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요약
May 4, 2024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는 부모
(잠언 4:1-6)
주원영담임목사
오늘 본문에는 왕의 자리에 있는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을 추억하고 있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때가 솔로몬의 생애 중에서 후반부라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아버지 다윗은 3-40년 전에 세상을 떠난 상태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 아버지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본문 4절 말씀입니다.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 (잠 4:4). 이어지는 9절 말씀입니다.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셨느니라 (잠 4:9). 아버지가 이렇게 자신을 교훈하고 훈계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다윗의 가르침을 아들인 솔로몬이 지금 떠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에게도 세월은 비켜가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흐르니까 아들 솔로몬도 어느덧 아버지 나이가 되었고, 그때 그는 아버지 다윗으로부터 받은 바 그 가르침을 자신의 아들들에게 그대로 전합니다. 아니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전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버지는, 단지 육신의 아버지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로마서 8:15절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육신적인 교훈만이 아니라, 영적인 교훈도 주고 있다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아들이었던 솔로몬 왕이 아버지의 어떤 부분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성경을 통하여 다윗과 솔로몬의 모습을 살펴보면, 아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에 대하여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역대하 1:8절 말씀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말하되 주께서 전에 큰 은혜를 내 아버지 다윗에게 베푸시고 내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니 (대하 1:8). 어머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솔로몬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완벽했을까요? 매사에 존경받을 만한 아버지였고, 어머니였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다윗이 행한 일들을 아들 솔로몬이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사무엘하 11:24절에 기록된 남의 아내를 취하기 위하여 부하를 시켜 그 여자의 남편을 교묘하게 전쟁터에서 전사하도록 한 일(삼하11:24). 사무엘하 24:15절에 기록된 교만한 마음으로 인구조사를 한 결과로 칠만 명이 죽게 되었던 끔찍한 사건(삼하24:15).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일들을 다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들어서 알고 있고 기록을 보아서 알았을 것입니다. 또한 어머니 밧세바에 대한 일들도 대부분 알고 이해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허물투성이였던 부모님의 모습을 아들이었던 솔로몬은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가 부모에 대해서 좋은 감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셨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내게 너무나 귀한 어머니였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면서 그분들의 가르침에서 떠나지 말라고 자신의 자녀들에게 교훈합니다.
성도님들께서는 혹시 부모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계시거나 오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부모도 나와 똑 같은 인간입니다. 약한 부분이 있고, 나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을 수도 있고, 다른 부모들에 비해서 자랑스럽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약점 많은 자신의 부모를 “좋은 부모”로 기억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성도님들의 부모가 연로하시더라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부모님들께서 원하는 것은 별것 아닙니다. 자주 보기를 원하십니다. 나이가 많아들면 영육 간에 추위를 느끼기 때문에 자주 찾아뵈야 하는 것입니다. 따뜻하게 해 드려야 합니다. 부모님께서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하늘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아가실 수 있도록 잘 도와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잠언이 우리에게 교훈하는 것이고,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엡 6:1-3).
지혜자가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교훈하시는 말씀들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심으로,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축복을 풍성하게 받아 누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Apr 27, 2024

아홉은 어디 있느냐?
(누가복음 17:11-19)
주원영담임목사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물으면 사람들의 대답은 모두 다를 것입니다. 건강, 돈, 명예, 명예, 자녀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요즈음은 요즘은 반려동물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을 볼 때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관심” 때문입니다. 아무 생각이 없고 아무런 관심이 없으면, 아무것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아무 생각 없는 듣고 잊어버리는 그런 성도님들에게, 왜 예배와 말씀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예수님의 제자 누가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예수님의 관심은 어디 있는지”입니다(눅17:17).
예수님의 관심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돌아온 한 사람 사마리아 사람보다 돌아오지 않은 9명에게 있다고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올바른 성도의 자세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하는 것은, 성도님들께서도 9명 중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감사한 것은, 내가 9명이 되었을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나를 생각하시고 걱정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또 하나 생각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관심은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결론은 다 알고 계실 것입니다. 당연히 9명에게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1명의 행동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아가면서 은혜를 모르면 안됩니다. 특히 성도들은 우리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은혜를 잊어버린 자가 9명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문제가 해결되니까, 마음이 바뀐 것입니다(눅17:17-18). 그래서 예수님께서 안타까워하신 것입니다.
저들에게는 간절한 간구가 있었고, 믿음도 있었고 순종도 있었습니다(눅17:12-14). 그런데 고침을 받고 나니 은혜를 잊었습니다. 그저 기쁘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안타까워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 순종, 믿음은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러나 기도와 순종과 믿음은, 반드시 감사라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은혜를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감사하는 모습은, 구원의 완성이며 성도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억해야 하는 것은 성도들이 가장 범하기 쉬운 잘못이 “잊어버리는 것”이라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잊어버리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은 다른 사람을 위한 말씀이 아니라, 바로 나를 향한 말씀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존 맥스웰”은 말했습니다. “만족하는 사람은 자신이 받은 복을 하나씩 헤아려 본다. 그러나 어떤 일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남들이 받은 복을 세워보면서 자신에게는 아무런 즐거움도 없다고 불평한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감사는, 내게 있는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만, 그것보다 더 귀한 감사는, 다음으로 미루지 않고 지금 이 시간에 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제단에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한센병자와 다를 바 없는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은혜를 잊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9명은 어디있느냐고 물으시면서 제자의 길을 가르쳐 주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늘 기억하시고 진실하게 신앙생활을 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Apr 20, 2024

