고, 모세나 바울 사도의 삶의 전환점은 였을까요? 한걸음 더 나아가서 성도님들의 삶의 전환점은 어디였고, 누구를 만났을 때였을까요?
2025년 영원한 교회의 표어인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할 질문입니다. 삶의 전환점이 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지난시간 우리는 열왕기상 6:1절 말씀을 통하여 믿음의 선조들의 삶의 시간들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하여, 성경의 인물들이 가공된 인물들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인물들이었다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특별히 야곱에 대하여 자세하게 확인했습니다.
야곱의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를 확인해 보았습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심을 확인했습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약한 자의 하나님이심을 확인했습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택한 자를 절대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굳게 믿으시고, 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시간에는 창세기 28:10-11절 말씀을 통하여, 왜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셨는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11절 말씀을 보시면 4번이나 어떤 장소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9절 말씀을 통하여 그 장소가 어디인지를 밝힙니다.
우리는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잠을 잤던 그곳을, 야곱이 처음으로 벧엘이라고 불렀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창세기 12:7-8절 말씀을 보니 아브람이 벧엘에서 살았고 그곳에서 제단을 쌓았다고 말합니다. 그곳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말합니다. 이어지는 창세기 24:63절 말씀에는 이삭이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나가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묵상한 곳이 바로 벧엘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야곱이 형 에서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기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도망하여 멈춘 곳이, 바로 벧엘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아브람이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고, 아버지 이삭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던 그곳으로 야곱이 도망을 간 것입니다.
야곱이 지금 형 에서를 피하여 도망을 치는데, 그곳은 하나님으로부터 먼 곳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가까운 곳으로 도망을 친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아갔다는 말입니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삶이 야곱과 같이,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가까이로 나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찾았더니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실수투성이이고 꾀쟁이이고 욕심쟁이인 야곱을 찾아오셔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들을 찾아오십니다. 연약하고 부족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에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삶에 지쳐 헤메일 때도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내가 시험당하여 괴로울 때도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 내가 어둠속에서 헤맬 때에도 주님은 함께 계셔. 내가 시험당하여 괴로울 때도 주님은 함께 계셔. 기뻐 찬양하네 할렐루 할렐루야 할렐루 할렐루야. 우리 모두 찬양 할렐루 할렐루야. 주님 나와 함께 계시네. 아멘.
야고보 기자는 말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약 4:8).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야곱의 하나님이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가까이로 다가오셔서 우리를 만져주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나의 하나님이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분 하나님을 신뢰하시고 은혜를 구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도 야곱을 야단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축복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너를 지켜 주겠다. 너를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 너와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그렇게 하겠다(창 28:15). 하나님께서 야곱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분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주실 줄 믿습니다. 야곱의 하나님이 되어주신 그분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주시고 우리에게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은혜와 축복이, 성도님들의 삶에 풍성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축원합니다.
Jan 9, 2025

신년특별새벽기도회 5
거기에 계시는 하나님 (여호와 삼마)
에스겔 48:35 (시편 23 :4)
에스겔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32장까지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손길이 임하여서 이스라엘이 몰락하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33-48장까지의 내용은 앞부분과 반대로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과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모습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33:21절 말씀을 보시면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은 적군에게 함락되었고 백성들은 포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습은 드라마의 마지막이 아니라, 과정에 불과했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의 회복의 은총이 나타나는 드라마가 시작되는 장면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니 하나님께서 시온의 땅이 회복될 것이라고 선지자 에스겔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황폐해진 그 땅이 다시 건축될 것이고 그곳에 사람들이 다시 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씀입니다(겔 36:33-35).
그런데 조건이 있다고 하십니다. 회개할 때 회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회복의 결과로 재건된 예루살렘 성에 새로운 이름을 주셨습니다. “여호와 삼마”라는 이름입니다. “거기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회복된 예루살렘 성의 이름을 지어주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도 여호와 삼마, 거기에 계시는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호와 삼마의 하나님은 우리에게는 어떤 모습의 하나님입니까?
