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요약
Nov 16, 2025

새롭게 주시는 축복을 받으려면
(시편 37:3-7)
주원영담임목사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하면, 놀라운 성공과 행복과 보람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낭패와 실망과 불행을 초래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어제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Forget yesterday). 지나간 시간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 잊어버려야 합니다. 지난 것들을 계속해서 생각하면서 그것들에게 집착하면, 내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일을 믿어야 합니다(Trust tomorrow).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들이 내일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되어도, 내일을 기대하지 못하면 삶이 더 힘들어질 것입니다.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건강한 사람은, 언제나 내일을 생각합니다. 미래 지향적이고, 항상 긍정적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것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Living today).
성도 여러분. 지나간 과거의 잘한 것과 실패한 것들을 다 잊어버리시고, 새롭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시면서,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풍성하게 받아 누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새롭게 주시는 축복을 받으려면 ◉염려와 근심을 다 주님께 맡기는 삶을 살기로 다짐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말합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염려와 근심에 짓눌려서 평화와 기쁨을 잃어버리면, 결코 행복한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보람있는 삶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염려와 근심에 짓눌려 사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성도 여러분. 살아가는 동안 때때로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삶의 짐을 짊어져 주실까?” 이런 생각이 드시면, 예레미야 33:2-3절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2-3).
그래서 그분 하나님을 신뢰하는 다윗은 고백합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 55:22). 바울 사도도 말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성도 여러분. 모든 염려와 근심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으면, 주님께서는 책임져 주시지 않습니다. 문제들을 주님 앞에 맡길 때, 주님께서 그 일을 책임져 주시고 해결해 주시고 염려와 근심에서 벗어나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우리의 짐을 맡기는 방법이 “기도”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주시는 축복을 받으려면 ◉우리의 모든 길을 여호와께서 인도해 주시도록 맡기는 삶을 살기로 다짐해야 합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시 37:5-6). 잠언 기자도 말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6).
성도 여러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려면 ◎순종해야 합니다. ◎사심을 버려야 합니다.
살아가시는 동안 우리의 옛 모습인 탐욕과 정욕을 그대로 가지고 살아간다면 결코 성령님의 인도하심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성도님들께서 삶의 모든 문제들을 전능하신 창조주 여호와께 맡기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형통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주시는 축복을 받으려면 ◉큰 꿈과 큰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기로 다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시 81:10). 하나님을 향해서 큰 꿈을 가지면, 하나님께서 필요를 채워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성도님들을 축복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쓸 모든 것들을 풍성하게 채워주신다고 약속하신 이 말씀을 굳게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염려와 근심을 모두 다 주님께 맡기는 삶을 살기로 다짐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의 모든 길을 여호와께서 인도해 주시도록 맡기는 삶을 살기로 다짐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큰 꿈과 큰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기로 다짐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렇게 살기로 다짐하는 성도님들에게, 하늘 문을 여시고 감당할 수 없는 축복을 부어주시는 은혜가 풍성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Nov 9, 2025

본 받고 싶은 멋진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상 24:1-7)
주원영담임목사
사람들에게는 때때로 자신에게 아픔과 상처와 억울함을 준 대상들이 있습니다. 원수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번 시원하게 복수하고 싶은데, 체면 때문에, 기회가 없어서, 기회가 있다고 하여도 힘이 없어서, 특별히 예수를 믿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고 사는 답답함이 우리들에게 종종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통쾌하게 복수할 기회가 있고 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억제하고 복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답답해하거나 속상해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훌륭한 사람일 것입니다. 정말 존경할 만한 사람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다윗이 아직 어린 소년이었을 때 누구도 감히 대적하지 못했던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을 상대로 물맷돌을 들고 이렇게 말하면서 나아갔습니다.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삼상 17:45).
