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요약
May 23, 2026

성도의 삶. “예”하는 긍정의 신앙.
(고린도후서 1:15-22)
주원영담임목사
우리의 삶을 돌아보니 모두가 고슴도치와 같습니다.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어려움과 외로움 때문에 이웃들과 함께 이 어려움과 외로움들을 털어버리려고 하다가, 때때로 의도하거나 계획하지 않은 상처를 주고 받으면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별수 없이 고슴도치처럼 거리를 두고 살아가게 됩니다. 또한 감당할 수 없는 상처를 받으면, 그때부터 우리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입을 닫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상처 주는 사람들로 가득한 공동체에 대하여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바울 사도가 이와 같은 삶을 경험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나고 그리스도인이 되고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후에 받은 가장 큰 상처는, 그에게서 복음을 전해 들은 사람들 중에 자신을 배척하는 사람들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고린도 교회에 이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본문은 이런 비난과 오해에 대한 바울 사도의 해명입니다. 한마디로 이 해명의 내용은 “나를 믿어 주십시오. 우리 서로 믿고 삽시다.” 이 말입니다. 우리가 상처가 많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믿고, 긍정적인 삶을 선택하고 살아가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하는 마음으로 긍정적인 모습의 삶을 살아가야 할 이유는 ◉하나님 때문입니다(고후 1:18).
나는 미쁘신(믿을 수 있다 신실하다) 하나님을 믿는 사도인데, 그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나를 믿어달라는 말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과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말입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지연된 것은, 너희들을 축복해 주는 만남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고후 1:23). 이어지는 2:1절 말씀에서 바울 사도의 간절하고 진실한 이 마음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내가 다시는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노니(고후 2:1).
또한 바울 사도는, 너희와 두 번 만남으로, 더욱 큰 기쁨과 은혜를 얻도록 하고 싶다고 말합니다(고전 1:15-16). 그러니까 나를 믿어 달라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서로를 믿지 못하면, 삶이 감옥과 다름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때때로 이웃을 향한 믿음이, 배신으로 돌아오고 또 하나의 상처로 돌아온다 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유는, 인간이 비록 범죄하고 타락했을지라도 그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형상 중의 하나가 “신실함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는 그 마음으로, 우리의 이웃들을 믿고 살아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조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으로 주위의 사람들을 믿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예하는 마음으로 긍정적인 모습의 삶을 살아가야 할 이유는 ◉예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보다 우리 인생들의 약점과 불완전함을 잘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증거가 당신의 외아들 예수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통해 언약을 이루시고 약점이 많고 불완전한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 계획이 본문 고린도후서 1:19-20절에서 밝힌 증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창조하신 인간이 범죄했다고 해서 인간을 버리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셨습니다. 죄인이지만 이해하여 주시고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믿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예수님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만이 소망이십니다.
때때로 힘들더라도, 때때로 어렵더라도, 우리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 앞에 예하시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우리도 이웃에 대한 믿음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예(Yes)”하셨습니다. 늘 순종하셨고 늘 긍정적인 삶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보여주신 말씀들을 마음에 새기고, 늘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믿고 아멘하는 긍정의 삶을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예하는 마음으로 긍정적인 모습의 삶을 살아가야 할 이유는 ◉성령님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을 믿어 달라고 호소하면서, 그 이유가 우리 마음 속에 거하시는 성령님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후 1:21-22).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들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아직도 죄인의 모습으로 늘 실수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도 바울 사도는, 죄인의 모습이고 실수를 하고 살아가는 자신을 믿어달라고 합니다. 이유는 자신도 자신을 믿을 수가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의 부족한 부분까지도 하나님의 선을 이루는 도구가 되게 하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이 말씀을 믿고 성령님을 의지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어지는 로마서 8:27-28절 말씀을 보니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께서 간구하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7-28).
그러므로 살아가는 동안 때로는 상처를 받기도 하도 배신을 당하기도 하지만, 낙심하거나 원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나를 위하여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요셉의 사건입니다.
형제들에게 배신당하고, 죽음의 구덩이에 던져지고, 보디발의 아내에게 모함을 당하고, 옥중에서 관리들을 돕고 그들의 출소를 도왔지만, 그들에게 잊혀짐을 당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복수를 꿈꾸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인생을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을 믿고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갔습니다. 언제나 이웃을 도우면서 살았습니다(창 45:5. 7-8. 41:38).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오늘 설교의 제목에 대한 해답을 찾은 것 같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그리고 죄 많은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긍정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 “예”하는 신앙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았습니다.
“성령 충만”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고 성령의 감동으로 매일 매일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고 냉소적인 광야와 같은 현실에서도, 요셉처럼 긍정의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예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긍정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은, 하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 때문입니다. 성령님 때문입니다.
