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요약
Aug 1, 2026

(복이 있는 사람) 마음이 청결한 사람
(마태복음 5:1-8)
주원영담임목사
성도 여러분. 요즘같이 편리하고 빨라진 세상이 전에는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대부분은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잠간이면 해결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삶은 여유가 생긴 것이 아니라, 더 분주하고 바빠졌습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조용히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볼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너무나 바쁘고 분주해서 하나님과 함께 할 시간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고 있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여섯 번째 복을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 5:8). 어떤 의미의 말씀입니까?
우리는 마음이 청결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청결(καθαρός)한 마음”은, “동기가 순수하며 생각이 진실된 온전한 마음”을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마음을 둔 단순한 마음”을 뜻합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19-34절 말씀을 통하여,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하나님과 돈 중에서 어떤 것을 삶의 주인으로 섬길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돈과 하나님이 동시에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돈이 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고 믿는 것을, 우리는 우상 숭배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면서도, 돈을 꼭 움켜쥐고 있으면 이 모습이 두 주인을 섬기는 모습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단순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마음에 청결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이렇게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단순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 신앙인인데, 신앙인들도 단순한 마음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향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러했습니다. 이들은 너무나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출애굽하기 전 애굽에서 10가지 재앙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분명히 믿었습니다. 홍해를 육지와 같이 건넜을 뿐만 아니라, 광야를 지나는 동안 계속해서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먹었습니다. 반석에서 솟아나는 물을 마셨습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메추라기 고기도 먹었습니다. 날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함께 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이들은 하나님만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저들 가운데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만나의 경험이 그랬습니다. ◎시내산 아래에서의 금송아지 사건이 그랬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정탐꾼의 불신앙적인 보고를 듣고 지금까지 은혜와 기적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아우성을 칩니다.
이 모습들을 보신 하나님께서 결단하셨습니다. 430년을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그 출애굽 세대들을 포기하기로 결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태어난 세대로 하여금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을 정복하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을 다 마친 후에 여호수아는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강하게 당부입니다. 여호수아 24:14-15절 말씀입니다. 야고보 사도도 우리에게 말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약 1:6-8). 청결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분주한 삶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분주한 삶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사람이 되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이 되려면,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의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어야 합니다. ◎말을 아껴야 합니다. 세상을 향하여 조용히 입을 다물고 하나님의 음성의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많은 것을 알려고 하는 호기심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알려고 합니다. 하지만 모르는 것이 있어도 우리에게 큰 일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절제하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무조건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그런 생각을 포기하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기도와 말씀 묵상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늘려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려면,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삶을 살려면, 이런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 속 깊이 새기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동방의 의인이라 불리는 큰 부자가 있었습니다. 욥이라는 사람입니다. 그가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하나님에 대하여 무지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단순한 마음으로 고백합니다. 주께서는 못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여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욥 42:2-6).
성도 여러분. 욥의 이 고백 속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이 말입니다.
고난을 당하는 동안 욥은 수많은 말을 쏟아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동안 쏟아내었던 많은 말들은 부끄럽고 어리석은 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순전한 마음을 지키지 못한 것을 회개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순전한 마음으로 진실하게 드리는 이 고백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한 축복을 욥에게 아낌없이 부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승천하시면서 영원한 언약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20).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삶의 시간 속에서 주님을 잊어버리고 살아갈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인간관계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때문에 우리의 생각이 너무나 복잡합니다. 우리의 삶은 피곤합니다. 지쳐있습니다. 말하기조차 싫습니다. 때때로 다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곁에 아주 가까이 와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복잡한 생각과 이해할 수 없는 많은 말들을 쏟아내면서 지은 죄들을 깨닫게 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단순한 신앙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무지함을 욥과 같이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내려놓을 때, 하나님께서는 용서와 회복의 은혜로 함께 해 주십니다. 인자하심의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다시 한번 놀라운 축복의 손길을 펼쳐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청결한 마음은 “동기가 순수하며 생각이 진실된 온전한 마음”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향한 마음을 둔 단순한 마음”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 단순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복이 있나니, 그가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시고 하나님을 만나시는 은혜를 맛보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Jul 25, 2026

