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요약
Mar 9, 2024

진짜 어리석은 자
(시편 53:1-6)
주원영담임목사
10여년 전부터 세계 여러나라에서 기독교가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기독교를 박해하는 나라와 단체가 전 세계를 향하여 무서운 속도로 그 세력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지난 2013년 11월 8일. 대한민국 부산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WCC 부산총회“가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종교다원주의”를 인정하는 듯한 입장도 밝혔습니다. “종교개종금지이론”도 긍정했습니다. 무슨 이야기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정말 어떤 분이신가?” 하는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바로 다윗이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주었습니다(시 53:1).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렇게 말입니다.
다윗의 이 선언은 블레셋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말이 아닙니다(롬3:12. 참고). 블레셋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이 아니라, 다윗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말이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그렇기에 다윗은 지금 블레셋을 비롯한 다른 사람을 책망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허물과 잘못을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는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웁니다. 자신이 어리석은 삶을 살고 있다고 부끄러워하면서 자책하는 모습을 배웁니다. 우리가 다윗의 이 모습을 마음속 깊게 받아드려야 합니다. 다윗은 지금,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다고 말한다는 이 말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나는 그렇지 않다고, 나는 다윗과 다르다고 자신있게 말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게 자신있게 말하신다면, 그분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진리도 없습니다. 요한일서 1:8절과 10절 말씀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진리이고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다윗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 나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렇게 고백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이 고백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자비로 우리에게 다가오실 것입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모든 허물을 덮어 주실 것입니다. 다시 한번 새 힘을 주셔서 독수리와 같이 힘차게 날 수 있는 힘을 주실 줄 믿습니다.
Mar 2, 2024

최고의 선물
(요한복음 3:16)
주원영 담임목사
요한복음 3:16절 말씀은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성경말씀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지고 암송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담겨져 있고,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 속에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4가지의 축복으로 약속되어 있습니다.
◉“사랑하사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은 눈물겨운 사랑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무엇이든지 넘쳐나게 주시려고 생각하시면서 하루를 천년같이 인내하시면서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바로 사랑하신다는 증표가 “인내하심”이라는 말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포기해 버리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면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을 잘 표현해 주신 말씀이 탕자의 비유입니다(눅15:11-32).
성도 여러분. 이 사랑을 거부하는 것은 죄입니다. 그래서 죄는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도님들에게, 이처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삶의 모든 시간 속에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가장 귀하고 좋은 것을 주시는 축복”입니다. 독생자를 주셨으니.
사랑은 열 개에서 하나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다 주는 것입니다. 다 주고도 또 줄 것이 없는가를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심지어 십자가의 제물이 될 것을 아시면서도 아들을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의 그 어떤 사랑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아니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이 사랑을 잊지 않고 감사하시면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구원해 주시는 축복”입니다.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구원의 의미는 대단히 크고 넓습니다. 구원은 지옥에서 구출 받는 것을 말합니다. 불구덩이에서 탈출하도록 해 주신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로마서 10:13절에서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롬 10:13). 누가복음 16장에 기록되어 있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가 이 축복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눅16:19-31). 성도 여러분. 지옥은 상상의 세계가 아니라 실제상황입니다. 성도님들의 사랑하는 가족과 형제와 자녀와 이웃들이 그곳에 가지 않도록 구출해야 합니다. 구원해 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바로 이 일을 하시기 위하여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이 복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영원한 삶을 주시는 축복”입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육신의 몸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복은, 구원해 주시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영원한 삶을 함께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신앙인들이 감히 영생을 말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영생은 그리스도 안에서 최선을 다한 성도들이 누리는 은혜이고 축복이고 열매입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두에게, 이 영생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Feb 24, 2024

