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요약
Dec 10, 2023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요한복음 2:1-5)
주원영 담임목사
본문은 예수님의 공생애의 첫 이적의 사건입니다. 잔치집에 포도주가 모자랐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눈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도 이런 일들이 일어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내 생각과 계획은 완전해서 지금까지 한 번도 실수한 경우가 없었는데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많은 신앙인들은 문제가 터졌을 때 주님을 찾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찾고 주님 앞에 손들고 나아올 때, 주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하지만 아무런 근심과 걱정이 없고 모든 것이 풍족할 때, 그럴 때도 주님을 생각하실 수 있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한참 흥이 나고 즐거운 잔치집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이 상황을 주님께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주님의 반응이 너무도 냉냉합니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요2:4). 예수님의 어머니가 공개된 장소에서 자신의 아들인 예수에게 망신을 당하고 있습니다. 명색이 어머니인데 말입니다. 하지만 그럴 때, 믿음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내 앞에 펼쳐진 이 고비를 넘어서야 합니다. 고비를 넘어서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마태복음 15장에는 흉악한 귀신 들린 딸을 가진 수로보니게 여인이 등장합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께서 완전히 무시하시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 앞에 나아와 엎드립니다.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모진 말씀을 하시는데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 모습을 보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마15:28).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주님께서는 이 여인이 고비를 넘을 때까지 기다리신 것입니다. 믿음을 보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은 주님께서 나를 냉냉하게 대하시는 것 같고 외면하시는 것 같고 기도에 응답하지 아니하시는 것 같을지라도, 주님을 바라보고 신뢰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입니다.
다시 잔치집입니다. 아들에게 수모를 당한 어머니 마리아는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믿음으로 하인들에게 말합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믿음”은, 바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말씀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납니까? ➊기록된 모습(성경말씀)으로 나에게 나타납니다. ➋강단을 통하여 나에게 들려집니다. ❸양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이 나에게 들려집니다. 이런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나아가기만 하면,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그런 기적이 내 삶에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Dec 3, 2023

위로의 메시야로 오신 예수
(이사야 40:1-8)
주원영 담임목사
성탄의 의미는 하나님을 신앙하는 우리들에게는 내 마음과 내 인격과 내 생활이 변화되는 것일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40:1). 어떻게 위로하고 무엇으로 위로해야 합니까? 참 지도자를 만나면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참 소망을 주시는 그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위로를 받습니다.
성경은 많은 부분에서 종말론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종말론적 신앙의 핵심은 “복음”입니다. “아름다운 소식(사40:9)”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장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사40:10)”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핵심은 사죄입니다. 죄 사함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도들에게 사랑 중에 가장 큰 사랑인 “용서”를 복음의 핵심이라고 외치라고 합니다. 바로 메시야의 오심이 용서의 시대가 임하였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이 복음을 받아드리는 준비된 자세가 필요합니다. 성경은 이 준비된 자세를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탕자의 비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탕자가 집으로 돌아온 것은 실낱같은 미래에 대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넓은 마음을 믿었습니다. 아버지가 어떻게 대해 주실지는 생각하지 않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의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떤 분을 믿습니다.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분은 오늘도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용서한다. 내가 너를 용서했다는 증거로 네 죄를 대신하여 내가 십자가를 졌다. 바로 이 일을 하시기 위하여 그분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오래전에 계획하시고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예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사 40:3).
우리의 삶이 힘든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그 사랑을 그냥 받아들이면 됩니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부정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리고 새로운 소망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아멘으로 받아드리면 됩니다. 이것이 복음이고 성탄의 의미입니다.
Nov 26, 2023

서로 짐을 지십시오
(갈라디아서 6:1-5)
주원영 담임목사
우리의 신앙의 여정중에 힘들어하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특별히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나를 몰라하는 이웃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본문이 주고 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 중에는 복음을 떠나 육신의 삶 속에 빠져있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자들을 향하여 바울 사도는 “서로 짐을 지라.”고 당부합니다.
그 이유는 ❶시험을 당하고 있는 형제의 연약함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경우는 주위의 성도들의 죄가 드러나면 정죄합니다. 하지만 정죄하는 모습은, 죄에 빠진 사람에게도, 정죄하는 자신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런 형제들에게 온유한 심령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가르칩니다(갈5:1). 성령님의 지배를 받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으로 죄 속에 빠져있는 이웃을 바라본다면,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❷자신을 경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설령 내 이웃의 범죄가 명확한 사실로 드러났다고 해도, 나도 그런 범죄를 범할 수 있다는 자세로 다가가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섰다고 자신하는 자는 넘어질 수 있기에 조심하라고 당부한 것입니다(고전10:12). 우리가 우리 자신도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인정하고 살아간다면, 이웃이 실수하는 것을 볼 때마다 그것은 나를 위한 교훈이 되고 삶의 유익이 될 것입니다.
❸사랑으로 형제의 회복을 도와야 합니다. 1절에 기록된 “드러난다”는 말은 “혼자의 힘으로 빠져나올 수 없는 궁지에 빠진 상태” 이런 의미입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런 궁지에 빠진 형제나 자매를 우리가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회복되도록 도와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모든 것들을 이렇게 결론지으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사랑이 율법은 완성입니다. 사랑은 형제와 이웃을 회복시켜주는 명약 중의 명약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사역이고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시험을 당하고 있는 형제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❷자신을 경계할 줄 아는 성도가 되고 ❸사랑으로 형제의 회복을 도와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은 삶이 서로 짐을 나누어지는 성도의 모습이고 성도의 삶입니다.
Nov 19, 2023

청지기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
(베드로전서 4:7-11)
주원영 담임목사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맡겨주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28). 맡겨주신 것들을 관리하는 관리자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관리자를 “청지기”라고 부릅니다. 청지기(οίκονόμζ)라는 말은, “집안을 질서있게 정리하고 잘 관리하는 사람”인데, 성경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선한 청지기라고 말합니다.
왜 선한 청지기로 살아가야 합니까?
❶진정한 기쁨의 삶을 누리기 위해서입니다(벧전4:10). 선한 청지기는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가지고 정성을 다하여 섬깁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사용하지 않는 삶을 살면 기쁨이 없습니다. 재미가 없습니다. 흔히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내게 주신 은사를 발견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은사를 사용할 때 행복합니다. 성도님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발견하시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➋공동체를 세우는 기쁨을 누리기 때문입니다(창1:26).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순간부터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몸인 교회입니다. 동시에 교회라는 공동체의 지체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서로 사랑하고 서로 대접하고 서로 봉사하라고 교훈한 것입니다(벧전4:8-10). 이유는, 그렇게 해야 신앙의 공동체가 건강하게 세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세워주는 모습을 통하여, 삶의 공동체인 가정과 교회가 든든하게 세워져 갈 수 있도록 기도하시면서 모든 일을 주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행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➌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청지기의 삶을 살아갑니다. 여러 가지 헌신을 통하여 섬김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청지기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따라오는 유혹이 있습니다. 섬김의 영광을 하나님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돌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주인이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영광을 자신이 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벧전4:11).
그러므로 청지기 됨의 축복은, 주인으로부터 위임받은 은사로, 주인께서 주신 은사로, 주인을 위하여 섬기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함으로써 우리가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청지기 됨의 축복입니다.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선한 청지기의 삶을 간절히 사모하시는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