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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약

Dec 28, 2025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시편 46:7-11)

주원영담임목사

한 해가 저물어 갈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이 교회와 성도님들의 삶에 현장에 어떤 말씀을 주실지를 생각하면서 엎드립니다. 그러기에 교회가 붙잡는 표어에는 ◎성도님들이 삶뿐만이 아니라, 교회의 간절한 바램도 담겨 있습니다. ◎때로는 시대의 어려움에 대한 간절함이 담겨있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목표까지 담겨 있습니다.

영원한 교회가 지난 5년동안 붙잡았던 표어들을 생각해 보면 이렇습니다.

2020년 : (이전성경) 여호와께서 내게 관계된 것을 완전케 하시리라 (시 138:8). (개역개정 :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보상해 주시리이다.) 2021년 :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사 9:7). 2022년 :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시 46:10). (코로나 시절 :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시 46:10). 2023년 : 주께서 생명의 길을 네게 보이시리라 (시 16:11). 2024년 :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평지가 되리라 (슥 4:7). 하지만 이일은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능력으로 되는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만 된다고 하셨습니다. 2025년 :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시 46:11).

성도 여러분. 기독교는 수행의 종교가 아닙니다. 입을 열어 고백하는 종교입니다. ◎시인해야 합니다(롬 10:9). ◎고백해야 합니다(마 16:16). ◎선포해야 합니다(막 11:23). ◎명령해야 합니다(막 4:39). ◎독백해야 합니다(마 9:21).

성도 여러분. 시인해야 할 때는 시인하시고, 고백해야 할 때는 고백하시고, 선포할 때는 선포하시고, 명령해야 할 때는 명령하시고, 독백해야 할 때는 독백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에,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큰 산이 산산히 무너져 평지가 될 줄 믿습니다.

▷소년 다윗이 골리앗을 향하여 외칩니다(삼상 17:45). 그때 골리앗이 쓰러졌습니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철홍성 여리고 앞에서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외쳤습니다. 그때 성이 무너지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심지어 하늘에 떠 있는 태양과 달을 향하여 머무르라고 명령했을 때에 태양과 달이 머무르는 믿을 수 없는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말씀을 붙잡고 입을 열어야 합니까?

저와 성도님들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2025년을 시작하면서 시편 46:11절 말씀을 붙잡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이 말씀입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시 46:11).

시편 46편 표제를 보시면 “알라못에 맞춘 노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알라못”은 “크게 외치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자신있게, 확신을 가지고 입을 열라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고라 자손들이 기록했다고 합니다.

고라 자손들은 처음에는 모세를 향한 반역자들이었습니다(민수기 16장). 그때 저들이 서 있는 땅이 갑자기 갈라져서 250명의 사람들이 땅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염병이 돌아서 17,400여 명이 전염병으로 죽는 불상사도 일어났습니다. 고라 자손들은 거의 다 멸절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 살아남은 몇몇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전을 찾았고 성전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시편 46편을 기록한 고라 자손들입니다. 7절과 11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시 46:7.11). 고라 자손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불렀을까? 전능하신 하나님을 왜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불렀을까?”

그리고 보니, 고라자손만이 아니라, 아삽도(시 75:9. 76:6. 81:1.4). 다윗도(시 20:1). 하나님을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성도 여러분. 야곱이 어떤 사람이기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불려지기를 기뻐하셨습니까?

창세기 25:24절 이하의 말씀을 보니 야곱의 탄생의 모습과 살아온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 세월이 20여 년이 흐른 후에 그가 고향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지난날의 일을 떠올리며 두려워서 아내들과 자녀들과 종들과 가축들을 먼저 보내고는 홀

로 얍복강가에 주저 앉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누군가가 야곱에게 싸움을 걸어왔고 죽지 않으려고 그분과 싸웠습니다. 새벽쯤 되었을 때 그분이 가시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야곱은 나를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못가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야곱의 이름을 바꾸어 주십니다(창 32:26-28). 그날 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싸워서 이겼다는 이름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이스라엘로 부르신 것은, 야곱을 이긴 자로 승리한 자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야곱은 우리와 똑 같은 인간입니다. 연약하기 그지없는 사람입니다. 허물과 실수투성이의 인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찾아오셔서,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야곱의 하나님이다. 너를 이긴 자로 삼으시겠다.” 이렇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약속대로 야곱은 이긴 자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연약한 자를 돌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허물까지도 덮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간구와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축복해 주시고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이 하나님께서, 야곱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허물을 덮어주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강하게 해 주시고, 우리의 부족함도 채워주시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인도해 주시고, 우리에게 승리의 면류관을 씌워주셨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개입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이스라엘이 되게 해 주시고, 승리자가 되게 해 주시고,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분은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우리도 야곱처럼 부족함이 많을지라도,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신다고 외치면, 그 외침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가 되셔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간섭하시고 축복해 주셔서, 우리도 이스라엘이 되고 승리자가 되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시로다.” 이렇게 외치는 성도님들 모두에게 넘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Dec 25, 2025

