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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약

Mar 14, 2026

성도의 삶. "평화(평안)"
(빌립보서 4:6-7)

주원영담임목사

중세시대(5세기-15세기) 이탈리아에서 이런 이야기가 전해졌습니다.

높고 깊은 산중에 위치한 수도원에 이른 아침부터 누군가가 문을 두드립니다. 사제가 나가보니 무척이나 피곤에 지쳐 보이는 중년의 신사가 문 앞에 서 있습니다. 아마 밤새 산을 오른 것 같아 보입니다. 사제가 문을 열어주며 묻습니다. “누구를 찾아 오셨나요?” “예. 저는 평화를 찾아 왔습니다.”

이 사람은 바로 유명한 “신곡”의 저자인 “단테 알리기에리”였습니다. 그리고 “신곡”은 이런 말로 시작됩니다. “내 인생의 한 순간 눈을 떠서 보니, 나는 바른 길을 벗어나 어두운 숲속에 있었다.”

단테는 20대에 사랑의 실패를 경험하고, 30대에 자기 고향 피렌체에서 정치에 입문했다가 실패했습니다.그리고 이제 40대가 되었지만 갈데 없는 영혼의 방랑자가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성도님들 중에 단테처럼 마음의 평화를 원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바울 사도는 평화를 얻는 비밀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평화는 깊은 감옥도 빼앗아 가지 못한 평화였고, 손과 발을 채우고 있는 쇠사슬도 빼앗아 갈 수 없었던 평화였고, 죽음의 두려움도 빼앗아 갈 수 없었던 평화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 평화가 필요한데, 이 평화를 누리고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넘쳐나는 평화를 경험하시려면 ◉염려를 버려야 합니다. 염려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본문 6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면 먼저 마음의 염려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기록된 “염려”라고 번역된 이 단어(메림나오 : μεριμνάω)는 “마음이 찢어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염려에서 해방되려면,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염려를 그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유는, 많은 경우 염려한다고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마 6:27).

성도 여러분. 우리는 너무나 많은 염려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렇게 염려한다고 해도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먼저 염려를 중단하시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 평범한 진리를 기억하시고 염려를 중단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넘쳐나는 평화를 경험하시려면 ◉염려를 기도로 바꾸어야 합니다. 염려하는 것들을 기도로 이겨내는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빌 4:6).

염려할 모든 것들을 기도하는 모습으로 바꾸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염려할 일이 기도할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염려해도 그 어떤 변화가 일어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자에게 변화를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무엇보다 먼저 기도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평화를 약속하셨습니다(빌 4:7).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사람들은 인생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면서 살아갑니다. 이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평화가 지켜주시는 모습입니다. 부족한 종이 다시 한번 성도님들의 삶을 축복합니다. 염려를 기도로 바꾸셔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의 평화를 풍성하게 누리시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넘쳐나는 평화를 경험하시려면 ◉평화의 하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평화가 되시는 하나님을 나의 마음에 영접해야 합니다.

본문은, 만일 우리가 염려를 중단하고, 염려하는 모든 것을 기도하는 삶으로 바꾸어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 마음을 지킬 것이라고 약속합니다(빌 4:7).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보다 더 좋은 것이 있습니다. “평화의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화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지만, 평화의 하나님은 평화의 주인이신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으실 것이지만, 이렇게 설명드리면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제가 아버지로서 저의 자녀들에게 선물을 주는 것과, 언제나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아버지가 되어 주는 것 중에, 어떤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마 자녀들은, 선물을 주는 아버지보다 모든 일을 해결해 주는 아버지가 더 좋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 말입니다. 그래서 염려를 기도로 바꿈으로 하나님의 평화를 경험하는 자들에게, 바로 평화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 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빌 4:9).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의 시작은, 이 땅에 오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하나님으로,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 우리의 욕심 때문에 우리가 평화를 잃어버린 것을 아신 그분께서 우리의 허물과 우리가 받을 저주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마다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희생으로 이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막혔던 담은 허물어지고, 우리는 평화의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하나님의 평화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엡 2:14). 이 은혜에 감사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단테의 이야기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나이 40이 되어 수도원을 찾았던 그는 새롭게 성경을 읽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성경이 증거하는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와 주님으로 받아드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나이 43세가 되던 해 펜을 들어 무려 13년간의 시간동안 한 권의 책을 써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그 책의 이름을 이렇게 명명했습니다. “신곡(Divine Comedy)”

인생은 더 이상 비극이 아니라 위대한 기쁨과 평화의 서사시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숲속에서 길을 잃었다”로 시작한 그의 고백이 담긴 신곡은 “나는 행복하다. 나는 자유하다. 나는 참으로 완벽하게 고요한 평화를 맛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한 평화의 시작이었다.” 이렇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류 최고의 시성 단테가 찾은 이 평화를, 오늘 하나님께서 성도님들에게 내려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염려를 버리시면 됩니다. 염려를 기도로 바꾸시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평화이심을 믿고 영접하면 평화가 내게 임합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는 성도님들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평화를 선물로 받으시는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r 7, 2026

