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요약
Jun 23, 2024

삶의 현장에 세워야 하는 신앙의 돌 (여호수아 4:15-24 )
주원영담임목사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길갈에 정착을 하면서, 요단강 바닥에서 가지고 온 돌을 그곳에 세우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제사(맥추감사)를 드렸습니다. ➊애굽에서의 수치를 떠나가게 하신 것에 대한 감사의 제사였습니다. ➋보잘 것 없는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감사의 제사였습니다. ❸거두어 가셨음에도 불구하고 드린 감사의 제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요단강에서 돌을 가지고 나오라고 했습니까?” 그 이유는 여호수아 4:21절 이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하신 일을 영원히 기억하게 하시기 위해서 돌을 세우라고 하신 것입니다.
중요한 점은, “이 돌들이 어디에 세워졌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유숙할 곳에 두었습니다(4:8).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멈춘 곳에 세웠습니다(4:9). ◉이어지는 4:20절 말씀을 보시면, 길갈에 돌을 세웠습니다(4:20).
하지만 돌을 세웠다는 것보다 돌을 세운 의미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돌을 세운 순서가 더욱 중요합니다.
◉돌은 제일 먼저 강바닥에 세워졌습니다. 제사장들의 발자국만 있었던 곳이고, 약 200만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가면서 자신들의 발자국을 남긴 곳입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유숙하는 곳에 돌을 세웠습니다. 우리의 가정입니다. ◉마지막으로 길갈에 돌을 세웠습니다. 교회를 뜻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뜻하는 길갈에서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유숙할 곳, 바로 가정에 돌이 세워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강바닥이 의미하는 내 삶의 현장에 가장 먼저 돌을 세우기 원하십니다. 내 삶의 현장에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특별히 로마교회처럼 겉으로는 화려하고 대단해 보이는 교회일지라도, 하나님의 이름이 세상 사람들에게 모독을 받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됩니다(롬2:21-24).
오늘 성령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양심을 향하여 소리 높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환경을 통하여, 사람을 통하여,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통하여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기념비가 세워지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화려한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들의 손에 잡을 수 있는 것들로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기념비가 세워지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길갈에 세운 돌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시기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이곳, 교회에 감사의 돌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유숙할 곳에 세운 돌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시기에, 십니다. 우리의 가정에서 믿음의 돌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나 길갈보다, 우리가 유숙할 곳보다, 더 먼저 돌을 세워야 할 장소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삶의 현장입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이 보이는 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날 교회가 다시 회복되고, 그리스도의 영광이 다시 드러나고,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자가 되는 것은, 어떤 것보다 먼저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신앙의 돌을 세워가는 모습이라는 진리를 마음속에 깊이 새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모습입니다.
이와 같은 간절한 주님의 원하심을 기억하고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계속해서 돌을 세워가시는 성도님들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Jun 16, 2024

우리가 꿈꾸는 세상에 없는 교회
(누가복음15:1-7)
주원영담임목사
오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교회의 본질과 신앙의 본질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들은 본질이라는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습니다. 본질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 상황을 지탱해 주는 힘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교회의 본질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 땅에 세워진 교회들을 봅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교회들은 세상에 있는 교회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세상에 없는 교회도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꿈꾸신 모습을 가진 교회입니다. 지금 주님께서 비유를 통하여 그 이야기를 하시고 계십니다.
1-2절 말씀을 보시면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에 모여있는데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은 좋은데, 죄인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은 못마땅하다는 모습입니다. 자신들과 죄인들은 근본이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적인 용어로 말씀드리면 “교만”한 모습입니다. 저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는 믿음의 공동체의 사람들인데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예수님께서는 교회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성도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자랑할 이유는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부르셨을 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교회의 힘과 성도들의 영향력은 교회 안에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의 세상에서 넘쳐나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교회를 생각하시는 예수님의 방식입니다.
1-2절 말씀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말씀을 먼저 전한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드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세리와 죄인들은,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을 나누시기 전에 음식을 나누시면서 함께 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에 있는 교회들은 자꾸 가르치려고만 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없는 교회에서는 가르치는 것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을 전하고 함께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나누는 공동체의 모습이 보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기록된 세 가지 비유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시려는 메시지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에 있는 교회는 우리의 마음이 기쁜 교회일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없는 교회, 우리가 꿈꾸는 교회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기쁜 교회입니다.
성도 여러분. 100마리의 양을 가진 주인이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기 위해서 99마리를 남겨둔 채 한 마리의 양을 찾아다닙니다. 별볼일 없는 양이었을 수 있습니다. 왕따를 당한 양이었을 수 있습니다. 공동체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양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찾아 나섭니다. 99마리의 양들을 놔두고 험한 길을 다니면서 찾습니다. 그리고 잃어버렸던 한 마리의 양을 찾아냈습니다. 그때의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눅15:5-6).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이어지는 비유들의 내용을 다 말씀드리지 못하지만, 그 비유들의 결론은 동일합니다. 기쁨의 잔치를 베풉니다. 함께 즐거워합니다(6절.9절.24절). 오늘 우리가 꿈꾸는 교회에서 보여져야 하는 모습입니다.
“교회답다”는 말은, 교회에는 세상에서 느끼는 기쁨과는 다른 기쁨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답다”는 말은, 성도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느끼는 기쁨과는 비교되지 않는 기쁨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바로 우리가 꿈꾸는 세상에 없는 교회는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냄새가 나는 교회입니다.
이곳에 세워진 영원한 교회가, 예수님의 냄새가 나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그런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 주시고 한 마음이 되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Jun 9, 2024

