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요약
Jun 20, 2026

복 있는 성도. 복 있는 교회.
(시편 1:1-6)
주원영담임목사
창립 11주년 감사예배를 드리면서 영원한 교회의 기초석이 되는 말씀을 합독하시겠습니다. 시편 90:1-2절 말씀입니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시 90:1-2)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수 많은 선택을 합니다. 매일매일이 선택의 연속입니다. 바로 그때 우리가 어떤 선택(Choice)을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인생은 달라지게 됩니다. 바라기는, 함께 예배를 드리는 성도님들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인생의 중요한 선택들을 현명하게 잘 하시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들은 영원한 교회가 이곳에서 예배를 드린 지 11년이 되는 시간을 감사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아직 홀로 서지는 못했지만, 그리고 외부 상항이 녹녹지 않은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함께 해 주시는 성도님들에게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를 깊이 묵상하다가 시편 1편의 말씀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설교의 제목을 이렇게 정했습니다. “복 있는 성도. 복 있는 교회.”
성도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경우에 선택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특별히 신앙적인 선택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는 것을 이 말씀을 통하여 배웁니다.
1980년 어느 날, 이런 광고가 신문에 실렸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1980년에 나온 금성(지금의 LG) 하이테크 컬라TV 광고입니다. 이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에서 “우리 회사 컬러TV를 사면 10년은 참 잘 샀다고 만족하실 겁니다.” 이런 생각을 하도록 하기 위한 광고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광고를 오늘 말씀에 비추어서 이렇게 바꾸어서 생각하고 싶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한다. 아멘.
바로 이것입니다. 시편 1편의 말씀이 이 말씀입니다. 우리의 선택이 10년, 아니 평생, 아니 영원을 좌우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신앙적인 선택, 바로 영적인 선택이 정말 정말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인생의 갈림길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선택을 합니다. 오늘 본문도 우리의 인생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고 말합니다. 한 길은 축복으로 인도하는 길이고, 다른 한 길은 저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한 길은 구원의 길이고 다른 한 길은 심판과 멸망의 길입니다. 선택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두 길 중에서 한 길을 선택하는 순간, 그 결과는 정반대가 됩니다. 그래서 시편 1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당신은 이 두 길 중에서 어느 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결정하십시요.”
이 선택의 원리는 성도의 삶에서뿐만이 아니라,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성도가 복 있는 성도가 되기 위해서 선택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교회가 복 있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선택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11년 전에 한 명의 동역자도 없이 저와 아내가 이곳에 교회를 봉헌했습니다. 그리고 11년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집값 폭등을 시작으로, COVID-19와 리모델링이라는 어려움을 만났습니다. 특별히 COVID-19는 교회를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어려움으로 몰아갔습니다. 그런 일들이 있었지만, 지금 이렇게 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계획으로는 아쉽습니다. 목회를 시작하면서, 3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면, 이만큼의 성도가 되어서 교회가 자립하게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기도하면서 이 시간까지 왔는데, 아직은 생각대로 교회가 성장하지 못해 너무도 아쉽습니다. 그럼에도 간절한 기도를 드리면서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채워주실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것만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고 감사를 드리면서, 앞으로도 인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 함께 봉독한 시편 1편의 말씀을 통하여, 복 있는 교회가 선택해야 할 길이 어떤 길인지를 성도님들과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복 있는 교회가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시편 기자는, 복 있는 성도와 복 있는 교회가 선택하지 말아야 하고 따라가지 말아야 할 것이 “세 가지”라고 말합니다. 1절 말씀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시 1:1).
◎복 있는 성도와 복 있는 교회는,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아야 합니다.
“꾀”라는 단어의 의미는 “충고. 조언” 이런 의미입니다.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충고나 조언을 잘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충고들을 듣는 것이 중요하지만, 아무 충고나 듣고 따르면 안 됩니다. 특히 악인들의 충고는 절대 듣지 말아야 합니다.
악인들은 우리에게 손해보지 않도록 세상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 살라고 말합니다. 예수 믿는 성도라도 세상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면서, 괜히 예수 믿는다고 생색내지 말고 남들 사는 대로 적당히 휩쓸려 살라고 충고합니다. 안 그러면 손해 본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면 이렇게 가치관이 다른 충고는 단호하게 거부해야 합니다. 손해 보더라도 나는 하나님의 뜻을 먼저 따르겠다고 선포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때때로 이런 유혹이 솔깃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적당히 타협하면서 넘어가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안 되잖아요. 아무리 좋아 보여도, 그것이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일이고 성도들 앞에 부끄러운 일이면 하지 말아야 하잖아요. 교회는 달라야 하잖아요?
