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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약

Sep 12, 2026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의심을 이겨낸 디두모(도마)
(요한복음 20:24-29)

주원영담임목사

영성학자들은 하나님께서 안 계신 것과 같은 “하나님의 부재(Absence of God)”의 경험을, “영혼의 어둔 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혼의 어둔 밤을 경험하는 시간은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이런 영혼의 밤을 지나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의 시간을 지나면서 믿음이 흔들리는 시간을 지나게 됩니다. 어떤 때는 매우 심각하기도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믿음을 찾아볼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어린 아기는 자라가면서 끊임없이 “엄마. 왜”라는 질문과 함께 자라간다고 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왜, 나에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우리의 입에서 이런 말들이 나옵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자라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도마가 이런 믿음의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죽은 줄 알았던 예수님께서 눈앞에 등장하자, 도마는 상식으로 그리고 이성으로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하나님의 부재(不在)와 같은 영혼의 어두운 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의 삶을 살아가다 보면, 믿음에 대한 어려움을 쉽게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유는 때때로 믿음 없는 사람으로 오해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오해를 받지 않으려고 아예 표현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혼자 고민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런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 주님께서 우리를 격려하신 것입니다. 다시 한번 믿음을 회복하도록 힘과 자신감을 주신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는 것을 혼자서 고민하면서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은, 결코 칭찬받을 만한 신앙의 삶이 아닙니다. 표현해야 합니다. 물어보아야 합니다.

다시 25절 말씀을 보시면서, 도마의 솔직한 모습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그의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요 20:25). 그런데 의심하는 도마에게 주님께서 반응하십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

예수님께서는 의심하는 도마를 향하여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의심을 극복하라고 격려하십니다. 믿지 못한다고 책망하신 것이 아니라 사랑이 가득한 따뜻한 격려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떤 의심이 생기더라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라는 의문은, 우리의 신앙을 더욱 굳세게 해 줍니다. 진리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특별한 체험이 신앙적인 의심을 극복하는 가장 강력한 방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적인 의심을 극복하고 요동하지 않는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말씀에 대한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도마를 보세요. 다른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고 말하자 도마가 이렇게 말합니다.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요 20:25). 그리고 의심하는 도마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 이 말씀을 들은 도마가 대답합니다. 28절 말씀입니다.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 우리에게 이런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신뢰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보세요. 도마의 이 고백을 들으신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요 20:29).

도마는 자신을 향하여 주님께서 자비하신 모습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는 의심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신뢰했습니다. 믿음의 고백을 한 것입니다. 다시 예수님의 신실하신 제자로 거듭난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성경에 기록된 사실에 믿음의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의 공동체, 신앙의 공동체를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왜”라는 질문은 언제나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도마를 보세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의심을 가졌습니다. 이유는, 도마가 공동체를 소홀하게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요 20:24).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무슨 이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도마는 제자들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공동체에 함께 있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기독교 신앙의 기본은 성도의 공동체입니다. 신앙은 공동체를 통해서 성숙하도록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셨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5).

그래서 예배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의 교제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목장 모임도 소홀히 하지 말고 함께 해야 합니다. 그 모임에서 믿음의 가족됨을 경험하고 서로가 영적으로 자라가는 성숙을 배워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때때로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안 계시는 것과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런 때 기억하고 다짐해야 합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해야 합니다. ◉믿음의 공동체, 신앙의 공동체를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은혜가, 말씀으로 의심을 이겨내면서 공동체를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Sep 5, 2026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38년 된 병에서 자유함을 얻은 사람
(요한복음 5:1-9)

주원영담임목사

요한복음에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7가지 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⓵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기적(요 2:1-11. 실망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심). ⓶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쳐주신 기적(요 4:43-54.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어 주심). ⓷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신 기적(요 5:1-18. 무력함을 이기게 해 주심). ⓸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요 6:1-15.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심). ⓹폭풍우를 잠재우시고 바다 위로 걸어오신 기적(요 6:16-21. 절망을 평안으로 바꾸어 주심). ⓺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을 고쳐주신 기적(요 9:1-12.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주심). ⓻죽은 나사로를 살려주신 기적(요 11:1-44. 죽음까지도 승리케 하심).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이와 같은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성도님들께서 진정으로 예수님을 영접하면, 전능하신 예수님의 변화시켜 주시는 능력이 우리에게도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우리도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 7가지가 기록되어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기적”이라고 기록하지 않고 “표적”이라고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11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요 2:11). 2:23절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요 2:23). 요한복음 4:54절 말씀입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요 4:54).