이 일이 있은 후 다윗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아졌고(삼상 18:7), 사울 왕은 나라에 큰 공을 세운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삼상 18:8-9). 그러자 이 일을 알게 된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하여 도망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한번은 다윗이 “엔게디”라는 사막에 있을 때였습니다. 사울 왕이 군사 3,000명을 이끌고 다윗을 잡겠다고 그곳까지 쫓아 왔습니다. 그리고 사울 왕이 개인적인 용무가 있어서 다윗이 숨어 있는 굴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다윗에게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사람이 만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기회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부하들은 다윗에게, 이 상황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라고 말합니다(삼상 24:4). 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기름 부어 왕으로 삼으신 이를 내가 함부로 손대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합니다(삼상 24:6). 보통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다윗이 왕이 된 후에, 한번은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하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다윗 왕은 급하게 성을 빠져나와 기드론 시내를 건너 도망을 합니다. 그때 사울의 친척인 “시므이”라는 사람이 길가에서 도망하는 다윗을 저주합니다(삼상 16:7). .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삼하 16:7). 다윗의 신하 “아비새”가, 저 못된 시므이를 당장 처 죽이자고 말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삼상 16:9-10).
다윗이 복수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수를 금하셨다는 말씀을 믿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똑 같은 방법으로 복수를 합니다. 아니 더 심한 방법으로 복수를 합니다. 가해자는 피해를 입힌 만큼만 정직하게 갚아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출 21:23-25. 롬 12:17.19.21), 대부분의 사람들은 독하고 악한 마음을 가지고 더 심하게 복수를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사울 왕이 굴에 들어왔을 때 칼로 사울 왕의 목을 베지 않고 가만히 그의 옷자락을 조금 베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 때문에 마음이 찔렸다고 말합니다(삼상 24:5).
다윗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자신을 억울하게 하지 않으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공정하게 심판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부럽습니다. 닮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윗처럼 하나님만을 생각하면서 복수하지 않는 마음, 더 나아가서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성도님들께서도 이런 모습을 보여준 다윗을 마음속에 깊이 새기시고 닮아가시기를 힘쓰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살아가는 동안, 싫은 사람, 미운 사람, 복수하고 싶은 원수같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복수의 기회인 줄 알고 단칼에 그동안 쌓였던 억울함과 울분과 손해와 스트레스를 갚아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윗처럼 살아가시기를 원하십니다. 용서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사랑해 주면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다윗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힘이 없고 권력도 없는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사울 왕까지도 용서한 다윗을 생각했습니다. 멋있습니다. 정말 멋있습니다. 본받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원수까지도 사랑했던 다윗을 본받기로 다짐하는 결단이, 함께 예배를 드리는 성도님들과 영원한 교회에, 넘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Nov 2, 2025

눈물로 뿌리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
(시편 126:1-6)
주원영담임목사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감격을 노래한 감사의 찬양입니다. 말씀 전체에 기쁨과 감사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기뻐하는 것은, 70년 동안 바벨론에서 포로의 생활을 하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 큰 아픔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삶으로부터 자유함이 주어졌기에 기쁨과 감사가 넘쳐난 것입니다.
그리고 저들은 지금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시 126:5).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눈물흘림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기쁨의 크기와 고통의 크기는 비례한다는 말입니다. 기쁨의 크기는, 고통의 시간이 크면 클수록 더 커진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 고통은 헛된 고통이 아니라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고통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참 기쁨과 감사를 깨닫게 하시려고 어려운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쉬운 길도 있었지만, 저들에게 그 길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70년이라는 고통의 길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하실 능력이 없어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깨닫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성도님들께서는 출애굽 과정에서 있었던 아말렉과의 전쟁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면 이깁니다. 그러나 힘이 들어서 손이 내려오면 자꾸만 뒤로 밀립니다.
하나님께서 힘이 없고 능력이 없으셔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쉽게 전쟁을 이기게 해 주시면, 저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로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때로는 고통을 주시면서 우리의 인생을 바꾸어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진리를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사기를 읽다보면 사사가 세워질 때마다 특별한 현상이 반복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현상은 “타락-심판(진노)-회개(부르짖음)-평화(구원)”의 사이클입니다.
이스라엘에 평화가 찾아왔는데 저들은 그 평화를 지키지 못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저들은 평화를 지키지 대신 우상을 섬기고 타락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때마다 여지없이 이웃의 이방 나라들을 통하여 저들을 심판하시고 고통 가운데 있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일을 당할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그러면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저들에게 다시 지도자를 세워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들은 또 다시 얼마의 시간동안 평화를 누리면서 살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무려 330여년 동안 12번이나 반복한 것입니다.