삶의 힘든 일이 있더라도 삼위일체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시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시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이웃에게 상처를 받았더라도 삼위일체 하나님을 생각하시면서 용서를 선택하시고 믿음과 사랑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은 삶의 모습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세상을 이기는 긍정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늘 삼위일체 하나님 앞에서 예하며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는 성도님들 모두에게 이 은혜가 삶의 모든 시간 속에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y 16, 2026

신앙인의 삶. 넓은 마음.
(고린도후서 6:11-13)
주원영담임목사
인간의 마음은 크게 나누라고 하면, “열린 마음”과 “닫힌 마음”으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 완전히 열린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도 없고 완전히 닫힌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열린 마음을 “넓은 마음”이라고 부르고, 닫힌 마음을 “좁은 마음”이라고 부릅니다.
왜 우리에게서 이런 마음이 보일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표현으로 말씀드리면, 상처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처는,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나에게 주기 때문에 생기는 것만은 아닙니다. 스스로 만드는 상처도 있습니다. 스스로 오해하고, 일방적으로 판단하고, 이웃들에게 비정상적으로 반응하면서, 스스로 마음을 좁히고 닫아버리는 경우 때문입니다.
문제는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직면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어떻게 넓은 마음과 열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13절 말씀이 우리에게 그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고후 6:13).
성도 여러분. 마음을 넓혀야 한다는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넓은 마음은 ◉거룩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넓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거룩을 포기하는 세속화를 의미하는 삶이 아닙니다. 넓은 마음은 내 생각과 내 가치와 내 신념이 중요한 것처럼,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가치나 신념도 존중해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모습을 관용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빌 4:5). 이 말씀은 신념이나 가치를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의 말씀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넓은 마음을 오해하지 않도록 고린도후서 6:14-18절 말씀을 통하여 그 이유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강조하는 것은, 불신자의 가치관과 성도의 가치관은 근본적으로 같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빛과 어둠은 함께 할 수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여호수아 25:14-15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이든 우상이든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본문 17절에서 부정한 것을 피하고 부정한 세속화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구별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고후 6:17).
성도 여러분. 넓은 마음은, 평화를 원한다는 생각으로, 진리와 양심을 포기하면서 세상의 모든 것과 어울리는 삶을 뜻하지 않습니다. 좋은 것이 좋다고, 적당하게 모든 가치관을 혼합하여 세속화하는 소위 혼합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의 삶을 살아가시는 동안 하나님을 닮아가는 거룩을 포기하지 않는 넓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넓은 마음은 ◉은사와 생각들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마음입니다.
바울 사도가 이 편지를 보낸 고린도 교회는 영적 은사가 충만한 교회였지만, 파벌이 나누어지고 그것 때문에 다툼이 있었던 혼란스러운 교회였습니다(고전 1:11-12). 어떤 교인은 아볼로의 명쾌한 성경 해석에 끌려 아볼로파에 속하였고, 어떤 교인은 베드로의 안수해 주심으로 은혜를 받은 후 게바파 곧 베드로파의 사람들과 함께 했습니다. 어떤 교인은 바울 사도가 처음 전해 준 복음의 감격을 간직하여 바울에게 충성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바울파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교인은 우리는 어떤 사람도 추종하지 않고 그리스도만 신뢰하겠다고 해서 그리스도파를 만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나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충고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고전 1:13)
성도 여러분. 교회에는 다양한 은사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양한 은사와 재능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은사를 받은 성도들을 사용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은사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사람을 쳐다보게 될 때, 불필요한 파벌을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고전 3:5-6).
좁은 마음은 내가 받은 은사만 강조하고 다른 사람이 행하는 은사는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넓은 마음은 나에게 없는 은사를 받은 다른 사람이 있음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인정하고 그리고 그들과 함께 교회에 덕이 되고 주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데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모습이 넓은 마음을 가진 성도의 모습입니다.
이와 같은 넓은 마음을 가지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권면한 넓은 마음이 무엇입니까?
받은 은사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의 의견보다도 그리스도를 높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줄 아는 마음, 바로 이 마음이 넓은 마음입니다.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높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교회를 하나되게 하는 이 넓은 마음을 가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넓은 마음은 ◉편안한 소통의 장을 마련해 주는 마음입니다.
바울 사도는 편안한 소통의 장을 열어주기 의하여 자신의 입부터 열겠다고 말합니다.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고후 6:11).
성도 여러분. 마음이 닫히면 제일 먼저 입을 닫습니다. 부부도 그렇습니다. 갈등이 생기면 제일 먼저 대화가 단절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 상황을 끝내려면 둘 중에 누군가가 말을 시작해야 하는데 자존심 때문에 왠만해서는 먼저 말하지 않습니다.
