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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약

Jul 18, 2026

구원자 예수
(에베소서 1:13-14, 2:6)

김판규선교사님

구원자 예수 (에베소서 1:13-14, 2:6) 제목으로 은혜로운 말씀 전해주신 김판규선교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셜교영상으로 대신합니다.

Jul 11, 2026

(복이 있는 사람) 긍휼히 여기는 사람
( 마태복음 5:1-7)

주원영담임목사

마태복음 5:16절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이렇게 당부하신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세상을 밝고 행복하게 만드는 다섯 번째 복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다시 한번 7절 말씀을 합독하시겠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

신약성경에 기록된 “긍휼(ἕλεος)”이라는 단어는, 보통 “자비”나 “동정”의 의미가 아닙니다.  반드시 행동이 따르는 자비나 동정을 말합니다. 긍휼은 어려움이나 고통을 당한 사람들을 안타까워하며, 그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거룩한 능력입니다.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입장을 바꾸어서 자신의 어려움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도 그런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모습이 긍휼히 여기는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0:30-37절에 기록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선행”을 통해서 긍휼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렇게 묻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눅 10:36).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 10:37). 어렵고 힘든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길 뿐만 아니라, 지금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것을 채워주는 것이 긍휼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가 세상을 좀 더 밝게 하기 위하여,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해야 하는 정말 중요한 것은, 작은 사랑을 실천하는 긍휼의 모습이 보여지는 것입니다. 세상은 긍휼의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로 말미암아 밝아지기 때문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 우리가 왜 이 가르침을 귀하게 여기고 따라야 합니까?

◉우리 모두는 긍휼이 필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먼 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크고 작은 파도를 만나듯이, 한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크고 작은 시련의 파도를 만납니다. 그리고 넘어야 합니다. 여기 서 있는 목사인 저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긍휼히 여겨주시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긍휼의 은혜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불쌍한 존재가 바로 우리들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먼저 자신을 긍휼히 여기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길 수 없습니다. 먼저 자신을 긍휼히 여겨야 다른 사람들을 긍휼히 여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주변을 한 번 둘러보세요. 다른 사람의 조그마한 잘못에 대하여도 지나칠 정도로 예민한 사람이 있습니다. 칭찬에는 아주 인색하면서 신경질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어려워지고 인생을 행복하게 살지 못합니다. 복되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 먼저 자신을 긍휼히 여기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긍휼을 베푸는 만큼 세상은 치유되고 아름다워지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가 한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 사람이 교회와 자신에게 베푼 사랑과 긍휼을 기억하고 그에게 주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원컨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 만났음이라(딤후 1:16-18).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 6:10).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긍휼을 베푸심으로, 세상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성도님들의 이 모습으로 인하여 가정과 교회와 지역사회와 세상이 아름다워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모습이 주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4-5절 말씀입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엡 2:4-5).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그 사랑 때문에, 우리가 죄에서 건짐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 사랑 때문에 오늘 우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긍휼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긍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입니다. 예수님의 주님되심을 인정하고 살아갈 때에 긍휼한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우리의 힘으로는 부족하지만, 성령께서 이 일을 도우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롬 8:28).

긍휼은, 성령의 충만함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나타나는 성령의 은사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나타나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성품입니다. 그러므로 긍휼한 삶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빌립보서 1:8절 말씀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 1: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긍휼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긍휼을 베풀 때 우리의 마음의 상처와 어지러운 세상은 치유되고 아름다워집니다. ◉뿐만 아니라, 긍휼히 여기는 이 마음은 주님의 마음이기에 우리가 닮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오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고 이웃을 긍휼히 여기는 삶을 살아가심으로, 이웃들에게 긍휼히 여김을 받으시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Jul 4, 2026

(복이 있는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마태복음 5:1-6)

