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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약

Nov 2, 2025

눈물로 뿌리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
(시편 126:1-6)

주원영담임목사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감격을 노래한 감사의 찬양입니다. 말씀 전체에 기쁨과 감사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기뻐하는 것은, 70년 동안 바벨론에서 포로의 생활을 하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 큰 아픔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삶으로부터 자유함이 주어졌기에 기쁨과 감사가 넘쳐난 것입니다.

그리고 저들은 지금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시 126:5).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눈물흘림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기쁨의 크기와 고통의 크기는 비례한다는 말입니다. 기쁨의 크기는, 고통의 시간이 크면 클수록 더 커진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 고통은 헛된 고통이 아니라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고통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참 기쁨과 감사를 깨닫게 하시려고 어려운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쉬운 길도 있었지만, 저들에게 그 길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70년이라는 고통의 길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하실 능력이 없어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깨닫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성도님들께서는 출애굽 과정에서 있었던 아말렉과의 전쟁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면 이깁니다. 그러나 힘이 들어서 손이 내려오면 자꾸만 뒤로 밀립니다.

하나님께서 힘이 없고 능력이 없으셔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쉽게 전쟁을 이기게 해 주시면, 저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로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때로는 고통을 주시면서 우리의 인생을 바꾸어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진리를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사기를 읽다보면 사사가 세워질 때마다 특별한 현상이 반복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현상은 “타락-심판(진노)-회개(부르짖음)-평화(구원)”의 사이클입니다.

이스라엘에 평화가 찾아왔는데 저들은 그 평화를 지키지 못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저들은 평화를 지키지 대신 우상을 섬기고 타락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때마다 여지없이 이웃의 이방 나라들을 통하여 저들을 심판하시고 고통 가운데 있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일을 당할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그러면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저들에게 다시 지도자를 세워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들은 또 다시 얼마의 시간동안 평화를 누리면서 살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무려 330여년 동안 12번이나 반복한 것입니다.

사사기의 이런 모습을 묵상하면서, 때로는 우리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도 필요한 이유는, 그렇지 않으면 절실하게 하나님을 찾지 않을 것이고, 조금의 틈만 생기면 또 죄를 지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 범죄한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서러운 포로의 삶을 살면서 조국 예루살렘에서 드렸던 예배의 시간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도 깨닫게 됩니다. 저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지 않았더라면 이 축복은 결단코 경험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지난 시간을 되돌아봅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시 137:1).

하지만 지난 시간동안에는 많은 눈물을 흘렸지만, 이제 기쁨의 단을 거두는 시간을 경험하면서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 126:5).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이 간절한 마음으로 고통 중에 울부짖고 기도했을지라도 그들을 돌아오게 하신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하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 126:5).

유대인의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울어라. 그리고 사람 앞에서는 웃어라.”

웃는 삶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웃음이 어떤 웃음이어야 하는가?” 이것이 더 중요합니다. 웃는 것이 좋다고 해도, 실없는 웃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쾌락의 웃음도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웃음의 비결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울면서 씨를 뿌리라고 합니다. 울면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의 웃음을 웃으면서 단을 거두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찬양과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신뢰하며 걷는 자에게.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 한 없는 은혜 내 삶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씨를 뿌릴 때에 열매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것도 당연한 일이기에 이겨내야 합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자연의 법칙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씨는 우리가 뿌리지만, 그리고 열매를 거둘 때까지 추위와 더위를 참으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최선을 다하지만, 하나님께서 열매를 거두게 해 주시지 않으시면 웃으면서 기쁨의 단을 거둘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을 해가는 동안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은, 나를 위하여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는 도우시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큰 기쁨과 감사는, 눈물과 땀을 흘린 사람들이 누리게 되는 특권입니다. 거두는 자의 축복은 끝까지 견딘 자들에게 주시는 특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눈물을 흘린 자들에게 주시는 특권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시 126:2).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축복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은혜를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감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박헌성님이 쓰신 “최고의 은혜”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한 50여년 전에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빌딩은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었습니다. 무려 102층의 건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건물이 왜 102층인지 아십니까? 이 건물의 높이가 102층인 것은, 지난 1620년에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에 온 청교도들이 102명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신대륙에 도착한 첫해 겨울에, 굶주림과 질병, 인디언들의 습격으로 대부분의 사망하였고 44명만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지속되는 흉년에도 낙심하지 않고 힘을 다했습니다. 그런 시간이 흘러 3년째 되던 해, 저들은 풍년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풍년은 이내 눈물로 변했습니다. 추수를 얼마 앞두고 수 많은 벌레들이 나타나 곡식을 갉아 먹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벌레를 잡아도 소용이 없자, 그들은 한자리에 모여서 손에 손을 잡고 울면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밤새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신앙의 자유를 찾아 이곳에 왔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않고 살았던 저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다음 날 아침이 되었을 때, 저들은 놀랐습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덮을 듯한 수많은 참새 떼가 날아와서 벌레들을 모조리 잡아먹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들은 한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노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노라.”