우리가 기적이라고 말하고 있는 요한복음에 기록된 표적들은, 표적 그 자체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표적을 통하여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표적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시려고 하는 것일까요?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 20:30-31).

그렇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를 믿게 하고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은 기적들을 행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표적을 생각하면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믿게 하는 전도의 방법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배우고 다짐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 방법은 ◉예수님의 눈으로 이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큰 명절이 되면 흩어져 살다가도 예루살렘으로 모입니다. 그런데 이런 즐거운 잔치가 열리는 그곳을 찾은 예수님께서는, 즐거움을 즐기는 사람들보다는 외롭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찾고 계셨습니다(요 5:2-3).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모여있는 베데스다를 찾으신 것입니다. 그곳 베데스다에는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과 같은 각종 병을 가지고 있는 병자들이 있는 곳입니다. 예수님의 일차적인 전도의 대상자들은, 언제나 이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영적으로 보지 못하고, 영적으로 걷지 못하고, 영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처 입은 이웃들입니다. 누군가의 만져주심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들에게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특별히 그들 중의 한 사람을 주님께서 주목하셨습니다.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루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요 5:5-6).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1년 2년도 아닙니다. 무려 38년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불리지 않았습니다. 38년된 병자라는 별명이 이 사람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어지는 7절 말씀을 보니 가족들도 포기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인데 예수께서는 이 사람을 주목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요 5:6).”

성도 여러분. 눈을 떠서 ◎복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 ◎치료의 능력으로 오신 예수님의 만져주심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 이 사람들을 보실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의 눈에 이런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전도가 시작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전도의 두 번째 방법은 ◉예수님의 질문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예수님의 질문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6-7절 말씀이 그 답을 알려주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요 5:6). 예수님께서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네가 아직 낫고자 하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느냐?” 이 말씀입니다. 치료될 수 있다는 희망의 불씨를 다시 살려주시는 질문이었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 말씀을 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우리가 이웃들에게 던지는 거룩한 질문이 바로 그들을 거듭나게 하는 씨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또 하나의 전도의 방법은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생명을 살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 하는 일입니다(요 5:8-9). 바로 예수님의 이 말씀이 38년된 병자를 고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그를 살린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생명을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선포되는 순간 병든 자가 고침을 받으며, 상한 자가 위로를 받으며,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성령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바로 이 말씀을 우리의 이웃들에게 듣게 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이 일을 감당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기적을 선물하는 이 말씀을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 말씀을 우리 이웃들에게 전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Aug 29, 2026

(예수님을 만난사람들)
하인의 병을 고친 백부장의 믿음
(마태복음 8:5-13)

주원영담임목사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시대를 3포시대(직장포기. 결혼포기. 자녀포기)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또 다시 3무시대(무관심. 무책임. 무감동)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특히 지금을 3무시대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과 관련된 일 말고는 관심가질 일도 없고, 책임질 일도 없고, 감동받을 일도 없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무감동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관심을 안 가져 주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고 견딥니다. 그리고 내 인생을 누군가에게 책임져 달라고 요청할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 삶의 시간 속에서 감동받을 일이 없어서 무료하고 권태로운 시간을 지내야 한다면, 그 삶은 무척 힘든 삶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신앙인들이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그분께서 계속해서 감동 받을 일을 준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사건이 바로 그런 사건입니다. 주님께서 백부장에게 큰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무슨 일로 주님께서 감동을 받으셨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감동을 먹으신 믿음은 ◉자신보다 이웃을 긍휼히 여기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 축복해 주시려고, 축복의 통로인 이웃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축복의 통로인 이웃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에 대한 집착된 관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넘어서야 우리 눈에 이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이웃들을 향하여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데, 자신을 넘어서지 못하기에 이웃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소개된 백부장이 자신을 넘어선 그런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는 지금 자신의 하인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고 있습니다.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종(노예)을 걱정하고 있습니다(마 8:5-6). 간구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자신의 하인이 중풍병 때문에 몹시 괴로워하고 있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주님께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백부장의 이 모습이 우리 주님을 감동시킨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의 초점을 자기 자신에게만 맞추고 살아가면 건강한 신앙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을 넘어서서 고통받으면서 힘들게 살아가는 이웃들을 돌아보고 섬기며 살아갈 때,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건강한 신앙인이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 감동을 먹으신 믿음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믿음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마침내 백부장에게 감동을 받으시고 고쳐주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마 8:7). 그런데 백부장이 또 한번 주님을 감동시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자기 집으로 간 것이 아닙니다.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마 8:8)

