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요약
Jan 6, 2025

신년 특별새벽기도회 2
준비해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 이레)
창세기 22:1-2. 13-14 (시편 23:1)
주원영담임목사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크고 작은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위기의 대부분은 우리들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측하지 못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 위기에 대한 반응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위기는 위험한 것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미래를 만나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묵상하는 내용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아브라함의 이야기입니다. 그에게는 기적으로 얻은 이삭이라는 외아들이 있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었지만, 그 아들을 하나님의 제단에 제물로 바쳐야 하는 위기가 닥쳐온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고난 앞에서, 어떤 원망이나 절망을 선택하지 않고 순종과 믿음을 선택합니다. 이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 그를 위기에서 건지시고 그 아들 대신 어린 숫양을 준비하셔서 제물로 바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새로운 미래를 열어 주시고 그로 하여금 많은 민족들에게 믿음의 아버지가 되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새롭게 하나님을 만난 그 땅의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불렀습니다(창 22:13-14).
이해하기 어려운 위기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인생의 길에서 우리의 미래를 보시고 아시고 준비해 주시는 이 하나님을 만나시는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의 미래를 준비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하신다면 ❶위기를 시험으로 받아드릴 줄 알아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대부분의 위기나 고통은, 하늘이 주시는 시험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시험문제를 내셨습니다(창 22:1).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인생의 시험은 찾아옵니다. 그러나 여러 모양의 고난이라는 인생의 시험을 통하여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부족한 것을 채움으로 성숙한 사람으로 세워갑니다. 삶의 위기와 고난은 인간을 겸손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기자는 말했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 1:2-4).
위기를 시험으로 받아드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기는 우리를 강건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신앙의 유익함을 줍니다. 위기를 통해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게 되고,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듬어집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의 끝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아브라함은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이 시험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격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도 아브라함처럼 복된 미래로 우리를 인도해 가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만나시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미래를 준비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하신다면 ❷위기를 믿음으로 맞설 줄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 죽음의 제단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때 아무래도 이상한 분위기를 느낀 이삭이 아버지에게 제물은 어디에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이 질문에 아버지 아브라함이 대답을 합니다(창 22:7-8). 아브라함은 아들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위기를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기와 아들에게 피할 길을 예비해 주실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22:5-6절 말씀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늘과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는 위기의 순간을 오히려 믿음으로 이긴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이 믿음을 우리가 배우고 가지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 제단에서 아들 이삭을 결박하고 칼을 들고 칼끝을 아들을 향한 그 순간 하나님의 천사가 소리를 발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을 보니, 하나님께서 어린 숫양을 준비해 주시고 그것으로 제물을 대신하게 하셨습니다(창 22:12-14). 그래서 그 제단의 이름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여호와 이레의 제단이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모리아의 제단에서 어린 양을 준비해 주셨던 그 하나님께서, 2,000년 전 유대 땅 예루살렘성 밖 갈보리 언덕에 또 하나의 제단을 준비하셨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던 우리 모두를 위하여 하나님 자신이 속죄의 제물을 친히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 제물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성도님들과 저를 심판하시는 대신, 자신의 아들에게 그 죄를 걸머지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희생의 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길을 예비해 주시기 위하여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1865년 4월 9일 미국에서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흑인들을 노예에서 해방시킨 링컨 대통령 부부는 닷새 후인 4월 14일 워싱톤 시내에 있는 포드 극장에 연극을 보러 갔다가 암살자의 총을 맞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시 그로부터 열흘이 지난 4월 24일 그의 시신을 링컨의 고향인 “일리노이주 스프링 휠드”에 안치시키기 위해 워싱톤 볼티모어 역으로 출발하기에 앞서서 그의 유해가 백악관 앞 펜셀바니아 애비뉴 길을 지날 때였습니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길가에 있던 사람 중에서 흑인 신사 한 분이 갑자기 고인이 된 링컨의 영구차가 지나가려고 하는 순간 두 손으로 자기 아들을 번쩍 안아 들고 이렇게 소리쳤다고 합니다. “아들아 잘 보아라. 저분이 너를 위해, 그리고 우리들을 위해 죽으신 거야. 결코 잊지 말아라. 저분의 죽음으로 너와 내가 자유한 인생으로 살게 된 것이란다.”
저는 오늘 이 흑인 신사의 말을 성도님들에게 전하려고 합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잘 보십시오. 그분의 피 흘리심과 그분의 희생으로 저와 여러분이 죄에서 해방되어 새 인생을 살게 된 것입니다.”
