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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약

Jul 4, 2026

(복이 있는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마태복음 5:1-6)

주원영담임목사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처음 구원받은 감격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신기했고,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마음이 냉랭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영혼이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예배도 감격보다는 의무로 예배에 참석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단 한 번의 영적변화가 언제까지나 계속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에 목말라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기를 애쓰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은 기도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세례받은 후에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며 기도하신 것을 시작으로 새벽마다 기도하셨고, 저녁에도 습관적으로 기도하셨습니다. 또 사역을 하시는 그 바쁜 일정 속에서도 수시로 기도하시는 일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밤새도록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 남기신 일곱 말씀 중에 세 말씀이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의 기도 생활은, 예수님께서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면서 사셨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님에게 그런 기도의 모습이 있었기에, 현실에 굴복하지 않으셨고, 늘 승리의 기쁨을 맛보았으며, 마침내 모든 일을 다 이루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의 삶을 사셨던 주님께서 오늘 우리를 향하여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삶을 살라.”말씀하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기록되어 있는 “의(δικαιοσύνη)라는 단어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올바르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언약의 백성들을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삶을 산다는 말은 ◉“하나님의 구원을 목말라 사모한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메시야라고 소개한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향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죄와 허물로 죽은 인간들을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예수 십자가의 죽으심이라는 말입니다.

바울 사도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죽으심은 물론 부활하심까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4:25절 말씀입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세례요한도 죽음과 부활에 이어 또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요한복음 3:16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죽음과 부활에 이어 영생을 말합니다. 믿으면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믿기만 하면 된다고 하십니다.

영생은 믿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에베소서 2:8-10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8-10).

구원의 감격이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죄책감과 무거운 죄의 짐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던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그 어떤 의로운 행위를 요구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외아들 예수를 내어주시고 대가를 대신 지불해 주셨습니다.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행하신 것입니다. 이 일을 기억하고 늘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기로 애쓰는 모습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삶입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된 우리 모두를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예수의 부활과 함께 살려주시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은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가 적용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대가 없이 구원해 주신 은혜였다는 말씀입니다.

이 은혜를 생각하면서 다시 한번 십자가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십자가를 붙드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죄인인 나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예수님께 있습니다. 그 십자가 앞에 나아갈 때만이 다시 구원의 감격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입술로 그 구원의 기쁨을 고백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와 신앙인에게서 십자가가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잃어버리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것을 회복하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갈급한 마음으로 십자가의 은혜를 사모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삶을 산다는 말은 ◉“그리스도인답게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에만 만족하지 말고, 삶의 현장에서 변화된 모습이 보여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늘 우리 주변에서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잡히면 사탄의 종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전혀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십자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빛 되신 주님과 늘 동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6:10-14절 말씀이 우리에게 놀라운 사실을 알려줍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자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롬 6:11). 죄는 언제나 우리를 유혹합니다. 신앙적으로 죽었는지 살았는지 찔러보기도 합니다. 죽은 자는 반응하지 않지만, 깨어있는 그리스도인은 단호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죄에 대하여는 죽었다고 선언해야 합니다. 죄와는 무관하다고 선언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 대신 이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고 선언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어서 ◎성도들은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롬 6:11).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된 사람이라고 선언하라는 말씀입니다.

살아가면서 늘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다고 선언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오뚜기를 아실 것입니다. 중심에 무거운 납이 들어있기 때문에 아무리 내 던져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넘어지는 것 같지만 다시 일어섭니다.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 오뚜기 같은 삶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으로 중심을 잡고 넘어지더라도, 던져지더라도, 오뚜기처럼 일어나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다스리심을 사모해야 합니다. 이유는, 예수의 이름으로 드리는 우리의 믿음의 기도는 하늘보좌를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심과 함께 성령님의 역사를 기대하십시오. 성령님은 우리와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고 “성령님은 나와 함께하십니다.” 이렇게 선언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을 나의 주인이라고 고백하고,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기도하시면, 그리고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을 기대하면서 주님의 의를 간절히 구하면, 주님께서는 우리가 구하지 아니한 것까지 더하여 주십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이 말씀을 기억하시고 실천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요함의 축복을 받아 누리시는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Jun 27, 2026

(복이 있는 사람) 온유한 사람
(마태복음 5:1-5 )

주원영담임목사

2,000년 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 투자를 잘 하는 사람이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온유한 사람이 복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온유한 사람(οί πραείς)이라는 뜻은, “겸손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겸손”은 단순히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하지만 “온유”는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허세를 부리지 않고 자기에게 악을 행하는 자에 대해서도 오래 참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온유한 마음을 가지게 되면 결국 사람을 얻게 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게 바꾸어 말할 수 있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사람을 얻을 것이요.