◉그분은 과거에도 계셨던 하나님이십니다.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벋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스라엘은 바벨론에게 포로가 되고 70년이라는 세월동안 또 다시 노예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닥까지 떨어진 그 절망의 자리로 하나님께서 찾아오셨고 개입하십니다. 놀라운 해방의 역사를 맛보게 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자유를 얻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이 감격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시 126:1). 그리고 저들은 이렇게 찬양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시 126:3).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감격의 사건이 있습니다. 구원의 사건입니다. 그 이유는 구원 받기 전의 우리의 모습을 성경이 종이나 노예와 같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요 8:34). 이런 존재를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짊어지게 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벋어나는 놀라운 은혜를 허락하셨습니다. 십자가의 피 흘림의 값을 치르고 자유하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은혜의 사건을 “구속의 사건. 속량의 사건.”이라고 부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감사해야 하는 제목들이 많지만, 그중에 가장 먼저 감사해야 하는 제목은 구원에 대한 감사일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 인생이 어두운 밤과 같은 길을 헤맬 때, 포로의 삶과 같이 신음하고 고통스러워할 때,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 분이십니다. 때로는 불순종하고 말씀을 거역했을지라도, 애통하면서 부르짖으면, 그 모습을 보시고 들으시고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출 3:7).
우리들이 어떤 환경에 처해 있을지라도 그분은 그곳에 계셨습니다. 그분 덕분에 우리가 지금 이곳에 있습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은 현재에도 이곳에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구원의 사건은 신앙인들에게 가장 위대한 사건이지만, 그 사건이 신앙생활의 마지막이 아닙니다. 구원을 완성해 가는 시작입니다.
신앙인들에게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들이 다가옵니다. 그래서 성도들 중에는 고난을 당하고 고통을 느낄 때마다, 너무나 힘겨워서 그분께 투정을 합니다. 그러다가 이 모습을 보고 듣고 계셨던 그분의 도움으로 고난을 딛고 일어서게 되면, 우리는 주님께 감사의 고백을 드립니다. 야곱처럼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창 28:16). 야곱은 느끼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늘 야곱의 옆에 계셨습니다.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약성경에도 이런 예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난 후에 고향인 엠마오로 향하던 두 제자가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향을 향하여 지친 걸음을 옮기고 있던 그들 곁에 한 분이 찾아오셨고 그들과 말을 주고받으면서 걸으셨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눅 24:16). 부활하신 주님께서 저들의 옆에 계셨는데도 저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보지 못했습니다.
제자들만 그랬을까요? 우리는 지금, 우리 옆에 계시는 주님을 보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실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지금 내 곁에 계시는 주님을 보고 느낄 수 있습니까?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가리어져서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해 주시는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내왔던 삶을 되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절망했을 그때, 분노했을 그때, 몸도 마음도 지쳐서 쓰러져서 몸부림쳤을 그때, 무섭고 외로웠던 그 밤에도 주님은 그곳에 계셨습니다.
야곱이 모든 것을 다 뒤로하고 하란을 향하여 떠날 때 주님께서는 그와 함께 계셨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향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의 옆에도 주님께서 계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언제나 제 곁에 함께 하셨는데, 알지 몰랐습니다. 몰라서 원망하고 좌절했습니다. 이제는 압니다. 그때 내 곁에 계셨고, 지금도 내 곁에 계심을 압니다. 감사합니다.”
그분은 지금도 변함없이 내 곁에 계시는 여호와 삼마의 하나님이십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은 과거에도 계셨고 현재에도 계시지만, 미래에도 거기에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회복된 예루살렘 성의 둘레가 지난번보다 넓어진 9Km 정도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에스겔 선지자는 넓게 회복된 예루살렘 성보다는 그곳에 계시는 하나님을 강조합니다. 회복된 예루살렘 성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 거기에 계신다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로 예루살렘 성이 영광이 될 것이라는 선포입니다.
에스겔이 보았던 예루살렘 성의 환상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더 이어집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서 천국의 모습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합니다.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준비한 것과 같다고 합니다(계 21:1-3).
