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요약
Nov 24, 2024

[예수님을 만난 사람]
새로운 삶의 눈을 뜬 사울
(사도행전 9:10-19)
주원영담임목사
오늘 본문에는 얼마간 보지 못했던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사울”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한마디로 “다시 본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12절과 17-19절 말씀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사울이라는 청년은,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러 가던 중에 다메섹이라는 지방에서 예수를 만났고, 얼마동안 눈이 어두워졌다가, 예수님의 도움으로 다시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혹시 성도님들 중에,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나의 삶의 모습들이 너무나 힘들어서 어둡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새로운 세상이 열려서 새로운 것을 보기 원하시는 성도님들이 계십니까?
성도님들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주시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두운 세상을 뒤로하고, 새롭게 펼쳐진 세상에서 우리가 다시 눈을 떠서 보아야 하고 경험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울 사도의 모습을 통하여 교훈을 얻으려고 합니다.
다시 눈을 떠서 보아야 하는 것은 ❶인생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를 발견해야 합니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인생의 참 주인이 누구냐고 물으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나 자신”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다.” 바로 이런 생각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지배하는 인본주의(세속적 휴머니즘)의 본질이고 우리의 모습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 인생의 주인 노릇을 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결국 스스로의 한계가 있다는 것을 경험하는 순간, 인생은 허무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대속의 제물이 되신 예수님 앞에서, “당신만이 나의 참 주인이십니다.”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은, 우리에게서 늘 이런 고백이 넘쳐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울은 외적으로는 완벽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믿고 살만한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사울의 외적인 환경을 빌립보서에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빌 3:5-6). 사울은 자신의 지식을 믿고,, 자신의 신념을 믿고, 자신의 철학과 도덕성과 고결성을 믿을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그토록 경멸했던 예수를 다메섹에서 만나자마자 거꾸러진 것입니다. 그때 그가 외칩니다. 주여 누구시니이까 (행 9:5). 이 질문에 하늘의 음성이 들립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행 9:5). 이 말씀 앞에서 사울은 변했습니다.
그때부터 사울은 예수를 주로 부르고, 예수를 주로 증거하고, 예수를 주로 섬기는 일생을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사울이 주님을 만나서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사울을 만나주신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사울의 주님이 우리의 주님이 되신 것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 은혜가 함께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시 눈을 떠서 보아야 하는 것은 ❷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지를 발견해야 합니다. 삶의 진정한 사명을 발견해야 합니다.
무엇인지 모르게 삶이 답답한 이유는, 삶의 목적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예수를 만나는 순간, 그 순간 삶의 목적을 발견하게 됩니다.
보세요.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시력을 상실했을 때, 그는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 시내로 들어가게 됩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시력을 잃은 사울은 유다라는 성도의 집에서 사흘을 금식하며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의 명령을 받고 그곳에 도착한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고 눈을 떠서 보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볼 수 있도록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9:10-11절 말씀입니다.
사울의 눈을 멀게 하시고 아나니아를 통하여 그 눈을 다시 뜨게 해 주신 이유가, 사도행전 9:1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하는 것.” 이 명령이 사울에게 주신 사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의 눈을 뜨게 해 주시고 사울에게 주신 사명은, 자신이 어둠에서 눈을 뜬 것처럼 복음으로 이방인들도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행 26:16. 18).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를 속량해 주시면서 나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은혜가 성도님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확실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시 눈을 떠서 보아야 하는 것은 ❸주님께서 동행하시고 보호해 주심을 경험해야 합니다.
믿음장이라고 하는 히브리서 11장을 묵상할 때마다 깨닫는 것은, 모험을 감수하지 않고 믿음의 선진이 된 사람이 한 분도 안 계시다는 것입니다. 모험은 항상 힘이 들고 어렵지만, 신앙인들의 모험에는 언제나 주님의 임재하심과 동행하심 그리고 보호하심의 약속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8:20 말씀을 묵상하시고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울이 주님을 만나고 난 후에 제일 먼저 한 일이 사도행전 9:2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행 9:20). 주님께서 주신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된 사울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즉시로 전하는 일을 시작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도 새로운 눈을 뜨는 경험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우리에게서 세상만을 바라보게 했던 비늘 같은 것이 내 눈에서 벗겨지면, 그래서 예수의 말씀이 들리고 나를 위하여 대속의 제물이 되신 살아계신 예수의 모습이 보이면, 그리고 그분이 영생을 약속하신 것을 믿는다면, 담대하게 그분을 전할 수 있습니다.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새로운 눈을 뜨고 주를 전하는 그 길에는, 언제나 핍박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전하는 삶에는, 늘 미움과 핍박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전하는 그 삶에는 약속하신 주님의 보호하시는 손길과 동행해 주시는 은혜가 항상 있습니다. 변화된 사울의 삶에 모습이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행 9:22-25).
