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요약
Dec 30, 2024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⓵
(시편 46:7-11)
주원영담임목사
하나님께서 또 다시 우리에게 복된 새해를 열어주셨습니다. 새롭게 열리는 2025년 한 해 동안, 성도님들의 가정과 삶의 현장에, 우리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5년동안 영원한 교회가 붙잡았던 표어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2020년 : 여호와께서 내게 관계된 것을 완전케 하시리라 (시 138:8).
※2021년 :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사 9:7).
※2022년 :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시 46:10). 코로나라는, 믿기 싫고 견디기 힘든 그런 시간이었지만 주님께서 하나님 되심을 믿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가만히 기다렸습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주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2023년 : 주께서 생명의 길을 네게 보이시리라 (시 16:11).
※2024년 :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무너지리라 (슥 4:7). 우리 모두의 삶 속에는 이런저런 모양의 큰 산들이 있지만 우리는 담대히 외쳤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말합니다.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능력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영으로만 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면 어떤 큰 산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을지라도 평지가 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수행의 종교가 아닙니다. 입을 열어 고백하는 종교입니다. ◎시인하는 것입니다(롬 10:9). ◎고백하는 것입니다(마 16:16). ◎선포하는 것입니다(막 11:23). ◎명령하는 것입니다(막 4:39). ◎독백하는 것입니다(마 9:21). 시인해야 할 때는 시인하시고, 고백해야 할 때는 고백하시고, 선포할 때는 선포하시고, 명령해야 할 때는 명령하시고, 독백해야 할 때는 독백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에,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큰 산이 산산히 무너져 평지가 될 줄 믿습니다. 골리앗을 향하여 소년 다윗이 외칩니다(삼상 17:45). 그때 골리앗이 쓰러졌습니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철홍성 여리고 앞에서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외쳤습니다. 그때 성이 무너지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태양과 달을 향하여 머무르라고 명령했을 때에 태양과 달이 머무르는 믿을 수 없는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시 81:10).
새롭게 열려지는 2025년도에는, 약속의 말씀들을 굳게 붙잡고 우리의 입을 열어 고백하고 외치는 은혜가 성도님들의 삶에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가 붙잡고 입을 열어야 하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말씀을 읽어가는 중에, 시편 46편의 말씀이 제 마음에 울렸습니다.
시편 46편의 표제를 보시면 “알라못에 맞춘 노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알라못은 크게 외치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고라 자손들이 기록했다고 합니다. 민수기 16장을 보시면 고라 자손들은 처음에는 반역자들이었습니다(모세를 향하여. 땅이 갈라져서 250명의 사람들이 땅속으로 빨려들어감. 염병이 돌아서 17,400여 명이 전염병으로 죽음.)
그런데 그런 가운데 살아남은 몇몇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전을 찾았고 성전을 섬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고백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시 46:7.11). 고라 자손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불렀을까? 왜 전능하신 하나님을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불렀을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읽어 내려가다 보니, 고라 자손들은 다른 성경에서도 하나님을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시 84:8). 성전에서 하나님을 노래하고 찬양하는 아삽도 하나님을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시 75:9. 시 76:6. 시 81:1. 시 81:4). 다윗도 하나님을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시 20:1).
성도 여러분. 고라 자손들이 하나님을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아삽도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다윗도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저들이 왜 하나님을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간절히 불렀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묵상해 보셨습니까? 혹시 이 부르짖음에 하나님의 깊은 뜻이 숨겨져 있지는 않을까요?
물론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출 3:6).
하나님께서는 수 많은 자녀들을 두셨지만, 오직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불려지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오직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불려지기를 원하셨는지를, 2025년 한 해동안 우리가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야곱의 이야기는 창세기 25장에서 3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부분을 보시면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을 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상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창 32:27-28).