저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가 부족했음을 깨달았고, 그동안 소홀히 여겼던 추수감사예배를 정성을 다하여 풍성하게 드렸습니다. 그날 이후로부터 이들에게서는 감사를 해야하는 원리가 후손들에게 전해졌습니다. 바로 5절의 말씀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시 126:5).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정신이 후손에게 계속 이어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씨를 뿌리는 자의 수고가 축복입니다. 그리고 그 축복을 주신 분을 아는 것이 축복입니다. 축복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들이 누리는 특권입니다.

이 진리를 믿고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기로 다짐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Oct 26, 2025

그의 인자하심이
(시편 118:1-9)

주원영담임목사

 1517.10.31. 독일의 비텐 베르그 성당 벽면에 마르틴 루터가 “95개 조항의 항의문”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다섯 가지를 신앙의 기준으로 삼고 부르짖었습니다. “Five Sola”라고 부릅니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예수(Solus Christus).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

기독교 역사를 돌아보면, 사제들 외에는 그 누구도 성경을 마음대로 읽고 해석할 수가 없었기에 읽어주는 대로 듣기만 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종교개혁자들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 성경이 주어졌습니다. 말씀을 마음대로 읽을 수 있고 말씀을 마음대로 들을 수 있게 되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런 시대로부터 500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해되지 않는 여러모양의 안타까운 주장들이 우리에게 알려졌습니다. 특별히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면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교에도 구원은 있다고 말합니다. 성도님들께서는 이들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분들의 주장이 맞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이 사실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모습이 마르틴 루터가 살던 그 옛날에도 있었기에 루터는 그의 친구들이 종교개혁을 시작했지만, 그는 그 당시 교회로부터 따돌림을 당했고 교회로부터 파면을 당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부인이 상복을 입고 “하나님은 죽었다” 이렇게 말하는 모습을 보아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마르틴 루터는 저들의 강한 핍박 속에서도 쓰러지거나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가 흔들리고 쓰러지려고 할 때마다 그에게 힘이 되었던 말씀을 붙잡고 담대히 나아갔습니다. 그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 시편 118편입니다. 그리고 많은 학자들의 연구결과는, 시편 118편은, 시편 7편, 16편, 18편, 22편의 상황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시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118편의 저자가 다윗이라는 것도 알려주었습니다. 또한 이 시를 지은 배경은, 다윗이 아무 잘못이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시련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면서 쫓기고 쫓기는 상황에서 지은 시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계속되는 두려움의 상태에서 이 시를 썼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다윗은 한 가지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두려움을 물리치는 방법”입니다. 두려움을 물리치는 방법은, 두려움의 대상을 바꾸면 된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두려움을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그분께 피하면, 하나님께서 내 안에 찾아오셔서 내 안의 두려움들을 다 내쫓아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시 11:1).

사람들은 두려움이 찾아오면, 어디론가 도망을 칩니다. 산으로 도망을 하기도 하고, 사람에게 피하기도 합니다. 그때, 원수들이 찾아와서 속삭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속삭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탄의 유혹 앞에서 다윗이 담대하게 말합니다.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다윗은 사탄이 유혹하는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여호와께 피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찾았던 것입니다(시 11:4). 다윗의 이 고백이 성도님들의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찾고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성전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시편 118:1절과 29절 말씀이 그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18:1.29). 시인이 “하나님의 인자하심” “하나님의 헷세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무엇인지를 5절 말씀이 설명합니다.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시 118:5).