주원영담임목사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처음 구원받은 감격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신기했고,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마음이 냉랭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영혼이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예배도 감격보다는 의무로 예배에 참석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단 한 번의 영적변화가 언제까지나 계속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에 목말라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기를 애쓰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은 기도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세례받은 후에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며 기도하신 것을 시작으로 새벽마다 기도하셨고, 저녁에도 습관적으로 기도하셨습니다. 또 사역을 하시는 그 바쁜 일정 속에서도 수시로 기도하시는 일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밤새도록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 남기신 일곱 말씀 중에 세 말씀이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의 기도 생활은, 예수님께서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면서 사셨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님에게 그런 기도의 모습이 있었기에, 현실에 굴복하지 않으셨고, 늘 승리의 기쁨을 맛보았으며, 마침내 모든 일을 다 이루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의 삶을 사셨던 주님께서 오늘 우리를 향하여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삶을 살라.”말씀하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기록되어 있는 “의(δικαιοσύνη)”라는 단어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올바르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언약의 백성들을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삶을 산다는 말은 ◉“하나님의 구원을 목말라 사모한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메시야라고 소개한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향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죄와 허물로 죽은 인간들을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예수 십자가의 죽으심이라는 말입니다.

바울 사도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죽으심은 물론 부활하심까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4:25절 말씀입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세례요한도 죽음과 부활에 이어 또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요한복음 3:16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죽음과 부활에 이어 영생을 말합니다. 믿으면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믿기만 하면 된다고 하십니다.

영생은 믿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에베소서 2:8-10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8-10).

구원의 감격이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죄책감과 무거운 죄의 짐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던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그 어떤 의로운 행위를 요구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외아들 예수를 내어주시고 대가를 대신 지불해 주셨습니다.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행하신 것입니다. 이 일을 기억하고 늘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기로 애쓰는 모습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삶입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된 우리 모두를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예수의 부활과 함께 살려주시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은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가 적용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대가 없이 구원해 주신 은혜였다는 말씀입니다.

이 은혜를 생각하면서 다시 한번 십자가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십자가를 붙드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죄인인 나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예수님께 있습니다. 그 십자가 앞에 나아갈 때만이 다시 구원의 감격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입술로 그 구원의 기쁨을 고백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와 신앙인에게서 십자가가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잃어버리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것을 회복하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갈급한 마음으로 십자가의 은혜를 사모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삶을 산다는 말은 ◉“그리스도인답게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에만 만족하지 말고, 삶의 현장에서 변화된 모습이 보여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늘 우리 주변에서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잡히면 사탄의 종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전혀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십자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빛 되신 주님과 늘 동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6:10-14절 말씀이 우리에게 놀라운 사실을 알려줍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자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롬 6:11). 죄는 언제나 우리를 유혹합니다. 신앙적으로 죽었는지 살았는지 찔러보기도 합니다. 죽은 자는 반응하지 않지만, 깨어있는 그리스도인은 단호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죄에 대하여는 죽었다고 선언해야 합니다. 죄와는 무관하다고 선언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 대신 이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고 선언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어서 ◎성도들은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롬 6:11).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된 사람이라고 선언하라는 말씀입니다.

살아가면서 늘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다고 선언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오뚜기를 아실 것입니다. 중심에 무거운 납이 들어있기 때문에 아무리 내 던져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넘어지는 것 같지만 다시 일어섭니다.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 오뚜기 같은 삶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으로 중심을 잡고 넘어지더라도, 던져지더라도, 오뚜기처럼 일어나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다스리심을 사모해야 합니다. 이유는, 예수의 이름으로 드리는 우리의 믿음의 기도는 하늘보좌를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심과 함께 성령님의 역사를 기대하십시오. 성령님은 우리와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고 “성령님은 나와 함께하십니다.” 이렇게 선언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을 나의 주인이라고 고백하고,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기도하시면, 그리고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을 기대하면서 주님의 의를 간절히 구하면, 주님께서는 우리가 구하지 아니한 것까지 더하여 주십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이 말씀을 기억하시고 실천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요함의 축복을 받아 누리시는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Jun 27, 2026

(복이 있는 사람) 온유한 사람
(마태복음 5:1-5 )

주원영담임목사

2,000년 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 투자를 잘 하는 사람이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온유한 사람이 복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온유한 사람(οί πραείς)”이라는 뜻은, “겸손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겸손”은 단순히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하지만 “온유”는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허세를 부리지 않고 자기에게 악을 행하는 자에 대해서도 오래 참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온유한 마음을 가지게 되면 결국 사람을 얻게 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게 바꾸어 말할 수 있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사람을 얻을 것이요.