자신이 예수님과 대화하고 있는 장소와 하인이 병들어 누워있는 집이 공간적인 거리가 있었지만, 그는 예수님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심에는 시간과 공간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믿은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전능하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백부장에게 이런 믿음을 가지게 했던 것은, “말씀”과 “기도”였습니다. 백부장은 말씀과 기도에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주님께 구하고 기도하면, 그분은 어디서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시공간을 초월하여 역사하십니다.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능력의 주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감동을 먹으신 믿음은 ◉보이는 조건들을 생각하지 않는 믿음이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백부장은 로마 군대에 소속된 로마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견을 깨트리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는 로마의 장교이었기에 이런 결단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신분보다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하인이 치료함을 받는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모습에 감동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마 8:10).

성도 여러분. 저와 성도님들께서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지만 예수를 믿고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게 된 것은, 이 백부장의 믿음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백부장과 같은 이방인들인 우리들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살아있는 믿음을 보여주었기에 천국 백성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조건들을 생각하지 않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헌신하기로 결심한 믿음의 수고가 있었기에,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였기에, 우리가 여기에 앉아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전도도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8절의 말씀과 같이 예루살렘인 이곳에서부터 땅 끝까지, 백부장이 우리에게 보여준 그 믿음을 가지고 전해야 합니다. 이 자리를 채워야 합니다. 가진 것을 드리면서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의 이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감동하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족한 종이 백부장과 같은 믿음의 동역자들이 이 교회에 넘치게 해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자신보다 이웃을 긍휼히 여기는 믿음을 가진 성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믿음을 가진 성도. ◉보이는 조건들을 생각하지 않는 믿음을 가진 성도가 이 교회에 차고 넘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기도를 드릴 때,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이 교회에 그리고 성도님들의 삶에 충만하게 임하실 것입니다.

Aug 22, 2026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두 렙돈의 헌신을 드린 여인
(마가복음 12:41-44)

주원영담임목사

오늘의 본문 마가복음 12:42절과 44절은 이 여인을 “가난한 과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막 12:42).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막 12:44). 뿐만 아니라, 성경은 그녀의 이름조차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무명의 가난한 여인이 예수님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억하시는 여성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주목하시는 순간, 이 여인은 더 이상 무명의 여인이 아니라 아주 특별한 여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여인의 모습 속에서 예수님께서 주목하시는 인생이 받는 축복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려고 합니다.

◉개인적 고난도 특별한 상급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막 12:43-44).

본문에 등장하는 이 여인을 세상적으로 보면 상처투성이의 여인이었습니다. 가난은 어느 시대에나 저주스러운 모습이지만, 가난이라는 삶과 함께 과부라는 모습은 이 여인에게서 모든 희망을 빼앗아 가는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다가 아마도 이 여인은 당시의 사회에서 마지막 희망조차 착취당하고 살아갔던 여인처럼 보여집니다. 본문 바로 앞에 기록된 내용을 보니 이런 사람들이 재산을 착취당하는 일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막 12:40)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하나님께 헌금으로 드리는 이 여인의 헌신이 주님의 마음을 눈물겹게 감동시켰습니다. 이 여인의 헌신을 주님께서는 아주 특별하게 인정하신 것입니다. 이 여인의 핸디캡이 오히려 이 여인이 인정받는 조건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모습 속에서 과거라는 상처 때문에 좌절에 매여있을 필요가 없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가난한 과부처럼, 있는 모습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고, 작은 것일지라도 아직도 우리에게 남은 것을 가지고 주께 나아올 수만 있다면, 주님께서는 이런 우리의 상처입은 모습까지도 주목하시고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지난날의 모든 상처는 빛나는 미래의 상급이 될 것입니다.