성도의 삶. "섬김"
(고린도전서 9:19-23)

주원영담임목사

신앙생활을 해 가는 동안 많이 듣는 말이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 단어가 때로는 부정적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때로는 긍정적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자유가 박탈된 종의 모습은 부정적이지만, 자원하는 종의 모습은 긍정적입니다. 자원하는 종의 모습은 이웃을 섬기는 모습입니다. 이웃을 섬기기 위해 자신의 자유를 내려놓고 봉사하고 헌신하는 모습입니다. 성경은 이와 같은 섬김의 모습을, 종된 삶의 모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갈 5:13). 그래서 종된 삶, 바로 섬김의 삶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신앙인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특권에 감사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서, 참된 그리스도인의 섬김의 삶을 가르치면서 먼저 자신이 자유인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이 참 자유인이라는 것을 먼저 말하는 이유는, 참 자유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서서는 진실한 섬김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우리가 행하는 봉사가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자유롭지 못한 모습으로 억지로 섬기기 때문입니다. 진실하고 참된 섬김을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고전 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이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진정한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성도입니다. 이와 같은 모습이 우리에게 있을 때, 우리가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삶에서 이런 모습이 보여지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신앙인은 ◉이웃들을 위하여 스스로 종이 될 줄 알아야 합니다.

바울 사도의 고백입니다(고전 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바울 사도는 예수를 만나고 참된 자유인이 되었지만, 이제 그 자유를 반납하겠다고 고백합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종이 되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울 사도의 모습을 “자유의 종. 자발적인 종”이라고 부릅니다.

바울 사도는 늘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된 나 바울은...” 그러나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조건은, “우리 자신을 얼마나 내려놓을 수 있느냐” 하는 것에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것을 내려놓느냐가 쓰임을 받을 수 있는지를 결정합니다(참고. 이용구 선교사의 내려놓음과 더 내려놓음).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가지고 누리면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세상의 것들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내려놓을 때 진정한 자유인이 됩니다. 내려놓을 때 하나님께서 높여주실 것입니다.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신앙인은 ◉이웃들의 구원을 위하여 삶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본문 19절 말씀입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전 9:19). 바울 사도는 자신이 종이 된 이유는,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고전 9:20.22). 이웃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인들에게 요구되는 섬김은 “종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에게는 이런 모습이 보여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신 특권을 감사해야 합니다. 이웃들을 위하여 스스로 종이 될 줄 알아야 합니다. 이웃들의 구원을 위하여 나를 포기하고 삶의 초점을 그들에게 맞추어야 합니다.

성도님들 모두에게 이와 같은 참된 섬김의 모습이 보여지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Feb 28, 2026

성도의 삶. "감사"
(민수기 11:1-9)

주원영담임목사

성도 여러분. 살아가는 동안 “무엇을 보고 사느냐?” 이 모습이 인생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관점에 따라서 감사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매사에 불평으로 인생을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광야를 통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 과정들은 모두 감사해야 할 일들뿐입니다.

그런데 지금 저들이 불평하고 있고 원망하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민 11:4). 하지만 이와 같은 불평과 원망은, 본래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다른 인종에게서 시작된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다른 인종인데 이스라엘과 섞여 사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들의 영향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울면서 불평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민 11:4)

이 다른 인종들(출 12:38-수많은 잡족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족속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광야의 행진이 점점 불편해지자 그들에게서 불평과 원망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불평과 원망을 따라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다를까요?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주님이 아닌 세상에서 배우는 것은 아니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저들에게 진노하실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으로 본문이 시작되는 것입니다(민 11:1).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진노하심이 임한 것입니다. 천막도 옷가지도 다 불타 버렸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그 불이 꺼졌습니다. 그리고 이 일이 있은 후에, 저들은 그곳을 다베라(다 타버렸다)라고 불렀습니다(민 11:2-3). 제발 정신 차리라는 하나님의 경고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들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원망과 불평의 늪에 빠진 원인이 무엇입니까?

◉지난날 베풀어 주신 은혜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과거의 은혜).

노예 된 그들을 건져주시고 자유를 주신 그 은혜 말입니다. 앞에는 홍해가 막고 있고 뒤에는 애굽군대가 쫒아오는 그와 같은 환경에서 구해주신 그 은혜 말입니다. 마실 수가 없는 쓴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해 주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해 주시면서 삶을 인도해 주신 그 은혜 말입니다. 그 은혜를 망각하고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저들은 ◉지금도 베풀어 주시는 축복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현재의 은혜).

