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요약
Oct 7, 2023

스스로 계시는 분.
야훼
(출애굽기 3:13-22)
주원영 담임목사
하나님께서 430년 동안이나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었던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시기 위하여 모세를 부르셨을 때 모세가 하나님께 묻습니다(출 3:13). 나를 누가 보냈다고 말할까요? 모세의 이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출 3:14).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스스로 있는 자”라거 말합니다. 이것이 나의 영원한 이름이고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3:15).
그러면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❶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여호라라는 말의 의미는 “나는 언제나 현재”라는 말입니다. 나는 현재에도 미래에도 있을 자라는 말입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자라는 말입니다. 야웨 하나님은 홀로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세상의 모든 이름이 잊혀져도, 잊혀지지 아니할 영원한 이름입니다.
야웨(여호와) 하나님은 ❷불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은 환경에 따라 변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세상은 변하고 인생도 변하지만, 오직 야웨 하나님 한 분만은 변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지만 우리에게는 믿을 수 있는 분이 한 분 계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야웨(여호와) 하나님은 ❸지금도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들의 방황하는 모습과 고통을 보고 계십니다. 우리들의 신음소리를 듣고 계십니다. 우리들의 좌절과 아픔을 알고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절망 속에서 구해 주시려고 우리에게 내려오신다고 약속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마침내 인간과 똑 같은 육신의 모습으로 찾아오셨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는 7회에 걸쳐 예수님을 “지금 스스로 계시는 분”이라고 소개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영원토록 변함없이 한결같으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풍랑을 만나고 고통을 당하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내 곁에 다가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막 6:50). 이분과 함께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Sep 30, 2023

나는 하나님의 걸작품
(에베소서 2:8-10)
주원영 담임목사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엡 2:10). 우리 모두는 창조주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창조주의 작품다운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❶선물로 주신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인간이 하나님의 작품으로 창조되었지만 범죄함으로 타락하게 되면서 인간 본래의 아름다움을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구원이 필요한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지으신 그 모습으로 회복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이 구원이 우리의 행위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선물을 받으려면 믿음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엡2:8).
❷창조주의 선한 기대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한 일을 행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엡2:8-9). 그러나 행함이 필요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성도에게 열매로 나타나는 선한 행위가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의 아름다운 작품이 되게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는 선을 행할 능력이 없었지만,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우리의 모습은 선을 행할 능력이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모든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입니다(엡2:10).
❸교회공동체의 지체로서 그 기대를 실현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작품으로 살아가게 하시려고 우리를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 두셨다고 말합니다(엡2:22). 우리가 구원을 받았지만 우리 안에 남아있는 죄성 때문에 쉽게 죄를 짓게 됩니다. 그래서 선을 행하다가도 쉽게 낙심하고 쉽게 포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9).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원하시는 선을 이루도록, 우리를 한 곳에 거하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우리가 교회 공동체의 지체로써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일을 이루어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해야 합니다. 함께 붙들어 주고, 세워주고, 함께 손을 잡고 나아가야 합니다. 함께 하나님 나라의 선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Sep 23, 2023

하늘의 보고를 열어주시는 축복
신명기 28:12-14
주원영 담임목사
신명기 28:12절에 기록된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라는 표현은 “하늘의 보물창고”를 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늘 창고를 열어주시기만 하면, 우리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늘로부터 내리시는 복을 받게 됩니다. 내게 관계된 모든 것들이 완전케 됩니다. 신명기 28:3-6절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어주시기만 하면, 우리의 인생은 하늘로부터 내리시는 축복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삶의 어려운 일들도 모두 해결될 것입니다. 세상 말로 대박나는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축복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신명기 28:7-10절에 기록된 축복입니다. 그야말로 감당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장마비와 같고 폭포수와 같은 축복입니다. 하늘 문이 한번 열리기만 하면, 이런 축복이 쏟아지게 됩니다. 그런데 하늘 문은 아무에게나 열리지 않습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열리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하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열쇠는 신명기 28:1절과 13-1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이 하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순종은 ◎주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모든 생각과 말의 기준을 주님에게 두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의 기준을 주님에게 두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이 먼저이고 내 뜻은 그 다음이라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예비해 놓으신 축복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 하는 것은 나에게 달려있습니다. 한번 우직하게 순종해보시면 그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감사합시다. ◎예배드림을 귀하게 생각하십시다. ◎기도에 힘써 보십시다. ◎말씀을 붙잡아 보십시다. 그리고 ◎찬양을 멈추지 맙시다. 이런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 나와 관계된 것들을 완전케 해 주실 것입니다. 모든 상황들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하늘 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이것만 지키면 그렇게 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신명기 28:1절 말씀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신 28:1).
말씀에 순종함으로 저와 성도님들에게 하늘 문이 열리고 놀라운 축복이 쏟아지는 은혜를 누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Sep 16, 2023

우리가 가져야 하는 시선
(사도행전 3:1-10)
주원영 담임목사
본문에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베드로 사도와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청년(앉음뱅이)입니다. 이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기도시간을 기억하고 있었고 ◉기도할 장소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사람들은 누군가와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3:1-2절).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너무나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목적이 달랐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걷지 못했던 청년이 그곳에 나온 목적은 성전에 올라가고 내려오는 사람들을 만나서 은과 금을 얻으려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3:2절). 하지만 베드로 사도는 기도 시간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만날 목적을 가지고 성전에 올라간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가지고 말입니다(3:6절).
한 사람은 은과 금을 얻으려는 목적을 가지고 성전을 찾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을 만날 목적을 가지고 성전을 찾았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조금 더 깊게 살펴보세요. 두 사람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습니다. 보는 모습입니다. “보고(3절)”. “주목하여(4절)”. “보라(4절)”. “바라보거늘(5절)”. “보고(9절)”.
하지만 이 단어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다릅니다. 3절에 기록된 보고라는 단어는 목적이 없이 보는 모습을 말합니다. 청년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는 멈추어 서서 주목하여 바라봅니다(4절). 그리고 앉음뱅이 청년도 집중하여 사도들을 바라봅니다(5절). 시선의 변화가 생긴 것입니다. 그때 이 청년에게 기족이 일어났습니다(7-8절).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시선의 변화가 기적을 가져다 준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모습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9절). 그곳을 지나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고 있었지만, 이들의 시선은 멍한 시선입니다. 예배를 드릴 온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멍한 시선으로 이 광경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런 눈(시선)을 가져야 합니다. ❶이해하는 눈입니다(마 11:11). ❷좋은 모습만을 바라보는 눈입니다(요 1:47). ❸믿음의 눈입니다(요 6:10). ❹용서의 눈입니다(요 8:3). ❺순수한 신앙의 눈입니다(눅 18:16). 이와 같은 눈을 가지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으로 신앙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