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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약

Aug 15, 2026

(복이 있는 사람)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사람
(마태복음 5:1-12)

주원영담임목사

2007년 4월 19일에 미국 버지니아공대에서 일어난 총기사건은 온 세계를 큰 충격과 슬픔에 빠트리고 말았습니다. 33명이 죽고 17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사망자 중에는 한국 유학생도 2명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비극을 연출한 범인이 한국인이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가서 조지아공대 영문학과에 재학 중인 23세 청년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으나, 정작 미국인들은 개인적인 성격장애에서 비롯된 정신병적인 행동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조용히 추모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끔직한 일을 저지른 범인을 정죄하기보다 오히려 그의 죽음까지 애도하며, 유족들을 위로하는 추모의 글들을 남겼습니다.

성도 여러분. 어떻게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33명의 사망자를 포함하여 5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사건인데 어떻게 이처럼 차분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피해자는 물론이거니와 가해자까지를 위하여 추모를 할 수 있었을까요?

이 사건을 생각하면서 오늘 본문을 보니,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이 받을 여덟 번째 복을 말씀하셨습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 5:10).

이어지는 11-12절 말씀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 5:11-12).

그러니까 이 말씀은 이렇게 설명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 저들이 천국에서 받을 상이 큼이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여덟 번째 복은, 그 동안 말씀드렸던 일곱가지의 복과는 그 성격이 다릅니다. 그동안의 복들은 자기 자신과 이웃에 관계되는 복이었습니다. 상대방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과 결단이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여덟 번째 복은, 내가 다른 사람 때문에 어려움을 받을 때 받게 되는 복입니다.

때문에 이 복은, 복 가운데 최고의 복입니다. 그래서 이 복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몇 가지 중요한 결단을 해야 합니다.

◉자신이 예수의 사람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이고 하나님의 자녀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의를 위하여(예수님을 위하여) 핍박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내 자신이 예수의 사람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는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에, 총독에게 말하여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했고 자기가 사용하려고 준비했던 새 무덤에 장사지냈습니다(요 19:38). 특별히 마가는 이 사실을 더 정확하게 기록하였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신을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막 15:43). 자신이 예수의 사람이라고 확실히 말합니다. 자신이 예수의 제자인 것을 확실히 드러냈습니다. 이 모습이 최고의 복을 받을 수 있는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핍박이 오더라도 견디고 이겨내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그때와는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그때는 예수를 따르겠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결단이 필요한 때였습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처음으로 들어왔을 때, 사람들은 기독교를 서양귀신이라고 말하면서, 상투를 자른다든지, 양복을 입는 것과 같은 모습은 아주 못된 짓이라고 하여 가문의 호적에서 제명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와 같은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앙적으로 바르게 사는 경우 사회적인 칭찬을 받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경우에,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받습니다. ◎양심의 가책으로 인하여 받는 고통입니다. 물론 이것을 박해나 핍박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양심을 통하여 느끼는 것들이 때때로 마음의 가책이 되어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욥이 잔치를 벌인 자녀들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를 드린 것이 그런 경우입니다. ◎신앙적인 가치관 때문에 받는 고통입니다.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 당하면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이방나라에서 생활하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자신들의 신앙의 순결을 지키기 위하여 뜻을 정하고 살았습니다(단 1:8-9. 3:17-18). 이런 일들은 자기의 신앙적인 가치와 다른 것과 충돌할 때 일어나는 핍박이고 고통입니다. 그래서 때때로 갈등과 고통이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할 때 오는 박해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가만히 있었을 때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고 전하는 사역을 감당할 때에 박해가 찾아왔습니다. 힘 있는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과 장로들이 제자들을 붙잡아 협박하고 채찍질하며 말합니다.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행 4:18).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행 5:4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을 전한다고 항상 박해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지혜롭게 그리고 친절하게 상식과 교양으로 복음을 전하는 경우에는, 박해를 받는 일들은 없습니다.

그런데 사거리 한복판에 서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고 외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싫다는 사람을 끝까지 붙잡고 집요하게 강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차에 확성기를 달고 운전을 하면서 크게 들리게 합니다. 오로지 전해야 한다는 열정 하나로 상대는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우리 주위에는 너무도 많습니다.