성탄이 주시는 축복
이사야 35:1-10

주원영담임목사

올해도 어김없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성탄일은, 메시야께서 이 세상에 오심을 축하하는 축제의 날입니다. 이 축제는 한 사람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탄생하신 특별한 의미가 있기에 우리들이 이날을 축하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성탄은 ◎온 인류에게 큰 기쁨과 소망을 주신 복된 날입니다. 뿐만 아니라 ◎죄인인 우리와 함께 하시고 구속의 은총을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육신의 몸으로 오신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이 땅에 오신 성탄은 ◉우리의 잘못된 것들을 내어놓고 자복하며 주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 찬양과 경배와 감사를 드리고 영광을 올려드리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구세주 되심을 온 세상에 알리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오직 예수님만을 통하여 천국에 갈 수 있음을 알리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장차 메시야가 오실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이 땅에 오시면, 놀라운 변화가 나타날 것을 밝히 알려주시는 말씀입니다.

그 변화, 바로 성탄이 주시는 축복은 ◉인생을 회복시킵니다(사 35:1.5-6).

기록된 광야와 메마른 땅과 사막은 아무것도 줄 수 없는 땅입니다. 어떤 좋은 것도 낼 수 없는 기쁨이 없고 생명력이 없는 땅입니다. 그 어떤 것도 생산해 낼 수 없는 무익한 곳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인간의 마음상태를 말하는 표현들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모습,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은 비참한 인생의 모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죄로 어두워졌기에 감사할 줄도 모르고, 용서할 줄도 모르고, 참 기쁨도 없는 인생의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광야와 같고 사막과 같은 메마른 심령에는, 말씀의 씨앗이 떨어져도 싹을 내지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땅이 객토되어야 기름진 땅이 되듯이, 심령도 진정한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 회복을 그리스도의 탄생이 가져다줍니다.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절 말씀입니다.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사 35:2). ◎“레바논”은 팔레스틴 북쪽에 있는 곳으로, 옛부터 아름다움의 상징하는 곳입니다. ◎“갈멜”은 사마리아 근방에서 가장 비옥한 토지가 있는 곳으로 풍요의 상징하고 있습니다. ◎“샤론”은 지중해 근처에 있는 대평원으로서 팔레스틴의 꽃동산이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광야와 메마른 땅과 사막과 같은 생명력이 없고 황무한 곳이, 이렇게 아름답고 비옥한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도님들의 삶이 아름답게 변화되고 좋게 변화되는 기적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메시야의 탄생을 통하여 인생들이 회복될 것이라고 말합니다(사 35:3-4).

살아가면서 힘들어서 지친 상황이 다가온다고 해도 두려워하지 말고 이겨내면, 하나님께서 오셔서 갚아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 메시지를 전하라고 하십니다. 마음에 새기시는 말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가 오시면 인생이 놀랍게 변화될 것이라고 말합니다(사 35:5-6).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인생은 완전해질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도 세상에는 눈뜬 소경들과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육신의 눈은 떴지만, 영적 소경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소리는 잘 듣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합니다. 아니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이해하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성탄을 통하여, 바로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인하여, 눈이 밝아지고 귀가 열리고 사슴같이 뛰게 되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감사하는 사람으로 변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메시야되시는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말씀입니다. 7절에 기록된 말씀처럼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성도만이 누릴 수 있는 이와 같은 축복이 성도님들과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탄이 주시는 또 한 가지 축복은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사 35:8).

사막은 길이 없는 곳입니다. 길이 있어도 바람만 불면 모래가 날려서 있던 길도 묻혀버리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 사막에 대로가 생겼답니다. 정말 놀라운 기적입니다.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는 기적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막과 같은 이 세상에, 참된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영원한 길이신 메시야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메시야의 탄생은 우리에게 생명의 길,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거룩한 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사 35:8). 거룩한 길이기에 아무나 다닐 수가 없는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삿 35:9).