이 예수를 우리의 구주와 주님으로 확실히 믿으면, 이 예수를 십자가에서 속죄의 어린양으로 준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위하여 삶의 위기와 고난을 희망의 미래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고난의 건너편에 있는 새로운 희망의 미래, 축복의 미래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미리 준비해 주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께서, 성도님들의 삶에 늘 함께 하시는 은혜가 넘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Jan 5, 2025

신년 특별새벽기도회 1
목자가 되신 하나님 (여호와 로이) (시편 23:1-6)
주원영담임목사
오늘 함께 합독한 시편 23편은, 성경 전체에서 요한복음 3:16절 말씀 다음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이 말씀을 조금 깊이 묵상해 보면, “여호와는 내 인생의 해답이시다.” 이 선언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시편 23:2-6절 말씀은, 인생의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답이 되시는가를 보여주시는 말씀들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약 60회에 걸쳐 하나님께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여호와 로이)” 이름으로 등장하십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인생을 양이라고 표현합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사 53:6). 이 말씀은 우리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양과 같아서 삶의 문제들은 목자되신 하나님(여호와 로이)께서 완벽한 해답이 되어주신다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양 같은 인생들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 인생의 문제는 ◉두려움입니다.
양은 동물 중에서 겁이 많은 동물입니다. 양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늘 두려워하고 초초해 합니다. 그래서 양과 같은 인생에게 가장 큰 문제가 바로 “두려움”이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 모두는 살아가는 동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고없이 찾아오는 사고나 재난, 그리고 신체적인 질병들이 그것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인생의 골짜기와 같은 두려움을 위하여 보험이라는 것을 듭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여호와 로이)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 23:4).
성도 여러분. 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전지전능하신 여호와께서 저와 성도님들의 목자가 되어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면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래서 “목자이신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 로이”는 인생의 두려움에 대한 완벽한 해답이십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인생의 문제는 ◉더럽혀짐입니다.
양은 언제나 온순하고 깨끗한 동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양은 그렇게 깨끗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지독한 냄새가 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인간이 다 양과 같다고 말합니다. 멀리서 보면 다 선량하고 깨끗해 보이지만 가까이 가보면 별수 없이 인간의 냄새가 납니다. 때로는 더러운 악취가 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5절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목자이신 여호와께서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당시의 기름은 양의 상처를 치료하는 약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육체의 상처는 기름으로 어느 정도 치유되겠지만, 영혼의 상처는 무엇으로 치유해야 합니까?
우리의 영혼의 소생은 우리의 죄 문제가 해결될 때 비로소 가능한데, 그분만이 이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시라고 말합니다. 죄로 더렵혀진 영혼을 깨끗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1). 죄로 인하여 더럽혀진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유일하고 완벽한 해답은,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생명을 대속의 제물로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목자가 되시는, “여호와 로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인생의 문제는 ◉방향감각의 상실입니다.
성도 여러분. 양은 상당히 부지런한 동물입니다. 그러나 양의 치명적인 결함은 방향감각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다른 동물들은 집을 떠났다가도 집을 찾아오지만 양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인간이 양과 같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목자만 있으면 해결됩니다. 목자만 잘 만나면, 목자가 양의 발걸음을 인도해 줍니다.
시편 23편의 주어는 “그가” 입니다. 선한 목자이신 여호와 하나님 그가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그렇게 번역되지 않았지만 영어 성경에는 반복적으로 “그가”라는 인칭 대명사가 등장합니다. “그가 우리를 푸른 풀밭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고. 그가 우리를 의의 길(올바른 길)로 인도하시고. 그는 마침내 우리를 여호와의 집으로 인도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성도님들의 목자가 되십니다. ◉두려움에 잡힌 나. ◉더럽혀진 나. ◉방황하는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셨고 지금 하늘 보좌에서 우리들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목자가 되시는 이분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주인이십니다. 우리의 주인되십니다. 이분을 의지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세상, 앞을 볼 수 없는 이곳 세상에서, 2025년 한 해 동안 기쁨으로 승리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Jan 5, 2025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⓶
(창세기 25:19-26)
주원영담임목사
기독교는 고백의 종교입니다. 때문에, 시인해야 할 때는 시인하고, 고백해야 할 때는 고백하고, 선포해야 할 때는 선포하고, 명령해야 할 때는 명령하고, 독백을 해야 할 때는 독백을 해야 합니다. 그 마음으로 2025년 영원한 교회 표어를 외쳐보겠습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아멘.
