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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약

Apr 26, 2025

대속의 은혜를 받은 성도
(출애굽기 3:6-10. 살전 2:4-5)

주원영담임목사

부활은 하나님의 현재적 계획과 섭리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현재적 부활을 체험한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믿는다는 말입니다.

이 진리를 믿고 하나님의 일을 하기 원하는 사람은, 먼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체험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하는 청지기에게 가장 기본이고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를 보세요. 태어나서 40년 동안 애굽에서 다양한 학문을 익혔습니다. 두번째 40년 동안에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마지막 40년 동안에 하나님께 쓰임을 받았습니다.

바울 사도가 하나님께 소명을 받고 복음을 전함에 모든 것을 바친 것은, 다메섹에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는 다메섹으로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께 완전히 굴복했습니다. 바울 사도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들을 예수님께서 부르셨고, 저들이 예수님을 만났고, 저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께 쓰임 받는 삶을 살려면, 먼저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이 은혜가 성도님들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얼굴을 가렸습니다(출 34:33.35). 엘리야도 하나님을 만나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왕상 19:13). 천사들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습니다(사 6:2).

“가렸다”는 말은, 숨겼다는 뜻입니다. 떨기나무 앞에서 신을 벋은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경외함의 표시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더러운 자신의 모습을 가리는 것은, 피조물들의 자연스러운 태도이고 모습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얼굴을 가리는 모습이 주시는 교훈은 ◉하나님은 보고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3:7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출 3:7).

“본다”는 이 말은 “꿰뚫어지게 보고 계신다”는 뜻을 가진 “라아”라는 히브리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내 백성”이라고 하시면서, 당신의 백성들을 보고 계셨습니다. 꿰뚫어지게 보고 계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옛날처럼 지금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잠시도 눈을 떼지 않으시고 보고 계십니다. 삶의 현장에서 나 홀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고통당하는 그 모습을 보고 계십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번만 보시고 끝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계속 보고 계십니다. 불꽃 같은 눈으로 바라보고 계십니다(계 1:14. 대하 16:9. 잠 15:3). 우리를 백성 삼으시고 자녀 삼으신 하나님께서는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고 당신의 자녀들의 고통을 보고 계신다는 이 말씀을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듣고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출 3:7.9).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의 간구하심에 귀를 기울이고 계신 분이십니다(시 34:15).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찬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서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지라.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내 말을 들어주십니다. 갈 길을 인도해 주시고 소원을 이루어주십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고백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 8:26). 바로 이분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고,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계심을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알고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출 3:7).

안다는 표현의 히브리어는 “야다”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피상적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대충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뼈저리게 체험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고통을 머리로 이해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고통에 동참하셔서 그 아품을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지식의 근본이시고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시 139:2-3.6). 나의 머리털까지도 세시고 계시는 분이십니다(마 10:30). 하나님께서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보시고, 들으시고, 아시는 우리 하나님은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출 3: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출 3:8). “인도한다”고 번역된 단어는 “회복한다”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알라”라는 단어입니다. 보셨고 들으셨고 아신 하나님께서, 이제부터 일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더 이상 참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그 일을 모세를 통하여 행하셨습니다.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신 것과 같이, 우리를 구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외아들 예수를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믿으시고 이 은혜를 늘 감사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주신 땅은 빈 땅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땅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것들을 얻는 수고는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꼭 기억하시는 말씀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인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하여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 도구로 사용하셔서 당신의 약속을 지키십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곳으로 따라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따라가겠다고 결단하시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결단할 때 축복이 임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보셨고 들으셨고 아신 하나님께서, 이제부터 일하신다고 약속하시면서 외아들 예수를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대속의 제물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이제 마지막 사역을 우리들에게 맡겨주셨습니다. 우리를 사용하시려고 하십니다. 대속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이 일을 감당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이 일을 감당하는 자를 인도하여 주십니다.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출 3:8).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해 주십니다(롬 8:28).

맡겨주신 일에 충성하심으로 이 은혜를 충만하게 받아 누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Apr 19, 2025

부활 신앙을 가진 성도의 모습
(고린도전서 15:12-19 )

주원영담임목사

오늘은 주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에서 살아나심을 믿고 전하는 부활의 날입니다. 성도님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이 주시는 놀라운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 중에는, 진리가 아닌 것은 쉽게 믿고 따르면서도, 정작 진리는 쉽게 믿고 따르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구원을 받는다는 것, 영원히 죽지 않고 산다는 것,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리임에도 믿으려고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요 11:25-26).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살아나셨다는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담겨있는 고린도전서 15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34절까지의 말씀은 부활의 확실함을 말하고 있고, 35-58절까지의 말씀은 부활의 성격과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아침, 확실한 부활 신앙을 가지시는 시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다시 살아나셨습니다(고전 15:12-14).