아직도 광야를 걸어가고 있는 자신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더 좋을 주시지 않는다고 불평한 것입니다(민 11:4-6). 결국 축복을 축복으로 알지 못하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하여 사라지고 마는 불타는 모습뿐이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앞으로 베풀어 주실 미래의 희망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다소간 불편하고 다소간 고통스러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 저들의 발걸음은 약속의 땅이고 축복의 땅인 가나안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눈앞에 가나안이 보이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있습니다. 광야를 통과하지 않으면 가나안으로 갈 수 없다는 평범한 상식을 망각하고, 너무나도 쉽게 가나안의 꿈을 상실해 버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거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현재의 축복을 망각하고 미래의 희망을 상실한 저들에게,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무엇입니까?

본문이 말하는 대답은 간단합니다. ◉과거에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축복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믿고 감사하면서 자족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십니다(참고. 딤전 6:8).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을 다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민 11:6). 핑계입니다. 8절을 보시면 만나가 얼마나 좋은 식품인가를 증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더라(민 11:8). 그리고 9절 말씀을 보니, 그 만나가 그 밤에도 계속 내리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중단된 것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아침마다 만나를 거두면서 만나와 함께 감사의 마음도 거두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가지고 있었던 많은 것들이 불태우져서 잃어버리고 나서야 감사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불평은 불평을 낳습니다. 그렇기에 불평을 희망과 꿈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러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성도님들의 마음속에 불평과 원망이 있으시다면, 그 원망과 불평을 소망으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꿈으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는 성도님들 모두가, 이 기적과 같은 축복을 맛보시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은 주님의 은혜를 갚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마음에 새기면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살아가면서 불평하고 원망할 일들이 많더라도, 불평과 원망을 뒤로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약속의 땅을 행하여 나아가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Feb 21, 2026

성도의 삶. "주인은 오직 한 분" (마태복음 6:19-24)

주원영담임목사

마태복음 6장에는 ◎종교적 위선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은밀히 행하여야 하는 성도의 덕목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구제:1-8절. 기도:5-15절. 금식:16-18절. )에 대하여. 기도에 대하여(9-15절). ◎이어서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재물과 의식주의 문제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재물에 대하여:19-24절. 의식주 문제에 대하여:25-32절). 그리고 성도들은 이런 것들보다 먼저 구하여야 할 것에 있다고 교훈하셨습니다(33-34절).

그중에서 먼저 재물에 대한 말씀을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19-24절).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무엇을 금하신 것일까요?

이 말씀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너희를 위하여” 입니다. 이기적인 동기를 가지고 재물을 쌓아 놓는 것을 금하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탐욕적인 마음으로 재물을 모으는 모습을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중에, 물질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요?

대부분의 성도들은 오늘 본문의 말씀을 이렇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신 것으로 주의 일을 위하여 사용하면 된다. 많이 주시면 큰 일을 하고, 적게 주시면 그것으로 주의 일을 하면 된다.” 어느 정도의 물질이면 많은 것입니까? 어느 정도의 물질이면 적은 것입니까? 성경에 그 기준이 있나요?

오늘의 말씀은, 재물의 많고 적음에 대한 기준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재물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재물을 통하여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면서 살아야 할 것인가를 교훈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19-24절 )은 우리에게 2가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물질을 쌓아도, 그 물질이 우리의 능력이 되지 않는다는 교훈입니다(19절).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본문 19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좀과 동록이 해하며.” 이 땅의 재물은 시간이 지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세상 어디에도 안전한 곳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좋은 살충제가 있고 철저한 보안장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큰 위험이 다가오고 가진 것들을 다 잃어버리는 경우를 많이 보고 경험합니다. 그래서 지혜자 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욥 1:21).

두 번째 교훈은 ◉필요가 욕심으로 변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21절).

물질은 근본적으로 악한 것이 아니기에 부지런히 노력해서 남아있는 삶을 준비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님에도 예수님께서 물질을 모으는 것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말씀하신 것은, 필요하다는 것이 어느날 욕심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물질은 필요를 위해서 쓸 때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물질을 구별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마음이 물질로 향하기 시작합니다. 물질이 나를 지켜줄 것 같기에 보물처럼 귀하게 모읍니다. 사용하지 못합니다. 물질이 보물이 되고 물질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되니까, 내 마음도 그곳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질을 숭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영원한 것을 발견하는 순간 영원하지 않은 모든 것이 하찮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성도 여러분. 결국, 사람들은 자신이 보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모든 것을 투자합니다. 그리고 다른 것들은 포기합니다. 이런 모습이 우리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나는 물질의 주인이 아닌 관리인의 자세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손에 웅켜쥐고 있다고 그것들이 모두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소유는 “내가 사용할 때” 나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쓸 때” 내 것이 된다는 것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결단해야 합니다. 누가 주인인가를 생각하고 결단해야 합니다. 24절 말씀이 우리의 결단을 도와주십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께 전념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들 모두의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하라는 것입니다.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알면,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삶의 우선순위와 해야 할 일이 분명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섬김의 대상”이고, 사람은 “나눔의 대상”이고, 물질은 “사용의 대상”이다. 마음이 깊이 새기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심으로, 주인되신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영육간의 모든 축복을 풍성하게 받아 누리시는 성도님들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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