사사기의 이런 모습을 묵상하면서, 때로는 우리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도 필요한 이유는, 그렇지 않으면 절실하게 하나님을 찾지 않을 것이고, 조금의 틈만 생기면 또 죄를 지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 범죄한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서러운 포로의 삶을 살면서 조국 예루살렘에서 드렸던 예배의 시간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도 깨닫게 됩니다. 저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지 않았더라면 이 축복은 결단코 경험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지난 시간을 되돌아봅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시 137:1).
하지만 지난 시간동안에는 많은 눈물을 흘렸지만, 이제 기쁨의 단을 거두는 시간을 경험하면서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 126:5).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이 간절한 마음으로 고통 중에 울부짖고 기도했을지라도 그들을 돌아오게 하신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하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 126:5).
유대인의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울어라. 그리고 사람 앞에서는 웃어라.”
웃는 삶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웃음이 어떤 웃음이어야 하는가?” 이것이 더 중요합니다. 웃는 것이 좋다고 해도, 실없는 웃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쾌락의 웃음도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웃음의 비결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울면서 씨를 뿌리라고 합니다. 울면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의 웃음을 웃으면서 단을 거두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찬양과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신뢰하며 걷는 자에게.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 한 없는 은혜 내 삶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씨를 뿌릴 때에 열매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것도 당연한 일이기에 이겨내야 합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자연의 법칙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씨는 우리가 뿌리지만, 그리고 열매를 거둘 때까지 추위와 더위를 참으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최선을 다하지만, 하나님께서 열매를 거두게 해 주시지 않으시면 웃으면서 기쁨의 단을 거둘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을 해가는 동안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은, 나를 위하여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는 도우시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큰 기쁨과 감사는, 눈물과 땀을 흘린 사람들이 누리게 되는 특권입니다. 거두는 자의 축복은 끝까지 견딘 자들에게 주시는 특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눈물을 흘린 자들에게 주시는 특권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시 126:2).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축복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은혜를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감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박헌성님이 쓰신 “최고의 은혜”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한 50여년 전에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빌딩은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었습니다. 무려 102층의 건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건물이 왜 102층인지 아십니까? 이 건물의 높이가 102층인 것은, 지난 1620년에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에 온 청교도들이 102명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신대륙에 도착한 첫해 겨울에, 굶주림과 질병, 인디언들의 습격으로 대부분의 사망하였고 44명만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지속되는 흉년에도 낙심하지 않고 힘을 다했습니다. 그런 시간이 흘러 3년째 되던 해, 저들은 풍년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풍년은 이내 눈물로 변했습니다. 추수를 얼마 앞두고 수 많은 벌레들이 나타나 곡식을 갉아 먹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벌레를 잡아도 소용이 없자, 그들은 한자리에 모여서 손에 손을 잡고 울면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밤새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신앙의 자유를 찾아 이곳에 왔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않고 살았던 저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다음 날 아침이 되었을 때, 저들은 놀랐습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덮을 듯한 수많은 참새 떼가 날아와서 벌레들을 모조리 잡아먹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들은 한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노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노라.”
저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가 부족했음을 깨달았고, 그동안 소홀히 여겼던 추수감사예배를 정성을 다하여 풍성하게 드렸습니다. 그날 이후로부터 이들에게서는 감사를 해야하는 원리가 후손들에게 전해졌습니다. 바로 5절의 말씀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시 126:5).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정신이 후손에게 계속 이어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씨를 뿌리는 자의 수고가 축복입니다. 그리고 그 축복을 주신 분을 아는 것이 축복입니다. 축복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들이 누리는 특권입니다.