잘못됐다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행동들로 인하여 예수 이름이 모욕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혜롭게 전하는 분들까지 박해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이런 경우들이 복음을 전할 때 오는 박해입니다. 이런 모습들이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영혼을 구하는 일에 힘쓰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자들을 향하여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자들이 천국을 소유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축복이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 10:29-30). 이 축복이, 복음을 전하면서 이런저런 핍박을 받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이겨내신 성도님들에게 넘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19-20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복음을 전하라”는 이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감당해야 하는 지상명령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자들에게 확실한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다시 한번 오늘의 말씀을 합독하시면서 마음에 새겨보시기 바랍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 5:10).

성도 여러분. 마음을 여시고, 내가 믿는 예수, 나의 주님이시며 살아계신 예수님을 전하십시오. 비난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기쁜 마음으로 전하십시오. 우리의 삶이 이와 같을 때 주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Aug 8, 2026

(복이 있는 사람)화평하게 하는 사람
(마태복음 5:1-9)

주원영담임목사

살아가시다 보면 이런저런 사람을 만납니다. 그중에는 하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손해를 보았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아서 지금은 교회를 나가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이 만납니다. 그런가 하면 세상에는 누구에겐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마음에 평화가 없습니다. 불편하게 살아갑니다. 사실에 근거했든지 아니면 오해였든지, 억울한 일 때문에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에 평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모습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누려야 하는 8가지 복을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7번째 복을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마태복음 5:9절 말씀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화평하게 하는 사람(εἰρηνοποιοί)”이라는 단어는, 평화를 만들어가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단순히 평화를 사랑하거나 누리거나 유지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극적인 의미에서 평화주의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평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2:14-16절에서는 그런 사람들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단어로 기록하였습니다. 이 향기는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합니다.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화평하게 하는 사람이 된다는 말은 ◉먼저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된다는 말입니다.

생명이 있는 피조물들은 모두 근본적으로 변화되지 않는 한, 성격을 다스리고 많은 교양을 쌓았다고 해도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아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하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새로운 존재로 변화됩니다. 새로운 존재로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배가 중요합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영접하는 방법을 배우고 깨닫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삶이 계속됩니다.

이런 모습이 있을 때, 자신의 존재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나의 나 된 것은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 것입니다(고전 15:10).

이처럼 자신이 먼저 변화되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화평하게 하는 사람이 된다는 말은 ◉자신의 삶 속에서 평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한 사람은,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삶에서 평화를 만듭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만족하시는 분은 한 사람도 없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에 대한 믿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삶의 모든 부분들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인정하시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날마다 그 은혜 속에서 강건해야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바라보시고 십자가를 튼튼히 붙잡고 살아가야 합니다.

교회에 나온지 오래되었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기쁨이나 구원받았다는 감격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냥 오랫동안 교회에 나오다 보니까, 교회생활이 자연스러워졌고 이런저런 봉사도 하게 되신 성도들도 많다는 말입니다. 또한 은혜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은혜를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설명하려고 해도 모르게 때문에 설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말씀이 곱씹어집니다. 구원이 무엇인지 깨달아집니다. 이제는 내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이 믿어집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삶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으로 가득찬 성도의 모습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사람, 화평을 만들어가는 사람은 ◉나 이외의 모든 것과도 평화를 만들어 가는 삶을 사는 사람이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들은 쉽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받을 짓을 해야 사랑하지. 존경받을 짓을 해야 존경하지. 사랑하려고 해도 미운 짓만 골라가며 하기 때문에 사랑할 수 없고, 존경하려고 해도 스스로 멸시받을 짓만 하니 어쩔 수가 없다.” 우리의 이런 생각을 아신 주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6:32-33절입니다.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눅 6:32-33)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 6:38).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 25:40).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의 눈에는, 우리 옆에 있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지, 그의 인격과 삶이 부족하여도, 사랑해야 하는 사람으로 보여집니다.