성도 여러분.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의 탄생과 예수의 고난받으심과 예수의 십자가와 예수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믿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탄생은 믿지만 부활은 믿지 않고 다시오심은 믿지 않는다든지, 죽음은 믿지만 부활은 믿지 못한다면, 그것은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예수가 살아나신 것과 승천하신 것과 그리고 이 세상에 다시 오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영원한 천국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는 예수께서 살아나신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사 26:19. 마 28:6. 고전 15:4).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직접 가르치시기도 하셨습니다(마 8:31). 예수님의 부활은 이미 구약에 예언되어 있었던 사건이었고 예수님께서도 예언하셨던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대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그리고 예언대로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온 세상에 알리시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 15:5-8).

한 사람만 보았다면, 한 장소에만 나타나셨다면, 아마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고 부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모습을 보이셨고 여러 장소에 부활하신 몸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부활이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 죽음과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살아나심으로 우리의 죄가 완전히 사해졌다는 것입니다(고전 15:17).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죄사함이 완성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까지도 완전해졌습니다. 만일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부활을 부정하는 것이라면, 그들의 믿음은 그들을 죄에서부터 해방시켜 구원으로 인도하는 믿음이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만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우리들의 믿음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의 대상이 허상이라면(없는 것이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주시는 죄 용서함이 무효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인간은 영원히 죄 가운데 거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허망한 일입니까?

이것은 바울 사도가 전한 복음의 골자이며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하게 됩니다(사 26:19. 단 12:2).

말씀들을 보면, 죽은 자들의 부활이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그 부활에는 영생을 얻는 부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는 부활도 있다고 말합니다. 마지막 날에는 죽은 자들이 모두 부활하지만, 영생의 부활을 누리는 사람이 있고, 부활은 하지만 영벌을 받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5:28-29절 말씀입니다.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29).

성도 여러분. 사람은 늙으면 주름살이 생기고 머리가 희어집니다. 그리고 신체 모든 부분이 노화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가면서 쌓이는 사람의 나이와 함께 생물학적 아니가 있다고 합니다. 생물학적 나이는 그 사람의 행동이나 습관 등 환경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생물학적 나이를 줄이고 젊어지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비타민을 먹어라. ◎담배를 끊으라. ◎혈압을 관리하라. ◎유산소 운동과 근육 운동과 지구력 운동을 하라. ◎스트레스를 줄여라.

그러나 노화를 방지하고 생물학적으로 젊어지는 최고의 방법은, 예수 믿고 부활의 감격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근심도, 염려도, 고통도, 아픔도 주님께 다 맡기고 기쁨으로 살아가는 것이 젊어지고 건강하고 오래 사는 비결입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오래도록 영육간에 강건하게 살고 싶으시다면, 늘 감사하면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부활을 믿는 부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지고 많이 누리고 살아간다고 해도 부활 신앙이 없으면, 어디로 가는지, 누구에게로 가는지 모른 채 살아갑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이 세상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부활 신앙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디로 가는지, 누구에게로 가는지를 알고 살아갑니다. 그 해답을 예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인, 생명이 다시 소생하는 부활, 영생을 선물로 주시는 부활, 바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나도 부활할 것을 믿는 부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Apr 12, 2025

참된 지혜와 참된 능력이신 십자가
(고린도전서 1:18-25)

주원영담임목사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타보지 않았던 어린 나귀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습니다. 수많은 백성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종려나무가지를 꺾어 손에 들고 흔들면서 호산나를 외쳤습니다(마 21:9).

하지만 주님께서는 왕이 되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입성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로마 시대에 가장 흉한 저주의 형틀입니다. 너무나 끔찍한 형벌이었기에, 학자들은 로마인들과 자유인들에게는 합당하지 않은 형벌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이런 십자가를 멋을 내는 장신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예배당의 상징이 되었고, 저주의 십자가는 오히려 영광스럽게 대속의 십자가로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이런 상징적인 변화는, 그 자체가 십자가의 기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시작은 저주의 상징이었는지 모르지만, 결과는 부활을 가져다주었고 승리를 가져다주었고 영광을 보여준 십자가가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참된 지혜를 주십니다.

바울 사도 당시 그리이스의 수도 아테네는 철학의 도시였고 고린도는 무역의 중심 항구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물자와 학문들이 이곳을 통해 거래되고 있었습니다.

그런 때였는데, 헬라인들은 삶의 최고의 가치를 “지혜”라고 말했습니다. 자녀들에게도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당시의 그리이스인과 고린도에 살고 있는 헬라인들에게, 지혜가 인간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을 강조해서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21절 말씀을 통하여 지혜의 한계를 두 가지로 정리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1:21).

인간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복음을 믿고 주님께 나아오면, 하나님을 알아가게 되고 영혼의 구원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참된 지혜를 주시는 기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철학이나 종교도 해결하지 못하는 구원함을 주시는 기적입니다.

이 기적은 우리의 행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다시 사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십자가가 주시는 참된 지혜로,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기적을 경험하면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십자가는 참된 능력을 주십니다.