그날 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싸워서 이겼다는 이름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이제 야곱은 더 이상 야곱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았고, 그의 12 아들들을 통하여 12지파를 이루었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야곱을 이스라엘로 부르신 것은, 야곱을 이긴 자로 승리한 자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약속대로 야곱은 이긴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자를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허물까지도 덮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간구와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축복해 주시고 승리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바로 이 하나님께서, 야곱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2025년 한 해 동안 야곱의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깊이 개입하셔서, 우리의 허물을 덮어주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강하게 해 주시고, 우리의 부족함도 채워주시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인도해 주시고, 우리에게 승리의 면류관을 씌워주시는 하나님으로 다가오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개입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이스라엘이 되게 해 주시고, 승리자가 되게 해 주시고,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붙잡고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때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야곱의 하나님으로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허물과 연약함과 부족함까지 다 덮어주시고 우리에게 새 은혜를 입혀 주실 줄 믿습니다. 야곱을 이스라엘로 삼으신 하나님께서, 야곱된 나를 이스라엘로 삼아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도 야곱처럼 부족하기 그지없는 자일지라도,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신다고 외치면, 그 외침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가 되셔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간섭하시고 축복해 주셔서 우리도 이스라엘이 되고 승리자가 되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이 은혜가,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면서 2025년을 하나님께 맡기는 성도님들 모두에게 넘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Dec 28, 2024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평지가 되리라
(스가랴 4:5-10)
주원영담임목사
스가랴서에는 스가랴가 본 8가지 환상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오늘 본문 앞에는 5번째 환상인 “순금 등잔대와 두 감람나무의 환상”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환상은 세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성령의 역사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이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한 역사이다.”
영원한 교회는 이 환상에 이어지는 4:7절 말씀을 2024년 표어로 붙잡았습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평지가 되리라”
성도 여러분. “큰 산”은, 장애물을 말하고 있습니다. 스룹바벨 앞에 우뚝 서 있는 큰 산은,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 것들”입니다. 지금 성전을 건축해야 하는데,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게 하는 너무나 많은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그 내용이 에스라 3-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성도님들의 삶의 여정 중에 이런저런 높고 큰 산과 같은 고통과 시련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을 때, 이 말씀을 기억하시고 담대하게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평지가 되리라.” 아멘.
바벨론과 싸워 이긴 “고레스”가 “파사 왕국”을 세우고 왕이 되면서 70년 동안이나 바벨론에서 포로의 모습으로 눌려 살았던 이스라엘을 향하여 칙령을 발표합니다(스 1:1-4). “너희 유대민족들은 고국으로 돌아가도 좋다. 그리고 무너진, 너희가 섬기는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해도 좋다.”
성도 여러분. 고레스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칙령을 발표한 것입니다. 기적입니다. 생각하지도 못한 기적의 칙령입니다.
그래서 스룹바벨과 함께 포로의 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백성들이 무너진 성전을 건축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어려움과 방해꾼들 때문에 그 일을 진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스가랴에게 환상을 보여주시면서 깨닫게 하신 환상이 바로 본문 앞에 기록된 다섯 번째 환상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해서 봉헌하려는 저들 앞에서, 모든 어려움들은 해결되어 평지가 될 것이다. 환상을 통하여 이 진리를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평지가 되리라.”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슥 4:7).” 저들이 성전을 준공하면서 머리돌을 세으면서 감격의 찬송을 올려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고백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찬양합니다(슥 4:6).
성도님들의 삶에서도 저들과 같은 이런 고백이 터져 나오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9절 말씀을 보니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어려움이 많을지라도, 스룹바벨과 함께 시작한 이 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스룹바벨의 손이 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은즉 그의 손이 또한 그 일을 마치리라 (슥 4:9).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계획하신 일을 시작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시작하셨으면 그 일을 끝내시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니까, 15-6년동안 지지부진했던 성전 건축의 일이, 불과 4년 만에 완성되었습니다.
성전을 짓기 시작할 때에는 작은 돌 하나하나를 쌓으면서 시작했을 것입니다. 미미해 보였을 것입니다. 성전을 건축하는 일을 방해하는 자들이 이런 모습을 보고 비웃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스룹바벨은 다림줄을 잡고 그 일을 총지휘했습니다. 그리고 은혜 가운도 마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을 시작하시는 “알파(Α)”이신 동시에, 끝마침이 되시는 “오메가(Ω)”이심을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도님들을 축복합니다. 성도님들께서 하시는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면 실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축복으로 회복하고 번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감당하는 자에게 은총을 베푸십니다.
이 진리를 믿으시고, 살아가시는 동안 힘들지라도, 때로는 어려울지라도, 그래서 내 힘과 내 능력으로 되지 않아서 포기하고 싶을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능히 이길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으로 나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믿음으로 나아갈 때에,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큰 산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무너져 평지가 되는 은혜가 성도님들의 삶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Dec 24, 2024

하늘에서 들려온 노래
(누가복음 2:8-14)
주원영담임목사
Merry Christmas
성탄절은 예수님께 경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께 경배하며 영광을 올려드리는 날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예수님의 탄생을 경배하기 위하여 오신 성도님들이야 말로, 올바르게 크리스마스 알고 크리스마스를 지키시는 분들이라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도님들께서는 성탄전야에 드려진 촛불예배는 “오스트리아”에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시골에서 살고 있었던 가난한 수선공이 이웃을 도우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는데, 주님께서 탄생하시기 전날 “주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다 주셨는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생각을 하고는 실천에 옮겼습니다. 촛불을 창가에 밝힌 것입니다. 이 가난한 수선공의 뜻을 알기 시작한 동네 주민들이 성탄 전날이 되면 모두가 자신들의 집 창가에 촛불을 켰습니다. 이것이 성탄전야의 드리는 촛불예배의 시초가 된 것입니다.
