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요약
Sep 3, 2023

하늘 문이 열리는 축복
(창세기 28:10-15)
주원영 담임목사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부어주시는 축복을 받으려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순종할 때(신28:1-12), 주신 사명에 최선을 다할 때(행7:55-56), 예수의 모습을 닮아가려고 애쓸 때(겔1:1), 항상 기도하며 살아갈 때(창28:11-12),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갈 때 이 복을 주십니다(계11:19).
이 시간 하늘 문이 열리는 축복을 받은 한 사람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임마누엘의 축복을 받은 야곱입니다.
성경은 야곱을 벌레라고 기록했습니다(사 41:14). 그런데 하나님께서 벌레와 같은 야곱을 만나주시고, 그를 믿음의 조상의 반열에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열 두 아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세우셨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 후손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하게 하셨습니다. 더 놀랍고 감격스러운 것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의 이름인 “이스라엘”이라는 별명도 지어주셨습니다(창 32:28). 하나님께서는 형과 아버지를 속여 가면서까지 자기 욕심만을 채우려고 했던 야곱에게, 그것도 도망하고 있다가 피곤하여 잠에 빠져있던 야곱에게, 하늘 문이 열려지는 기적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임마누엘이 되어주시겠다는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야곱에게 왜 이런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야곱에게 하늘 문이 열리는 기적이 나타난 이유를, “부모의 기도”에서 찾고 싶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늘 기도하는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어머니 리브가도 하나님의 뜻에 민감했던 여성이었습니다.
이런 부모들이 아들 야곱을 광야로 떠나보내고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단잠을 자고 있었을 리가 만무합니다. 야곱은 피곤하여 잠에 골아 떨어졌지만, 부모들은 깊은 밤중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자식을 위하여 눈물로 간절히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식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는 부모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입니다.
자녀들이 가는 앞길에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이 저들에게 풍성히 임하기를 원하신다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위하여 그리는 간절한 기도를 절대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부모의 기도는 자녀들을 하늘 문이 열리는 축복의 자리로 나아가게 해 주시고, 벧엘로 그 발걸음을 옮기게 만들어 주시고, 기어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가 되게 하시는 축복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Aug 27, 2023

우리의 시선이 향해야 하는 곳
(요한복음 11:38-42)
주원영 담임목사
성도님들께서는 “큰 바위 얼굴”이라는 소설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결론만 말씀드리면 “닮으려고 하면 닮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2:2절에서 예수를 바라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분을 닮으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 누가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눅 11:34).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할 때, 제일 먼저 우리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이 그 이야기입니다.
주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안내로 나사로의 무덤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하신 주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십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 이때 마르다는 이미 오빠의 장례를 마쳤기에 예수님을 향하여 말씀드립니다.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옮겨 놓을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마르다의 시선은 죽은 오빠의 시신이 장사되어 있는 무덤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시간에, 같은 현장에서, 같은 상황을 보신 예수님의 시선은, 나사로의 무덤을 향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늘을 향하고 계셨습니다. 이어서 주님의 입에서는 이런 기도가 흘러나옵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요 11:41-4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우리의 시선을 하늘로 향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허락해 주시고, 믿음을 선물로 받은 우리의 입에서는 감사가 터져 나와서 기적을 맛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이 계십니다. 시선을 하늘로 향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계시는 주님께서 우리 곁에 계십니다. 기적을 선물해 주시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우리의 시선을 주님을 향하시기 바랍니다. 그럼으로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적과 축복을 맛보면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Aug 20, 2023

이해하지 못하는 맏아들
(누가복음 15:25-32)
주원영 담임목사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탕자의 비유는 당시의 종교인들이었던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눅15:1-2). 세리와 죄인들이 구원받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맏아들의 모습으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은 오늘날 예수를 믿는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큰아들은 ❶아버지가 베푸시는 잔치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27-28절). 아버지의 재산을 미리 챙겨가지고 먼 나라로 갔던 동생이 돌아왔기에 아버지가 잔치를 여셨는데 분노하고 있습니다. 왜 분노했습니까?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잔치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큰아들은 ❷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29절). 큰아들은 아버지의 모든 말씀을 순종하며 살았지만, 가장 중요한 하나는 순종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런 말입니다. “아들아. 네 동생 좀 찾아봐라.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좀 찾아봐라.” 그런데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큰아들은 분노합니다(29절).
큰아들은 ❸돌아온 동생이 자신과 피를 나눈 형제라는 관계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30절). 동생을 “내 동생이 아니라 당신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30절). 하지만 아버지는 내 아들이면서 네 동생이라고 합니다(32절).
성도 여러분. 교회공동체 안에 있는 성도들만 형제와 자매가 아니라, 교회공동체 밖에 있는 자들도 형제와 자매라는 사실을 기억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 마음을 가질 때, 주의 귀한 자녀가 될 줄로 믿습니다.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자녀가 될 줄로 믿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이해하지 못하는 맏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Aug 13, 2023

사랑을 낭비한 아버지
(누가복음 15:18-24)
주원영 담임목사
“탕자의 비유”라고 불리는 이 이야기 속에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신(낭비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탕자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❶기다림이 있는 사랑입니다. 20절 말씀입니다. ◉“보고.” 아버지가 저 멀리서 돌아오는 아들을 먼저 보셨습니다. 언젠가는 초라한 모습으로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올 아들을 생각하며 그 아들을 맞아주실 준비를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를 기다려주시는 그분 하나님을 만나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❷자비함이 있는 사랑입니다. 20절 말씀입니다. ◉“달려가.” 아들은 고개를 떨구고 힘없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알아보시고 달려오고 계십니다. 발보다 더 빠르게 아버지의 마음이 아들에게 달려간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모습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시는 예배의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❸용서함이 있는 사랑입니다. 20절 말씀입니다. ◉“입을 맞추니.” 이 입맞춤은 아들의 과거를 용서하신다는 아버지의 메시지였을 것입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용서를 빌었지만, 아버지의 귀에는 이 말이 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괜찮아, 아들아. 내가 다 알아.” 아버지는 이미 용서해 놓으시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 모습이 하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❹회복함을 주시는 사랑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용서해 주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들이 새로운 미래를 향하여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완벽하게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22절 말씀입니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눅 15:24).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이 놀라운 사랑의 선언을 들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사랑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돌아오는 것입니다. 스스로 돌이켜야 합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눅 15:17). 그리고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눅 15:20). 돌이켰으면 일어나서 돌아가야 합니다. 이 모습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이 은혜가 오늘도 성도님들에게 풍성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