강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주변의 좋은 사람들을 놓치지만, 온유한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들을 얻는다는 교훈을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인지 예수님께서는 온유한 사람이 복이 있다는 말씀을 하실 때 시편 37:9-10절의 말씀을 염두에 두셨습니다(시 37:9-11). 행악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인색하고 강퍅하여 결국 사람을 잃어버리는 삶을 살게 되지만, 온유한 사람은 좋은 사람들을 많이 얻게 되어서 결국 땅을 차지하게 되고 풍요로운 평안함으로 인생을 즐기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온유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과 축복의 조상으로 아브람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란에 살고 있던 아브람을 부르신 것입니다(창 12:1). 이 부르심을 들은 아브람은 그 조카 롯과 함께 주저하지 않고 떠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1:8절에서 이때의 아브람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 11:8). 아브라함이 믿은 것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좋은 곳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이 한 가지 사실을 믿었습니다. 이 믿음이 그를 순종할 수 있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믿음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때에 나타났습니다(창 22:2).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삭과 함께 산에 올랐고,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들 이삭에게 네가 제물이라고 말하고는 밧줄로 묶고 칼을 빼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들 이삭이 전혀 반항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제단에 올라가 제물이 되기를 기다립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습니까?

하나님께 대한 아버지 아브라함의 절대적인 신뢰함과 순종함을 알고 있었던 이삭이 그 상황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모리아 산의 사건은, 두 부자의 신뢰와 순종이 이루어낸 작품입니다(창 22:12).

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이삭을 다시 찾았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사무엘하 16:7-8절에는 다윗의 생애에 가장 비참했던 때의 일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아들 압살롬의 반란 때문에 도망하는 도중에 있었던 치욕입니다. 그때 다윗의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다윗이 감람 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며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가니라(삼하 15:30). 이런 모습으로 다윗과 그의 일행이 “바후림”에 이르렀을 때에, 사울 왕가의 족속인 “시므이” 라는 사람이 다윗의 일행을 계속 따라오면서, 돌을 던지면서 저주하며 말합니다(삼하 16:7-8).

이때 다윗 왕의 신하였던 “아비새”장군이 다윗 왕에게 해결하겠다고 말하였지만(삼하 16:9), 다윗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렇게 하라고 시키신 것이니 저주하게 내버려두어라(삼하 16:10).

이렇게 초연할 수가 있었던 것은, 온유하기 때문입니다. 온유한 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모습입니다.

결국 압살롬의 반란은 잠재워졌고 다윗은 그를 따르는 자들과 함께 다윗성으로 복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현실에서 다가오는 크고 작은 어려운 일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그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는다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더욱 복잡해지고 맙니다. 해답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원인이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고 회개하기 시작하면 문제는 풀리게 됩니다. 이것이 온유한 마음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용서하고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죽었고, 모세는 아프리카 지역에 흩어져 살던 피부색이 검은 구스 여인를 선택하여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혈통의 사람뿐만 아니라,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까지도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일깨어 주시려는 결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에 대하여 모세의 누이였던 “미리암”이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미리암은 아론을 충동질하여 모세를 비방하기 시작하였습니다(민 12:2).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셔서 말씀하십니다(민 12:4-8).

이 일로 미리암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한센병(문둥병)자가 되었습니다. 바로 그 때, 모세의 온유함이 드러났습니다. 자기를 향하여 악의적으로 비난하고 선동하던 미리암을 용서할 뿐만 아니라,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하나님이여 원하건대 그를 고쳐 주옵소서(민 12:13). 이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 모세를 향하여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민 12:3).

성도 여러분. 용서하는 이 마음은 상대방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나를 비방하고 힘들게 하는 그 사람을 용서하고 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온유한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용서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있는 죄의 찌꺼기들을 모두 깨끗하게 씻어주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무한한 능력으로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바로 온유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온유한 마음은 미움을 사랑으로 바꾸어 줍니다. 정죄를 용서로 바꾸어 줍니다. 조급함을 인내함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어둠을 밝음으로 바꾸어 줍니다.