그리이스를 중심으로 이룩된 헬라문명은 또 하나의 문명을 탄생시켰습니다.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시오니즘이라고 부르는 “유태문명”입니다. 이 문명은 유태인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의 최고의 선, 최고의 가치는, 헬라인들이 말하는 지혜가 아니라 능력이었습니다. 이들도 역시 자손들에게 “능력의 사람이 되라”고, “돈으로 성공하는 사람이 되라”고, “돈만이 나와 우리들을 지킬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본문 22절은 “유대인은 표적을 구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 1:22).

그렇기에 이런 유대인들에게 예수의 십자가는 실패와 연약함의 상징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십자가는 거리끼는 것이 되고 만 것입니다. 23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합독하시겠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1:23).

그런데 이렇게 무능함과 무력함의 상징인 십자가가, 역설적으로 그들을 구원하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담대하게 선언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 1:25).

기독교 역사를 보면,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십자가의 원리를 붙잡고 손해보고 핍박받고 고난당하던 시절에는 언제나 복음의 영광이 드러났습니다. 초대교회 시대가 그랬고 청교도 시대가 그랬고, 한국교회 초기 선교시대가 그랬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권력을 지배하고 황금을 추구하던 시절의 교회는 언제나 타락했습니다. 교회의 영향력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중세기 암흑시대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 한사람 한사람에게 요구되는 영성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승리의 개가를 울리며 진군했던 십자군의 영성이 아닙니다. 박해를 받으면서도 복음 하나를 붙잡았던 영성, 흩어졌음에도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십자가의 영성입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약할 때 우리를 강하게 해 주시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12:9절을 통하여 바울 사도가 전한 말씀과 같이 우리가 우리의 약함을 알고 주를 의지하며 무릎 꿇는 그 자리가, 바로 하늘의 능력을 경험하는 자리입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 12:9).

우리 자신이 아닌, 우리가 가지고 있는 황금이 아닌, 우리가 추구하는 권력도 아닌, 오직 십자가 앞에 내 모든 것을 드리면서 주님만을 의지하는 그 자리, 바로 그 자리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늘의 능력을 경험하는 자리입니다.

성도 여러분. ◉십자가는 참된 지혜입니다. ◉십자가는 참된 능력의 원동력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십자가를 마음에 새길 때마다, 참된 지혜를 깨닫고 위대한 능력을 경험하시는 은혜가, 성도님들의 삶에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Apr 5, 2025

하나님의 뜻 ⓸
(데살로니가전서 5:16-22)

주원영담임목사

우리는 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에게 소원을 가지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고 하십니다(롬 12:2).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데, 그 뜻을 분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을까요?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않는 것이고(살전 5:19). ◉예언을 멸시하지 않는 것입니다(살전 5:20).

그런데 성경은 이것들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말합니다. 21-22절 말씀입니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1-22).

성도 여러분. 기록된 “좋은 것”은 나에게 유익되고 도움이 되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닙니다. “좋은 것을 취하라”는 주님의 말씀의 뜻은, “내 생각과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택하라.” 이 말씀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좋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 예를 누가복음 10장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윗에게서 좋은 예를 찾을 수 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의 싸움입니다. 다윗이 가지고 있는 것이 골리앗의 모습과는 비교도 되지 않지만, 다윗은 담대하게 말합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 17:45).

골리앗의 손에는 칼과 창과 단창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것이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소년 다윗은,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기에 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선택한다고 생각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가지고 전쟁터에 나아갔던 것입니다. 바로 이 모습이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습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내 마음에 모시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은 선택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택은 일반적인 것이지만, 어떤 선택은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 그 사람의 미래가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선택하여야 하는지에 대하여 분명하고 선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 (마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좁은 길을 가는 자의 결국은 “영생”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신 말씀은, 넓은 의미에서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마태복음 5:1절을 보시면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충격입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은 이미 모두 다 좁은 문을 선택하고 좁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자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에게 주님께서 좁은 길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다 좁은 길로 걸어가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를 믿고도 넓은 길을 걸어가는 자가 많다는 말입니다. “예수 믿는 것”과 “예수 믿는 자의 삶”은 다른 것이라는 말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출발은 참 좋았습니다. 믿음의 역사가 있었고 사랑의 수고도 있었고 소망의 인내도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그 교회를 향하여 내가 더 이상 너희들에게 할 말이 없고 쓸 말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넓은 길을 선택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바울 사도의 표현이 달라졌습니다. “더욱 힘써라. 더 많이 해라. 범사에 감사해라.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예언을 폐하지 말라. 그리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택해라.” 이렇게 말입니다. 좁은 문을 선택했고 어느 정도 좁은 길을 걸어왔지만, 지금은 넓은 길을 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바울 사도가 이렇게 권면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선택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옳은 것 같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선택을 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유는 이사야 55:8-9절 말씀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 55:8-9).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시고, 좁은 길로 걸어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뜻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언을 멸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택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시고 살아가기로 다짐하시는 성도님들에게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부어주시는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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