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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약

Mar 17, 2024

온전히 헌신하신 예수님
(요한복음 12:24-26)

주원영담임목사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십자가를 앞에 놓으시고 마지막 사역에 최선을 다하시는 주님을 생각하는 사순절 기간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우리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생각하며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역들을 배우려고 합니다. 주님의 분노와 침묵과 눈물과 기도와 열정과 인내와 순종과 전도와 순종을 배우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모습들은 “헌신”이라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이러한 모습들을 기억하시고 닮아가시는 복된 성도님들의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목요일 깊은 밤에 붙잡히셨습니다. 그리고 이리저리 끌려다니시다가 마지막으로 예수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던 빌라도 앞에 끌려가셨습니다. 그리고 빌라도는 죄 없으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결정합니다. 이 결과로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고 “비아돌로로사의 길”을 걸어 골고다로 향하셨습니다. 오전 9시쯤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께서는 해가 빛을 잃은 12시를 넘겨 3시쯤 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채로 숨을 거두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면서 말입니다. 그때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고 누가복음 23:44-4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시신은 십자가에서 내려지고 아리마태 사람 요셉의 돌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바로 이 예수님께서는 예수님도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가지신 분이시지만, 살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죽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이것을 분명히 아시고 사셨습니다(마20:28).


성도 여러분. 주님의 십자가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헌신”입니다. “진정한 헌신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남을 위하여 자신을 던지는 헌신(희생)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가치있는 자들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던지신 것이 아닙니다. 가치 없는 자들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던지셨습니다. 죄인들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던지셨습니다. 헌신은 남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던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이와 같은 헌신의 자리에까지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진정한 헌신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되, 온전히 순종하는 모습입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은 헌신의 결과(열매)는 부활의 영광으로 나타났습니다(요12:24). 그리고 헌신의 모범을 보이신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마 16:24. 10:38).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길을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길은 너무나 힘든 길이기에, 그래서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따라오라고 하십니다. 헌신 뒤에는 부활의 영광이 있다는 것도 말씀하시면서 따라오라고 하십니다. 영원한 하늘나라의 상급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함께 해 줄 것을 믿고 따라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갚아주고 해결해 주고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늘의 축복을 부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완벽하게 따라가지는 못할지라도, 우리의 삶에서 예수를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그런 모습이 보여지는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Mar 10, 2024

진짜 어리석은 자
(시편 53:1-6)

주원영담임목사

10여년 전부터 세계 여러나라에서 기독교가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기독교를 박해하는 나라와 단체가 전 세계를 향하여 무서운 속도로 그 세력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지난 2013년 11월 8일. 대한민국 부산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WCC 부산총회“가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종교다원주의”를 인정하는 듯한 입장도 밝혔습니다. “종교개종금지이론”도 긍정했습니다. 무슨 이야기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정말 어떤 분이신가?” 하는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바로 다윗이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주었습니다(시 53:1).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렇게 말입니다.

다윗의 이 선언은 블레셋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말이 아닙니다(롬3:12. 참고). 블레셋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이 아니라, 다윗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말이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그렇기에 다윗은 지금 블레셋을 비롯한 다른 사람을 책망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허물과 잘못을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는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웁니다. 자신이 어리석은 삶을 살고 있다고 부끄러워하면서 자책하는 모습을 배웁니다. 우리가 다윗의 이 모습을 마음속 깊게 받아드려야 합니다. 다윗은 지금,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다고 말한다는 이 말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나는 그렇지 않다고, 나는 다윗과 다르다고 자신있게 말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게 자신있게 말하신다면, 그분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진리도 없습니다. 요한일서 1:8절과 10절 말씀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진리이고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다윗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 나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렇게 고백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이 고백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자비로 우리에게 다가오실 것입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모든 허물을 덮어 주실 것입니다. 다시 한번 새 힘을 주셔서 독수리와 같이 힘차게 날 수 있는 힘을 주실 줄 믿습니다.

Mar 3, 2024

최고의 선물
(요한복음 3:16)

주원영 담임목사

요한복음 3:16절 말씀은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성경말씀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지고 암송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담겨져 있고,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 속에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4가지의 축복으로 약속되어 있습니다.

