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요약
Jul 21, 2024

본 받고 싶은 데살로니가 교회
(데살로니가전서 1:2-10)
주원영담임목사
성도 여러분. 신성경에는 우리가 본받아야 하는 모습을 보여준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몇몇 교회를 살피면서 무엇을 본받아야 하는지를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 첫 번째로 지난 시간 빌립보 교회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 교회를 통하여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기뻐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전도하고 선교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교훈도 마음에 새겼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시간으로 건강한 모습을 보여준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하면서 교훈을 받고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바울 사도가 2차 전도여행을 하는 중에 마케도니아의 빌립보를 거쳐 데살로니가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이 도시에 오래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선교 효과는 대단했고, 건강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우리가 데살로니가 교회를 통해서 배워야 하는 것은 ◉데살로니가 교회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는 교회였습니다. 5-6절 말씀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교회에 복음이 전파되었고,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성령의 기쁨으로 이 말씀을 받았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교회 공동체가 세상의 공동체들과 구별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그 가치관을 두고 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말씀으로 거듭난다고 가르칩니다. 말씀을 통하여 영적으로 자라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씀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이 말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이 선포될 때, “우리가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입니다. 똑 같은 말씀이 전달되는데, 어떤 사람의 인생은 변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전혀 변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말씀이 능력이 없어서일까요?
아닙니다. 문제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태도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문제를 네 가지 마음 밭에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막 4:1-25). “씨”는 같습니다. 그러나 “밭”이 다릅니다. 길가라는 밭이 있고, 돌짝과 같은 밭이 있고, 가시떨기와 같은 밭도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땅으로 잘 관리된 기름진 밭도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잘 관리된 기름진 밭과 같은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짧은 기간동안 신앙생활을 했지만, 좋은 결실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살전 2:13).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이 모습 때문입니다.
성도님들께서도 주신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에 새기시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배우는 건강한 교회의 모습은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는 자의 본이 되는 교회였습니다.
우리 모두가 오늘을 살아가면서 걱정하는 것은, 본받을 만한 지도자가 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름대로는 다 훌륭하고 내세울 것들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허점투성이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를 보니 본받을 만한 대상이 있어서 행복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그 모습을 본받았습니다(살전 1:6-7).
특별히 데살로니가 교회는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유대인들의 박해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성도의 집에 모여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행 17:5-7). 야손의 집에서 모여 서로를 사랑하고 권면한 이 모임이, 데살로니가를 변화시킨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배우는 건강한 교회의 모습은 ❸데살로니가 교회는 주의 오심을 기다리는 교회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건강한 종말론적인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저들 중에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린다고 말하면서 자신들의 일상적인 일을 등한히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런 자들에게 말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10절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살후 3:10). 이어지는 11-12절 말씀을 보니, 이렇게 규모 없고 무질서하게 사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이런 삶을 사는 자들에게서 떠나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강림을 기다리는 것은, 여전히 분명하고 중요한 신앙인들의 신앙고백이라고 바울 사도는 강조합니다(살전 1:10).
성도 여러분. 성경이 가르치는 종말신앙의 본질은, “오늘 내가 이 세상을 떠나 주님 앞에 선다고 해도 부끄러움이 없도록 준비하는 것입니다.” 바로 데살로니가전서의 결론이 이 신앙을 말하고 있습니다(살전 5:23). 성도들은 천국가는 그날을 준비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주님께서 오늘 강림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데살로니가에 살는 사람들이 데살로니가에서 예수를 믿는 성도들에게 붙여준 별명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7:1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사람들.“ 영어성경 KJV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세상을 뒤집어 놓은 사람들.”
