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요약
Mar 31, 2024

예수 부활. 내 부활
(로마서 6:1-11)
주원영담임목사
사탄이 그 힘을 보여주고 있었던 어느 날, 예수가 탄생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여러 모양으로 사역을 진행하셨습니다. 그중에는 죽은 자들을 살리시는 놀라운 일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사람들을 조정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에서 흐르는 예수의 피는 사탄의 머리를 부수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3일 후에 부활하셨습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 문을 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와 부활은 기독교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수가 동정녀 몸에서 탄생하셨다는 사실이나, 모세오경과 십계명과 예수님의 산상보훈들, 그리고 예수님의 사역들이 놀라운 가르침이고 교훈이지만, 이런 것들도 복음의 핵심은 아닙니다. 기독교 복음의 핵심은 오직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의 부활을 찬양하면서 몇가지 신앙 문제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살아가고 있다는 말은, 죽어가고 있다는 말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삶의 종착점이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죽음의 문제를 이길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를 통하여 영생을 얻었습니다.
◉모든 인간에게 죽음이 확실하고 실제적이듯이, 예수를 믿는 성도들에게 예수의 부활은 확실하고 실제적입니다. 성경에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넴 여인의 아들이 다시 살았고(왕하 4:17-37). 나인 성 과부의 독자가 살았고(눅 7:11-17), 회당장 야이로의 외딸이 살았고(막 5:41),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요 11:1-44). 그런데 성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난 것에 대하여 “부활”이라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살아나신 일만을 “부활”이라는 말합니다. 기독교 복음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어찌하여 살아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눅24:5-6).
◉인간에게 죽음의 문제가 확실하고, 예수의 부활이 확실하듯이, 우리의 부활도 실제적이고 확실합니다. 그래서 성도의 싸움은 이기려고 하는 싸움이 아닙니다. 이미 승리가 확정된 싸움입니다.
성도 여러분. 부활의 아침, 함께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두에게, 죄의 사슬을 끊으시고 죽음을 이기신 부활의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Mar 24, 2024

십자가를 기적이라고 말하는 이유
(고린도전서 1:18-25)
주원영담임목사
주님께서는 아무도 타보지 않았던 어린 나귀새끼를 타시고 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시면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습니다. 왕이 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주의 상징으로 기억되는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입성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십자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승리의 십자가가 되었고, 예배당의 상징으로 영광스럽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상징의 변화를 통하여 주시는 십자가의 두 가지 기적을,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를 통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십자가를 위대한 기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❶참된 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 당시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는 철학의 도시로 변했고, 고린도는 무역의 중심 항구로 세상의 모든 물자와 학문들이 이 항구를 통해 거래되고 전해졌습니다. 심지어 지혜까지도 이 지역을 통하여 전달되었습니다. 그래서 헬라인들은 최고의 선, 최고의 가치를 “지혜”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21절에서 이런 지혜의 한계를 두 가지로 정리해서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고전1:21). 인간의 지혜로는 ⓵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⓶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복음을 믿고 주님께 나아오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알아가게 되고 영혼의 구원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참된 지혜를 주시는 기적입니다.
십자가를 위대한 기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❷참된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를 중심으로 이룩된 헬라문명은 또 하나의 문명을 탄생시켰습니다.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시오니즘. 유태문명”입니다. 유대인들의 최고의 선, 최고의 가치는 지혜가 아니라 “능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2절은 “유대인은 표적을 구한다”고 한 것입니다. 이런 유대인들에게 예수의 십자가는, 실패와 연약함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십자가는 거리끼는 것이 되고 만 것입니다(고전1:23). 그런데 이 무능함과 무력함의 상징인 십자가가, 그들을 구원하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예수가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구원자가 되셨고 지혜가 되셨고 강함이 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영성은, 십자군의 영성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만을 의지하고 붙잡고 살아가는 십자가의 영성입니다. 바로 이 영성이 오늘 우리에게 요구되는 영성입니다.
❶십자가는 참된 지혜를 가져다주는 기적입니다. ❷십자가는 참된 능력의 원동력입니다. 마음에 새기심으로 참된 지혜를 깨닫고 위대한 능력을 경험하시는 은혜가 넘쳐나시기를 축원합니다.
Mar 17, 2024