이 진리를 믿고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기로 다짐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Oct 26, 2025

그의 인자하심이
(시편 118:1-9)
주원영담임목사
1517.10.31. 독일의 비텐 베르그 성당 벽면에 마르틴 루터가 “95개 조항의 항의문”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다섯 가지를 신앙의 기준으로 삼고 부르짖었습니다. “Five Sola”라고 부릅니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예수(Solus Christus).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
기독교 역사를 돌아보면, 사제들 외에는 그 누구도 성경을 마음대로 읽고 해석할 수가 없었기에 읽어주는 대로 듣기만 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종교개혁자들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 성경이 주어졌습니다. 말씀을 마음대로 읽을 수 있고 말씀을 마음대로 들을 수 있게 되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런 시대로부터 500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해되지 않는 여러모양의 안타까운 주장들이 우리에게 알려졌습니다. 특별히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면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교에도 구원은 있다고 말합니다. 성도님들께서는 이들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분들의 주장이 맞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이 사실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모습이 마르틴 루터가 살던 그 옛날에도 있었기에 루터는 그의 친구들이 종교개혁을 시작했지만, 그는 그 당시 교회로부터 따돌림을 당했고 교회로부터 파면을 당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부인이 상복을 입고 “하나님은 죽었다” 이렇게 말하는 모습을 보아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마르틴 루터는 저들의 강한 핍박 속에서도 쓰러지거나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가 흔들리고 쓰러지려고 할 때마다 그에게 힘이 되었던 말씀을 붙잡고 담대히 나아갔습니다. 그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 시편 118편입니다. 그리고 많은 학자들의 연구결과는, 시편 118편은, 시편 7편, 16편, 18편, 22편의 상황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시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118편의 저자가 다윗이라는 것도 알려주었습니다. 또한 이 시를 지은 배경은, 다윗이 아무 잘못이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시련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면서 쫓기고 쫓기는 상황에서 지은 시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계속되는 두려움의 상태에서 이 시를 썼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다윗은 한 가지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두려움을 물리치는 방법”입니다. 두려움을 물리치는 방법은, 두려움의 대상을 바꾸면 된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두려움을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그분께 피하면, 하나님께서 내 안에 찾아오셔서 내 안의 두려움들을 다 내쫓아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시 11:1).
사람들은 두려움이 찾아오면, 어디론가 도망을 칩니다. 산으로 도망을 하기도 하고, 사람에게 피하기도 합니다. 그때, 원수들이 찾아와서 속삭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속삭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탄의 유혹 앞에서 다윗이 담대하게 말합니다.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다윗은 사탄이 유혹하는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여호와께 피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찾았던 것입니다(시 11:4). 다윗의 이 고백이 성도님들의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찾고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성전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시편 118:1절과 29절 말씀이 그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18:1.29). 시인이 “하나님의 인자하심” “하나님의 헷세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무엇인지를 5절 말씀이 설명합니다.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시 118:5).
다윗은 자신의 연약함을 알았기에 다윗은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고통 중에서도 생명주심의 인자하심을 찬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시 3:5).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아있음에 감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살아있는 것이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입니다. 살아있어야 내일이 있고 희망이 있습니다.
또한 다윗은 ◉어려운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신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시118:10-12). 우리 앞에 펼쳐진 환경들이, 마치 가시덤불과 같아서 벌레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둘러싸고 에워싸고 에워싸고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우리는 그 모든 환경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극복하게 되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사 43:1-3).
결국 다윗이 노래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어려운 환경에 던져져 있지만 이 어려운 환경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다.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이다. 내 힘과 지혜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이 환경들을 극복하고 나아간다. 이 믿음으로 다윗이 지금 하나님께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의 이 노래가 우리 모두의 삶의 고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허물을 덮어주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노래하고 있습니다(시 118:18).
하나님께서는 죄는 질책하시지만, 죄값을 치르게 하지는 않으시겠다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내 잘못과 내 죄들을 하나하나 지적하신다면,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르게 하신다면, 지금 내가 이곳에 어떻게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우리 모두의 허물을 덮어주셨기에, 지금 우리가 숨을 쉬고 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입니다. 헷세드의 은혜입니다. 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잊지 마시고 늘 기억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가슴속에만 담아둘 수가 없어서 드러내서 표현합니다. 그 표현은, 바로 “감사”입니다. 1절과 29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 118:1.29). 그리고 19절, 21절, 28절에서도 감사합니다.
지금 다윗이 처해있는 상황은 모든 것이 다 잘 풀려서 승승장구하는 그런 상황이 아닙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있습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에 오늘 내 생명이 존재하는구나.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에 내가 지금 이 어려운 환경들을 극복해 나가고 있구나.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에 내가 부족하고 잘못하고 범죄하였어도 하나님께서 덮어주셨구나.” 이것을 깨달았기에 그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살아계십니까? 어렵지만 그 환경들을 극복해 나가고 계십니까? 시시각각으로 범죄하고 계시지만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은혜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감사의 찬양을 드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