우리가 표어를 힘차게 외쳤지만, 왜 야곱의 하나님일까? 하는 의문을 지워버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신 제사를 드린 아벨이 있고, 하나님과 300년 동안이나 동행했던 에녹도 있고, 하나님께 의롭다 칭찬을 받으면서 120년에 걸쳐 산 위에 방주를 지은 노아도 있는데 왜 야곱의 하나님이 되시기를 원하셨을까?
성도 여러분. 이럴 때는 야곱이 살았던 그 시대로 돌아가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의 역사를 거슬러 살펴보면, 야곱은 BC 2006년에 태어나서 147살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원전 2006년으로 가보아야 합니다. 야곱이 살았던 그때, 그 환경과 사건 속으로 돌아가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야곱의 출생에 대하여 성경에 창세기 24:21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창 25:21). 그런데 창세기 25:20절과 26절 말씀을 보니, 야곱과 리브가가 하나님께 간구한 시간이 얼마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간구할 때와 간구를 들으셨을 때의 시간 간격은 최고 20년이었습니다. 이삭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즉시 응답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정확하지는 않을지라고 20여 년이 흐른 시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입니다.
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25:22절 말씀을 보니 어머니가 태중에 아이를 품었는데, 태중에서 아이들이 계속 싸웁니다. 이 모습을 새 번역 성경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내가 너무나 괴로워서 어떻게 살겠느냐(창 25:22).
그래서 이삭과 리브가는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절히 기도합니다. 여호와께 묻자온대.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문제를 가지고 간절히 기도하는 저들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저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그분은 ◉우리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에게 간절한 소원이 있고, 우리 안에 있는 어려움과 고통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를 때에, 이삭처럼 리브가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그 간구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고 해결해 주십니다.
그분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 14:28).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 이 모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들이 우리의 삶에서 이루어지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어지는 창세기 25:23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창 25:23).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관례는 장자가 모든 경우에 먼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해가 되지 않고 상상이 되지 않는 말씀을 하십니다. 둘째 아들을 큰 아들로 만드시겠다고 하십니다. 왜 야곱입니까?
이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야곱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야곱의 하나님이 되어주신 그분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작은 자의 하나님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야곱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셔서 당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알려주시는데 “작은 자의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 “약한 자의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 “어린 자의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 “축복을 받을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자의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
당시 사회적인 전통과 사람들의 생각에는 장자였습니다. 장자로 태어난 것은 자신의 노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장자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특권을 누립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약한 자의 하나님이 되겠다. 나는 작은 자의 하나님이 되겠다.”
약하십니까? 부족하십니까? 작다고 생각하십니까? 야곱의 하나님은 작은 자의 하나님되심을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이 또 말씀하십니다. ◉나는 택한 자를 절대 버리지 않는다.
우리가 약해서 넘어지고 쓰러지기도 하고 범죄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우리를 포기하거나 버리지 않으시고 다듬어 가시면서, 끝까지 동행하시면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다 “야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절대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야곱이 엉뚱한 일을 해도, 야곱이 연약한 길에 서 있어도, 끝까지 함께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을 이스라엘로 만들어 주셨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습니다. 그분의 섭리와 간섭도 믿습니다. 그렇지만 고통과 고난 앞에서 가만히 있어서는 안됩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니느웨가 범죄했지만, 왕을 비롯한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금식하며 회개하는 시간을 가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돌이키셨습니다(욘 3:10).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께 말씀 앞에 몸을 벽으로 향하고 간절히 기도하였을 때, 그 기도를 들으시고 생명을 연장해 주셨습니다(왕하 20:5-6).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할 때에, 야곱이 간절히 기도할 때에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야곱의 하나님은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작은 자의 하나님이시고 약한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택하신 자를 절대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025년 한 해 동안, 이분 주님과 동행하시는 성도님들의 삶이 되셔서 그분께서 내리시는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리시는 시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Dec 31, 2024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⓵
(시편 46:7-11)
주원영담임목사
하나님께서 또 다시 우리에게 복된 새해를 열어주셨습니다. 새롭게 열리는 2025년 한 해 동안, 성도님들의 가정과 삶의 현장에, 우리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5년동안 영원한 교회가 붙잡았던 표어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2020년 : 여호와께서 내게 관계된 것을 완전케 하시리라 (시 138:8).
※2021년 :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사 9:7).
※2022년 :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시 46:10). 코로나라는, 믿기 싫고 견디기 힘든 그런 시간이었지만 주님께서 하나님 되심을 믿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가만히 기다렸습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주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2023년 : 주께서 생명의 길을 네게 보이시리라 (시 16:11).
