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요약
Sep 1, 2024

하나님의 손길과 음성
(열왕기상 19:1-18)
주원영담임목사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던 이스라엘의 아합 왕이, 이방나라 왕의 딸 이세벨을 부인으로 맞이하고는 바알 신과 아세라 신을 섬기게 됩니다. 그 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다고 성경은 말합니다(왕상16:32-33). 이때 엘리야가 아합 왕에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비가 오지 않을 것을 경고하고는 그릿 시냇가에 머물면서 생활합니다. 그리고 3년 반의 시간이 흘렀을 때 하나님과 이방 신의 싸움인 갈멜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이 싸움의 결과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제사와 기도를 받으셨고 기적을 나타내셨습니다(왕상18:38-39)
오늘의 본문은 이 일이 있은 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왕후인 이세벨이 엘리야에게 내일 이맘 때까지 반드시 너를 죽이겠다는 말을 들은 엘리야가 자신의 생명을 부지하기 위하여 도망합니다(왕상19:3).
하나님의 사람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았던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 450과의 싸움에서 이긴 엘리야였습니다. 그런데 그때의 담대했던 엘리야의 모습은 어디로 간 것입니까?
인간의 연약한 모습을 봅니다.
엘리야는 도망하여 약 150㎞ 떨어져 있는 브엘세바에 이르게 되었고, 그곳에서 자신의 사환을 뒤로하고 홀로 하룻길을 더 도망하여 로뎀나무 아래에 이르러 그곳에서 하나님께 죽기를 청합니다(왕상19:4).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시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어려운 문제들이 해결됐다고 기쁨에 넘쳤었지만, 혹시 지금은 엘리야처럼 또 다시 하나님께 탄식만 늘어놓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아골 골짝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풀무 불도 두렵지 않았던 그 믿음은 어디로 가고, 주일 하루를 온전하게 예배드리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신앙이 되지는 않으셨습니까?
◎큰일을 했는데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음에 실망하기도 하고, 주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데 계속 다가오는 어려운 문제들 때문에 절망하셨습니까?
엘리야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최고의 선지자도 인간이구나! 낙심할 때 도망하고 자신의 생명까지도 포기할 때도 있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시간이 지난 후,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어루만져 주시는 은혜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왕상19:5-7).
그럼에도 엘리야처럼, 긍휼히 여겨주시고 은총을 베풀어주시고 어루만져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외면하고, 포기하면서 누워버렸던 때는 없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직 할 일이 많이 있는데 왜 누워 있냐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어루만져 주심이 있을 때 외면하지 마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어루만져 주시고 먹여주실 때 일어서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불러주시는 은혜”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왕상19:11-13).
생명을 부지하기 위하여 약 150㎞ 떨어져 있는 브엘세바로 도망하고 그곳에서 하룻길을 더 도망한 엘리야는, 또 다시 40일을 도망합니다. 그런데 그가 40일을 도망하여 도착한 곳은 하나님의 산 호렙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곳입니다. 세상의 신을 벗어버려야 하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던 장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까지 도망한 엘리야를 부르십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그런데 이 부르심에 엘리야는 엉뚱하게 하소연을 합니다(왕상19:10). 하나님께서는 그 한탄을 들으시면서 지나가십니다(왕상19:11-12).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기적들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안계셨다는 것입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하소연을 하고 있는 엘리야를 위로해 주시거나 안아주시지 않으시고 지나가셨던 것입니다.
시내산에 모세에게 불 가운데 강림하셨는데(출19:16-20), 니고데모에게 바람과 같은 성령으로 나타나셨는데(요3:8), 기드온과 삼손의 제사에 불로써 화답하셨는데(삿6:21. 13:19-20), 지금 엘리야에게는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잠시 우리의 삶을 돌아보세요. 수 많은 축복의 시간에는 감사했지만, 그 시간이 지나가고 실망과 좌절이 찾아올 때, 엘리야처럼 주저않아 있지는 않았는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바라보았는지, 우리를 어루만져 주시고 우리를 부르시는 그 음성을 들었는지.