다윗은 자신의 연약함을 알았기에 다윗은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고통 중에서도 생명주심의 인자하심을 찬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시 3:5).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아있음에 감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살아있는 것이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입니다. 살아있어야 내일이 있고 희망이 있습니다.

또한 다윗은 ◉어려운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신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시118:10-12). 우리 앞에 펼쳐진 환경들이, 마치 가시덤불과 같아서 벌레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둘러싸고 에워싸고 에워싸고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우리는 그 모든 환경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극복하게 되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사 43:1-3).

결국 다윗이 노래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어려운 환경에 던져져 있지만 이 어려운 환경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다.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이다. 내 힘과 지혜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이 환경들을 극복하고 나아간다. 이 믿음으로 다윗이 지금 하나님께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의 이 노래가 우리 모두의 삶의 고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허물을 덮어주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노래하고 있습니다(시 118:18).

하나님께서는 죄는 질책하시지만, 죄값을 치르게 하지는 않으시겠다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내 잘못과 내 죄들을 하나하나 지적하신다면,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르게 하신다면, 지금 내가 이곳에 어떻게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우리 모두의 허물을 덮어주셨기에, 지금 우리가 숨을 쉬고 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입니다. 헷세드의 은혜입니다. 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잊지 마시고 늘 기억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가슴속에만 담아둘 수가 없어서 드러내서 표현합니다. 그 표현은, 바로 “감사”입니다. 1절과 29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 118:1.29). 그리고 19절, 21절, 28절에서도 감사합니다.

지금 다윗이 처해있는 상황은 모든 것이 다 잘 풀려서 승승장구하는 그런 상황이 아닙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있습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에 오늘 내 생명이 존재하는구나.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에 내가 지금 이 어려운 환경들을 극복해 나가고 있구나.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에 내가 부족하고 잘못하고 범죄하였어도 하나님께서 덮어주셨구나.” 이것을 깨달았기에 그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살아계십니까? 어렵지만 그 환경들을 극복해 나가고 계십니까? 시시각각으로 범죄하고 계시지만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은혜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감사의 찬양을 드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Oct 19, 2025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
(빌립보서 2:12-18)

주원영담임목사

살아가면서 모르는 길을 찾아갈 때, 바르게 표시되어 있는 이정표는 중요합니다. 만약 이정표가 잘못된 방향을 안내하거나, 알아보기에 어렵게 표시되어 있거나, 땅에 떨어져 있다면, 목적지를 찾아가는데 많은 어려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정표는 아주 분명하게 한 눈에 들어오도록 만들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인생길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한 이정표가 세워져 있어야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모습은, 우리 자녀들과 후손들이 바라보고 걸어가야 하는 이정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삶의 이정표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성도를 바라보시는 기준은, 세상의 기준과는 조금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기준인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 이 기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말씀 앞에서 얼마나 순결하고 얼마나 정직하고 바르게 살았는가?” 여기에 관심을 집중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본문에서 세상의 모습을 이렇게 말합니다.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빌 2:15). 이런 모습은 바울 사도가 살았을 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늘날 더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오늘날을 보면, 세상의 가치 기준이 잘못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 것인지 모르게 뒤죽박죽되어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것이 나와 관계가 없으면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신앙인들이 지금 이런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도 이곳에서 저들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회에서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려면 세상의 방식대로 적당하게 어울려야 합니다. 적당히 더러운 것도 감수하고, 적당히 성실하지 못한 것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흠 없고 순결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에는, 우리가 얼마나 정직하고 성실하고 순결하게 살았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날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이 기억해야 하는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우선순위가 분명해야 한다”는 진리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고 귀한 일이지만, 그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사람이 우선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예수님이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 진리를 분명히 믿습니다. 로마서 8:28절 말씀을 분명히 믿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에게 이런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했으면, 세상의 일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걱정하고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앙인들을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14). 말씀대로 빛을 발하면서 사는 삶이 우리에게 주시는 의미를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빌 2:16).