◎산타크로스는 “트루키”의 선행의 삶을 살았던 “니콜라우스”가 세상을 떠났을 때 사람은 그를 성자라고 불렀습니다. 그후 트루키 사람들은 니콜라우스의 정신을 기억하며 성탄절이 되면 모두 다 따뜻한 옷을 입고 양말 속에 선물을 넣어주었던 풍습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오고 있는 것입니다. ◎성탄 트리는 “독일”에서 성탄절 나무를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크리스마스실은 “덴마아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카드와 선물은 “영국”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성탄절이 되면 남녀노소 그리고 어디서나 불려지는 성탄절 캐롤중의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있습니다. 이 곡의 유래는 이렇습니다. 성탄 전날 밤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시골 한 조그마한 교회에서 성탄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오르간이 갑자기 고장이 났습니다. 당황한 오르간니스트는 자신의 친구 “요셉 몰”을 찾아가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의논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오르간 없이 연주할 수 있는 곡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주의 부모 앉아서 감사기도 드릴 때. 아기 잘도 잔다 아기 잘도 잔다.” 그리고 그날 밤 그 성탄절 예배에서 이 곡이 연주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캐롤송이 2,000여 년 전 그날 베들레헴에서 울려퍼졌던 천사들의 캐롤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2,000여 년 전 그날 밤, 유대 들녘에서 목자들이 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주의 사자가 나타나서 목자들을 환하게 비추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두려워 떠는 목자들에게 하늘에서 큰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 2:10-11). 그리고 이런 찬양이 울려 퍼집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눅 2:14).
그 캐롤 중에서 우리는 놀라운 캐롤의 메시지를 찾았습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 2:11).
우리들은 이 한 구절의 메시지를 통하여 ※구주 탄생이 왜 온 백성에게 미치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는지? ※왜 우리가 기쁘고 즐거워해야 하는지? ※성탄이 왜 메리 크리스마스인지를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구주 탄생이 왜 온 백성에게 미치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성경은 그분이 오늘 오셨다고 증언합니다. 이 말씀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 그분이 오셨습니다.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그분께서는 시간과 공간의 세계에 얽매이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이 오늘 시간 세계 속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분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에게 큰 기쁨이고 좋은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는 기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분이 다윗의 동네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동네에 오셨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약속된 장소에 오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래전 예언의 말씀대로 약속된 장소에 오셨습니다(미 5:2). 하나님께서 구원자를 보내주시는데 아무 곳에서나 태어나게 하시고 약속된 베들레헴에 태어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곳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이 구원자라는 것이 증명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베들레헴은 고통받는 자들을 대표하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베들레헴에 탄생하셨다는 것은, 고통받는 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찾아오셔서 그 고통을 물리쳐 주실 것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성탄은 메리 크리스마스(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입니다.
아무리 구주라고 할지라도 나와 상관이 없다면, 나에게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될 수가 없습니다. 좋은 소식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늘의 천사는 분명하게 말합니다. 너희를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주님께서 탄생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주님의 탄생은 우리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것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주님의 나심을 축하하는 예배를 드리면서 하늘에서 울려퍼지는 그 음성을 듣는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 2:11).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눅 2:14). 이 메시지가 성도님들의 가슴 깊이 새겨지는 말씀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메시지가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되고 복음이 되는 말씀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Dec 21, 2024

나는 예수를 잉태했는가?
(요한복음 1:1-4. 14)
주원영담임목사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성탄으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때가 되면 예수의 탄생을 주제로 한 많은 작품들이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그중의 한 사람, 빛의 화가라고 불리우는 네델란드의 “렘브란트”는 “목동들의 경배”라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전혀 다른 이미지로 독일의 “게리 멜처스”는 “예수 탄생”이라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이 두 작품에서 예수께서 탄생하신 그날의 분위기는 멜처스의 작품이 더 강하게 전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날 그 밤은 고독했고 쓸쓸했고 외로웠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기 예수께서 탄생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천군천사를 동원하십니다. 그곳에 큰 외침과 찬양이 울려퍼지게 하셨습니다(눅 2:11-12. 14). 하지만 이 외침과 찬양에 모두가 반응한 것은 아닙니다.