그래서 본문 10절에서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기쁨으로 노래하며 돌아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 (사 35:10). 메시야가 주시는 구원을 통해서,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어서 슬픔과 탄식이 사라질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간절히 소원하는 것은, 함께 기쁨으로 주님의 성탄을 찬양하는 예배를 드리는 성도님들 모두에게, 이 축복이, 영원한 구원의 완성을 이루는 영생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성탄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성탄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따라서 이 땅에 사는 우리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인생을 회복시켜 주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축복의 날입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는 성도님들에게, 그리고 성도님들의 가정과 일터와 사업장 위에 이 은혜와 축복이 풍성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Dec 21, 2025

아기 예수를 맞이한 사람들
(누가복음 1:26-38)

주원영담임목사

세상은 성탄을 예수님의 생일이라고 말합니다. 생일은, 한 생명이 이 땅에 태어나서 한해 한해 무사히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음을 기뻐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날입니다.

하지만 신앙인들이 성탄을 기억하면서 기다리고 축하하는 이유는, 성탄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대속제물이 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성육신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날인 성탄은, 단순히 축하하는 날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항상 그 의미를 생각하고 곱씹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대림절 마지막 주일예배를 드리면서 ◎성육신이 우리에게 주시는 참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면서 ◎또한 예수를 맞이한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직 예수를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했던 겸손한 마리아를 생각해 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갈릴리 나사렛에 살고 있는 한 평범한 처녀인 마리아의 몸을 빌어 탄생하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한 마리아는 자기를 가르쳐 “비천한 계집종”이라고 말합니다(눅 1:46-48). 겸손한 말이지만, 틀린 말이 아닙니다. 마리아는 별로 내세울 것이 없는 한 시골 처녀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내세울 것이 없는 나사렛이라는 시골 동네에 살고있던 한 처녀의 몸을 통하여 오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아직 남자를 모르는 여인이 아이를 가졌다는 임신의 소식이 들립니다(눅 1:31). 천사가 마리아에게 전한 말이지만 이 말은 충격이었습니다. 놀란 마리아가 천사에게 대답을 하면서 저들의 대화는 이어집니다(눅 1:34.35.38).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우리가 편안한 마음으로 읽고 듣지만, 처녀가 임신했다는 이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정말 무거운 십자가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리아의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이 순종은, 마리아에게는 큰 기쁨을 안겨 주었고, 그의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약속된 구원의 역사가 실현되는 놀라운 축복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마리아가 역사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당시 사회관습으로는 저주받은 수밖에 없는 마리아였지만, 오히려 축복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장 복이 있는 자라고 노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눅 1:46-48).

이와 같은 놀라운 변화는, 순종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입니다. 무겁고 두려운 십자가일지라도 순종함으로 그 십자가를 지는 자에게는, 무겁고 두려운 십자가는 축복의 십자가로 변한다는 진리를 우리에게 교훈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베들레헴 들녘에서 양을 지키던 목자들을 생각해 봅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밝은 빛이 저들을 두루 비추고 천사가 나타나 소식을 전합니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천군천사의 합창이 울려 퍼집니다(눅 1:10-11.14). 이 음성과 찬양을 들은 목자들은 멀고 먼 베들레헴까지 찾아가서 구유에 누운 아기를 만나는 기쁨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이 기쁜 소식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아마 힘들고 고달픈 삶을 살고있던 목자들과 많은 사람들은 시편 145편 말씀과 스바냐 선지자의 말씀을 늘 기억하면서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시 145:14-16. 습 3:12). 그래서 메시야의 만남은 이들에게 무한한 기쁨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아기 예수를 찾아와 경배를 드렸던 동방박사를 생각해 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이방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메시야를 기다렸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별을 연구하는 첨성학을 통하여 세상을 변화시킬 위대한 분의 탄생을 알게 되었고, 그들은 그분을 찾아 멀고 먼 순례의 길을 걸어와서 마침내 베들레헴에 이르러 아기 예수께 경배를 드리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동방박사의 이야기는 마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서는 이방인들을 위한 책이 아니라, 유대인들을 위한 책입니다. 그러나 유대인이 아닌 동방박사가 경배드리는 모습을 통하여 깨닫는 것은, 복음의 역사는 유대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진리입니다. 모든 열방 민족들에게까지 미치는 역사임을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탄을 준비하면서 성도님들께서도 동방박사들과 같이 세상 끝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그분의 약속을 믿고 그 예수만을 바라보면서 나아가심으로 삶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는 기쁨을 경험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겸손한 자리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않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그곳으로 내려가셔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물질만능주의 속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마음만은 가난한 모습을 잃어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마음이 가난한 자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와 같은 겸손한 모습으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목자들과 같이 오직 주님께만 영광을 돌리며 ◉동방박사처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분에게 나아가는, 그런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Dec 14, 2025

신앙은 기다림이다
(베드로후서 3:8-13)