“소통형 인간(감창옥저)”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 중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통하지 않으면 통한다.” 이 말입니다. 앞의 “통(通)”은 소통할 통이지만, 나중의 “통(痛)”은 아플 통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내가 먼저 입을 열겠다고 하면서 이 편지를 쓴 것입니다.
바라는 것은, 성도님들의 삶에서 이 말씀을 잘 살피시면서 깊은 묵상과 함께 실천하는 모습이 나타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정의 달을 지내면서 혹시 좁은 마음으로 등을 지고 있는 가족들이나 친지들이나 교우들이 계십니까?
가까이 다가가 보시기 바랍니다. 대화를 시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편지를 써보시기 바랍니다. 중보기도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하려고 힘써 보시기 바랍니다. 이 모습이 성경이 말하는 넓은 마음으로 이웃을 품고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넓은 마음”. 이 마음은 주님께서 주신 마음입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께서 이 마음을 넘치도록 주시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y 9, 2026

이런 부모. 이런 자녀.
(민수기 20:22-29)
주원영담임목사
우리는 매년 5월이 되면 어버이 주일을 지킵니다. 한 사람 “앤나 잘비스”라는 여성 신앙인의 헌신으로 우리가 어버이 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이날은 그 의미를 잊어버리고 상업화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유래를 가지고 있는(유래는 요약에 기록하지 않음) 어버이 주일에, 이스라엘의 지도자이며 한 가정의 아버지였던 아론의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에 대하여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가데스를 출발한지 얼마되지 않아, 지도자인 아론의 죽음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말씀 속에서 우리가 생각하고 깨달아야 하는 진리는 ◉“모든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을 평가할 때 칭찬이나 격려보다는 흑백의 논리로 잘잘못을 따집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명확하고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모든 믿음의 선진들 중에서 흠이 없는 사람을 찾아보세요.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사실을 모르셔서, 그들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믿음의 선진들이라고 세우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허물을 보신 것이 아닙니다. 좋은 점을 보셨습니다. 장점만 보신 것이고, 순종하는 모습을 보신 것입니다.
아론의 생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존경받았던 이스라엘의 지도자였지만, 오늘 본문은 므리바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사건으로 인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음을 안타깝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아론은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가고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므리바 물에서 내 말을 거역한 까닭이니라(민 20:24)
아론의 부족함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출애굽하여 시내산근처에 도착하였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그곳에 머물러 있었던 백성들에게 금송아지를 만들어주고 섬기도록 했던 사람입니다(출 32장). ◎뿐만 아니라, 모세가 구스 여인을 두 번째 아내로 맞이했을 때, 미리암과 함께 모세를 비방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건에 연류되어 있는 아론이었기에,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아론이 이스라엘의 최고의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민 20:29).
오늘 어버이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들의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십니까?
우리의 부모님들도 인간이시기에, 완전하지 못한 모습들을 많이 보이셨을 것입니다. 자식들이 볼 때, 약점이 많고 허물도 많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우리들이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도록 삶의 유산을 남겨 주신 분들입니다. 자식들을 키우시는 일에 모든 정열을 다 쏟으셨던 분들이십니다. 그분들을 향하여 부족하다고, 틀렸다고, 자신있게 말할 자격이 있는 자녀들은 한 분도 안 계실 것입니다. 그렇게 말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부모님들을 주변의 사람들과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조금의 허물 때문에, 지금 나를 이곳에 있도록 해 주신 부모님들의 아낌없는 헌신을 외면해 버리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론의 죽음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입니다.