교회가 할 일이 이것입니다.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교회가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서 이웃들을 가슴에 품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런 모습을 보여줄 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본받아, 이곳에 세워진 영원한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힘써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곳에 세워진 영원한 교회가 ❶기쁨으로 말씀을 받는 교회가 되고 ❷믿는 자의 본이 되는 교회가 되고 ❸주의 오심을 기다리는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Jul 14, 2024

본 받고 싶은 빌립보 교회
(빌립보서 4:1-7)
주원영담임목사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온 이후에 순수하게 한국인에 의해서 세워진 최초의 교회는 1884년 황해도 장연군에 세워진 “소래 교회”입니다. 이 교회가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가 아니라 우리 한국인 스스로가 세운 교회입니다.
또한 유럽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는 “빌립보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시면, 바울 사도가 제2차 전도여행 중에 루디아를 만나 전도를 하고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 그의 식구들 모두에게 세례를 베풀고 그 집에서 계속 모임을 가지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바로 그곳이 빌립보 교회이며 유럽 최초의 교회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빌립보 교회와 바울 사도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빌립보 교회를 통하여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❶하나의 공동체가 된 모습을 배워야 합니다.
빌립보 교회는 교회가 세워진 처음부터 비교적 건강한 교회로 성장했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도 예외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4:2절 말씀을 보니 두 분의 여성 성도 사이에서 있었던 갈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그들을 권면합니다.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이 두 지도자의 개인적인 갈등이, 교회의 짐이 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울 사도는 이 두 사람을 비난하기보다, 교회 공동체가 이 두 사람을 도와주어서 문제가 해결되게 해야 한다고 권합니다. 이어서 돕는 것과 함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이유도 말합니다. 3절 말씀입니다.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빌 4:3). 저들도 구원을 받을 사람들이고, 그래서 천국에서 함께 영생을 누릴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마음을 바꾸셔야 합니다. 살아가는 이곳 삶의 현장에서부터 사이좋게 지내는 연습을 하셔야 합니다. 서로 생각이 다르고 표현하는 방법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하나가 되어가는 교제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진리를 마음에 새기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울 사도는 이미 빌립보서 2:1-11절에서 하나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한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5). 자신을 낮추신 예수님의 이 마음을 품는다면, 종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수준에 맞추신 그 모습을 닮는다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❷기뻐하는 교회의 모습을 배워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4:4절 말씀을 통하여 빌립보 교회가 인간관계의 갈등을 넘어서서, 항상 기뻐하는 교회로 세워가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인간관계의 갈등 때문에 사이가 나빠지면, 제일 먼저 잃어버리는 것이 기쁨입니다. 특별히 신앙인들이 기쁨을 잃어버리면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쁨을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4:5절 이하에서 기쁨을 회복하는 비결을 우리에게 알려주었습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빌 4:5). 너그럽게 대하면, 기쁨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관용(너그러움)을 베풀면서 살아가면, 기쁨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 모습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바울 사도는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는 또 한가지 비결을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6-7). 기도하는 것입니다. 염려가 되는 것이 있을지라도 다 주님께 맡기고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염려가 되는 문제들을 나의 주인이 되시는 주님께 맡기면 염려했던 문제들은 더 이상 내 문제가 아니라 나의 주인이신 주님의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문제들을 주님께 맡기는 이 모습이, 염려를 이기는 길이고 기쁨을 잃지 않는 삶을 사는 비결입니다. 이 진리도 마음에 새기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❸전도하고 선교하는 교회의 모습을 배워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서, 빌립보 교회와 성도들이 선교에 힘쓰는 것을 칭찬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빌 4:15). 이어지는 4:16절 말씀을 보니 한번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17절 말씀을 보니 이 헌신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자발적인 헌신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기뻐한 것입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는 성도님들도 빌립보 교회와 성도들처럼 성숙한 성도의 모습이 보여지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빌립보 교회를 생각하면서 배우는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❶하나의 공동체가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❷기뻐하는 교회가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❸전도하는 교회, 선교하는 교회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하시면서, 헌신과 수고를 아끼지 않음으로 하나님께서 갚아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풍성하게 받아 누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Jul 7, 2024

이것을 감사합시다 (맥추감사주일)
(여호수아 5:10-12)
주원영담임목사
구약성경에 기록된 곡식이라는 단어는 모두 “보리”를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보리에 익숙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출23:16). 그리고 모세가 약속의 땅 가나안이 보이는 느보산에서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언을 남깁니다(신16:9-10). 모세의 이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맥추절을 지켰습니다.