◉“사랑하사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은 눈물겨운 사랑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무엇이든지 넘쳐나게 주시려고 생각하시면서 하루를 천년같이 인내하시면서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바로 사랑하신다는 증표가 “인내하심”이라는 말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포기해 버리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면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을 잘 표현해 주신 말씀이 탕자의 비유입니다(눅15:11-32).

성도 여러분. 이 사랑을 거부하는 것은 죄입니다. 그래서 죄는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도님들에게, 이처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삶의 모든 시간 속에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가장 귀하고 좋은 것을 주시는 축복”입니다. 독생자를 주셨으니.

사랑은 열 개에서 하나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다 주는 것입니다. 다 주고도 또 줄 것이 없는가를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심지어 십자가의 제물이 될 것을 아시면서도 아들을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의 그 어떤 사랑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아니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이 사랑을 잊지 않고 감사하시면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구원해 주시는 축복”입니다.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구원의 의미는 대단히 크고 넓습니다. 구원은 지옥에서 구출 받는 것을 말합니다. 불구덩이에서 탈출하도록 해 주신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로마서 10:13절에서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롬 10:13). 누가복음 16장에 기록되어 있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가 이 축복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눅16:19-31). 성도 여러분. 지옥은 상상의 세계가 아니라 실제상황입니다. 성도님들의 사랑하는 가족과 형제와 자녀와 이웃들이 그곳에 가지 않도록 구출해야 합니다. 구원해 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바로 이 일을 하시기 위하여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이 복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영원한 삶을 주시는 축복”입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육신의 몸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복은, 구원해 주시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영원한 삶을 함께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신앙인들이 감히 영생을 말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영생은 그리스도 안에서 최선을 다한 성도들이 누리는 은혜이고 축복이고 열매입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두에게, 이 영생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Feb 25, 2024

믿음으로 도전하는 삶이
주는 축복
(마태복음 14:22-3)

주원영 담임목사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도전” 또는 “모험”이라고 말합니다. 출생 그 자체가 모험입니다. 교육현장이라는 공동체에서 함께 교육을 받는 것도 모험입니다. 직업을 선택하는 것도, 두 남녀가 결혼이라는 것도 정말 대단한 모험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등장하는 베드로가 지금 모험을 하고 있습니다. 파도가 넘실거리는 갈릴리 바다를 아무런 장비도 없이 걸어가겠다는 모험입니다.

모험을 선택하느냐? 선택하지 않느냐? 하는 것은 베드로의 몫이고 우리들의 몫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도전의 삶이, 도전해볼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하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런 도전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축복은 무엇일까요?

먼저 ⓵순종의 삶에 도전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단순히 물 위를 걸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영웅심에서 모험을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행하라고 명하시면 행하겠다는 순종의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마14:28). 바로 이 모습이 그리스도인의 모험이 세상 사람들의 모험과 다른 점입니다. 베드로가 모험의 기준으로 삼았던 것은 “예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주님의 명령이라면 순종하겠다는 결단이 있었기에 물 위를 걷겠다고 도전한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신앙의 모험을 할 때, 그 기준이 말씀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순종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모험이 후회없는 모험이 되기 위해서는, 모험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의 명령이 있었는가?” 이것입니다(마14:28-29).

순종의 삶에 이어 ⓶믿음의 삶에 도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모험은 철저하게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믿음장인 히브리서 11장에 이름이 기록된 모든 믿음의 선진들은 모험을 시작한 사람들입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주님의 말씀만을 믿고 모험을 했습니다.

모험 앞에서 두려워하지 말고 말씀으로 철저하게 점검하고 행해야 합니다. 그 기준은, “순종의 모험”이고 “믿음의 모험”이어야 한다는 진리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모험들을 통하여 우리 삶의 현장에서는 놀라운 기적들이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축복입니다. 비록 잠간이지만 베드로는 물 위를 걷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배 위로 오르시자마자 신기하게도 바람이 그치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베드로가 모험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경험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갈릴리 바다에서 한밤중에 파도와 싸우며 고생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고 계시다가 도와주시려고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마14:27).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은 하나님의 임재는 베드로에게만 함께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도 함께 하십니다. 그런데 무엇이 걱정입니까? “내가 전능한 하나님이다. 지금 너와 함께 하고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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