손해 봐도 괜찮습니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방법을 선택해야 합니다. 악인들이 선택하는 길을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교회가 복 있는 교회입니다. 그런 교회에서 힘을 함께 해 주시는 성도가 복 있는 성도입니다.
영원한 교회가 복 있는 교회가 되고, 영원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복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복 있는 성도와 복 있는 교회는,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13-14절 말씀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3-14).
말씀처럼 죄 짓는 길,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넓고 편해보여서 많은 사람들이 선택합니다. 하지만 구원의 길, 의인의 길은, 좁고 힘들어 보여서 선택하는 사람들이 적습니다. 넓고 편해 보여서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길은 세상으로 인도하는 길이고, 하나님을 멀리하는 곳으로 인도하는 길이고, 죄 가운데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이와 같은 길은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을 하시다 보면, 같은 교회에서 같은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해도, 어떤 사람들은 너무나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때로는 손해보는 것 같고, 때로는 고생이 되는 힘든 길이라고 해도, 그 길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이라면, 기꺼이 그 길로 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조금 편하다고, 조금 쉽다고, 편안하고 쉬운 길을 선택하는 그런 어리석은 성도들이 영원한 교회에는 한 분도 안 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복 있는 성도와 복 있는 교회는,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좀 높은 자리에만 올라가면 교만해집니다. 조금만 잘 되고 출세의 길에 들어서면 순식간에 사람이 달라집니다. 오만한 모습이 보인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성도들은 그런 교만한 모습은 보이지 말아야 합니다. 잘 나갈 때일수록 더 겸손해야 합니다. 누가 나보고 저 높은 자리에 올라가 앉으라고 해도 손사래를 치며 “저기는 제 자리가 아닙니다.” 이렇게 사양하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 성장하고 부흥했다고 교만해져서 작은 교회들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성도들끼리도 만나서 얘기할 때 “나는 이런 큰 교회 다닌다.” 자랑스럽게 말하는 경우를 보는데, 큰 교회를 다니는 것이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교회가 커진 만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지고 가야할 책임이 커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의 목회자나 성도들을 귀히 여기고 섬겨드려야 합니다. 이 모습이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목회자가 한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이 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 감사해야 하고 더 큰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그렇다면 ◉복 있는 교회가 가야 할 길은 어떤 길입니까?
복 있는 교회, 복 있는 성도가 가야 할 길이 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 1:2). 아멘.
그렇습니다. 복 있는 성도는 악인이나 죄인이나 오만한 자의 말과 충고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입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말씀을 밤낮으로 묵상하는 자입니다. 묵상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복 있는 교회는 어떤 사람의 주장이나 말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말씀 위에 든든하게 서서 그 말씀대로 함께 세워가는 교회입니다. 이런 모습이 보여지는 교회가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복 있는 교회입니다.
사랑하는 신앙의 동역자 여러분.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멀리하고 가야 할 길을 가는 그런 교회, 그런 성도에게 하나님께서는 큰 축복을 준비하셨습니다. 그 축복이 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 1:3). 아멘.
나무가 그 뿌리를 깊이 내리면 아무리 심한 가뭄이 와도 마르지 않고 철을 따라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것처럼, 이곳에 세워진 영원한 교회가 오직 하나님의 말씀 위에 든든히 서면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이겨내고 그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모든 성도님들에게도 형통하게 되는 축복이 임하시기를,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절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살아가는 자에게 주시는 복을 알려주십니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시 1:6). 아멘.