특별히 여호수아 3:15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넌 때가 곡식을 거두는 때였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리 거두는 바로 그때에 요단을 건너라고 하십니다. 하필이면, 왜 그때입니까? 비가 많이 와서 강물이 범람하는 때인데, 왜 그때 강을 건너라고 하셨을까요?
그런데 본문 여호수아 5:10-12절을 보니,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고 떡을 먹고 볶은 곡식을 먹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조금 전에 맥추절을 지켰다는 말입니다.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맥추감사 절기를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광야에서는 맥추감사절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온 지금 첫 번째 맥추감사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을 건넌 후에 요단강 바닥에서 가지고 온 돌이 세워진 길갈에서 첫 번째 맥추감사절을 지키고 있습니다(수4:20). 그리고 그 이유를 말씀하십니다(수5:9). 그곳 길갈에서는 맥추감사절과 함께 유월절도 지키고 할례도 행하였습니다.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 바닥에서 가지고 온 돌을 세우고 첫 번째 맥추감사절을 지켰습니다. 하나님을 기념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높였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모든 곳에서 영광을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교회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높임을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 년에 세 번은 꼭 나에게로 나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출23:14-17). 삶의 현장에서만 머물지 말고, 가정에만 있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너희 자신을 보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너희 자신을 드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서를 읽어 가시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표현이 있습니다. 가나안 정복전쟁을 승승장구하면서 계속해서 길갈로 돌아왔다는 표현입니다(수10:15. 10:43).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수아가 지금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왜 계속해서 길갈로 돌아오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로 그곳 길갈에 하나님을 기념하는 돌이 세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돌을 세워 놓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곳 길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첫 번째 맥추감사절을 지킨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저들이 첫 번째 맥추감사절을 지키면서 감사한 것이 무엇입니까?
➊애굽에서의 수치를 떠나가게 하신 것을 감사하는 제사였습니다(수5:9). 저들이 지킨 첫 번째 맥추감사절은,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내려주신 축복으로 전쟁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을 감사하는 제사가 아니었습니다. 노예로 살았던 애굽에서의 수치를 떠나가게 하신 것을 감사하는 제사였습니다.
우리들의 감사의 출발점도, 세상에서 만사가 형통되는 그런 조건이 먼저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종된 우리에게 자유함을 주시고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삼아 주신 은혜를 감사하는, 이런 감사가 먼저가 되어야 합니다.
➋보잘 것 없는 작은 것일지라도 감사하는 제사였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손에 들려진 것은, 보잘 것 없는 보리이삭 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곡물입니다. 단지 배를 채우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가나안에서 제일 먼저 얻은 것이기에,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첫 번째 감사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첫 번째 맥추감사절은 거창한 것으로 제사를 드린 감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❸거두어 가셨음에도 불구하고 드린 감사의 제사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여년 동안의 광야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의 초입인 길갈에 도착한 후에 하나님께서는 저들에게서 소중한 것들을 다 거두어 가셨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거두어 가셨습니다. 낮에는 그늘이 되어주고 밤에는 따듯함이 되어주면서 저들을 인도해주고 지켜주었던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거두어 가신 것입니다. ◎“만나”도 거두어 가셨습니다. 광야 40년의 시간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 때문에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수5:12). 메추라기도 만나와 함께 거두어 가셨을 것입니다. ◎“모세”가 사라졌습니다. 출애굽에서부터 약속의 땅 가나안이 눈 앞에 보이는 모압에 이를 때까지 하나님과 대화를 하며 이스라엘을 인도한 지도자 모세가, 저들에게서 사라졌습니다. 기력도 쇠하지 않았고 눈도 잘 보였지만 하나님이 모세를 데려가신 것입니다(신34:7).