동행함의 축복
(창세기 5;21~24)
주원영담임목사
오래전에 사람과 소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워낭소리”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는데 이 영화를 생각할 때마다 성경에 기록된 동행이라는 단어가 머리를 스쳐 갑니다.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큰 축복을 받았던 에녹이라는 사람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5:21-24절 말씀과 히브리서 11:5절의 말씀을 통하여, 300년이라는 시간보다 더 중요한 내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동행을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모습이 어떤 모습일까요?
◉하나님과 소통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과 동행을 시작하려면 우선,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만남이 의미있게 이어지려면 반드시 소통이 있어야 합니다. 만남이 있어야 소통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이와 같은 만남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동행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실 때 대단한 것을 바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고전1:9). 그리고 그 방편으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기도”를 주셨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그분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드림으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그분께 전합니다. 정말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려면 하나님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서 하나님과 소통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모습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암3:3).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나 때문에 생깁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동행이 되지 않는 것은 바로 내 생각과 내 뜻을 앞세우기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이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 26:39). 동행하는 삶이 주는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알고 그 뜻대로 순종하여서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께서 에녹에게 주셨던, 평생을 인도해 주시는 은혜로 함께 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기를 힘쓰는 모습입니다.
동행하는 사람들을 보면 닮아갑니다. 신앙생활도 똑 같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면 닮아갑니다. 가끔은 잘못해서 매도 맞지만 그래도 신앙생활의 시간이 지나가면서 닮아갑니다.
성도 여러분. 동행은 위대한 것입니다. 동행하는 자들은 서로에게 위로를 주고 닮아갑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과 늘 소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언제나 “예”하면서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Apr 13, 2024

예수님께서 감동하신 백부장의 믿음
(마태복음 8:5-13)
주원영담임목사
많은 저널리스트들은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없는 것이 많은 시대”라고 부릅니다. 특별히 자신과 관련된 일이 아니면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책임지지도 않습니다. 더구나 감동을 받을 일은 전혀 없습니다. 포스트모던 시대를 한마디로 표현해주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신앙인들이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그분께서 계속해서 감동 받을 일을 준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사건이 바로 그런 사건입니다. 감동 받을 수밖에 없는 삶의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백부장의 모습에 감동하셨습니다. ➊자신을 초월한(넘어선) 믿음 때문에 감동하셨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자신을 넘어서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해 놓으신 축복을 보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본문에 소개된 백부장은 자신을 이기고 넘어섰습니다. 이웃들에게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자신의 하인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고 있습니다(마8:5-6). 성경은 간구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참으로 귀감이 되는 모습입니다. 바로 이 모습이 우리 주님을 감동시킨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나 자신에게만 삶의 초점을 두고 살아가면 건강한 신앙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을 초월하여 이웃들을 돌아보고 섬기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감동하시는 건강한 신앙인이 됩니다.
주님께서 감동하신 백부장의 믿음은 ➋공간을 초월한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에게 감동을 받으시고 하인을 고쳐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8:7). 그런데 백부장이 또 한번 주님을 감동시킵니다(마8:8). 그는 공간을 초월하시는 믿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주님 이곳에서 말씀만 하셔도 기도만 해 주셔도 내 하인이 나을 것임을 제가 믿습니다.”
백부장은 말씀과 기도에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디서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시공간을 초월하여 역사하신다는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일하심을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감동하신 백부장의 믿음은 ➌민족을 초월한 믿음이었습니다.
백부장은 로마에 소속된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자신의 신분보다 자신이 아끼는 하인이 치유함을 받는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모습에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마8:10).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도 백부장처럼 ➊자신을 초월한 믿음을 가진 성도. ➋공간을 초월한 믿음을 가진 성도. ➌민족을 초월한 믿음을 가진 성도가 되셔서, 주님께 귀한 칭찬을 받으며 축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