온전히 헌신하신 예수님
(요한복음 12:24-26)
주원영담임목사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십자가를 앞에 놓으시고 마지막 사역에 최선을 다하시는 주님을 생각하는 사순절 기간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우리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생각하며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역들을 배우려고 합니다. 주님의 분노와 침묵과 눈물과 기도와 열정과 인내와 순종과 전도와 순종을 배우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모습들은 “헌신”이라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이러한 모습들을 기억하시고 닮아가시는 복된 성도님들의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목요일 깊은 밤에 붙잡히셨습니다. 그리고 이리저리 끌려다니시다가 마지막으로 예수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던 빌라도 앞에 끌려가셨습니다. 그리고 빌라도는 죄 없으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결정합니다. 이 결과로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고 “비아돌로로사의 길”을 걸어 골고다로 향하셨습니다. 오전 9시쯤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께서는 해가 빛을 잃은 12시를 넘겨 3시쯤 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채로 숨을 거두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면서 말입니다. 그때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고 누가복음 23:44-4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시신은 십자가에서 내려지고 아리마태 사람 요셉의 돌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바로 이 예수님께서는 예수님도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가지신 분이시지만, 살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죽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이것을 분명히 아시고 사셨습니다(마20:28).
성도 여러분. 주님의 십자가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헌신”입니다. “진정한 헌신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남을 위하여 자신을 던지는 헌신(희생)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가치있는 자들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던지신 것이 아닙니다. 가치 없는 자들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던지셨습니다. 죄인들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던지셨습니다. 헌신은 남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던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이와 같은 헌신의 자리에까지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진정한 헌신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되, 온전히 순종하는 모습입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은 헌신의 결과(열매)는 부활의 영광으로 나타났습니다(요12:24). 그리고 헌신의 모범을 보이신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마 16:24. 10:38).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길을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길은 너무나 힘든 길이기에, 그래서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따라오라고 하십니다. 헌신 뒤에는 부활의 영광이 있다는 것도 말씀하시면서 따라오라고 하십니다. 영원한 하늘나라의 상급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함께 해 줄 것을 믿고 따라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갚아주고 해결해 주고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늘의 축복을 부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완벽하게 따라가지는 못할지라도, 우리의 삶에서 예수를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그런 모습이 보여지는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Mar 10, 2024

진짜 어리석은 자
(시편 53:1-6)
주원영담임목사
10여년 전부터 세계 여러나라에서 기독교가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기독교를 박해하는 나라와 단체가 전 세계를 향하여 무서운 속도로 그 세력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지난 2013년 11월 8일. 대한민국 부산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WCC 부산총회“가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종교다원주의”를 인정하는 듯한 입장도 밝혔습니다. “종교개종금지이론”도 긍정했습니다. 무슨 이야기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정말 어떤 분이신가?” 하는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바로 다윗이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주었습니다(시 53:1).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렇게 말입니다.
다윗의 이 선언은 블레셋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말이 아닙니다(롬3:12. 참고). 블레셋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이 아니라, 다윗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말이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그렇기에 다윗은 지금 블레셋을 비롯한 다른 사람을 책망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허물과 잘못을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는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웁니다. 자신이 어리석은 삶을 살고 있다고 부끄러워하면서 자책하는 모습을 배웁니다. 우리가 다윗의 이 모습을 마음속 깊게 받아드려야 합니다. 다윗은 지금,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다고 말한다는 이 말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나는 그렇지 않다고, 나는 다윗과 다르다고 자신있게 말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게 자신있게 말하신다면, 그분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진리도 없습니다. 요한일서 1:8절과 10절 말씀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진리이고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다윗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 나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렇게 고백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이 고백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자비로 우리에게 다가오실 것입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모든 허물을 덮어 주실 것입니다. 다시 한번 새 힘을 주셔서 독수리와 같이 힘차게 날 수 있는 힘을 주실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