주님께서 이렇게 사울을 보호하신 것은, 그가 완수해야 할 사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의 복음을 전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와 동행하시고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당신의 복음을 전하는 자는, 당신께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울처럼 주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온 힘을 다하여서 감당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이와 같을 때, 주님께서 동행하시고 보호해 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Nov 17, 2024

[예수님을 만난 사람]
감사를 잊지 않은 사람
(누가복음 17:11-19)
주원영담임목사
성경에 기록된 단어 중에서 반복해서 기록된 단어들이 많이 많습니다. 그 중에는 기억하라는 단어(시 103:2)와 잊어버리라는 단어(사 43:18)가 있습니다. 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기억해야 할 것은 기억하지 못하고 잊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고, 잊어야 할 것은 잊지 못하고 기억하면서 살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시간 본문을 통해서 잊지 말아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본문에는 예수님을 만나 치료함을 받은 열 명의 한센병(나병) 환자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치료함을 받은 열 명중 오직 한 사람만 주님께 돌아와 감사를 드렸습니다. 한 사람만이 감사를 잊지 않았다는 말입니다(눅 17:15-16). 그리고 이 모습을 보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눅 17:17). 치료함을 받은 열 사람 중에서 단 한 사람만 감사를 잊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감사를 잊지 않은 이 사람을 통하여, 감사를 잊지 말고 살아야 할 이유를 배우려고 합니다.
감사를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❶과거의 모습을 잊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는 동안 감사를 잊고 사는 모습은, 과거를 망각하게 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한센병(나병)에서 치료함을 받은 9명의 모습 속에서 과거를 망각한 삶의 모습을 봅니다.
저들이 한센병(나병) 환자로 살아오면서 겪었던 수모와 불행한 과거를 기억한다면, 어떤 경우에도 감사를 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중 한 사람만이 감사를 잊지 않았습니다(눅 17:18). 그래서 예수님께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혹시 함께 예배를 드리는 내 모습이, 그 아홉 사람 중에 있지는 않을까요?
평생을 감사하면서 살았던 모범적인 사람중에 “다윗”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평생을 감사하면서 살았던 이유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삼하 7:18). 다윗이 평생을 감사하면서 살 수 있었던 이유는, 자기의 과거 모습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왕의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가난한 목동으로 고생했던 그 과거를 잊지 않았습니다.
바울 사도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근본적이고 영적인 과거를 잊지 말라고 권면합니다(엡 2:11-12). 바로 지난날의 우리의 모습이 바울 사도가 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영원한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감사를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❷현재의 감동을 붙들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감사의 영성을 가지고 살아가려면, 우리의 지난 과거를 기억하는 것과 함께 현재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느끼는 감동을 붙잡고 살아갈 줄 알아야 합니다.
열 명의 한센병 환자들은 모두 믿음이 있었고 순종도 있었습니다. 바로 그 믿음과 순종이 저들의 한센병(나병)을 치료했습니다(눅 17:13-14). 말씀에 순종해서 믿음으로 제사장을 만나러 길을 가는 중에 깨끗함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홉 명에게도 감사해야겠다는 마음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중의 한 사람은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미루지 않았습니다. 지금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제사장에게 가는 도중에 자신의 한센병이 치료된 것을 보는 순간 걸음을 돌려 곧장 예수님께 달려 온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감사의 영성으로 살아가려면 현재의 감동에 민감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감화하시고 감동하시는 대로 행하여야 합니다.
감사를 잊지 말아야 할 이유는 ❸미래를 기대하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 오늘을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감사할 수 있는 내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현재를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감사할 수 있는 미래가 주어집니다.
치료해 주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던 발걸음을 돌려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한 이 사람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눅 17:19). 육신의 질병을 치료해 주신 것을 감사했더니, 그의 영혼의 구원까지 보장하여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감사는 미래의 축복의 여는 열쇠입니다. 오늘의 답답한 현실을 극복하고, 새 미래를 열고자 하신다면, 멋진 감사의 제단을 쌓으십시오. 그러면 성령님께서 우리의 미래를 멋지게 열어 주실 것입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동역자 여러분. 어떤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까?