성도님들 주위에 있는 분들을 존귀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사람만 존귀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나도 존귀함을 받는 사람이 됩니다. 이런 모습들이 나타날 때 우리에게 화평이 찾아오게 됩니다. 우리가 화평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 됩니다. 화평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 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러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먼저 자신의 삶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이 먼저 변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자신의 삶 속에 평화를 만들어갑니다. ◉그렇게 노력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면, 나 이외의 다른 모든 것들과도 평화를 만들어 가는 삶을 이루며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이 화평케 하는 사람입니다. 화평을 만들어 가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이런 자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러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말씀을 믿고 화평을 만들어 가시는 성도님들 되셔서, 하나님께서 아들이라고 내 이름을 불러주시는 은혜를 맛보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Aug 1, 2026

(복이 있는 사람) 마음이 청결한 사람
(마태복음 5:1-8)

주원영담임목사

성도 여러분. 요즘같이 편리하고 빨라진 세상이 전에는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대부분은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잠간이면 해결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삶은 여유가 생긴 것이 아니라, 더 분주하고 바빠졌습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조용히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볼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너무나 바쁘고 분주해서 하나님과 함께 할 시간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고 있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여섯 번째 복을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 5:8). 어떤 의미의 말씀입니까?

우리는 마음이 청결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청결(καθαρός)한 마음”은, “동기가 순수하며 생각이 진실된 온전한 마음”을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마음을 둔 단순한 마음”을 뜻합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19-34절 말씀을 통하여,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하나님과 돈 중에서 어떤 것을 삶의 주인으로 섬길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돈과 하나님이 동시에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돈이 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고 믿는 것을, 우리는 우상 숭배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면서도, 돈을 꼭 움켜쥐고 있으면 이 모습이 두 주인을 섬기는 모습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단순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마음에 청결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이렇게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단순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 신앙인인데, 신앙인들도 단순한 마음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향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러했습니다. 이들은 너무나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출애굽하기 전 애굽에서 10가지 재앙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분명히 믿었습니다. 홍해를 육지와 같이 건넜을 뿐만 아니라, 광야를 지나는 동안 계속해서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먹었습니다. 반석에서 솟아나는 물을 마셨습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메추라기 고기도 먹었습니다. 날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함께 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이들은 하나님만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저들 가운데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만나의 경험이 그랬습니다. ◎시내산 아래에서의 금송아지 사건이 그랬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정탐꾼의 불신앙적인 보고를 듣고 지금까지 은혜와 기적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아우성을 칩니다.

이 모습들을 보신 하나님께서 결단하셨습니다. 430년을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그 출애굽 세대들을 포기하기로 결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태어난 세대로 하여금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을 정복하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을 다 마친 후에 여호수아는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강하게 당부입니다. 여호수아 24:14-15절 말씀입니다. 야고보 사도도 우리에게 말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약 1:6-8). 청결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분주한 삶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분주한 삶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사람이 되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이 되려면,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의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어야 합니다. ◎말을 아껴야 합니다. 세상을 향하여 조용히 입을 다물고 하나님의 음성의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많은 것을 알려고 하는 호기심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알려고 합니다. 하지만 모르는 것이 있어도 우리에게 큰 일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절제하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무조건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그런 생각을 포기하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기도와 말씀 묵상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늘려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려면,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삶을 살려면, 이런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 속 깊이 새기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동방의 의인이라 불리는 큰 부자가 있었습니다. 욥이라는 사람입니다. 그가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하나님에 대하여 무지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단순한 마음으로 고백합니다. 주께서는 못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여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욥 42:2-6).

성도 여러분. 욥의 이 고백 속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이 말입니다.

고난을 당하는 동안 욥은 수많은 말을 쏟아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동안 쏟아내었던 많은 말들은 부끄럽고 어리석은 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순전한 마음을 지키지 못한 것을 회개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순전한 마음으로 진실하게 드리는 이 고백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한 축복을 욥에게 아낌없이 부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승천하시면서 영원한 언약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20).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삶의 시간 속에서 주님을 잊어버리고 살아갈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인간관계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때문에 우리의 생각이 너무나 복잡합니다. 우리의 삶은 피곤합니다. 지쳐있습니다. 말하기조차 싫습니다. 때때로 다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곁에 아주 가까이 와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복잡한 생각과 이해할 수 없는 많은 말들을 쏟아내면서 지은 죄들을 깨닫게 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단순한 신앙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무지함을 욥과 같이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내려놓을 때, 하나님께서는 용서와 회복의 은혜로 함께 해 주십니다. 인자하심의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다시 한번 놀라운 축복의 손길을 펼쳐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청결한 마음은 “동기가 순수하며 생각이 진실된 온전한 마음”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향한 마음을 둔 단순한 마음”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 단순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복이 있나니, 그가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시고 하나님을 만나시는 은혜를 맛보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Jul 25, 2026

