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요약
Sep 21, 2024

기다릴 줄 아는 신앙
(하박국 1:2-4. 2:1-3)
주원영담임목사
하박국은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면서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선지자입니다. 무척이나 솔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모르면서도 아는 척을 하지 않고,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 내어놓았던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런 그가 고민하면서 씨름했던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가? 선지자임에도 이 문제가 늘 고민거리였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왜 엉뚱하게 나타나는가?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응답해 주셔야 하고, 저런 상황에서는 저렇게 응답해 주셔야 할 텐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모습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응답 때문에 고민했습니다.
◉왜 이렇게 선과 악이 뒤죽박죽인가? 선하게 사는 사람은 잘되고 악하게 사는 사람은 벌을 받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세상이 상식적이지 않고 선과 악이 뒤죽박죽되어 있는 모습이 하박국의 고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고민을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고 말입니다. “하나님. 어느 때까지입니까? 하나님. 어찌하여 이렇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모습의 하박국을 만나 주시고 교만한 태도를 바꾸어 주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바꾸어 주셨습니다(합1:2-3). 하지만 어느 틈엔가 변해 가는 하박국의 모습을 봅니다. 선지자가 이르되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한 이시여 주께서는 만세 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니이까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기 위하여 그들을 두셨나이다 반석이시여 주께서 경계하기 위하여 그들을 세우셨나이다 (합 1:12). 하나님께서 울퉁불퉁한 하박국을 다듬어 가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박국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박국에게 깨닫게 해주신 것은 ❶하박국의 생각으로 선과 악을 판단하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하박국은 모든 경우에 자기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모든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하박국의 그런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셨던 것입니다.
❷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하박국이 알고 있는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면서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하나님의 또 다른 모습을 하박국이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❸하나님의 은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죄악으로 망가진 이 세상을 회복하고 구원하는 길은 오직 은혜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하박국을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하박국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가 다시 하나님께 질문을 던집니다(합 1:12-17).
하박국이 하나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하소연도 했습니다. 따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어떻게 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 모습이 2: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루에 서서 기다리고. 바라보며. 보리라.
성도 여러분. 성루는 ◎병사들과 백성들에게 편안한 쉼을 주기 위하여 지키는 곳입니다. 나를 위한 장소가 아니라 남을 위한 장소입니다. ◎성루에서는 성안을 주목하지 않습니다. 가까이 있는 것보다 멀리 있는 것을 주목합니다. ◎성루는 밝은 아침을 기다리는 곳입니다.
하박국이 그곳에 올라가겠다고 합니다. ◉내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겠다는 뜻입니다. ◉눈앞에서 보여지는 상황에 집중하지 않고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향하여 다가오시는 그 하나님을 믿겠다는 말입니다. ◉참고 기다리면서 문제가 해결되는 기쁨을 기다리겠다는 말입니다. 시편 130:6절 말씀입니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시 130:6).
이런 하박국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합 2:2-3). 반드시 응답해 줄 테니까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했으면,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지 아니하였다면, 응답해 주실 것을 믿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기도한 것들을 그냥 잊어버리지 마시고 기다리시고 바라보시고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풍성하게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Sep 14, 2024

주님! 나에게도 기적을 내리소서
(시편 126:1-6)
주원영담임목사
지혜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전1:5.9). 그러나 말라기 4:2절의 말씀이 우리의 시선을 멈추게 합니다(말4:2). 공의로운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춰주실 줄 믿습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공의로우신 하나님, 치료의 광선을 비추시는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우리의 모든 계획까지를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합니다(잠16:9). 그래서인지 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욥14:16-17).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십니다.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출 4:6).
우리는 지금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이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는 그분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는 모든 성도들에게 치료의 광선을 비추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셔서 꿈꾸는 것과 같은 기쁨을 맛보시는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이런 기적을 맛보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5-6). 우리가 수고한 결과로 열린 그 열매를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거두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에스라 1:1-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신을 섬기는 고레스 왕이 칙령을 내렸는데, 70년간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신을 믿고 있던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니까,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어려운 문제들과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환경 때문에 고민하시는 성도님들에게,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환경들과 이웃들을 감동시켜 주셔서, 자유와 기쁨과 평안을 맛보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있으면 놀라운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씨를 뿌려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5-6). 생각만하고 바라보기만 하는 자에게는 꿈꾸는 것과 같은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정성을 다하여 씨를 뿌리는 자에게 이 기적이 나타납니다.