※2024년 :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무너지리라 (슥 4:7). 우리 모두의 삶 속에는 이런저런 모양의 큰 산들이 있지만 우리는 담대히 외쳤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말합니다.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능력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영으로만 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면 어떤 큰 산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을지라도 평지가 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수행의 종교가 아닙니다. 입을 열어 고백하는 종교입니다. ◎시인하는 것입니다(롬 10:9). ◎고백하는 것입니다(마 16:16). ◎선포하는 것입니다(막 11:23). ◎명령하는 것입니다(막 4:39). ◎독백하는 것입니다(마 9:21). 시인해야 할 때는 시인하시고, 고백해야 할 때는 고백하시고, 선포할 때는 선포하시고, 명령해야 할 때는 명령하시고, 독백해야 할 때는 독백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에,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큰 산이 산산히 무너져 평지가 될 줄 믿습니다. 골리앗을 향하여 소년 다윗이 외칩니다(삼상 17:45). 그때 골리앗이 쓰러졌습니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철홍성 여리고 앞에서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외쳤습니다. 그때 성이 무너지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태양과 달을 향하여 머무르라고 명령했을 때에 태양과 달이 머무르는 믿을 수 없는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시 81:10).
새롭게 열려지는 2025년도에는, 약속의 말씀들을 굳게 붙잡고 우리의 입을 열어 고백하고 외치는 은혜가 성도님들의 삶에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가 붙잡고 입을 열어야 하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말씀을 읽어가는 중에, 시편 46편의 말씀이 제 마음에 울렸습니다.
시편 46편의 표제를 보시면 “알라못에 맞춘 노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알라못은 크게 외치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고라 자손들이 기록했다고 합니다. 민수기 16장을 보시면 고라 자손들은 처음에는 반역자들이었습니다(모세를 향하여. 땅이 갈라져서 250명의 사람들이 땅속으로 빨려들어감. 염병이 돌아서 17,400여 명이 전염병으로 죽음.)
그런데 그런 가운데 살아남은 몇몇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전을 찾았고 성전을 섬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고백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시 46:7.11). 고라 자손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불렀을까? 왜 전능하신 하나님을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불렀을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읽어 내려가다 보니, 고라 자손들은 다른 성경에서도 하나님을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시 84:8). 성전에서 하나님을 노래하고 찬양하는 아삽도 하나님을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시 75:9. 시 76:6. 시 81:1. 시 81:4). 다윗도 하나님을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시 20:1).
성도 여러분. 고라 자손들이 하나님을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아삽도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다윗도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저들이 왜 하나님을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간절히 불렀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묵상해 보셨습니까? 혹시 이 부르짖음에 하나님의 깊은 뜻이 숨겨져 있지는 않을까요?
물론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출 3:6).
하나님께서는 수 많은 자녀들을 두셨지만, 오직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불려지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오직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불려지기를 원하셨는지를, 2025년 한 해동안 우리가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야곱의 이야기는 창세기 25장에서 3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부분을 보시면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을 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상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창 32:27-28).
그날 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싸워서 이겼다는 이름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이제 야곱은 더 이상 야곱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았고, 그의 12 아들들을 통하여 12지파를 이루었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야곱을 이스라엘로 부르신 것은, 야곱을 이긴 자로 승리한 자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약속대로 야곱은 이긴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자를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허물까지도 덮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간구와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축복해 주시고 승리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바로 이 하나님께서, 야곱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2025년 한 해 동안 야곱의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깊이 개입하셔서, 우리의 허물을 덮어주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강하게 해 주시고, 우리의 부족함도 채워주시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인도해 주시고, 우리에게 승리의 면류관을 씌워주시는 하나님으로 다가오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개입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이스라엘이 되게 해 주시고, 승리자가 되게 해 주시고,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붙잡고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때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야곱의 하나님으로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허물과 연약함과 부족함까지 다 덮어주시고 우리에게 새 은혜를 입혀 주실 줄 믿습니다. 야곱을 이스라엘로 삼으신 하나님께서, 야곱된 나를 이스라엘로 삼아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도 야곱처럼 부족하기 그지없는 자일지라도,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신다고 외치면, 그 외침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가 되셔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간섭하시고 축복해 주셔서 우리도 이스라엘이 되고 승리자가 되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이 은혜가,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면서 2025년을 하나님께 맡기는 성도님들 모두에게 넘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