진정한 행복
(여호수아 24:14-18)
주원영담임목사
2002년 하바드 대학에서 철학과 심리학을 전공하고 모교인 히버드 대학에 강사로 임용을 받은 “탈 벤 샤하르” 교수는 “행복학”이라는 강좌를 처음으로 개설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강의 내용은 “해피어(happier)”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불행한 사람의 유형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고 있습니다. ◎미래의 성공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면서 살아가는 “성취주의자들”입니다. ◎순간의 쾌락을 추구하다가 미래를 잃어버린 “쾌락주의자들”입니다. ◎과거의 실패에 발목이 묶여 현재와 미래를 함께 잃어버린 “허무주의자들”입니다.
저자는 모두 이들을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저자가 말하는 진정한 행복은, 힘들고 불행한 과거에서 오뚜기처럼 일어나서 현재와 미래의 행복을 누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람들도 이렇게 행복을 찾으려고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데,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행복을 찾아야 할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땅을 정복하고 이제 미래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다음세대를 향해서, 그들의 지도자였던 여호수아가 삶의 마지막 순간에 유언처럼 미래의 행복에 대하여 중요한 말씀을 남깁니다. 그 내용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가정의 주인으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분으로 모셔야 합니다.
14절 말씀입니다. 합독하시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수 24:14).
오늘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신앙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법은, 하나님께 예배를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약속의 땅에는 들어왔지만 아직도 예배를 생활화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저들에게, 여호수아는 그 선택을 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5절 말씀입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수 24:15).
성도 여러분. 학자들은 오늘의 가정들을 세 가지 모습으로 나누었습니다. “전통적 가정. 현대적 가정. 성서적 가정”입니다.
◎전통적 가정은 가부장적 가정이라고 부릅니다. 엄격한 질서는 있지만 종종 서로의 자유가 존중되지 못하는 율법적 권위가 보여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대적 가정은 권위가 부재하는 가정입니다. 가족 각자가 저마다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때때로 혼란스럽고 때로는 갈등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서적 가정은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온 가족이 함께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이 다스리는 가정입니다. 이런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온 가족이 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우리 가정의 주인으로 모시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닌 그 어떤 우상도 포기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찬양을 부릅니다.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 주되신 주 앞에 나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 내려놓고 주님만 사랑해.” 그러기에 우상을 섬기는 모습은 신앙인들에게 있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14절 말씀이 이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수 24:14).
이 말씀이 주시는 교훈은, 지금까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든지, 바로 지금, 내가 주인 삼았던 그것들을, 우상들을 치워버리라는 말씀입니다. 말씀에 기록된 우상들은 종종 거짓된 모습으로 우리를 지배하는 것들입니다. 하나님과 경쟁하는 것들입니다. 물질, 명예, 권력, 체면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하면서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참 행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이와 같은 세상의 것들에게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은 무엇입니까? 누구입니까? 성도님들께서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이 결단을 요구합니다.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수 24:15).
성도님들께서는 이 말씀에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16절 말씀입니다. 백성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니 (수 24:16). 이 대답이 성도님들의 대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섬김의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확인하는 방법은, “믿음의 대상을 어떻게 섬기느냐?” 하는 것으로 결정됩니다. 보이지 않는 믿음이 보이는 섬김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단순히 하나님을 잘 믿으라는 당부로 끝내지 않고 “섬기라”고 강하게 말합니다. 14절 말씀입니다.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수 24:14). 우리들의 신앙의 가치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섬김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락하신 가정을 소중하게 생각하시고, 가족 모두가 하나님을 향하여 이렇게 고백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고백하시는 성도님들의 가정에,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와 축복과 행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Jul 18, 2026

구원자 예수
(에베소서 1:13-14, 2:6)
김판규선교사님
구원자 예수 (에베소서 1:13-14, 2:6) 제목으로 은혜로운 말씀 전해주신 김판규선교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셜교영상으로 대신합니다.
Jul 11, 2026

(복이 있는 사람) 긍휼히 여기는 사람
( 마태복음 5:1-7)
주원영담임목사
마태복음 5:16절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이렇게 당부하신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세상을 밝고 행복하게 만드는 다섯 번째 복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다시 한번 7절 말씀을 합독하시겠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
신약성경에 기록된 “긍휼(ἕλεος)”이라는 단어는, 보통 “자비”나 “동정”의 의미가 아닙니다. 반드시 행동이 따르는 자비나 동정을 말합니다. 긍휼은 어려움이나 고통을 당한 사람들을 안타까워하며, 그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거룩한 능력입니다.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입장을 바꾸어서 자신의 어려움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도 그런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모습이 긍휼히 여기는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0:30-37절에 기록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선행”을 통해서 긍휼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렇게 묻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눅 10:36).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 10:37). 어렵고 힘든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길 뿐만 아니라, 지금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것을 채워주는 것이 긍휼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가 세상을 좀 더 밝게 하기 위하여,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해야 하는 정말 중요한 것은, 작은 사랑을 실천하는 긍휼의 모습이 보여지는 것입니다. 세상은 긍휼의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로 말미암아 밝아지기 때문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 우리가 왜 이 가르침을 귀하게 여기고 따라야 합니까?
◉우리 모두는 긍휼이 필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먼 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크고 작은 파도를 만나듯이, 한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크고 작은 시련의 파도를 만납니다. 그리고 넘어야 합니다. 여기 서 있는 목사인 저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긍휼히 여겨주시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긍휼의 은혜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불쌍한 존재가 바로 우리들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먼저 자신을 긍휼히 여기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길 수 없습니다. 먼저 자신을 긍휼히 여겨야 다른 사람들을 긍휼히 여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주변을 한 번 둘러보세요. 다른 사람의 조그마한 잘못에 대하여도 지나칠 정도로 예민한 사람이 있습니다. 칭찬에는 아주 인색하면서 신경질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어려워지고 인생을 행복하게 살지 못합니다. 복되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 먼저 자신을 긍휼히 여기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긍휼을 베푸는 만큼 세상은 치유되고 아름다워지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가 한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 사람이 교회와 자신에게 베푼 사랑과 긍휼을 기억하고 그에게 주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원컨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 만났음이라(딤후 1:16-18).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 6:10).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긍휼을 베푸심으로, 세상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성도님들의 이 모습으로 인하여 가정과 교회와 지역사회와 세상이 아름다워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모습이 주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4-5절 말씀입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엡 2:4-5).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그 사랑 때문에, 우리가 죄에서 건짐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 사랑 때문에 오늘 우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긍휼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긍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입니다. 예수님의 주님되심을 인정하고 살아갈 때에 긍휼한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우리의 힘으로는 부족하지만, 성령께서 이 일을 도우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롬 8:28).
긍휼은, 성령의 충만함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나타나는 성령의 은사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나타나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성품입니다. 그러므로 긍휼한 삶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빌립보서 1:8절 말씀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 1: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긍휼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긍휼을 베풀 때 우리의 마음의 상처와 어지러운 세상은 치유되고 아름다워집니다. ◉뿐만 아니라, 긍휼히 여기는 이 마음은 주님의 마음이기에 우리가 닮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오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고 이웃을 긍휼히 여기는 삶을 살아가심으로, 이웃들에게 긍휼히 여김을 받으시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