성도 여러분. 천국의 본질은 “여호와 삼마”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곳에 계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 더불어,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곳입니다. 이 모습이 천국의 본질입니다. 천국은 영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곳 천국에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제일 먼저 이와 같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 21:4). 그래서 이 말씀을 믿고, 살아가는 동안 삶이 힘들지라도 이겨내고 찬양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자녀삼아 주시고 천국소망을 주신 것을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의 삶을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앞으로도 계시는 분이십니다. 늘 우리 옆에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을 느낄 수 있고 보실 수 있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도우심에 감사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분은 삼마의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여기에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그곳에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전에도 내 곁에 계셨고, 지금도 내 곁에 계시고, 앞으로도 나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여호와 삼마”의 하나님께, 늘 감사의 제사를 드리겠다고 다짐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모습을 보신 삼마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현장에 늘 함께 해 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Jan 8, 2025

신년특별새벽기도회 4
치료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라파)
출애굽기 15:22-27 (시편 23:3)
주원영담임목사
학자들은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에게는 성장통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도들도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성장통을 경험합니다.
출애굽기 14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가는 믿어지지 않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소개합니다. 바로의 압제에서 살았던 삶에서 온전히 해방되는 경험과 함께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너는 구원을 체험한 것입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게 되었고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쁨을 경험했습니다. 모든 것이 새로워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저들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함을 따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약속의 땅을 향하여 행진하는 순례자가 되었습니다. 신바람 나는 새 인생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감동은 불과 사흘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홍해를 건너 행군한지 사흘 만에 그들이 “마라”라는 땅에 도착해 목마름을 해결하고자 물을 길어 마셨지만, 그 물은 마실 수 없는 쓴 물이었습니다. 저들의 입에서는 원망과 불평이 터져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지금 성장통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섭리 속에서 허용하신 고통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저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치료의 하나님, “여호와 라파”가 되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출 15:26).
치료해 주시는 라파의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❶구원함을 받은 후에도 광야길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40년 여정 중에서 가장 위대한 체험은 홍해를 건넌 사건일 것입니다.
그러나 홍해를 건넌 사건은 여행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었다는 사실입니다(출 15:22). 하나님의 은혜로 홍해를 건넜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수르광야”라고 부르는 사막이었습니다. 물론 저들의 여정은 가나안이라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한 여정이었지만, 그 길은 매우 길고 지치게 하는 광야 길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은,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건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이 사건은, 우리가 지금부터 천성을 향하여 걸어가야 하는 신앙의 여정을 시작했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성도가 된 우리는 인생의 광야 길을 통과하면서 천국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가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원의 경험을 두 가지로 비유합니다. 하나는 출생의 비유이고(생명의 탄생은 경이로운 일이지만 경이로움과 함께 잘 자라야 한다는 숙제를 가지고 있음), 또 하나는 결혼의 비유입니다(화려하지만 새로운 한 가정을 시작한다는 의미).
구원함을 받은 것은 우리가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게 되었기 때문에 위대한 사건이지만, 그 소망은 광야 길을 무사히 지난 후에야 이루어지는 약속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광야 길을 가면서 배워야 할 것은 ❷부르짖는 기도, 간절함을 드리는 기도를 배우셔야 합니다.