2014년 한 해 동안 전 세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했던 단어는 “사랑”이었다고 합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무슨 일 때문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했을까요?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사랑이 결핍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인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주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마 22:37-38).
말씀에 비추어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은 ➊예배(성부 하나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참된 예배자를 찾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찾으시는 그 한 사람 그 예배자. 내가 그 사람 되길 간절히 주께 예배하네.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은 ➋말씀(성자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요1:14). 말씀을 가까이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은 ❸거룩한 삶(성령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이기에 정결하게 살기를 힘써야 합니다.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정결하고 거룩한 삶이 될 때에, 성령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모든 성도님들에게 꿈꾸는 것과 같은 놀라운 이 은혜가 넘치게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배를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고 ◉거룩한 삶을 살기로 다짐하는 성도님들에게 크고 놀라운 기쁨과 풍요로움이 넘치게 임하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Sep 7, 2024

영적 성숙의 삶을 위하여
(베드로전서 2:1-3. 베드로후서 3:18)
주원영담임목사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영적으로 성장해야 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성장하지 못함으로 하나님께서 그리고 영적 지도자들이 마음 아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오늘날 신앙생활을 하는 많은 크리스천들 중에는, 교회 생활의 이력서와 상관없이 영적 발달장애를 겪고 있는 영적 미숙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정확하게 보아야 합니다. ◎이름만 기독교인이라고 불리는 “명목상 기독교인”이 있습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거듭남의 확신이나 구원의 확신이 없이 교회에 출석하는 분들입니다. 또한 ◎구원은 받았지만 영적으로 자라나지 못하고 있는 “미성숙한 교인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 우리가 영적으로 자라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면서 성도님들과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영적 발달장애를 극복하고 영적으로 성숙한 신앙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❶영적으로 어린아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벧전 2:2). 베드로 사도는, 성도된 우리가 아직은 영적으로 젖을 먹고 자라가야 할 갓난아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울 사도도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아이들이라고 말합니다(고전 3:1-2).
사도들이 말하는 영적 아이들의 특징은, ◉말씀을 잘 깨닫지 못하는 영적 영양결핍(말씀의 무지)의 상태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 아직도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고 늘 시기하고 미워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와 같은 모습은, 신앙생활의 햇수나 직분과 상관이 없습니다(고전 3:3). 그리고 이와 같은 모습은 오늘 본문 말씀인 베드로전서 2:1절 말씀과 동일한 모습입니다. 아직도 내가 영적으로 어린아이라는 증거들입니다. 나에게 영적인 성장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신앙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❷영적인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은혜는 신앙인들이 경험하는 가장 크고 놀라운 축복입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도 일방적으로 조건 없이 베풀어지는 사랑입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엡 2:8-9). 바로 이 사랑으로, 이 은혜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 어떤 사람도 행위로 구원을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우리가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처럼, 우리의 영적 성숙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고 가르칩니다(벧후 3:18). 그래서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구원이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은혜이지만, 그러나 구원이 은혜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사막에 생명의 강을 다시 흐르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은혜는 빈들의 마른풀이 생수를 공급받아 다시 소생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은혜를 공급받는 유일한 방법을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히 4:16).
우리 모두는 주님 앞에 서기에 부족한 존재이지만, 기도를 드림으로 우리를 도우시는 은혜를 체험하시면서 영적으로 자라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신앙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❸영적인 지식을 배워야 합니다(벧후 3:18).
하나님을 바로 아는 지식을 배워야 합니다. 영적 성숙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를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닮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성화의 과정입니다.