영원한 교회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영원한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성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는 은혜가 넘치는 교회가 되고 축복의 성도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창립 주일을 맞이하여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영원한 교회가, 세상에 멋지게 보이는 교회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멋진 교회가 되도록 함께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오직 주님의 모습만을 닮아가는 교회가 되도록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되기를 힘 쓸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원을 들으시고 영원한 이 교회에 부흥과 기적을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이 은혜가 이곳에 함께 하신 성도님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Jun 13, 2026

(복이 있는 사람) 애통하는 사람
(마태복음 5:1-4)
주원영담임목사
성도 여러분. 1874년 황해도 “안악”의 양반집에서 태어난 김익두는 어느 날 술에 취해 오물통에 빠졌지만 한 사람도 도와주지 않았던 일을 생각하면서 두문물출하였습니다. 그리고 애통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부흥회에 참석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애통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말할 수 없이 위로의 은혜였습니다. 천하의 망나니를 훌륭한 목사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애통하면 복을 받는다는 말씀이 바로 그런 말씀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애통한다”는 말은 헬라어로 “펜툰테스(πενθούντες)”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단순히 가난하고 배가 고파서 운다는 뜻이 아닙니다. 가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깊은 슬픔에 잠기는 모습을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런 상황에서 애통할 때, 위로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죄의 문제 때문에 애통하는 사람에게 베풀어 주십니다.
2,000년 전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문 밖 골고다 언덕을 향하여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힘겹게 오르고 계셨을 때, 이 처절한 십자가의 길에는 평소에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많은 백성들과 여인들이 가슴을 치며 슬피 울면서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그 무거운 고통의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던 예수님께서 여인들을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눅 23:28).
이 뜨거운 눈물은 ◎사랑하고 존경하는 예수님께서 그토록 처참한 지경에 빠져 고통스러워하시는 모습에 대한 한없는 안타까움의 눈물이었습니다. ◎예수님께 사정없이 잔인하게 채찍질하는 로마군병들을 향한 원망의 눈물이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죽을지언정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던 제자들이 한 사람도 보이진 않음을 안타까워하며 용기 없는 제자들을 향한 야속함의 눈물이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렇게 고통을 당하시는 예수님을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들을 향한 무능함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눈물을 흘리는 여인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눅 23:28). 고난 받는 나의 아픔을 생각하는 것보다, 아직도 죄 가운데서 방황하고 있는 자신과 자녀들과 이웃들의 죄를 인하여 애통해하는 눈물을 흘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바라보는 성도들은, 오늘도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죄를 계속 범하고 있는 나와 우리의 자녀들을 위하여 울어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 서 있는 성도들은, 죄의 삯으로 마땅히 죽어야하는 자신의 모습 때문에 울어야 합니다.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웃들을 위하여 울어야 합니다. 회개하며 애통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위로해 주시고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구원받아야 할 영혼들을 위하여 애통할 때 베풀어 주십니다.
로마서 9:1-3절 말씀을 보니, 바울 사도는 복음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저주를 받는 것까지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복음을 모르는 자들을 위하여 애통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천국의 영광까지 경험했던 바울 사도는, 그가 복음 때문에 로마 감옥에 있을 때에 이렇게 말했습니다(빌 1:23-24).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그 영광을 바라보면서, 이 영광을 모르고 구원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셨는데도 그를 믿지 못하고 구원을 받지 못한 자기 민족과 골육 친척들을 생각하며 애통해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누가복음 16:19절 이하에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 두 사람은 모두 죽었는데, 부자는 지옥에서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지만, 나사로라는 이름을 가진 거지는 천국의 아브라함의 품속에서 한없는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간청합니다(눅 16:24-28).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부자의 안타까운 간절함을 봅니다. 세상에서 떵떵거리며 살면서 빈정거리며 세상의 쾌락에 휩쓸려 살고 있는 영혼들을 보면서, 이 모습을 애통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복이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애통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지 한 영혼이라도 더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복음 전하는 일에 힘쓰는 자들입니다.
성도 여러분.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애통하는 사람은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살려내는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영혼 구원을 위하여 애통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도 축복으로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새로운 도전을 위하여 힘을 다하면서 애통하는 자들에게 더하여 주십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상황 앞에서 조국 예루살렘의 회복을 꿈꾸며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도전입니다. 자신에게는 그 꿈을 이룰만한 힘이 없기 때문에 하늘의 하나님께 애통하며 드렸던 기도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신의 욕심만을 위하지 않고, 이 땅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큰일을 꿈꾸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도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모세는 애굽 땅에 있는 자기 백성들의 해방을 꿈꾸었습니다. 젊은 시절 그 일을 시도했었지만 실패하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해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부르십니다. 애굽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살인을 했던 전과기록이 있었고, 입이 둔하여 말을 잘 하지 못한다고 했던 모세였지만, 가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발걸음을 옮겼더니 마침내 자기 백성을 해방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실수가 많은 허물투성이였던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를 아시지요. 물 위로 걷다가 물속에 빠졌던 사람입니다. 예수님께 심한 책망을 받았고, 예수님을 모른다고 배반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자마자 다시 고기를 잡으러 저 북쪽 갈릴리로 떠났던 사람입니다. 그 일에 앞장섰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을 때, 순종함으로 오순절 성령의 충만함을 힘입어 마침내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 일들을 해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된 우리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마음이 가난하여 하나님 밖에는 어디에도 의지할 곳 없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애통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에게, 하늘로부터 위로함을 허락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애통하는 마음을 어루만져 주실 줄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용기를 주십니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평강을 주십니다. 우리 곁에 항상 친구처럼 다정히 함께 계시면서 때를 따라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그 어떤 상황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열정도 주십니다. 그리고 새로운 비전의 약속을 붙잡고 도전할 힘을 주십니다.