그렇기에 길갈은, 하나님께 감사할 현장이 아니라,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소연을 해야 하는 장소라고 생각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저들은 그곳에서 감사를 드립니다. 첫 번째 얻은 것으로 맥추감사의 제사를 드립니다.
욥의 고백이 생각납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
감사할 것이 없다고 생각되십니까?
첫 번째 맥추감사절은 ◉내가 죄악에서 구원받은 것에 대한 감사의 제사였습니다.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일지라도 감사하는 제사였습니다. ◉거두어 가셨을지라도 감사하는 제사였습니다. 이 모습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맥추감사절에 드린 감사였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축복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가 맥추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두에게 풍성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Jun 30, 2024

하박국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하박국 3:1-4. 3:16-19)
주원영담임목사
하박국서를 묵상하다 보면, 배울 것이 많습니다. ◉솔직함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후에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하여야 하는가? 이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를 드린 후에 우리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하박국서를 통하여 배우고 교훈을 얻으려고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후에 어떤 자세를 취했는지, 2:1절 말씀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기도를 드린 후에 파수하는 성루에 올라가서, 그곳에 서 있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모든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시키겠다고 합니다. 이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말씀하십니다(합2:2-20). ◎성경으로 돌아가라. ◎성경 속에서 주님을 만나라. ◎믿음을 회복하기 위하여 스스로를 점검하라.
오늘 본문은 이 일이 있은 후의 이야기입니다. 3:1-4절 말씀과 16절 말씀을 보세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만나는 문제들은 모두 대동소이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과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하는 이야기들을 들어봐도 대동소이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자기 앞에 닥친 문제들을 풀어가는 방법과,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들을 풀어가는 방법은 다릅니다. 바로 하박국서가 이 진리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먼저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경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해답이 되고 열쇠가 되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면, 그 말씀이 내 속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나를 주장하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의 믿음은 점점 강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통하여 내 앞에 있는 문제들이 해결되어 집니다.
이제 하박국의 질문에(합2:1) 하나님께서 대답하십니다(합2:2-4). 그리고 하박국은 깨닫고 말씀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이렇게 찬양합니다(합3:3. 3:7. 3:8. 3:10).
이 말씀들은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불의와 불순종을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들을 끝까지 보호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이루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대적을 물리쳐주시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누리는 부귀영화와 영광도 사라지도록 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스스로 강하다고 자랑하는 그 어떤 것이라도 창조주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나 여호와 하나님은 전능하시다고 하십니다. 세상의 그 어떤 권력이나 힘일지라도 나 여호와 앞에서는 대적이 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문제를 앞에 놓고 간절히 간구하는 나를 생각해 주시고 내 곁으로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저 멀리 바다 끝에 있고, 저 높은 산꼭대기에 있을지라도, 그곳에서도 나를 보호하시고 나를 위하여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대적이 나를 에워싸고 있을지라도, 그곳에서도 나를 위하여 싸우시고 승리를 안겨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진리를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하박국이 만났던 그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진리를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모습을 3:4-6절과 1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된 하박국이 노래합니다. 3:2절 말씀과 3:16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놀라움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몸이 떨리고 온몸에는 전율이 흐르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위대하시고 광대하신 이분 하나님을 만나시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내 창자가 흔들리는 경험, 내 마음이 변화되어지는 경험, 내 입술이 하나님 앞에서 떨리는 경험. 신앙생활을 해 가시는 동안 이런 경험들을 저와 우리 모두가 경험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일이 있은 후로는 하박국의 관심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기쁨으로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합 3:17-18). 이어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합 3:19).
성도 여러분. 내 소원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일치가 되기만 하면, 내가 원하는 것들은 물론이거니와 간구하지 못했던 것까지도 나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채워주십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깨달았던 진리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자신의 소원만을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기도를 드리고 있는 하박국 선지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를 위하여서만 기도하지 말고, 나의 소원이 너의 소원이 되기를 위하여 기도해라. 그리하면 내가 네 소원들을 다 응답해 주겠다.
이제 우리는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는지를 확실히 알아서 나도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자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