바로 성경이 그 지식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성경만이 예수가 누구이신지를 알려줍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것을 “순전하고 신령한 젖”이라고 했습니다(벧전 2:2).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목마름과 배고픔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의 속사람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성경을 공부하기로 다짐하고, 주 앞에 엎드려 기도하기로 결단한다면, 우리가 목마르게 간절히 사모하는 영적성숙과 영적부흥이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 은혜가 함께 예배를 드리는 성도님들에게 충만히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Aug 31, 2024

하나님의 손길과 음성
(열왕기상 19:1-18)
주원영담임목사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던 이스라엘의 아합 왕이, 이방나라 왕의 딸 이세벨을 부인으로 맞이하고는 바알 신과 아세라 신을 섬기게 됩니다. 그 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다고 성경은 말합니다(왕상16:32-33). 이때 엘리야가 아합 왕에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비가 오지 않을 것을 경고하고는 그릿 시냇가에 머물면서 생활합니다. 그리고 3년 반의 시간이 흘렀을 때 하나님과 이방 신의 싸움인 갈멜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이 싸움의 결과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제사와 기도를 받으셨고 기적을 나타내셨습니다(왕상18:38-39)
오늘의 본문은 이 일이 있은 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왕후인 이세벨이 엘리야에게 내일 이맘 때까지 반드시 너를 죽이겠다는 말을 들은 엘리야가 자신의 생명을 부지하기 위하여 도망합니다(왕상19:3).
하나님의 사람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았던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 450과의 싸움에서 이긴 엘리야였습니다. 그런데 그때의 담대했던 엘리야의 모습은 어디로 간 것입니까?
인간의 연약한 모습을 봅니다.
엘리야는 도망하여 약 150㎞ 떨어져 있는 브엘세바에 이르게 되었고, 그곳에서 자신의 사환을 뒤로하고 홀로 하룻길을 더 도망하여 로뎀나무 아래에 이르러 그곳에서 하나님께 죽기를 청합니다(왕상19:4).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시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어려운 문제들이 해결됐다고 기쁨에 넘쳤었지만, 혹시 지금은 엘리야처럼 또 다시 하나님께 탄식만 늘어놓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아골 골짝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풀무 불도 두렵지 않았던 그 믿음은 어디로 가고, 주일 하루를 온전하게 예배드리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신앙이 되지는 않으셨습니까?
◎큰일을 했는데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음에 실망하기도 하고, 주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데 계속 다가오는 어려운 문제들 때문에 절망하셨습니까?
엘리야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최고의 선지자도 인간이구나! 낙심할 때 도망하고 자신의 생명까지도 포기할 때도 있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시간이 지난 후,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어루만져 주시는 은혜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왕상19:5-7).
그럼에도 엘리야처럼, 긍휼히 여겨주시고 은총을 베풀어주시고 어루만져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외면하고, 포기하면서 누워버렸던 때는 없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직 할 일이 많이 있는데 왜 누워 있냐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어루만져 주심이 있을 때 외면하지 마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어루만져 주시고 먹여주실 때 일어서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불러주시는 은혜”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왕상19:11-13).
생명을 부지하기 위하여 약 150㎞ 떨어져 있는 브엘세바로 도망하고 그곳에서 하룻길을 더 도망한 엘리야는, 또 다시 40일을 도망합니다. 그런데 그가 40일을 도망하여 도착한 곳은 하나님의 산 호렙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곳입니다. 세상의 신을 벗어버려야 하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던 장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까지 도망한 엘리야를 부르십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그런데 이 부르심에 엘리야는 엉뚱하게 하소연을 합니다(왕상19:10). 하나님께서는 그 한탄을 들으시면서 지나가십니다(왕상19:11-12).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기적들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안계셨다는 것입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하소연을 하고 있는 엘리야를 위로해 주시거나 안아주시지 않으시고 지나가셨던 것입니다.
시내산에 모세에게 불 가운데 강림하셨는데(출19:16-20), 니고데모에게 바람과 같은 성령으로 나타나셨는데(요3:8), 기드온과 삼손의 제사에 불로써 화답하셨는데(삿6:21. 13:19-20), 지금 엘리야에게는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잠시 우리의 삶을 돌아보세요. 수 많은 축복의 시간에는 감사했지만, 그 시간이 지나가고 실망과 좌절이 찾아올 때, 엘리야처럼 주저않아 있지는 않았는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바라보았는지, 우리를 어루만져 주시고 우리를 부르시는 그 음성을 들었는지.
성도 여러분. 엘리야의 이 모습을 생각하는 것과 함께 잊지 말아야 하는 교훈이 하나 더 있습니다. 열왕기상 18장에는 엘리야의 기도가 오로지 하나님 중심적인 기도였는데, 19장에서는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기도만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시는 능력의 사람일지라도 자기중심적인 기도를 하게 되는 순간부터 신앙의 내리막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이 진리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어루만져 주시는 손길을 느끼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나지막하고 인자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