강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주변의 좋은 사람들을 놓치지만, 온유한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들을 얻는다는 교훈을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인지 예수님께서는 온유한 사람이 복이 있다는 말씀을 하실 때 시편 37:9-10절의 말씀을 염두에 두셨습니다(시 37:9-11). 행악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인색하고 강퍅하여 결국 사람을 잃어버리는 삶을 살게 되지만, 온유한 사람은 좋은 사람들을 많이 얻게 되어서 결국 땅을 차지하게 되고 풍요로운 평안함으로 인생을 즐기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온유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과 축복의 조상으로 아브람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란에 살고 있던 아브람을 부르신 것입니다(창 12:1). 이 부르심을 들은 아브람은 그 조카 롯과 함께 주저하지 않고 떠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1:8절에서 이때의 아브람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 11:8). 아브라함이 믿은 것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좋은 곳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이 한 가지 사실을 믿었습니다. 이 믿음이 그를 순종할 수 있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믿음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때에 나타났습니다(창 22:2).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삭과 함께 산에 올랐고,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들 이삭에게 네가 제물이라고 말하고는 밧줄로 묶고 칼을 빼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들 이삭이 전혀 반항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제단에 올라가 제물이 되기를 기다립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습니까?

하나님께 대한 아버지 아브라함의 절대적인 신뢰함과 순종함을 알고 있었던 이삭이 그 상황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모리아 산의 사건은, 두 부자의 신뢰와 순종이 이루어낸 작품입니다(창 22:12).

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이삭을 다시 찾았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사무엘하 16:7-8절에는 다윗의 생애에 가장 비참했던 때의 일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아들 압살롬의 반란 때문에 도망하는 도중에 있었던 치욕입니다. 그때 다윗의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다윗이 감람 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며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가니라(삼하 15:30). 이런 모습으로 다윗과 그의 일행이 “바후림”에 이르렀을 때에, 사울 왕가의 족속인 “시므이” 라는 사람이 다윗의 일행을 계속 따라오면서, 돌을 던지면서 저주하며 말합니다(삼하 16:7-8).

이때 다윗 왕의 신하였던 “아비새”장군이 다윗 왕에게 해결하겠다고 말하였지만(삼하 16:9), 다윗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렇게 하라고 시키신 것이니 저주하게 내버려두어라(삼하 16:10).

이렇게 초연할 수가 있었던 것은, 온유하기 때문입니다. 온유한 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모습입니다.

결국 압살롬의 반란은 잠재워졌고 다윗은 그를 따르는 자들과 함께 다윗성으로 복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현실에서 다가오는 크고 작은 어려운 일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그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는다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더욱 복잡해지고 맙니다. 해답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원인이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고 회개하기 시작하면 문제는 풀리게 됩니다. 이것이 온유한 마음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용서하고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죽었고, 모세는 아프리카 지역에 흩어져 살던 피부색이 검은 구스 여인를 선택하여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혈통의 사람뿐만 아니라,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까지도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일깨어 주시려는 결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에 대하여 모세의 누이였던 “미리암”이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미리암은 아론을 충동질하여 모세를 비방하기 시작하였습니다(민 12:2).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셔서 말씀하십니다(민 12:4-8).

이 일로 미리암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한센병(문둥병)자가 되었습니다. 바로 그 때, 모세의 온유함이 드러났습니다. 자기를 향하여 악의적으로 비난하고 선동하던 미리암을 용서할 뿐만 아니라,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하나님이여 원하건대 그를 고쳐 주옵소서(민 12:13). 이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 모세를 향하여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민 12:3).

성도 여러분. 용서하는 이 마음은 상대방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나를 비방하고 힘들게 하는 그 사람을 용서하고 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온유한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용서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있는 죄의 찌꺼기들을 모두 깨끗하게 씻어주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무한한 능력으로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바로 온유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온유한 마음은 미움을 사랑으로 바꾸어 줍니다. 정죄를 용서로 바꾸어 줍니다. 조급함을 인내함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어둠을 밝음으로 바꾸어 줍니다.

하지만, 온유한 사람이 되는 것은, 내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됩니다.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 4:6).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저와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주님께서 이 복된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살도록 역사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합독하시겠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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