믿음으로 도전하는 삶이
주는 축복
(마태복음 14:22-3)
주원영 담임목사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도전” 또는 “모험”이라고 말합니다. 출생 그 자체가 모험입니다. 교육현장이라는 공동체에서 함께 교육을 받는 것도 모험입니다. 직업을 선택하는 것도, 두 남녀가 결혼이라는 것도 정말 대단한 모험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등장하는 베드로가 지금 모험을 하고 있습니다. 파도가 넘실거리는 갈릴리 바다를 아무런 장비도 없이 걸어가겠다는 모험입니다.
모험을 선택하느냐? 선택하지 않느냐? 하는 것은 베드로의 몫이고 우리들의 몫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도전의 삶이, 도전해볼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하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런 도전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축복은 무엇일까요?
먼저 ⓵순종의 삶에 도전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단순히 물 위를 걸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영웅심에서 모험을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행하라고 명하시면 행하겠다는 순종의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마14:28). 바로 이 모습이 그리스도인의 모험이 세상 사람들의 모험과 다른 점입니다. 베드로가 모험의 기준으로 삼았던 것은 “예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주님의 명령이라면 순종하겠다는 결단이 있었기에 물 위를 걷겠다고 도전한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신앙의 모험을 할 때, 그 기준이 말씀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순종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모험이 후회없는 모험이 되기 위해서는, 모험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의 명령이 있었는가?” 이것입니다(마14:28-29).
순종의 삶에 이어 ⓶믿음의 삶에 도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모험은 철저하게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믿음장인 히브리서 11장에 이름이 기록된 모든 믿음의 선진들은 모험을 시작한 사람들입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주님의 말씀만을 믿고 모험을 했습니다.
모험 앞에서 두려워하지 말고 말씀으로 철저하게 점검하고 행해야 합니다. 그 기준은, “순종의 모험”이고 “믿음의 모험”이어야 한다는 진리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모험들을 통하여 우리 삶의 현장에서는 놀라운 기적들이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축복입니다. 비록 잠간이지만 베드로는 물 위를 걷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배 위로 오르시자마자 신기하게도 바람이 그치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베드로가 모험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경험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갈릴리 바다에서 한밤중에 파도와 싸우며 고생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고 계시다가 도와주시려고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마14:27).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은 하나님의 임재는 베드로에게만 함께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도 함께 하십니다. 그런데 무엇이 걱정입니까? “내가 전능한 하나님이다. 지금 너와 함께 하고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Feb 17, 2024

가장 귀한 것, 하나님의 은혜
(여호수아 2:8-14)
주원영 담임목사
이방 땅 여리고에 살고 있었던 초라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라합이라는 여인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출애굽 여정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는, 그녀의 위대한 선택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성경은, 정탐꾼의 이야기보다 라합의 이야기를 더 중요하게 기록하였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두가지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❶하나님께서 라합을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승리의 자신감을 허락하셨다는 해석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라합을 준비하셨다는 해석입니다. 정탐꾼은 여러 곳을 다녀보면서 많은 정보를 얻어야 합니다. 그래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탐꾼들은 라합에게만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전부일까요?
저는 이런 이유 말고 틀림없이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하면서 이 말씀을 되풀이해서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❷하나님께서는 초라한 인생도 택하셔서 사용하셨다는 깨달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해 주시기만 하시면 우리의 삶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한번만 생각해 주시면 우리의 삶은 복된 삶이 됩니다. 라합의 신앙과 라합이 가지고 있었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초보자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하나님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기에 라합의 이야기는, 아무리 초라한 인생일지라도 위대한 일을 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녀의 선택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은혜였다는 사실입니다. 라합이 하나님을 먼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그녀를 선택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라합 편에서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보다 라합을 위해서만 일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라합만을 위하여 일하실까요?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나를 위해서도 일하신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이렇게 찬양하는 것입니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그 은혜에 감격하는 것입니다. 라합의 이야기는, 우리의 운명을 바꾸어 주시기 위하여 우리의 삶에 깊숙이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하시는 이야기입니다. ” 창가에 묶어 놓았던 붉은 줄의 의미와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알려주시는 이야기입니다.
성도 여러분. 붉은 줄의 의미보다, 나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지금도 불꽃같은 눈으로 나를 지켜보시면서 사랑의 손길로 나를 인도해 주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라합의 이야기를 통하여 다시 한번 되새기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