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요약
Aug 30, 2025

하늘 문이 열리는 축복
(에스겔 1:1-3 )
주원영담임목사
하늘 문이 열리는 축복을 원하신다면, 하나님만을 의지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28:12절 말씀에는 하늘 문이 열리는 기적의 현장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7:55-56절 말씀에도 하늘 문이 열리는 기적의 현장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늘 문이 열린다는 것”은 하늘의 아름답고 풍성한 보물창고가 열린다는 의미입니다(창 28:12). 하나님을 만난다는 의미입니다(행 7:55-56).
오늘 본문에도 선지자 에스겔 앞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보이는 감동적인 장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겔 1:1). 그리고 그날은 여호야긴 왕이 포로로 잡힌지 오 년째 되는 날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겔 1:2).
이 말씀의 역사적인 내용은 이렇습니다. 주전 597년, 남쪽 유다가 바벨론에게 함락되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야긴 왕과 25살의 에스겔을 포함한 일만 여명의 유대인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 무려 37년 동안이나 그발 강의 대운하공사 현장에 투입되어 온갖 고통을 경험합니다. 그발 강가의 현장은 그야말로 한이 서려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렇게 살았던 삶의 시간이 어언 5년이 지난 어느 날, 에스겔이 서른 살이 되던 해 넷째달 초닷새에 그발 강가에서 하늘 문이 열리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상황인데,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인자”라고 부르십니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 발로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 하시며(겔 2:1). 이 호칭은 에스겔서의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려 90여회나 에스겔을 인자라고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인자”라는 이 호칭을 통해서, 에스겔이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메시야이신 주님께서 자기 자신을 가리켜 “인자”라고 말씀하셨고, 주님의 삶은 한마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었기 때문입니다(요 17:4).
그런데 주님께 하늘 문이 열리는 기적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향하여 “인자”라고 부르십니다. 에스겔이 작은 예수처럼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스겔은 포로로 잡혀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의지했다는 말입니다. 이런 에스겔 앞에, 어느 날 하늘 문이 열리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하늘 문은 누구에게나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기약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활짝 열린 하늘 문을 보고 여호와의 권능을 체험한 사람은 오직 에스겔뿐이었습니다(겔 1:1.3.4).
하늘 문을 여는 열쇠는, 에스겔처럼 어떤 환경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자에게 하늘 문이 열립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에스겔이 활짝 열린 하늘 문을 통해 본 영광은, “무지개의 영광”이었습니다(겔 1:26-28). 노아홍수가 끝나고 하나님께서 무지개를 하늘에 두고 맹세하신 이후(창 9:13), 그 언약의 무지개가 다시 한번 열린 하늘 문 사이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에스겔은 열린 하늘 문을 통해 신비롭고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후 에스겔은 말라버린 뼈들로 가득한 한 골짜기로 인도함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질문을 받습니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겔 37:3). 이어서 마른 뼈들에게 내 말을 대언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에스겔이 하늘로부터 들리는 이 말씀의 권위에 압도되어, 순종하는 모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말라있던 뼈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그 위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가죽이 덮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였더니, 마른 뼈들이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37:7-10절 말씀입니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믿어지지 않지만,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나타난 이 말씀을 합독하시겠습니다.
이 뼈들은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이억만리 그발 강가에 던져진 에스겔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징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저들이야말로 이 뼈들처럼 더 이상 소망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죽은 뼈들과 같은 그런 저들에게, 죽은 뼈들이 다시 일어나 큰 군대가 되는 놀랍고도 놀라운 모습이 하늘 문이 열리고 에스겔의 눈앞에 보여졌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도님들의 삶이 그발 강가에 포로로 끌려와 기약 없이 땅을 파면서 힘든 노동에 시달려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처지입니까?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발버둥쳐 보아도 더 이상 어떤 소망도 보이지 않고 그저 하루하루가 무기력하게만 느껴지십니까?
그렇다고 해도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어 줄 것을 기대하시고 간절히 매달리시기 바랍니다. 마른 뼈들이 큰 군대가 되는 기적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우리를 생각해 주시면, 우리에게 이와 같은 기적같은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 힘과 내 능력으로는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어려운 난관들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하늘 문이 열려야 이 난관들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늘 문이 열린다는 것은, 저주와 심판의 문은 닫히고, 축복과 기적의 문이 열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간섭과 은혜와 긍휼하심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뜻입니다.