주원영담임목사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지금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말씀은, 왠지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희망적이고 기쁜 말씀이라는 느낌보다는, 이 세상의 종말을 기다리는 것 같은 무거운 느낌을 주는 말씀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함께 말씀을 생각하는 동안에, 진정한 기다림의 기쁨과 은혜를 경험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살아가는 동안 성경에서 교훈하시는 신앙적인 기다림이 있지만, 우리의 삶에서도 여러 모양의 기다림이 있습니다. 인생에는 크고 작은 기다림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기다림들은 언제나 성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피하고 싶은 기다림도 경험하게 되고 행복을 주는 기다림도 경험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도 기다림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신앙”이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성경에는 기다림의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의 나이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 때문에, 자신이 살고 있었던 땅과 아비와 친척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하지만 떠난 후의 아브라함의 삶은 기다림의 삶이었습니다. 25년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이삭을 얻고 난 후에 그의 후손들은 또 400여 년을 기다렸고, 출애굽과 광야생활 40년을 더 기다리면서 훈련의 시간을 지내야만 했습니다. 기다리는 그 시간동안 수많은 일들을 경험하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노아도 그랬습니다.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방주를 지으며 무려 120년을 기다렸습니다. 아마도 그는 기다림 때문에 지친 삶을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날은 홍수와 함께 왔고, 기다리며 준비했던 노아의 가족을 죽음을 면했습니다.

◉다윗을 보세요. 매일처럼 양을 치고 있던 어느 날, 사무엘을 통하여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그가 원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왕이 되기까지는 15년의 세월이 흘러야 했습니다. 목동의 신분으로 양을 치면서, 사울 왕을 피하여 광야로 이웃나라로 도망하면서 기다렸습니다.

문제는, 이와 같은 기다림의 시간이 무척이나 지루하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다리지 못하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8-9절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8-9).

이 말씀을 기록할 때는, 기독교가 박해를 받았던 시대였습니다. 이 기다림의 시간 동안 악인들이 흥하였고 죄가 판을 쳤습니다. 그러나 심판은 임하지 않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악이 이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들을 보면서, 우리는 기다림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고통의 시간동안에도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이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대림절은 주님의 탄생을 기다린다는 의미가 있지만, 우리를 위해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배울 수 있는 기간이라는 이 진리를 잊지 않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신앙인들은 하나님을 기다리면서 살아갑니다. 희망이고 힘을 얻는 기다림이기 때문입니다. 입니다. 이사야 40:31절 말씀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 40:31). 기록된 “여호와를 앙망한다”는 말을 영어 성경 KJV은 “주를 기다리는 것(Wait upon the Lord)”을 말합니다. 지루함이 아니라 희망이라는 말씀입니다. 여호와를 기다릴 때 새 힘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본문 8절 말씀은, 이해는 잘 되지 않지만 대단히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 3:8) (시편 90:4 인용).

이 말씀은, 우리가 기다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려주시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날수를 계산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신데, 나에게는 현실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날수를 계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시각에서 생각해 보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우리의 계산법으로 생각합니다.

결국 이 말씀은 조급해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것은 조급하게 생각하거나 조급하게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준비하면서 기다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는 성도님들 모두에게, 준비하면서 기다리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기다림의 시간이 축복이라는 진리를 본문 10-13절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0-13).

성도 여러분. 기다림은 우리가 완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을, 믿음과 기쁨으로 고대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노력으로 기다림을 이루려고 한다면, 그것은 고난의 시간일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기다림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신 하나님의 역사를 그저 기다림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3절 말씀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3). 새 하늘과 새 땅만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미 이루어 놓으신 하나님의 축복들을 조급해하지 마시고 기다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본문 11-12절에서 이 진리를 말하면서 기다리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벧후 3:11-12).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그날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도록 준비하라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경건”은 내적인 모습을 말합니다. 그런데 경건의 사전적 의미는 “공경하고 마음으로 깊이 삼가고 조심하는 모습”입니다. 경건은 우리에게 엄청난 금욕을 요구합니다. 무엇을 하면 안 된다는 율법적 규범이 경건으로 이해되면서 우리는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런 경건을 다 지킨다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적인 삶의 모습이 보여져야 합니다. 야고보서 1:26-27절 말씀이 우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약 1:26-2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 11절에서 말하는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이 질문에 대해서 우리가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복음은 우리가 지킨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잘못된 경건의 이해가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 3:5).

경건은 하나님 앞과 사람들 앞에서 정직하게 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잘 섬기는 것입니다. 복음을 이루는 것은 우리가 조심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기쁨을 누리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행동이어야 합니다. 나를 지키는 거룩한 행실과 함께, 하나님과 이웃을 잘 섬기라고 하신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 일을 통해서 봉사의 기쁨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메시야로 오신 성탄을 준비하면서 기다리는 모든 성도님들에게, 말씀과 같이 경건의 삶을 실천하실 수 있는 은혜가 풍성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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