참 그리스도인의 삶
(고린도전서 10:23-24)
주원영담임목사
성도 여러분. 신앙인들의 관심사는 이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런데 세상 사람들의 생각은 항상 이법적입니다. “옳고 그르고. 좋고 싫고. 맞고 틀리고.”
하지만 성도인 우리들은 세상의 삶의 방법으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만일 우리도 세상과 함께 세상의 방법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옳은 방법같이 보일지라도 주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세상의 향하여 생명이 살아있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세상은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자유하다”는 것입니다(고전10:23).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어떠한 장애물도 없다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를 믿고 신앙인이 되면, 자유가 없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을 가둘 수가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장소입니다. 오히려 영원한 세계로 넘어가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삶에서 모든 일에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를 가졌지만, 그 자유를 다 누리지 않는 것이 좋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고전10:23-24).
자유로운 모습이 그리스도인의 특권이라고 말씀하시고는, 왜 그런 모든 것에서 다 자유하지 않는 게 좋은 것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바로 이런 모습 속에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전후에는, 우상의 제물에 관한 바울 사도의 교훈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상에게 드린 제물을 먹어도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상황을 잘 알아야 오해가 없게 됩니다. 바울 사도가 이 말씀을 했던 당시에는 우상에게 제사를 지낸 후에 그 제물의 일부분을 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그러니까 “우상에게 드린 제물을 먹어도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문제는, “시장에서 사온 고기를 먹었을 때, 죄가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조심스럽지만, 결론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고기가 우상에게 제사를 지낸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다 자유롭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에게는 모든 것이 자유하기에 먹어도 되지만, 우상에게 바친 음식은 먹지 않는 편이 좋다는 말입니다. 먹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흑백의 논리로 판단하는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과 출발이 다르다는 말입니다. 출발이 다르기에 삶이 같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유함을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자유스러운 모습으로 자신의 생각을 주장한다고 말하지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없는 모습입니다. 신앙인으로 가장 위험한 모습입니다. 그 모습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상처를 받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이해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 유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무시하거나 파괴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신앙인들에게는 올바른 판단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내 주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자유와 힘이 내게 있더라도, 주님의 유익과 주님의 덕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서는, 어떤 것이 더 유익하며, 어떤 모습이 더 덕을 세울 수 있는 모습일까? 이것을 신앙의 판단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설교의 제목인 “참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이웃의 유익을 구하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입니다(고전10:24). 우리의 삶이 이와 같을 때, 살아가는 동안 만나는 모든 신앙의 문제들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잘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만을 세상에 전하는 주의 귀한 자녀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축원합니다.
Jun 2, 2024

소원을 이룬 한 여인의 믿음
(마태복음 15:21-28)
주원영담임목사
오늘 우리가 합독한 말씀에는 버림받는다는 두려움을 믿음으로 잘 극복하고 마침내 큰 은혜를 받은 한 여성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여인은 버림받을 뻔했지만, 버림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 인정을 받고 큰 칭찬과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이 여성이 버림받지 않고 은혜를 받은 이 사건을 생각하면서, 이 여인이 극복한 장애물들이 무엇이며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생각하면서 교훈을 얻으려고 합니다.
❶현실적인 냉대를 경험했고 극복했습니다. 성경은 이 여성이 살고 있는 곳을 가나안이라고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두로와 시돈이라는 해안 도시에서 살던 여인이었다는 말입니다. 지금의 레바논 여인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귀신 들린 딸의 병을 고침받기 위하여 예수님께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간청에 별로 관심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마15:23). 따뜻함이라고는 조금도 없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우리들도 종종 이런 상황에 직면합니다.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모두가 나를 힘들게 하고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로 이 여인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 소리를 높입니다(마15:22.25). 그리고 이 기도가 마침내 주님을 감동시켰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저런 어려운 일들이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을 때, 견디기 힘든 냉혹한 현실이 나에게 두려움을 줄 때, 이 여인처럼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여 나를 도와 주시옵소서.” 내가 믿고 의지하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들으시고 기적을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이 여인이 극복한 또 하나의 어려움은, ❷자존심(자존감)의 상처를 받았지만 이겨냈습니다. 현실에서 받은 상처를 극복한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이런 일을 당할 때 중요한 것은, “상처를 받을 때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자신을 합리화시키거나, ◉그러나 현실을 인정하고 자신을 살펴보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가나안 여인은 이런 수모를 극복했습니다(마15:27). 예수님께서 상처가 되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겨냈습니다.
성도 여러분. 살아가는 동안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이런저런 말을 들을 때, 이 여인처럼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의 긍휼하신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❸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을 경험하면서 이겨냈습니다. 다니엘의 세친구가 보여 주었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으로 이겨냈습니다. 때때로 나는 절박한데 하나님께서는 침묵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더라도 그 상황을 극복해야 합니다. 응답의 은혜를 주실 것을 기대하면서 이겨내야 합니다.
지금 이 여인은 간절한 기도에는 꼭 응답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주 앞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간절히 간청합니다(마15:25). 결국 예수님께서 칭찬하실 수밖에 없는 믿음을 보여준 것입니다(마15:28).
성도 여러분. ❶냉혹한 현실이 내 삶을 가로막고 있습니까?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❷자존심(자존감)의 상처를 받으셨습니까? 그 상처를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❸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 같으십니까?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이 이와 같을 때, 우리 귀에 부드러운 주님의 음성이 들릴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