하늘 문이 열리는 이 기적을 원하신다면, 하나님께 영광에 올려드리는 일에 삶의 초점을 맞추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하늘 문이 열리기만 하면, 마른 뼈가 다시 살아나는 기적이 내 삶의 현장에서도 분명히 일어날 것입니다. 무너졌던 일터가 다시 세워집니다. 희망이 사라진 삶의 현장이 회복됩니다. 힘들어서 쓰러지고 있는 육체, 날마다 지쳐가고 있는 육체, 이 육체의 건강도 다시 회복됩니다.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늘 문이 열리기만 하면, 나에게 닥쳐온 문제가 어떤 문제이든지 해결되는 감격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범사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기적이 삶의 현장에 일어나게 됩니다.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리십시요. 그리고 외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십시오. 그렇게 할 때, 하늘 문이 열리고, 마른 뼈와 같았던 그런 상황들이 회복될 것입니다. 마른 뼈들이 모여서 형태를 이루고, 살이 붙고, 가죽이 입혀지고, 생령이 들어가 큰 군대가 된 것처럼, 모든 일에 승리하고 성공하실 것입니다.
오늘 뿐만 아니라, 천성을 향하여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순례자의 여정에, 더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하늘 문이 열리는 기적이 성도님들에게 언제나 함께 하시기를 다시 한번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Aug 23, 2025

하늘 문이 열리는 축복
(창세기 28:10-22)
주원영담임목사
본문은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의 축복은 받은 한 사람을 소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임마누엘의 축복을 받은 것보다 더 놀라운 모습을 기록하였습니다. “하늘 문이 열린 모습”입니다.
성경 이사야 41:14절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야곱이라는 자를 벌레(옛성경 : 지렁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렁이 같고 벌레 같은 야곱을 만나주시고, 그를 믿음의 조상의 반열에 세워 주셨습니다. 그의 열 두 아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나아가 그 후손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하게 하셨습니다.
더 감격스럽고 감사한 것은, 벌레라는 별명 대신에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의 이름인 “이스라엘”이라는 별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창 32:28).
이 야곱의 인생은, 어머니 뱃속에서의 싸움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쌍둥이로 잉태되어 세상에 먼저 나오려고 했지만 형의 발꿈치를 붙잡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늘 형이 되고 장자가 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던 어느 날, 들에서 돌아온 형 에서가 죽을 쑤고 있는 야곱을 보고서는 죽 한 그릇만 달라고 합니다. 그때 야곱이 죽 한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삽니다(창 25:29-33). 이렇게 장자의 명분을 죽 한그릇으로 산 야곱은, 아버지를 속이고 형이 받아야 할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이 형 에서에게 알려졌고, 야곱은 허겁지겁 먼 나라로 도망을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도망가다가 피곤하여 깊이 잠이 들었는데, 그날 밤에 깊은 잠이 든 야곱에게 하늘 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창 28:11-12).
그리고 야곱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소리를 듣습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창 28:13).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고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 28:15).
하나님께서, 어떤 이유와 근거로 야곱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저는 야곱에게 하늘 문이 열리는 기적이 나타난 이유를, “부모의 기도”에서 찾고 싶습니다.
성도 여러분. 한 번도 집을 떠나 본 경험이 없는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야곱을 광야로 떠나보낸 상황에서, 그 부모들이 평안히 잠을 잘 수 있었겠습니까?
야곱은 너무 피곤하여 잠에 골아 떨어졌지만, 부모들은 깊은 밤중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자식을 위하여 간절히 눈물로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식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는 이삭과 리브가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에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15절 말씀입니다. 부모의 간절하고 애끓는 기도가, 위험한 길을 가면서 힘들고 지친 야곱 앞에, 하늘 문이 열려지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해 주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녀들이 가는 앞길에,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이 풍성히 임하기를 원하십니까?