바라는 것은, 이분 하나님을 의지하고 애통하는 마음으로 기도함으로, 하늘로부터 내리시는 위로를 맛보시는 은혜가 성도님들의 삶에 풍성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Jun 6, 2026

(복이 있는 사람) 가난한 영혼
(마태복음 5:1-3)
주원영담임목사
“도널드 클리프턴”과 “톰 래스”가 공동 집필한 “당신의 물통은 얼마나 채워져 있습니까?” 이런 제목을 가진 아주 얇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사람이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고립 상태에 빠지게 되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다고 말합니다.
이 책을 집필한 두 학자는, 이 사실을 근거로 반대의 경우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토대로 “물통과 국자 이론”을 발표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는 물통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 물통이 흘러넘칠 때 가장 행복하며, 물통이 비어 있을 때 가장 불행하다. 또한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는 국자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인간관계의 상호작용을 통해 우리는 국자로 타인의 물통에 긍정적인 생각을 가득 채울 수 있고 퍼낼 수도 있다. 그리고 타인의 물통을 채울 때, 우리 자신의 물통도 채워진다.
오늘 본문 말씀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행복의 8단계 중, 그 첫 번째입니다.
주님께서는 남에게 도움을 받기 전에, 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목마른 사람은 물을 마셔야 살지만, 본인이 물을 구하지 않으면 물을 마실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을 성경은 가난한 자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가난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하는 말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말은 이것입니다. ◉저는 부족합니다.
“가난한 자(프토코스:πτωχός)”라는 이 말의 뜻은, 부자나 권력가들의 경제적 약탈과 사회적 억압에서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전능자이신 하나님밖에는 누구도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영적인 부족함을 솔직히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약한 존재임을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은 당연히 낮은 자리에 설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기에 오늘 본문에 기록된 가난하다는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바로 야곱이 이런 상황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가 하나님과 씨름을 한 그날 밤, 야곱은 하나님께 얻어맞아 엉덩이뼈가 어긋났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저를 축복해 주십시오. 축복해 주지 않으면 하나님을 놓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날 밤 야곱이 구한 것은 물질이 아니었습니다. 자식도, 건강도, 미래보장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지 않으시면, 나는 존재할 수가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었습니다. 이 모습이 가난한 마음입니다.
바로 이 기도가 가난한 마음을 가진 자가 드리는 두 번째 말입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성도 여러분. 교만은 부와 권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불신앙의 산물입니다.
일반적으로 가난하면 겸손해지고 부자가 되면 교만해진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기도하지 않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남부럽지 않게 모든 것을 가졌으면서도 올 곧게 신앙의 삶을 살아가시면서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께 매어달리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진정한 복은, 자신의 오만을 버리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도움을 청할 때 찾아옵니다. 겸손하게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긍휼하신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있는 것처럼 행세합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바로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모습과 같습니다.
성도 여러분. 가난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일이든지 절대로 혼자 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청하는 기도생활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으면 살아갈 할 수 없음을 알기에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함께 살아갑니다.
가난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잊지 않고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세 번째 말입니다. ◉저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다윗의 기도가 이것이었습니다. 다윗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려운 삶을 이겨내고 이스라엘 역사상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왕이 된 이유는,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죄를 숨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였습니다.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세리의 기도가 그랬습니다. 바리새인들처럼 거만을 떨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은 자신의 선행은 온 교회에 떠벌이면서 자신의 죄는 철저히 은폐하였지만, 세리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였습니다.