성도 여러분. 엘리야의 이 모습을 생각하는 것과 함께 잊지 말아야 하는 교훈이 하나 더 있습니다. 열왕기상 18장에는 엘리야의 기도가 오로지 하나님 중심적인 기도였는데, 19장에서는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기도만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시는 능력의 사람일지라도 자기중심적인 기도를 하게 되는 순간부터 신앙의 내리막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이 진리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어루만져 주시는 손길을 느끼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나지막하고 인자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Aug 25, 2024

기적을 기대하고 말씀을 붙잡는 신앙
(베드로전서 1:23-2:2)
주원영담임목사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끔 기적이라는 말을 합니다. 생각하지도 못한 일을 보면서 그 놀라움을 기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그 기적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책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예수님께서도 믿음의 선진들도 이 기적을 행하신 것을 성경을 통하여 봅니다,
저는 이 시간 성도님들과 함께, 가장 위대한 두 가지 기적을 본문에서 찾아보려고 합니다.
로마의 박해 때문에 여러 지방으로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베드로 사도는, 말씀이 주시는 기적에 대하여 증언합니다. 말씀의 기적만이 어두운 시대의 희망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주시는 첫 번째 기적은 ❶거듭남의 기적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를 보면서 우리는 사람이 다시 태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요3:4. 렘13:23). 인간이 변화되는 것은 기적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변화될 수 없다면, 성경이 말씀하는 복음은 복음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인간이 거듭날 수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래서 거듭난다는 것을 기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기적입니다(벧전1:23).
말씀이 주는 또 하나의 기적은 ❷영적 성숙의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거듭나게 할 뿐 아니라, 우리를 영적으로 자라게 합니다. 신앙생활을 아무리 오래하고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어도 영의 사람은 저절로 자라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적 성숙을 기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고전13:11. 벧전2:1). 그러나 이 “버림의 결단”은 우리 스스로는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서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버릴 것을 버리면 영적으로 성숙할까요?
이어지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벧전2:2). 순전하고 신령한 젖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원을 완성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 성숙을 도와주는 책이 있습니다. 다니엘 디포(Daniel Defoe)가 쓴 “로빈슨 크루소”입니다. 책 속 주인공의 28년에 걸친 무인도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어떻게 증거되는지를 말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신앙이 성장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바로 로빈슨 크루소의 이 이야기가 말씀으로 거듭나고 말씀 안에서 성숙하여 말씀의 열매를 맺고 천국으로 귀향하는 우리 모두의 바램일 것입니다.
이제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거듭나셨습니까? 영적으로 자라고 계십니까?”
함께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의 기적이 임하셔서, 거듭남의 기적을 경험하고, 영의 사람이 성장하는 기적을 경험하시는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Aug 18, 2024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마태복음 8:23-27 )
주원영담임목사
사람들 중에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두려움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무지와 무능력과 무경험 때문에 그리고 다가오는 실패의 위험성 때문에 두려워하면서 살아갑니다.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염려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해 보지만, 큰일을 당하면 모두가 두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이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책망하시는 모습으로 질문을 하십니다(마8:26).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시고 병든 자를 고쳐주신 후에 제자들에게 갈릴리 동편으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때가 해가 저물 때였다고 기록했습니다(막4:35).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말씀입니다. 바다를 항해하는 배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밤에 출항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이른 아침이나 낮에 출항합니다. 상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밤에 제자들에게 작은 배로 갈릴리 호수를 건너가자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는 적어도 4명 이상은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였기에 왠만한 파도는 이겨나갈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갈릴리 호수의 풍랑은 제자들이 타고 있는 배를 뒤집어엎을 만큼의 풍랑이었기에 제자들이 배 안에서 주무시고 있는 예수님을 깨웁니다. 그리고 말합니다(마8:25).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성도 여러분.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는 우리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최선을 다하여 봉사했습니다. 십일조와 감사헌금도 드렸습니다. 예배시간도 빠지지 않았고 이런저런 모임도 열심히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어려움이 닥칩니다. 풍랑을 만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몸부림도 쳐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렇게 어려울 때 왜 주무시고 계시는 것입니까?
하지만 혹시 이런 경험이 있으셨다면, 이제 예수 믿으면 만사가 잘 된다는 그런 어린아이의 신앙에서 한 차원 높은 단계의 신앙으로 성숙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고난까지도 받아들이고 기뻐할 수 있는 단계로 성장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주위에 배를 타는 분이나 어부가 계시면 이렇게 물어보세요. “바다가 늘 잔잔한가요?”