◎지난 시간 나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그 감동으로 오늘도 천국의 행복을 누리고 살아가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미래에 우리에게 영원한 천국을 주실 것을 믿는 믿음으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이렇게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은혜의 은혜를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생각해 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이 은혜가 성도님들의 삶에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Nov 10, 2024

[예수님을 만난 사람]
옥합을 깨뜨린 여인
(마가복음 14:3-9)
주원영담임목사
오늘 본문에 기록된 사건이 일어나던 상황은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고 뇌성이 울리던 밤과 같은 상황이었습니다(막1 4:1-2). 당시의 가장 대표적인 종교인들이었던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던 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밤에,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감사의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본문 3절은 이 사건을 “한 여자의 사건”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요한복음 12:3절에서는 이 여인의 이름을 마리아(나사로의 누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마가는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여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의 헌신은 숨겨질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이 되고 말았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막 14:9). 주님께서는 친히 옥합을 깨뜨려 감사를 드린 이 여인을 하나님 나라 역사의 가장 소중한 존재로 인정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참된 헌신과 참된 감사는 어떻게 드리는 것일까요?
❶할 수 있는 곳에서 드려야 합니다(막 14:3).
성경은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을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이라고 말합니다. 본래 나병환자였던 시몬이 예수님에게 치료함을 받은 후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모시고 식사를 대접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요한 사도는 이때의 모습을 마가복음보다 조금 더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요 12:1-2). 그리고 이어지는 3절 이하에서 오늘 본문에 기록된 마리아의 헌신이 소개됩니다.
성도 여러분.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을 통하여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이 잔치가 시몬의 집에서 준비한 “예수님을 위한 잔치”였다는 것입니다. 불치의 병에서 치료함을 받은 것이 너무나 감사해서 예수님을 위하여 준비한 잔치입니다. 그리고 이 식탁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지 나흘 만에 살려주신 나사로도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저들처럼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아낌없이 드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❷할 수 있는 것으로 드려야 합니다.
마리아는 무엇으로 감사할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고이 간직해온 옥합을 생각해 낸 것입니다. 마리아가 간직했던 이 옥합 속의 향유는 그녀의 가장 소중히 여기는 전부였을 것입니다.
성경은 이 향유의 가치가 300데나리온 이상이었다고 기록합니다. 당시 평범한 근로자의 하루 품삯이 1데나리온이었으니까, 이 향유는 일반 근로자의 일년 봉급에 해당되는 금액입니다. 그렇게 큰 돈이었음에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옥합을 깨뜨려 옥합에 담겨져 있던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 위에 부었습니다. 그것이 그녀의 할 수 있는 최선의 헌신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사람들 중에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막 144).
하지만 주님의 생각은 다르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막 14:6). 주님께서는 이 일이 아름다운 일이라고 말씀하시고, 주님께서 기억하시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막 14:9).
성도 여러분. 우리도 드릴 수 있는 것이 있을 때 감사한 마음으로 드림으로 주님께서 기억해주시는 은혜를 맛보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❸할 수 있는 때에 드려야 합니다.
1절 말씀을 보니 이 여인이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 드린 때가 언제인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체포되어 십자가를 지시기 9일 전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만일 마리아가 예수님께 그날 이 사랑의 헌신을 드리지 못하고 주님의 임종의 소식을 들었더라면, 그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러나 마리아는 다행히도 이 기회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가는 이때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막 14:8).
성도 여러분. 봉사하는 것도, 헌신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할 수 있을 때 해야 합니다. 어쩌면 이런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주님을 위해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던 것을 드렸습니다.
마리아처럼 할 수는 없을지라도, 드릴 수 있는 곳에서, 드릴 수 있는 것으로, 드릴 수 있을 때에 드릴 때,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부족하지 않고 차고 넘치게, 그리고 풍성하게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마리아가 드렸을 때에 그의 드림이 복음이 전해지는 모든 곳에서 기억되었듯이, 우리의 드림도 주님께서 기억해주시는 드림이 될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상급이 될 것입니다. 이 축복이 성도님들의 삶에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Nov 3, 2024

기적을 창조하는 감사
(요나 2:1-10)
주원영담임목사
한해동안 인도해 주신 은혜를 생각하는 감사 주일 아침, 요나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성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가지시고 요나를 선지자로 파송하셨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음에도, 과거 자신이 살고 있는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니느웨로 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스로 도망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계획을 이루어 나가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당신의 뜻을 외면하는 자를 그대로 두시지 않으십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누가 하나님의 손길을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결국 하나님의 명령을 외면한 채 도망가는 요나가 탄 배는 큰 파도에 휩쓸리게 되었습니다.