진정한 행복
(여호수아 24:14-18)

주원영담임목사

2002년 하바드 대학에서 철학과 심리학을 전공하고 모교인 히버드 대학에 강사로 임용을 받은 “탈 벤 샤하르” 교수는 “행복학”이라는 강좌를 처음으로 개설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강의 내용은 “해피어(happier)”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불행한 사람의 유형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고 있습니다. ◎미래의 성공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면서 살아가는 “성취주의자들”입니다. ◎순간의 쾌락을 추구하다가 미래를 잃어버린 “쾌락주의자들”입니다. ◎과거의 실패에 발목이 묶여 현재와 미래를 함께 잃어버린 “허무주의자들”입니다.

저자는 모두 이들을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저자가 말하는 진정한 행복은, 힘들고 불행한 과거에서 오뚜기처럼 일어나서 현재와 미래의 행복을 누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람들도 이렇게 행복을 찾으려고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데,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행복을 찾아야 할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땅을 정복하고 이제 미래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다음세대를 향해서, 그들의 지도자였던 여호수아가 삶의 마지막 순간에 유언처럼 미래의 행복에 대하여 중요한 말씀을 남깁니다. 그 내용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가정의 주인으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분으로 모셔야 합니다.

14절 말씀입니다. 합독하시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수 24:14).

오늘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신앙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법은, 하나님께 예배를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약속의 땅에는 들어왔지만 아직도 예배를 생활화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저들에게, 여호수아는 그 선택을 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5절 말씀입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수 24:15).

성도 여러분. 학자들은 오늘의 가정들을 세 가지 모습으로 나누었습니다. “전통적 가정. 현대적 가정. 성서적 가정”입니다.

◎전통적 가정은 가부장적 가정이라고 부릅니다. 엄격한 질서는 있지만 종종 서로의 자유가 존중되지 못하는 율법적 권위가 보여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대적 가정은 권위가 부재하는 가정입니다. 가족 각자가 저마다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때때로 혼란스럽고 때로는 갈등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서적 가정은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온 가족이 함께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이 다스리는 가정입니다. 이런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온 가족이 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우리 가정의 주인으로 모시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닌 그 어떤 우상도 포기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찬양을 부릅니다.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 주되신 주 앞에 나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 내려놓고 주님만 사랑해.” 그러기에 우상을 섬기는 모습은 신앙인들에게 있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14절 말씀이 이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수 24:14).

이 말씀이 주시는 교훈은, 지금까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든지, 바로 지금, 내가 주인 삼았던 그것들을, 우상들을 치워버리라는 말씀입니다. 말씀에 기록된 우상들은 종종 거짓된 모습으로 우리를 지배하는 것들입니다. 하나님과 경쟁하는 것들입니다. 물질, 명예, 권력, 체면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하면서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참 행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이와 같은 세상의 것들에게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은 무엇입니까? 누구입니까? 성도님들께서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이 결단을 요구합니다.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수 24:15).

성도님들께서는 이 말씀에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16절 말씀입니다. 백성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니 (수 24:16). 이 대답이 성도님들의 대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섬김의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확인하는 방법은, “믿음의 대상을 어떻게 섬기느냐?” 하는 것으로 결정됩니다. 보이지 않는 믿음이 보이는 섬김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단순히 하나님을 잘 믿으라는 당부로 끝내지 않고 “섬기라”고 강하게 말합니다. 14절 말씀입니다.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수 24:14). 우리들의 신앙의 가치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섬김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락하신 가정을 소중하게 생각하시고, 가족 모두가 하나님을 향하여 이렇게 고백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고백하시는 성도님들의 가정에,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와 축복과 행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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