바다는 늘 잔잔하지 않습니다. 삶의 여정은 늘 평탄하지 않습니다. 그 풍랑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요?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본문 속에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타고 계신 배도 풍랑을 만났다는 사실입니다(마8:24).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꾸짖으셨다는 사실입니다(마8:26).
살아가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납니다. 기쁘고 즐거운 일도 만납니다. 질병을 얻기도 하고 고침을 받기도 합니다. 존경을 받기도 하고 용기를 얻기도 합니다. 이런 일들을 만날 때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어떠한 상황을 만날지라도 그 상황을 하나님께 맡기고(벧후 5:7),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벧전 5:6), 하나님의 자녀다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만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물으십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이 말씀은 갈릴리 바다에서 제자들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오늘 바로 나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힘들어도, 어려워도, 낙심될지라도, 두려워하지 마시고 주님께서 일하실 것을 믿고 담대하게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Aug 11, 2024

본 받고 싶은 갈라디아 교회
(갈라디아서 1:6-10. 6:6-10.)
주원영담임목사
바울 사도가 갈라디아 교회를 향하여 편지를 쓴 이유는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초심을 잃지 않고 살기를 바랬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 지방에서 여러 교회들을 개척하고 이 지역을 떠난 지 3-4년이 지났을 때, 처음 복음을 받아드렸던 갈라디아 지방의 여러 교회들과 성도들이 초심을 잃고 갈등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편지를 썼습니다. 이 시간 건강한 교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갈라디아서에서 생각하면서 성도님들과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갈라디아서를 통하여 배우는 건강한 교회의 모습은 ❶은혜의 복음을 지키는 교회입니다(갈1:6). 율법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삶의 기준으로 지켜야 할 것들입니다. 하지만 율법을 지킨다고 해도 구원함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주의자들은 예수를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가르치면서 율법의 행와 의식들을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율법과 같은 특별한 종교적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면, 십자가에서 대속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죽으심을 헛되이 하는 것입니다(갈2:21). 그렇기에 바울 사도는 구원의 조건으로 예수를 믿는 것 외에 무엇인가를 더해서 강조하든가 가르친다면 그것은 복음이 아니라 “다른 복음”이라고 강하게 주장한 것입니다(갈1:7-8).
성도 여러분.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베풀어주시는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은혜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해 주시는 조건 없는 은혜로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율법주의자들은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조건부 사랑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다른 복음이 없을까요?
이곳 영원한 교회에서 전해지는 말씀들이, 다른 복음이 아닌 은혜의 복음만 전해지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갈라디아서를 통하여 배우는 건강한 교회의 모습은 ❷성령의 열매를 구하는 교회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행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큰 죄를 지은 사람이 더 큰 은혜를 경험한다는 말이 아닙니다(롬6:1-2). 그래서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에서 믿음으로 구원함을 받은 사람들은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갈5:16).
바울 사도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모습들을 자세히 말합니다(갈5:19-21). 그러나 성령에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면 이런 모습들은 보이지 않고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2-23)
갈라디아 교회에서 배우는 교훈을 마음에 새기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가심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갈라디아서를 통하여 배우는 건강한 교회의 모습은 ❸사랑으로 서로를 돌보는 교회입니다(갈6:10).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구원받은 신앙의 동역자들에게 하나님의 선을 먼저 행하여야 한다는 마음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성도들은 자연스럽게 선행에 대한 욕구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그곳에는 선행을 질투하는 마귀의 역사도 함께 한다는 사실입니다. 선한 일을 하다가도 가끔은 좌절을 경험하고 다툼을 경험하는 것은, 영적으로 완전히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모습을 사탄이 가장 좋아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주의 일은 반드시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맺어야 합니다. 혹시 어려운 문제가 생기더라도 당황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기도로 하나가 되고 이겨야 합니다. 바울 사도가 이 진리를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갈6:9).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곳에 세워진 영원한 교회가 건강한 교회로 아름답게 성장하기 위하여 갈라디아 교회를 생각하면서 이런 다짐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❶은혜의 복음을 지키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❷성령의 열매를 구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❸사랑으로 서로를 돌보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에게 이런 노력과 기도가 있을 때, 영원한 교회는 주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고,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이 은혜가 영원한 교회와 성도님들에게 넘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