아론의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은 ◉“믿음의 사역은 계승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앙하는 믿음이 자녀들에게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넓게 생각하면, 부모님들은 우리들의 선배입니다. 인생의 선배이고 신앙의 선배입니다. 그렇지만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의 삶의 대부분은, 인생의 후배들인 자녀들을 통하여 계승되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어질 것입니다. 물론 그분들이 하시던 것을 모두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부모님들의 삶은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계속 이어지는 계승입니다. 아론의 죽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 모세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말씀을 따라 아론과 그의 아들인 엘르아살과 함께 호르산에 오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역사의 계승식을 합니다(민 20:26-28).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아버지와 아들이 임무를 교대하는 순간입니다. 너무도 엄숙하고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성경적으로 부모의 죽음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육신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부모는 없어졌지만, 동시에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계승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이 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아버지이면서 선배인 아론을 계승하여, 후배이며 아들인 엘르아살이 지도자의 상징인 제사장의 옷을 입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이며 선배인 아론이 이루지 못했던 가나안을 향한 여정을 아들이 대신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지도자 아론의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지도자 아론이 자신의 겉옷을 벗겨 자신의 아들인 엘르아살에게 입혀주는 모습을 보면서, 비록 내 맘에 꼭 맞지 않는 부모일지라도, 약점과 헛점 투성이인 부모일지라도, 그래서 때로는 외면했던 부모일지라도, 그분들은 이렇게 생각하면서 살아오셨을 것입니다. “내가 포기하면 아들도 포기하게 될까봐, 이를 악물고 달려왔다고.” 자식을 위하여서는 자신의 몸까지도 버리실 각오가 되어 있으신 분이 바로 우리의 부모님들이고 나의 부모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자녀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그분들에게 눈이 되어드리고, 그분들의 손이 되어드리고, 그분들의 발이 되어드리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바로 이 모습이, 오늘 본문을 통하여 믿음의 자녀들에게 가르쳐주시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아론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교훈입니다. 기억하시고 이와 같은 삶을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에베소서 6:2-4절의 말씀을 기억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네 아버지와 네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2-4). 아멘.
May 2, 2026

성도의 삶. 성숙.
(베드로전서 2:1-3. 베드로후서 3:18.)
주원영담임목사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하는 과정에서는,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영적 발달장애의 모습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성장해야 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성장하지 못하는 당신의 자녀들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리고 영적 지도자들이, 가슴 아파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신앙생활의 이력과는 상관없이 영적 발달장애를 겪는 수 많은 영적 미숙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두 가지 경우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름만 기독교인이라고 불리는 “명목상 기독교인”입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거듭남의 확신도 없고, 구원의 확신도 없이, 교회에 출석하는 분들입니다. ◎구원은 받았지만, 영적으로 자라나지 못하고 있는 “미성숙한 기독교인”입니다. 때때로 이분들로 인하여 교회에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교회가 사회의 지탄을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 우리가 영적으로 자라가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면서 베드로의 삶을 통하여 권면을 받고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영적 발달장애를 극복하고 영적 성숙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영적으로 어린 아이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가 아직은 영적으로 젖을 먹고 자라가야 할 갓난아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바울 사도도 권면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고전 3:1-2).
성도 여러분. 베드로 사도와 바울 사도가 교훈하고 있는 영적 아이들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성경 기자들은 두 가지 관점에서 영적 아이들의 특징을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잘 듣고 먹기는 하지만, 그 말씀 속에 담겨져 있는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하는 영적인 영양결핍(말씀의 무지)의 상태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아직도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고 늘 시기하고 미워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은 모습은, 몇 년이나 예수를 믿었느냐? 직분이 무엇이냐? 이런 것들과는 상관없이 아직도 영적인 미숙아의 상태입니다(고전 3:3. 벧전 2:1). 우리 안에 아직도 이런 모습들이 남아있다면, 아직 내가 영적인 아이라는 증거들입니다. 영적인 성장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영적 성숙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영적인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은혜는 기독교 신앙의 가장 놀라운 특징입니다. 기독교를 한마디로 정의하는 단어입니다. 은혜는 기독교의 정체성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도 일방적으로 조건 없이 베풀어지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 바로 이 은혜로 구원을 받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진리의 말씀이 에베소서 2:8-9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라(엡 2:8-9).
그렇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 어떤 사람도, 행위로 구원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직 은혜(Sola Gratia)”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우리가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처럼, 우리의 영적 성숙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고 가르칩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벧후 3:18). 그래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건강한 그리스도인에게는 이런 은혜들을 사모하는 목마름과 배고픔이 있어야 합니다. 은혜를 사모하지 않는 신앙은 영적으로 병든 신앙입니다. 찬송가 183장의 가사처럼, 빈들에 마른 풀 같이 시들은 영혼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은혜를 공급받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고 말합니다.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히 4:6). 우리는 늘 부족한 존재이지만,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와 은혜를 공급받아 영적으로 자라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영적성숙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영적인 지식을 배워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말합니다. 우리의 영적으로 성숙하게 위하여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들은 은혜와 함께 지식을 강조합니다. 이 지식은 영적 지식입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아는 지식입니다(벧후 3:18).
영적 성숙의 본질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를 알아가며 그를 닮아가는 과정입니다. “성화의 과정”입니다.
그런데 그 지식을 알려주는 책이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만이 예수가 누구이신지를 알려줍니다. 예수를 닮아가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목마름과 배고픔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영의 사람이 성장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늘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늘 읽고 배워야 하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읽고 또 읽을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리시고 지혜를 주십니다. 깨닫고 삶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결단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배우셔서, 영적으로 자라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