하지만, 온유한 사람이 되는 것은, 내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됩니다.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 4:6).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저와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주님께서 이 복된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살도록 역사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합독하시겠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Jun 20, 2026

복 있는 성도. 복 있는 교회.
(시편 1:1-6)

주원영담임목사

창립 11주년 감사예배를 드리면서 영원한 교회의 기초석이 되는 말씀을 합독하시겠습니다.  시편 90:1-2절 말씀입니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시 90:1-2)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수 많은 선택을 합니다. 매일매일이 선택의 연속입니다. 바로 그때 우리가 어떤 선택(Choice)을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인생은 달라지게 됩니다. 바라기는, 함께 예배를 드리는 성도님들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인생의 중요한 선택들을 현명하게 잘 하시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들은 영원한 교회가 이곳에서 예배를 드린 지 11년이 되는 시간을 감사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아직 홀로 서지는 못했지만, 그리고 외부 상항이 녹녹지 않은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함께 해 주시는 성도님들에게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를 깊이 묵상하다가 시편 1편의 말씀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설교의 제목을 이렇게 정했습니다. “복 있는 성도. 복 있는 교회.”

성도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경우에 선택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특별히 신앙적인 선택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는 것을 이 말씀을 통하여 배웁니다.

1980년 어느 날, 이런 광고가 신문에 실렸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1980년에 나온 금성(지금의 LG) 하이테크 컬라TV 광고입니다. 이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에서 “우리 회사 컬러TV를 사면 10년은 참 잘 샀다고 만족하실 겁니다.” 이런 생각을 하도록 하기 위한 광고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광고를 오늘 말씀에 비추어서 이렇게 바꾸어서 생각하고 싶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한다. 아멘.

바로 이것입니다. 시편 1편의 말씀이 이 말씀입니다. 우리의 선택이 10년, 아니 평생, 아니 영원을 좌우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신앙적인 선택, 바로 영적인 선택이 정말 정말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인생의 갈림길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선택을 합니다. 오늘 본문도 우리의 인생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고 말합니다. 한 길은 축복으로 인도하는 길이고, 다른 한 길은 저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한 길은 구원의 길이고 다른 한 길은 심판과 멸망의 길입니다. 선택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두 길 중에서 한 길을 선택하는 순간, 그 결과는 정반대가 됩니다. 그래서 시편 1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당신은 이 두 길 중에서 어느 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결정하십시요.”

이 선택의 원리는 성도의 삶에서뿐만이 아니라,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성도가 복 있는 성도가 되기 위해서 선택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교회가 복 있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선택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11년 전에 한 명의 동역자도 없이 저와 아내가 이곳에 교회를 봉헌했습니다. 그리고 11년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집값 폭등을 시작으로, COVID-19와 리모델링이라는 어려움을 만났습니다. 특별히 COVID-19는 교회를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어려움으로 몰아갔습니다. 그런 일들이 있었지만, 지금 이렇게 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계획으로는 아쉽습니다. 목회를 시작하면서, 3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면, 이만큼의 성도가 되어서 교회가 자립하게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기도하면서 이 시간까지 왔는데, 아직은 생각대로 교회가 성장하지 못해 너무도 아쉽습니다. 그럼에도 간절한 기도를 드리면서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채워주실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것만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고 감사를 드리면서, 앞으로도 인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 함께 봉독한 시편 1편의 말씀을 통하여, 복 있는 교회가 선택해야 할 길이 어떤 길인지를 성도님들과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복 있는 교회가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시편 기자는, 복 있는 성도와 복 있는 교회가 선택하지 말아야 하고 따라가지 말아야 할 것이 “세 가지”라고 말합니다. 1절 말씀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시 1:1).

◎복 있는 성도와 복 있는 교회는,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아야 합니다.

“꾀”라는 단어의 의미는 “충고. 조언” 이런 의미입니다.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충고나 조언을 잘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충고들을 듣는 것이 중요하지만, 아무 충고나 듣고 따르면 안 됩니다. 특히 악인들의 충고는 절대 듣지 말아야 합니다.

악인들은 우리에게 손해보지 않도록 세상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 살라고 말합니다. 예수 믿는 성도라도 세상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면서, 괜히 예수 믿는다고 생색내지 말고 남들 사는 대로 적당히 휩쓸려 살라고 충고합니다. 안 그러면 손해 본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면 이렇게 가치관이 다른 충고는 단호하게 거부해야 합니다. 손해 보더라도 나는 하나님의 뜻을 먼저 따르겠다고 선포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때때로 이런 유혹이 솔깃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적당히 타협하면서 넘어가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안 되잖아요. 아무리 좋아 보여도, 그것이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일이고 성도들 앞에 부끄러운 일이면 하지 말아야 하잖아요. 교회는 달라야 하잖아요?

손해 봐도 괜찮습니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방법을 선택해야 합니다. 악인들이 선택하는 길을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교회가 복 있는 교회입니다. 그런 교회에서 힘을 함께 해 주시는 성도가 복 있는 성도입니다.

