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요약
Sep 17, 2023

우리가 가져야 하는 시선
(사도행전 3:1-10)
주원영 담임목사
본문에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베드로 사도와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청년(앉음뱅이)입니다. 이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기도시간을 기억하고 있었고 ◉기도할 장소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사람들은 누군가와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3:1-2절).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너무나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목적이 달랐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걷지 못했던 청년이 그곳에 나온 목적은 성전에 올라가고 내려오는 사람들을 만나서 은과 금을 얻으려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3:2절). 하지만 베드로 사도는 기도 시간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만날 목적을 가지고 성전에 올라간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가지고 말입니다(3:6절).
한 사람은 은과 금을 얻으려는 목적을 가지고 성전을 찾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을 만날 목적을 가지고 성전을 찾았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조금 더 깊게 살펴보세요. 두 사람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습니다. 보는 모습입니다. “보고(3절)”. “주목하여(4절)”. “보라(4절)”. “바라보거늘(5절)”. “보고(9절)”.
하지만 이 단어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다릅니다. 3절에 기록된 보고라는 단어는 목적이 없이 보는 모습을 말합니다. 청년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는 멈추어 서서 주목하여 바라봅니다(4절). 그리고 앉음뱅이 청년도 집중하여 사도들을 바라봅니다(5절). 시선의 변화가 생긴 것입니다. 그때 이 청년에게 기족이 일어났습니다(7-8절).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시선의 변화가 기적을 가져다 준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모습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9절). 그곳을 지나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고 있었지만, 이들의 시선은 멍한 시선입니다. 예배를 드릴 온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멍한 시선으로 이 광경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런 눈(시선)을 가져야 합니다. ❶이해하는 눈입니다(마 11:11). ❷좋은 모습만을 바라보는 눈입니다(요 1:47). ❸믿음의 눈입니다(요 6:10). ❹용서의 눈입니다(요 8:3). ❺순수한 신앙의 눈입니다(눅 18:16). 이와 같은 눈을 가지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으로 신앙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Sep 10, 2023

말씀이 주시는 기적
(베드로전서 1:23-2:2)
주원영 담임목사
살아가면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들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런 현실을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기적의 책이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말씀으로 천지가 창조되었고, 죽은 자가 살아났고 앉은뱅이가 일어났습니다. 기적입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이런 기적들보다 더 위대한 기적 두 가지가 있습니다.
◉거듭남의 기적입니다. 예수님과 니고데모가 거듭남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눕니다(요 3장). 변화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인간이 변화되는 것은 기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변할 수 없다면 성경이 제시하는 복음은 의미가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간은 거듭날 수 있다고 선언합니다(벧전 1:23).
하나님의 말씀의 씨는 살아있고 생명력이 있어서 이 씨가 떨어지는 곳에 생명이 심어지고 열매가 맺어지게 됩니다. 변화가 일어난다는 말입니다(약 1:18).
◉영적 성숙의 기적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거듭나게 할 뿐 아니라, 우리를 영적으로 자라게 한다고 증거합니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신체적으로 성장하지만, 영의 사람은 세월이 흘러도 저절로 자라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적 성숙을 기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고전 13:11). 본문 베드로전서 2:1절에 기록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은 어린아이의 신앙과 같은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들을 버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버림의 결단”은 우리 스스로는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가능합니다. 그리고 버림의 결단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원을 완성해야 합니다.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벧전 2:2).
그래서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나는 거듭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영적으로 자라고 있는가?”
함께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주시는 기적이 임하셔서, 거듭남의 기적을 경험하고 영의 사람이 성장하는 기적을 경험하시는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Sep 3, 2023

하늘 문이 열리는 축복
(창세기 28:10-15)
주원영 담임목사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부어주시는 축복을 받으려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순종할 때(신28:1-12), 주신 사명에 최선을 다할 때(행7:55-56), 예수의 모습을 닮아가려고 애쓸 때(겔1:1), 항상 기도하며 살아갈 때(창28:11-12),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갈 때 이 복을 주십니다(계11:19).
이 시간 하늘 문이 열리는 축복을 받은 한 사람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임마누엘의 축복을 받은 야곱입니다.
성경은 야곱을 벌레라고 기록했습니다(사 41:14). 그런데 하나님께서 벌레와 같은 야곱을 만나주시고, 그를 믿음의 조상의 반열에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열 두 아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세우셨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 후손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하게 하셨습니다. 더 놀랍고 감격스러운 것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의 이름인 “이스라엘”이라는 별명도 지어주셨습니다(창 32:28). 하나님께서는 형과 아버지를 속여 가면서까지 자기 욕심만을 채우려고 했던 야곱에게, 그것도 도망하고 있다가 피곤하여 잠에 빠져있던 야곱에게, 하늘 문이 열려지는 기적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임마누엘이 되어주시겠다는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야곱에게 왜 이런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야곱에게 하늘 문이 열리는 기적이 나타난 이유를, “부모의 기도”에서 찾고 싶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늘 기도하는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어머니 리브가도 하나님의 뜻에 민감했던 여성이었습니다.
이런 부모들이 아들 야곱을 광야로 떠나보내고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단잠을 자고 있었을 리가 만무합니다. 야곱은 피곤하여 잠에 골아 떨어졌지만, 부모들은 깊은 밤중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자식을 위하여 눈물로 간절히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식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는 부모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입니다.
자녀들이 가는 앞길에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이 저들에게 풍성히 임하기를 원하신다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위하여 그리는 간절한 기도를 절대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부모의 기도는 자녀들을 하늘 문이 열리는 축복의 자리로 나아가게 해 주시고, 벧엘로 그 발걸음을 옮기게 만들어 주시고, 기어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가 되게 하시는 축복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Aug 27, 2023

우리의 시선이 향해야 하는 곳
(요한복음 11:38-42)
주원영 담임목사
성도님들께서는 “큰 바위 얼굴”이라는 소설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결론만 말씀드리면 “닮으려고 하면 닮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2:2절에서 예수를 바라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분을 닮으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 누가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눅 11:34).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할 때, 제일 먼저 우리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이 그 이야기입니다.
주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안내로 나사로의 무덤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하신 주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십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 이때 마르다는 이미 오빠의 장례를 마쳤기에 예수님을 향하여 말씀드립니다.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옮겨 놓을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마르다의 시선은 죽은 오빠의 시신이 장사되어 있는 무덤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시간에, 같은 현장에서, 같은 상황을 보신 예수님의 시선은, 나사로의 무덤을 향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늘을 향하고 계셨습니다. 이어서 주님의 입에서는 이런 기도가 흘러나옵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요 11:41-4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우리의 시선을 하늘로 향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허락해 주시고, 믿음을 선물로 받은 우리의 입에서는 감사가 터져 나와서 기적을 맛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이 계십니다. 시선을 하늘로 향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계시는 주님께서 우리 곁에 계십니다. 기적을 선물해 주시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우리의 시선을 주님을 향하시기 바랍니다. 그럼으로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적과 축복을 맛보면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