특별히 부르짖는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이유는 인생의 길을 가는 동안 부르짖을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너무나 많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부르짖을 일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홍해 바다를 기적적으로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래하고 춤을 추었지만, 사흘 만에 상황이 바뀝니다. 노래하던 입에서는 원망과 불평이 터져 나옵니다. 춤추던 손은 그들은 가슴을 치며 탄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는 이유로 인생의 고통이나 위기에서 면제된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환난의 면제가 아니라, 환난에서의 승리입니다(요 16:33).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광야)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 16:33).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당신의 뜻이 있기에, 우리의 인생길에 환란을 허용하십니다. 그러나 결국 승리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저는 이 약속을 믿으면서, 주님께서 주신 승리의 방편이 “기도”라고 믿습니다. 부르짖는 기도 말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가셔서 출애굽기 15:2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백성들의 원망하는 소리를 들은 지도자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기록된 “부르짖다”는 말은, 내 속에 있는 것을 다 쏟아낸다는 말입니다. 지금 나에게 다가오고 있는 걱정과 염려와 불안들을 하나님 앞에 다 쏟아내고 하나님께 맡기라는 말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다 쏟아내고 맡기면서 부르짖을 때, 여호와께서 우리를 고통에서 건지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렘 33:3 민 14:28). 부르짖을 때 그가 우리를 곤경에서 구하시고, 부르짖을 때 그가 우리를 사망에서 건져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모세가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해결책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의 끝자락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밝히십니다.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출 15:26). 하나님께서 당신 스스로를 “치료하시는 여호와. 야훼 라파”라고 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건강이 주어지고, 말씀이 주어지고, 기회가 주어졌을 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보좌 앞에 나아와 하늘을 향해 손을 들고 부르짖어 기도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부르짖는 기도와 함께 또 하나 배울 것은 ❸어떤 상황에도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출 15:25-26).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하시고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마실 수 없는 물을 마실 수 있는 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고 지키며 의를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마라의 샘터에서 이런 고통을 허락하신 이유가, 그들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지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맑은 하늘과 같을 때에는 누구나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비바람과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과 같이 어둡고 힘들고 어렵기만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믿음이 “진짜 믿음”입니다. 바로 이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광야와 같은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이 배워야 할 믿음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부르짖는 기도와 함께 제배워야 하는 것이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4가지 유익을 주십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딤후 3:16-17).
성도 여러분. 치유의 은혜는 무조건의 은혜가 아니라 조건적인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병 고침을 받고 기도 응답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은 우리의 인생에 고통과 관련하여 이중적인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예방”이요, 또 하나는 “치유”입니다. 말씀대로 살면 고통에서 우리를 지킬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통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를 원하고 건짐 받기를 원하신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을 붙잡고 순종하겠다고 결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때 우리는 영적 성장을 맛보게 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고통은, 영적 성숙을 위한 성장통이라는 말입니다.
고통 속에서도 순종하겠다고 결심하고, 마라에서 일어나 앞으로 행진한 시작한 저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려 주셨습니다.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출 15:27). 조금 전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라에서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이유는, 엘림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눈에는 내일의 희망이 보이지 않지만, 엘림이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마라와 같이 고통이 있고 아픔이 있는 삶의 현실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부르짖어 기도하면, 순종의 삶을 살기로 결단하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우리 곁에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병든 몸을 치유하십니다. 우리의 병든 마음도 치유하십니다. 우리의 관계도 치유하십니다. 가정도 치유하시고, 직장도 치유하시고 사업장도 치유하십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이름은 “여호와 라파”입니다. “치료의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아멘.
Jan 7, 2025

신년특별새벽기도회 3
평강의 하나님 (여호와 샬롬)
사사기 6:19-24 (시편 23:2)
주원영담임목사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어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화라는 뜻을 가진 “샬롬”이라고 대답한다고 합니다. 아마 전쟁이나 갈등이 많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
하지만 학자들은 샬롬이라는 단어가, 단지 갈등이 멈추거나 전쟁이 중지된 그런 의미만은 가지고 있는 단어가 아니라고 합니다. “완전하다. 건강하다. 성취하다.” 이런 의미까지를 내포하고 있는 단어라고 말합니다. 둘러싸고 있는 모든 상황들이 해결되어서, 그 평안을 온전하고 충분하게 경험하는, 충만한 은혜의 상태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샬롬으로 오셨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가장 어두웠던 시대는 “사사시대”였다고 말합니다. 그런 상황의 때에 하나님께서는 농사를 짓고 있었던 “기드온”을 선택하셔서 어려움에 빠져있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사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기드온이 너무나 감격해서 제단을 쌓았고, 그 제단의 이름을 “샬롬”이라고 불렀습니다(삿 6:24). 평강이라는 뜻을 가진 여호와 샬롬은, 기드온이 부른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기드온은 샬롬의 하나님을 만났고, 샬롬의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인생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도, 하나님을 만나면 인생이 바뀝니다. 샬롬의 하나님을 만나시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필요한 샬롬은 어떤 것들이고, 언제 필요할까요?
❶삶의 터전이 흔들리고 무너질 때, 샬롬이 필요합니다.