신앙인들이 흠 없고 성결하고 정직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열심히 수고한 것이 주님 앞에서 헛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날,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예수님을 다시 만나는 그날에, 자랑할 것이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바른 이정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씀대로 세상에서 열심히 수고하면서 일해야 합니다. 내 방식대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대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그리고 처음에 열심히 잘 시작했다고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중간에 다른 곳으로 빠지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의 경주는 누가 빨리 가느냐를 따지는 경기가 아닙니다. 신앙의 경주는 누가 바른길로 끝까지 가느냐? 하는 경기입니다.

믿으시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살아가는 동안 많은 삶의 업적을 남기는 것은 중요합니다. 의미있는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지막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그날, 우리의 수고와 노력이 헛되지 않고 예수님께 자랑할 것이 넘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Oct 12, 2025

감사할 때 주시는 축복
(시편 103:1-5)

주원영담임목사

성경에 “감사”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구절이 178구절이 된다고 합니다. 이 의미는, 성경은 우리에게 감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가를 밝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감사와 불평은, 똑같이 땅속에 묻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감사를 캐내고, 어떤 사람들은 불평을 캐냅니다. 그래서 행복은 감사라는 문을 통하여 들어오고, 불평이라는 문을 통하여 나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1880년에 태어나 87년 동안의 삶을 살았지만, 두 돌이 되기 전에(19개월)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게 되었던 “헬렌 켈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앞을 못 보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잘 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내일 갑자기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시면서 당신의 눈을 사랑하십시오. 어느 날 갑자기 귀가 먹고 벙어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듣고 보고 말할 수 있음에 감사하십시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감사하시면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오늘의 본문 시편 103편은 다윗이 지은 시입니다. 이렇게 시작됩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시 103:1-2). 하나님을 송축하며 그 은혜를 잊지말라고 말합니다.

송축하고 기억하는 이 두 가지는 사람의 다리와도 같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삶을 지탱해 주는 “영적 다리”라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높이며 송축하는 일,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일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가는 일생동안 우리의 일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무엇을 감사하며 무엇을 찬양해야 합니까?

◉용서해주시고 고쳐주신 은혜를 감사하고 찬양해야 합니다(시 103:3-4).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가장 큰 은혜는 “죄를 용서해 주시는 은혜”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했는데, 용서해 주심으로 사망에서 건져주신 것입니다. 더 감사한 것은, 한 번만 그렇게 해 주신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계속하여 용서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시 86:5).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죄가 있고 잘못이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허물이나 잘못을 쉽게 용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기를 즐겨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나의 모든 병을 고치신 은혜”를 잊지 말라고 하십니다. 기록된 모든 병은, 육체의 질병만이 아니라 정신적 고통까지를 포함합니다. 그렇기에 육체의 질병, 상한 마음, 실패, 절망, 포기, 고독 등을 위로해 주시고 깨끗하게 고쳐주신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15:26절 말씀에는 여호는 치료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고친다는 뜻을 가진 “라파”라는 단어는, 고치는 의료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래의 상태, 바로 완전한 상태로 고쳐서 회복시켜 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싸매시고 꿰매어 상처가 원래의 모습으로 완치하도록 해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누가 사함을 받고 누가 고침을 받습니까?

하나님께서 고쳐주시고 사해주신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이 사함을 받고 고침을 받습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당신의 자녀인 우리들을 치료해 주시고 계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체질을 알고 계십니다(시 103:14).

원인을 몰라서 고치지 못하는 병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의 체질, 나의 생각, 나의 마음,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나의 미래까지를 알고 계시는 분이시기에, 고치시고 새롭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은혜에 감사하며 이 은혜를 잊지 않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소원을 만족하게 해 주신 은혜를 감사하고 찬양해야 합니다(시 103:5). .

사람들은 무엇인지 모르지만 많은 경우에 불만을 표현합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런 불만을 표현하는 사람에게 만족한 대답을 해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각각 다른 이런저런 욕구불만을 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믿는 하나님은,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만족케 해주실 뿐만 아니라, 청춘이 되게 하셔서 독수리처럼 하늘을 힘차게 날 수 있는 힘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소원을 만족하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의 소원을 만족케 해 주시고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그 하나님을 신뢰하시고 감사를 드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감사할까요?

◎일상생활 속에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다고 말로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감사를 자라게 하시기 바랍니다. ◎넉넉하게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쉬지 말고 계속해서 감사하십시오. ◎영원히 감사와 존귀와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크게 축복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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