이삭처럼, 리브가처럼 자녀들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선물로 주신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부모의 기도를 절대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부모의 기도는, 자녀에게 하늘 문이 열리는 축복의 자리로 나아가게 해주십니다. 부모의 기도는, 하늘 문이 열린 벧엘로 그 발걸음을 인도해 주십니다. 부모의 기도는, 자녀들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자가 되게 해주시고, 축복의 주인공이 되게 해주십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날 28:15절에 약속하신 것을 지키셨습니다. 정확히 20년 후에 하늘 문이 열리는 장면을 보았던 그곳 벧엘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천사와 씨름하여 승리함으로, 야곱이라는 이름 대신에 천사들뿐만이 아니라 사람들과도 싸워서 이겼다는 뜻의 이름인 “이스라엘”로 이름을 바꾸어 주셨고, 하늘로부터 축복을 부어 주셨습니다.
다시 한번 성도님들을 축복합니다. 성도님들께서 간구하는 기도가, 야곱에게 임하셨던 임마누엘의 축복이 되는 기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늘 문이 열려지는 축복을 경험하는 기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열려진 하늘 문이 닫혀지지 않도록, 하늘에 닿은 사닥다리를 놓지 마시고 붙잡고 매어달리는 기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Aug 16, 2025

순종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배워야
(요한복음 17:1-5)
주원영담임목사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예수님의 모습을 배우려고 힘씁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권면합니다. 이어서 예수를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 12:2). 이 말씀은, 주님께서 이 땅에서 어떠한 삶을 사셨는지를 깊이 묵상하고 그분을 닮아가라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머든 모습을 배우기를 힘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 사실을 로마서 8:29절에서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롬 8:29).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일생동안 “그리스도를 본받는” 이 한 가지가 유일한 목표였습니다. 그는 예수의 죽음과(빌 3:10), 예수의 부활하심과(롬 6:5), 예수의 흔적까지도(갈 6:17) 본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예수님을 생각할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순종”이라는 단어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 맞는 말씀입니다(마 1:21).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빌립보서 2:5-8절 말씀입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고 하십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고 하십니다. 성경은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셨기 때문”이라고 밝히 말합니다.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자로 이 땅에 오셨지만, 그것 역시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순종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육신의 부모에게도 순종하며 사셨습니다(눅 2:51).
이 땅에서 이렇게 사셨던 예수님의 마지막 사역은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의 마지막 기적은 죽은 나사로를 살려주신 사건이지만, 예수님의 마지막 사역은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된 기도하는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현장에서 주님께서 드린 기도의 핵심은 17:4절 말씀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 17:4). “내게 하라고 하신 일을 이루었다”는 이 말씀은, “순종하셨다”는 말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께 드린 주님의 이 기도에 이어서, 주님께서는 또 다른 모습으로 순종하기로 다짐하는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
주님께서도 우리와 똑 같은 육체를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십자가의 고통이 너무도 싫었습니다. 끔찍했습니다. 가능하면 그 고통을 피하고 싶으셨습니다. 그런 마음이었기에 우리는 주님의 기도에서 인간적인 안타까움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마태는 마태복음 26:39절 말씀에서 조금 더 안타깝게 기록하였습니다. “아버지여 할 만 하시거든...옮겨주시옵소서.” 이것이 주님의 본심이셨습니다.
그러나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깨달으신 하나님의 뜻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었습니다. “피를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피하실 수도 있으셨지만 십자가를 지시기로 결단하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아셨기에 순종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마지막 말을 남기셨습니다. “테텔레스타이(Τετέλεσται : 다 이루었다. It is finished : 다 이루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모든 것을 다 완성했다는 뜻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아버지께서 내게 맡기신 모든 일을 다 순종했습니다.”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다 순종했습니다.”