영원한 교회가 복 있는 교회가 되고, 영원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복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복 있는 성도와 복 있는 교회는,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13-14절 말씀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3-14).

말씀처럼 죄 짓는 길,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넓고 편해보여서 많은 사람들이 선택합니다. 하지만 구원의 길, 의인의 길은, 좁고 힘들어 보여서 선택하는 사람들이 적습니다. 넓고 편해 보여서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길은 세상으로 인도하는 길이고, 하나님을 멀리하는 곳으로 인도하는 길이고, 죄 가운데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이와 같은 길은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을 하시다 보면, 같은 교회에서 같은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해도, 어떤 사람들은 너무나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때로는 손해보는 것 같고, 때로는 고생이 되는 힘든 길이라고 해도, 그 길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이라면, 기꺼이 그 길로 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조금 편하다고, 조금 쉽다고, 편안하고 쉬운 길을 선택하는 그런 어리석은 성도들이 영원한 교회에는 한 분도 안 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복 있는 성도와 복 있는 교회는,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좀 높은 자리에만 올라가면 교만해집니다. 조금만 잘 되고 출세의 길에 들어서면 순식간에 사람이 달라집니다. 오만한 모습이 보인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성도들은 그런 교만한 모습은 보이지 말아야 합니다. 잘 나갈 때일수록 더 겸손해야 합니다. 누가 나보고 저 높은 자리에 올라가 앉으라고 해도 손사래를 치며 “저기는 제 자리가 아닙니다.” 이렇게 사양하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 성장하고 부흥했다고 교만해져서 작은 교회들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성도들끼리도 만나서 얘기할 때 “나는 이런 큰 교회 다닌다.” 자랑스럽게 말하는 경우를 보는데, 큰 교회를 다니는 것이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교회가 커진 만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지고 가야할 책임이 커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의 목회자나 성도들을 귀히 여기고 섬겨드려야 합니다. 이 모습이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목회자가 한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이 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 감사해야 하고 더 큰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그렇다면 ◉복 있는 교회가 가야 할 길은 어떤 길입니까?

복 있는 교회, 복 있는 성도가 가야 할 길이 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 1:2). 아멘.

그렇습니다. 복 있는 성도는 악인이나 죄인이나 오만한 자의 말과 충고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입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말씀을 밤낮으로 묵상하는 자입니다. 묵상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복 있는 교회는 어떤 사람의 주장이나 말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말씀 위에 든든하게 서서 그 말씀대로 함께 세워가는 교회입니다. 이런 모습이 보여지는 교회가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복 있는 교회입니다.

사랑하는 신앙의 동역자 여러분.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멀리하고 가야 할 길을 가는 그런 교회, 그런 성도에게 하나님께서는 큰 축복을 준비하셨습니다. 그 축복이 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 1:3). 아멘.

나무가 그 뿌리를 깊이 내리면 아무리 심한 가뭄이 와도 마르지 않고 철을 따라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것처럼, 이곳에 세워진 영원한 교회가 오직 하나님의 말씀 위에 든든히 서면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이겨내고 그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모든 성도님들에게도 형통하게 되는 축복이 임하시기를,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절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살아가는 자에게 주시는 복을 알려주십니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시 1:6). 아멘.

영원한 교회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영원한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성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는 은혜가 넘치는 교회가 되고 축복의 성도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창립 주일을 맞이하여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영원한 교회가, 세상에 멋지게 보이는 교회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멋진 교회가 되도록 함께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오직 주님의 모습만을 닮아가는 교회가 되도록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되기를 힘 쓸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원을 들으시고 영원한 이 교회에 부흥과 기적을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이 은혜가 이곳에 함께 하신 성도님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Jun 13, 2026

(복이 있는 사람) 애통하는 사람
(마태복음 5:1-4)

주원영담임목사

성도 여러분. 1874년 황해도 “안악”의 양반집에서 태어난 김익두는 어느 날 술에 취해 오물통에 빠졌지만 한 사람도 도와주지 않았던 일을 생각하면서 두문물출하였습니다. 그리고 애통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부흥회에 참석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애통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말할 수 없이 위로의 은혜였습니다. 천하의 망나니를 훌륭한 목사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애통하면 복을 받는다는 말씀이 바로 그런 말씀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애통한다”는 말은 헬라어로 “펜툰테스(πενθούντες)”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단순히 가난하고 배가 고파서 운다는 뜻이 아닙니다. 가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깊은 슬픔에 잠기는 모습을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런 상황에서 애통할 때, 위로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죄의 문제 때문에 애통하는 사람에게 베풀어 주십니다.