요나와 같은 배를 타고 있었던 사람들은, 원인없는 결과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누군가 죄인이 이 배에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제비뽑기로 하였고, 결국 요나는 바다에 던져지는 운명이 되었습니다. 바다에 던져진 요나를 큰 물고기가 삼켰고 요나는 잠시 후면 죽게 될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요나가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 기도가 오늘 본문입니다(욘 2:9). 그리고 요나에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욘 2:10).
감사는 기적을 창조하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자를 기억하십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은 감사의 고백이 언제 나올까요?
지금의 상황이 너무도 힘들다고 해도 ⓵“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면” 감사의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감사절이 될 때마다 “켐벨 모르간” 목사님의 간증이 떠 오릅니다.
목사님께서 부흥집회를 인도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집 앞 골목길에서 강도를 만났습니다. 심하게 맞았습니다. 가진 것도 다 빼았겼습니다. 유혈이 낭자한 몸으로 집에 돌아오신 목사님께서는 가족들의 계속되는 걱정을 뒤로하시고 서재에 들어가셔서 이렇게 기도를 드리셨다고 합니다. “하나님. 강도를 만나 많이 맞았지만 죽지 않도록 보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진 것을 다 빼앗겼지만 천국신앙을 빼앗기지 않도록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떻게 이와 같은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을까요?
요나가 3일 밤낮을 이런 물고기 뱃속에 있었다고 합니다. 죽지 않은 것이 기적입니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조건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면 어떠한 경우에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면 항상 감사할 수 있습니다. 믿으시고 어떤 경우에도 감사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어려움이 많고 고통이 심하다고 해도 ⓶“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늘 곁에 계신 것을 생각하면”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외칩니다.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욘 2:9). 때로는 어쩔 수 없는 환경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도와 줄 수 없는 환경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떠나지 않으시고 곁에 계십니다. 세상은 나를 외면하고 버려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버리지 않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물가로 지날때에 물이 해하지 못하게 막아주시고, 불가를 지난 때에도 불이 거스리지 못하게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사 43:1-2).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7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할 때였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저들을 향하여 바벨론은, 풀무불에 던진다고, 사자굴에 넣는다고, 공포하였습니다. 모두가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늘 하던대로 하루에 세 번씩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단 6:10). 다니엘의 친구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굳게 지킵니다(단 3:16-18). 하나님께서 이 모습을 보시고 사자의 입을 봉하셨습니다(단 6:21-22). 풀무불 속에서 동행해 주셨습니다(단 3:24-25).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늘 나와 함께 계심을 믿는 성도들은 어떤 환경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어떤 환경이 내 앞에 있더라도 감사를 드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 나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을지라도 ⓷“더 잘 되게 될 것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형통하게 될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환경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에 있습니다. 죽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런 환경에 있는 요나에게 감사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깨닫고 감사했더니 하나님께서 물고기를 통하여 보호하고 계셨다가 다시 사용하신 것입니다. 물고기에게 명령하사 요나를 육지에 토해내게 하신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다시 말씀하셨고, 요나는 말씀에 순종하여 즉시 일어나 니느웨로 가서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요나 3:4-6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던 니느웨 사람들에게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니느웨가 변했습니다. 왕이 친히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조서를 내리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욘 3:7-9). 하나님께서 뜻을 바꾸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 백성들을 한 명도 멸하시지 않으시고 살려 주셨습니다. 내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앞길을 가로막고 있더라도, 더 잘될 것을 믿고 감사의제사를 드린 결과입니다.
로마서 8:28절 말씀을 아십니까?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어려워도, 지금은 힘들어도, 지금은 안될 것 같을지라도, 우리의 형편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더 잘되게 해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할 때, 우리의 삶은 모든 것이 합력하게 선을 이루게 되고 잘 해결될 것입니다. 믿으시고 범사에 감사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때 미국을 움직였던 위대한 설교자이고 신학자였던 “라인홀드 니버”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은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나는 그것에 감사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어떤 경우에도 감사의 삶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는 그 모습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삶의 모든 것들을 합력하여 잘 되게 해주시는축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