사사기 6:1절 말씀을 보니 악을 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깨우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웃에 있는 미디안 족속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침략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전쟁을 해서 이스라엘을 점령한 것이 아니라, 파종할 때가 되면 낙타와 같은 짐승들을 동원해서 씨를 뿌린 밭을 다 뒤집어 엎는(초토화시키는) 그런 침략이었습니다. 한번만 그런 것이 아니라 칠 년 동안을 매년 그렇게 했습니다. 때문에 칠 년이라는 시간동안 이스라엘은 도저히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비열한 사람과 그 사람들이 꾸미는 교활함 때문에 관계가 무너집니다. 일터와 사업장이 점점 힘들어집니다. 가정까지도 흔들립니다. 바로 이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가 샬롬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어려움들이 회복되어지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이 샬롬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회개없는 회복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악을 행하였기 때문에 그것을 깨우쳐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칠 년 동안이나 미디안을 사용하셔서 침략을 받게 하셨습니다. 결국 자신들이 악을 행하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회개했다는 말입니다(삿 6:6). 이스라엘의 이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이때부터 회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삶의 터전에서 어려움과 고통 때문에 삶이 흔들리고 힘들지라도, 그것은 나를 망하게 하고 파괴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신 나를 깨닫게 해서 관계를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간절하심이라는 사실을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건강하고 풍요로운 미래를 향하여 다시 일어서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파괴가 아닙니다. 새롭게 창조하시려는 간절한 몸부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호 6:1).
삶의 회복이 필요하신 성도님들이 계시면, 샬롬의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잘못되고 부족한 것들을 회개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께서 회복의 은혜를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➋삶의 소명이 힘들게 느껴질 때, 샬롬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간절히 부르짖는 당신의 백성들을 보시고는 회복을 준비하셨습니다. 어려운 위기를 이겨낼 수 있도록 가난한 농부의 아들 기드온을 지도자로 세워주셨습니다(삿 6:12).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큰 용사”라고, “위대한 용사”라고 하시면서, 함께 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반문합니다(삿 6:13).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는데 왜 미디안 때문에 이 나라가 이런 상황이 되었느냐고 묻습니다. 이 말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6:14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삿 6:14).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사용하셔서 어려움에 처해있는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겠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선뜻 순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힘이 없다고 합니다(삿 6:15).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제부터 너를 힘이 있는 자로 만들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큰 용사로 만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실 때, 눈 앞에 펼쳐진 현실만을 보고 걱정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은 능치 못함이 없으심을 믿고 순종의 자리로 나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일도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래의 비전을 가지시고 찾아오십니다. 기드온에게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확신을 받은 기드온이 하나님을 만난 그곳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여호와 샬롬”이라고 불렀습니다. 이후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대로 순종함으로 이스라엘을 구하는 사사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평강의 하나님을 통하여 삶이 변화된 것입니다.
➌주의 임재가 두렵게 느껴질 때, 샬롬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것은, 말씀대로 순종하는데도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는 때가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분의 임재가 느껴지면,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앞섭니다. 아직 부족한데 나를 사용하시려는 것 같습니다.
바로 본문에 등장하는 기드온이 그런 상황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임재를 확인할 수 있도록 표징을 보여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천사가 바위 위에 고기와 떡(무교병)을 놓고 국을 부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손에 잡고 있는 지팡이로 그것들을 건드립니다. 그 순간 불이 고기와 떡을 태워버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자가 말씀을 전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삿 6:23).
이 말씀을 듣는 순간 기드온에게 물밀듯 밀려온 것이 있었습니다. 평안이었습니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평안이었습니다. 기드온은 벅차오르는 감격으로 그 자리에 제단을 쌓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여호와 샬롬”이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평화이십니다.” 이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다가도 막상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면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다 알고 계시면서도,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해주시려고 2,000년 전에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다 담당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평안을 주셨습니다. 두려움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에, 기쁨과 평안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샬롬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믿고 그분 앞에 나아오기만 하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평안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간절히 소원하는 것은, 주님께서 주시는 이 평안을 풍성하게 받아 누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