2,000년 전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문 밖 골고다 언덕을 향하여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힘겹게 오르고 계셨을 때, 이 처절한 십자가의 길에는 평소에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많은 백성들과 여인들이 가슴을 치며 슬피 울면서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그 무거운 고통의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던 예수님께서 여인들을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눅 23:28).

이 뜨거운 눈물은 ◎사랑하고 존경하는 예수님께서 그토록 처참한 지경에 빠져 고통스러워하시는 모습에 대한 한없는 안타까움의 눈물이었습니다. ◎예수님께 사정없이 잔인하게 채찍질하는 로마군병들을 향한 원망의 눈물이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죽을지언정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던 제자들이 한 사람도 보이진 않음을 안타까워하며 용기 없는 제자들을 향한 야속함의 눈물이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렇게 고통을 당하시는 예수님을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들을 향한 무능함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눈물을 흘리는 여인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눅 23:28). 고난 받는 나의 아픔을 생각하는 것보다, 아직도 죄 가운데서 방황하고 있는 자신과 자녀들과 이웃들의 죄를 인하여 애통해하는 눈물을 흘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바라보는 성도들은, 오늘도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죄를 계속 범하고 있는 나와 우리의 자녀들을 위하여 울어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 서 있는 성도들은, 죄의 삯으로 마땅히 죽어야하는 자신의 모습 때문에 울어야 합니다.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웃들을 위하여 울어야 합니다. 회개하며 애통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위로해 주시고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구원받아야 할 영혼들을 위하여 애통할 때 베풀어 주십니다.

로마서 9:1-3절 말씀을 보니, 바울 사도는 복음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저주를 받는 것까지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복음을 모르는 자들을 위하여 애통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천국의 영광까지 경험했던 바울 사도는, 그가 복음 때문에 로마 감옥에 있을 때에 이렇게 말했습니다(빌 1:23-24).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그 영광을 바라보면서, 이 영광을 모르고 구원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셨는데도 그를 믿지 못하고 구원을 받지 못한 자기 민족과 골육 친척들을 생각하며 애통해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누가복음 16:19절 이하에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 두 사람은 모두 죽었는데, 부자는 지옥에서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지만, 나사로라는 이름을 가진 거지는 천국의 아브라함의 품속에서 한없는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간청합니다(눅 16:24-28).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부자의 안타까운 간절함을 봅니다. 세상에서 떵떵거리며 살면서 빈정거리며 세상의 쾌락에 휩쓸려 살고 있는 영혼들을 보면서, 이 모습을 애통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복이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애통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지 한 영혼이라도 더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복음 전하는 일에 힘쓰는 자들입니다.

성도 여러분.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애통하는 사람은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살려내는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영혼 구원을 위하여 애통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도 축복으로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새로운 도전을 위하여 힘을 다하면서 애통하는 자들에게 더하여 주십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상황 앞에서 조국 예루살렘의 회복을 꿈꾸며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도전입니다. 자신에게는 그 꿈을 이룰만한 힘이 없기 때문에 하늘의 하나님께 애통하며 드렸던 기도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신의 욕심만을 위하지 않고, 이 땅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큰일을 꿈꾸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도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모세는 애굽 땅에 있는 자기 백성들의 해방을 꿈꾸었습니다. 젊은 시절 그 일을 시도했었지만 실패하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해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부르십니다. 애굽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살인을 했던 전과기록이 있었고, 입이 둔하여 말을 잘 하지 못한다고 했던 모세였지만, 가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발걸음을 옮겼더니 마침내 자기 백성을 해방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실수가 많은 허물투성이였던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를 아시지요. 물 위로 걷다가 물속에 빠졌던 사람입니다. 예수님께 심한 책망을 받았고, 예수님을 모른다고 배반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자마자 다시 고기를 잡으러 저 북쪽 갈릴리로 떠났던 사람입니다. 그 일에 앞장섰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을 때, 순종함으로 오순절 성령의 충만함을 힘입어 마침내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 일들을 해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된 우리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마음이 가난하여 하나님 밖에는 어디에도 의지할 곳 없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애통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에게, 하늘로부터 위로함을 허락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애통하는 마음을 어루만져 주실 줄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용기를 주십니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평강을 주십니다. 우리 곁에 항상 친구처럼 다정히 함께 계시면서 때를 따라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그 어떤 상황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열정도 주십니다. 그리고 새로운 비전의 약속을 붙잡고 도전할 힘을 주십니다.

바라는 것은, 이분 하나님을 의지하고 애통하는 마음으로 기도함으로, 하늘로부터 내리시는 위로를 맛보시는 은혜가 성도님들의 삶에 풍성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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