바로 이 진리를 그리스도인들이 배워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진리를 기억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내가 잘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이것이 가난한 마음입니다. 이런 가난한 마음을 가진 자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 5: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아가는 동안 “◉나는 부족합니다. ◉나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 세 마디 말을 통하여, 가정에 행복이 깃들고, 이웃과 화평하며, 일터가 즐거운, 마음속에 임하는 천국을 경험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May 30, 2026

어찌하여 행하지 않느냐?
(누가복음 6:46-49)
주원영담임목사
우리의 귀에 들리는 명품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반응들을 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서 저런 모습이 보인다면 어떨까?
명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명품을 가지지 말라는 말도 아닙니다. 도가 넘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두 가지의 모습은 보여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성도님들께서 교회에 오셔서 하나님께 예배에 드리는 것, 그리고 힘들고 어려울 때에도 감사의 조건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 그 모습이 예수 믿는 사람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지금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가장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함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내리시는 평안, 돈이 많아서 얻는 평안이 아니라 어려움과 폭풍 속에서도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세상을 이기는 평안, 염려와 근심을 다 하나님께 맡길 때 누리는 평안,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 잠든 것 같은 평안, 바로 이 평안이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는 성도 여러분. 기쁠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경우일지라도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펼친 본문을 보니, 예수님께서 질문을 하십니다. 아니 이렇게 책망하십니다(눅 6:46). 너희들은 나에게 주여 주여 하면서 말은 잘하는데, 도대체 내가 가르친 대로 행하지는 않는구나. 너희들이 내 제자라면 내가 하는 말을 생활 속에서 보여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택하셨을 때 제자들이 배와 그물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행하고, 예수님을 따라 어디든지 가겠으며, 예수님을 주로 섬기겠다고 분명히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삶에서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신대로 행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에는 열매가 있어야 하고, 말은 바르고 좋아야 하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상처를 주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행함이 있는 믿음의 기초위에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집을 지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만 그렇게 가르치시고 물으신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묻고 계십니다. 지금 어떤 상태이냐구요? 반석 위에 집을 짓고 있느냐구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할 뿐 아니라, 그분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받아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자신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잘못 관리하면 망칩니다. 실패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진심으로 잘 도와줄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맡겨도 될 사람, 우리를 올바르게 인도해 줄 사람 말입니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그분께 우리의 삶을 맡길 때, 그분께서는 나의 모든 삶에 개입하시고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 주실 것입니다. 성공의 삶을 살게 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바라기는 내 삶을 그분께 맡기셔서 성공하는 삶을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믿음의 표현이 있어야 하고 삶에서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이 표현과 실천은 ◎우리의 생각 속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표현과 실천은 ◎우리의 말 속에 담겨져 있어야 합니다(눅 6:45). 마음 속에 가득한 것, 머리 속에 꽉 차 있는 것이, 입으로 나온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말하려고 하면,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예수 믿는 사람다워야 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 표현과 실천은 ◎우리의 행동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겨야 합니다. 예수를 닮은 모습이 보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예수를 위한 수고를 감당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때문에, 천국의 소망을 가진 것 때문에,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손해가 있어야 하고, 희생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예수쟁이입니다. 믿으시고 삶에서 조금의 손해가 있더라도 기쁨으로 감당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곳에 투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지혜로운 건축자는, 보이지 않는 것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땅이 얼마나 튼튼한지, 기초는 얼마나 튼튼히 해야 하는지를 면밀히 살핍니다.
예수 믿는 것도,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인들에게는 기초가 중요합니다. 주일을 성수하는 것, 예배를 정성으로 드리는 것, 하나님의 것이 어떤 것인지를 구별하는 것, 이것들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봉사하는 것에도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에게 뿌리를 내린 사람은, 어떠한 어려움들이 다가오더라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세상의 어려움이나 유혹이 아닙니다. 세상의 어려움이나 유혹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서 하나님을 섭섭하게 해드릴까봐 두려워해야 합니다.
이런 거룩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정말 신실한 성도입니다. 오늘 말씀과 같이,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성도의 삶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대로 살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말씀대로 살 수 있습니까?
어렵지 않습니다. “예수님이셨으면 어떻게 하셨을까?” 이 생각을 한 번만 하면,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잘 설명해 준 하박국 선지자를 소개하면서 마치려고 합니다. 그가 탄식합니다. 아무것도 없다고 탄식합니다, 그러나 탄식은 이내 찬양으로 바뀝니다. 힘들고 어려워서 탄식하던 하박국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합 3:17-19).
하박국의 이 고백이 성도님들의 고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