이 찬양을 듣고 반응한 사람은 ◉들에서 양을 치고 있었던 목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매일처럼 하늘을 지붕 삼고 구름을 이불 삼으면서 들판에서 잤던 사람들입니다. 몸에서는 짐승의 냄새가 났을 것입니다. 자신을 돌아보면서 한 번도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제일 먼저 구주가 탄생하셨다는 놀라운 하늘의 음성이 들린 것입니다.
이유는 목자들이야 말로 낮고 천한 자들의 대표적인 모습을 가진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힘있고 권세있는 자들을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라 낮고 천한 자들을 위하여 오셨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세리들과 죄인들과 힘없는 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성탄의 주인이신 주님께서는 이런 자들을 찾으십니다.
메시야 되신 예수님께서는 ◉이방인이었던 동방 박사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마2:1).
성경은 박사들을 “마고이(점성가. 천문학자)”라는 단어로 기록했습니다.
이들이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저 높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어느 날, 이상한 별 하나가 저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그 별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때 박사들은 왕이 될 사람이 탄생했다는 것을 직감합니다. 그리고 왕이 될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하여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준비하고 별을 따라 예수를 찾아왔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유대인들에게 개와 같다는 취급을 받았던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들에게 메시야를 만나는 축복을 주신 이유는, 저들은 항상 위를 바라보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뜻을 찾는 자들이었습니다. 우리들의 앞을 큰 산이 막고 있을지라도 그 산을 바라보지 말고 저 하늘을 바라볼 때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할 때에, 우리를 구원해 주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십니다. 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다윗은 고백합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시 62:5). 이사야 선지자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전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사 40:31).
메시야 되신 예수님께서는 ◉시므온과 안나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누가복음 2:25절은 시므온에 대하여 기록하고, 누가복음 2:37절은 안나에 대하여 기록하였습니다. 저들은 한결같이 외로운 자들입니다. 혼자서 쓸쓸히 살아가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 자들입니다. 하지만 저들은 주의 성전을 사모했고 기도하기를 힘썼던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습을 보시고 저들에게 메시야 예수를 만나는 놀라운 은총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메시야는 양치는 목동과 같은 낮은 자들을 만나기 원하십니다. 메시야 되시는 우리 주님은 동방박사들처럼 위를 바라보는 자를 주목하시고 만나시기를 원하십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시므온과 같이 안나와 같이 나이가 많아 세상에서 관심을 가지지 않는 소외된 분들도 주님께서는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이런 자들의 구원자가 되어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다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양치는 목자들의 형편을 알고 계셨고, 동방박사들의 형편을 알고 계셨고, 시므온과 안나의 형편과 처지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기록하면서 예수가 탄생했다는 표현은 단 한 번밖에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예수의 나심은 이러하니라(마1:18).” 이외에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사용하지 않는 특별한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오심”이라고 표현했습니다(요 1:11). (참고. 요 1:1. 8:58. 계 16:5). 우리는 어머니의 태를 통하여 태어나지만, 예수님 우리들처럼 세상에서 태어나신 분이 아닙니다. 이미 계신 분이신데 저쪽에서 이쪽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되심”이라고 표현했습니다(요 1:14. 빌2:6-7).
성탄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사람이 되신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지 않고는 사람들의 추악한 죄를 용서해 주실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피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기에 주님께서 사람이 되신 사건이 성탄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거하심”이라고 표현했습니다(마 1:1). 아브라함이 예수를 낳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다윗이 예수를 낳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이렇게 남자에서 남자로 이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14절 말씀이 이 의미를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말씀이 육신이 되어 마리아에게만 거하신 것이 아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예수를 잉태해야 한다는 진리를 전하는 말씀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거하시기를 원하십니다(요 3:20). 예수님께서는 우리 안에 잉태되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마음 문을 활짝 열고 주님을 우리 마음에 모시는 것이 예수님을 잉태하는 것임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탄은 주님을 내 마음에 모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문밖에 세워두지 않고 내 마음에 모시는 것입니다. 예수를 잉태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예수님을 잉태하고 성전 문을 나가시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예수님께서 선한 목자가 되셔서 성도님들의 발걸음을 인도하시고 성도님들의 가정을 인도하시고 성도님들의 남은 삶을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