바울 사도도 순종하는 모습을 거듭 강조합니다(고후 1:17-18).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물을 오른편에 던져라. 그 말씀에 순종할 때에 그물이 찢어질 것 같은 축복이 나타났습니다. ◎가서 너희의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라. 말씀에 순종하여 가서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니까, 오랫동안 고생했던 한센병에서 깨끗이 치료함을 받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루에 한 바퀴씩,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아라. 그 말씀에 순종했을 때,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놀라운 역사가 저들 앞에 펼쳐졌습니다. ◎일어나 걸으라.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말씀에 순종한 자들마다,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놀라운 기적과 축복을 맛보는 주인공들이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말씀에 순종하는 순간에는 힘들고 아프다 할지라도 한 번 순종해 보시기 바랍니다.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주의 자녀들에게, 예비해 놓으셨던 놀라운 축복을 풍성하게 허락하여 주십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기억이 있다면, 그때 하나님께서 어떤 축복을 부어주셨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축복을 기억하신다면,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고, 항상 순종의 삶을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순종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기적을 베풀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하나님을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다시 한번 모셔 들이시고, 말씀에 순종하기를 힘쓰시는 주의 자녀들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Aug 9, 2025

믿음의 도전이 주는 축복
(마태복음 14:22-33)
주원영담임목사
본문에 등장하는 제자 베드로가 모험을 하고 있습니다. 파도가 넘실대는 갈릴리 바다를 아무런 장비도 없이 걸어가겠다고 합니다(마 14:28). 무모해 보였지만, 물 위로 발을 내딛습니다. 하지만 이내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을 생각할 때, 실패한 사건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존 오트버그” 목사님은 그의 저서 “물 위로 걸으려면 단순하게 믿으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독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베드로가 배 안에서 배 밖으로 나오는 모험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비록 잠시지만 그가 물 위를 걸어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선택은 베드로의 몫(우리들의 몫)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모험이, 도전해 볼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하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런 모험이 우리에게 주는 축복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도전해야 하는 모험은 ◎순종의 모험이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단순히 영웅심에서 그 모험을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행하라고 명하시면 기쁨으로 순종하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마 14:28). 주님의 명령이면 순종하겠다는 이 모습이, 그리스도인의 모험이 세상 사람들의 모험과 다른 점입니다. 예수를 능력의 주님으로 확실히 믿기에, 물 위로 걸어오라고 명령하시면 그 명령에 순종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모험을 할 때, 그 기준이 말씀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도전해야 하는 모험은 ◎믿음의 모험이어야 합니다. 믿음장이라고 부르는 히브리서 11장에 이름을 올린 모든 믿음의 선진들은 한결같이 모험의 길을 걸어간 사람들입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라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물 위로 발을 옮긴 것입니다. 오직 주님의 말씀만을 믿고 모험을 시작한 것입니다(마 14:28-29).
그러나 베드로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했다고 기록했습니다(마 14:30). 순간 그는 물속으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베드로는 믿고 행했기 때문에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지만, 그 모험은 부분적으로만 성공한 모험이었습니다. 결괴적으로 실패였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실패는 완전한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믿음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순간적으로 믿음을 잃어버리고 물속에 빠진 베드로를 주님께서 건져주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마 14:31).
하지만, 이런 모습을 통하여 깨닫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이 더 성장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으로 자라납니다. 베드로에게 이날의 경험은, 부분적인 실패를 통하여 더 큰 믿음의 모습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모험 앞에서 실패할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씀으로 철저하게 점검하고 믿음으로 행하십시오. 그리고 그 모험의 기준은, 순종의 모험이고 믿음의 모험이어야 한다는 진리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우리의 모험에 함께 하시고 기적을 경험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적 속에는 중요한 두 가지 축복이 있습니다.
그 축복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축복입니다. 잠간동안이었지만 베드로는 인류 최초로 물 위를 걷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손을 잡아주신 주님께서 배 위로 오르시자마자 신기하게도 바람이 그치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베드로가 모험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경험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바로 이 경험이 모험을 선택한 자들에게만 나타나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순종을 믿음으로 행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축복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은 대단한 것이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그 경험을 했습니다.
이 상황을 마가복음 6:48절에서는 조금 다른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지나가려고 하시매(παρέρχομαι. 파레르코마이).
주님께서는 지금 한 밤중에 갈릴리 바다에서 파도와 싸우며 고생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맞은편 산에서 보고 계시다가, 도와주시려고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이때 제자들이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신앙의 상식으로 당연한 것이지만, 주님께서는 이런 모습을 원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마 14:27). “내니.” 이 말은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나는 현재이다(ἐγώ εἰμι. 에고 에이미)”입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나타내는 특별한 말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물 위를 걷다가 물속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베드로의 손을 잡아 구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치셨습니까? 낙심이 되는 일이 있으십니까?
다시 한번 신앙의 모험을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말씀에 순종하면서 믿음으로 그 모험을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자에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능력을 경험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의 임재를 보게 해 주실 것입니다. 힘들고 지쳐서 물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내 손을 붙잡아 주실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힘들었던 모든 환경들까지도 잠잠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이 은혜와 축복이 성도님들 모두에게 넘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