◉평범한 일상도 특별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예배드림과 헌금드림과 섬김의 모습은, 결코 특별할 것이 이닌 일상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일상을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우리를 올바른 신앙인으로 만들어 가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본문이 기록된 그날도 예루살렘 성전 뜰에서는 수많은 예배자들이 헌금을 드리고 있었습니다(막 12:41-42).

그런데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주님의 시선이 가난한 한 과부에게 머물러 있었습니다. 어떤 이유였다고 설명드릴 수는 없지만, 44절 말씀을 볼 때 이 여인은 생활비를 다 드렸던 것 같습니다. 눈물겨운 고난의 삶을 살아온 여인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면서 주님을 섬기고자 했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 모습이 주님을 감동시켰습니다. 여인이 헌금을 드리는 행위는 주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특별한 기회가 된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깨닫는 것은, “내가 지난 과거에 어떤 상처를 받았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늘 주어진 일상에서 어떻게 최선을 다하느냐?”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특별한 기회가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날그날의 일상에서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는 그 어느 날 특별한 기회를 선물로 예비해 주셨다는 것을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한 헌신이 특별한 사람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이 여인을 예수님께서 주목하신 또 하나의 이유는, 여인이 드린 특별한 헌신 때문이었습니다. 이 여인에게는 일상이었지만, 주님께서 보실 때에는 그 헌신은 특별한 헌신이었습니다(막 12:42-44).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특별한 헌신을 요구하는 때가 있습니다. 성공한 모든 신앙의 선진들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대적하는 골리앗을 쓰러트리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잘할 수 있는 물맷돌 5개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것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빈들에 나온 어린아이가 자신의 점심 도시락이었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기꺼이 주님께 내어드렸습니다. ◎마리아는 언제 이 세상을 떠나실지 모르는 주님을 위하여 가장 귀하고 값비싼 나드 향유가 들어있는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드렸습니다. ◎본문에 소개된 과부는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늘의 생활비 전부를 드렸습니다.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주님께 드린 최선의 헌신을 주님께서는 특별한 헌신으로 기억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슴에 담아야 하는 것은, 이런 특별한 헌신들은 세상적인 기준을 따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가치로는 이런 헌신의 참 의미를 평가할 수 없습니다.

본문에 기록된 과부의 두 렙돈은 당시의 세상적인 가치로 볼 때 의미가 없는 돈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겉으로 드러난 가치가 아닌, 그 적은 돈에 담긴 이 여인의 헌신의 가치를 평가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작은 것일지라도 우리의 마음이 담겨있는 헌신을 주님께서 기뻐 받으십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들은 모두 다 주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중에서 조금을 드렸는데, 주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작지만 우리의 특별한 헌신이 담겨있는 정성을 받으실 때마다 주님께서는 너무도 기뻐하십니다.

작은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작은 물질이지만 정성으로 하나님께 드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이웃들은 쉬는 시간이고, 즐기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과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헌신을 받으신 주님께서, 우리를 특별한 사람으로 높여주시고, 특별한 축복의 손을 펼쳐 주실 것입니다.

이 축복이 함께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두에게 넘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소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문인로 57 삼풍동 상가 302호

​온라인 헌금

​신한은행 140-011-881970

​예금주:대한예수교장로회 영원한교회

전화번호

031-262-2674

 EMAIL

​예배시간안내

주일예배         1부   오전 11:00

                       2부   오후   2:00

수요찬양예배           오후   7:30

금요기도회              오전 11:00

새벽기도회(월~금) 오전   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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