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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약

Apr 20, 2025

부활 신앙을 가진 성도의 모습
(고린도전서 15:12-19 )

주원영담임목사

오늘은 주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에서 살아나심을 믿고 전하는 부활의 날입니다. 성도님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이 주시는 놀라운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 중에는, 진리가 아닌 것은 쉽게 믿고 따르면서도, 정작 진리는 쉽게 믿고 따르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구원을 받는다는 것, 영원히 죽지 않고 산다는 것,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리임에도 믿으려고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요 11:25-26).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살아나셨다는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담겨있는 고린도전서 15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34절까지의 말씀은 부활의 확실함을 말하고 있고, 35-58절까지의 말씀은 부활의 성격과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아침, 확실한 부활 신앙을 가지시는 시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다시 살아나셨습니다(고전 15:12-14).

성도 여러분.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의 탄생과 예수의 고난받으심과 예수의 십자가와 예수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믿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탄생은 믿지만 부활은 믿지 않고 다시오심은 믿지 않는다든지, 죽음은 믿지만 부활은 믿지 못한다면, 그것은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예수가 살아나신 것과 승천하신 것과 그리고 이 세상에 다시 오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영원한 천국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는 예수께서 살아나신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사 26:19. 마 28:6. 고전 15:4).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직접 가르치시기도 하셨습니다(마 8:31). 예수님의 부활은 이미 구약에 예언되어 있었던 사건이었고 예수님께서도 예언하셨던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대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그리고 예언대로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온 세상에 알리시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 15:5-8).

한 사람만 보았다면, 한 장소에만 나타나셨다면, 아마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고 부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모습을 보이셨고 여러 장소에 부활하신 몸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부활이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 죽음과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살아나심으로 우리의 죄가 완전히 사해졌다는 것입니다(고전 15:17).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죄사함이 완성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까지도 완전해졌습니다. 만일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부활을 부정하는 것이라면, 그들의 믿음은 그들을 죄에서부터 해방시켜 구원으로 인도하는 믿음이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만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우리들의 믿음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의 대상이 허상이라면(없는 것이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주시는 죄 용서함이 무효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인간은 영원히 죄 가운데 거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허망한 일입니까?

이것은 바울 사도가 전한 복음의 골자이며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하게 됩니다(사 26:19. 단 12:2).

말씀들을 보면, 죽은 자들의 부활이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그 부활에는 영생을 얻는 부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는 부활도 있다고 말합니다. 마지막 날에는 죽은 자들이 모두 부활하지만, 영생의 부활을 누리는 사람이 있고, 부활은 하지만 영벌을 받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5:28-29절 말씀입니다.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29).

성도 여러분. 사람은 늙으면 주름살이 생기고 머리가 희어집니다. 그리고 신체 모든 부분이 노화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가면서 쌓이는 사람의 나이와 함께 생물학적 아니가 있다고 합니다. 생물학적 나이는 그 사람의 행동이나 습관 등 환경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생물학적 나이를 줄이고 젊어지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비타민을 먹어라. ◎담배를 끊으라. ◎혈압을 관리하라. ◎유산소 운동과 근육 운동과 지구력 운동을 하라. ◎스트레스를 줄여라.

그러나 노화를 방지하고 생물학적으로 젊어지는 최고의 방법은, 예수 믿고 부활의 감격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근심도, 염려도, 고통도, 아픔도 주님께 다 맡기고 기쁨으로 살아가는 것이 젊어지고 건강하고 오래 사는 비결입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오래도록 영육간에 강건하게 살고 싶으시다면, 늘 감사하면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부활을 믿는 부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지고 많이 누리고 살아간다고 해도 부활 신앙이 없으면, 어디로 가는지, 누구에게로 가는지 모른 채 살아갑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이 세상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부활 신앙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디로 가는지, 누구에게로 가는지를 알고 살아갑니다. 그 해답을 예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인, 생명이 다시 소생하는 부활, 영생을 선물로 주시는 부활, 바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나도 부활할 것을 믿는 부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Apr 13, 2025

참된 지혜와 참된 능력이신 십자가
(고린도전서 1:18-25)

주원영담임목사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타보지 않았던 어린 나귀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습니다. 수많은 백성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종려나무가지를 꺾어 손에 들고 흔들면서 호산나를 외쳤습니다(마 21:9).

하지만 주님께서는 왕이 되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입성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로마 시대에 가장 흉한 저주의 형틀입니다. 너무나 끔찍한 형벌이었기에, 학자들은 로마인들과 자유인들에게는 합당하지 않은 형벌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이런 십자가를 멋을 내는 장신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예배당의 상징이 되었고, 저주의 십자가는 오히려 영광스럽게 대속의 십자가로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이런 상징적인 변화는, 그 자체가 십자가의 기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시작은 저주의 상징이었는지 모르지만, 결과는 부활을 가져다주었고 승리를 가져다주었고 영광을 보여준 십자가가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참된 지혜를 주십니다.

바울 사도 당시 그리이스의 수도 아테네는 철학의 도시였고 고린도는 무역의 중심 항구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물자와 학문들이 이곳을 통해 거래되고 있었습니다.

그런 때였는데, 헬라인들은 삶의 최고의 가치를 “지혜”라고 말했습니다. 자녀들에게도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당시의 그리이스인과 고린도에 살고 있는 헬라인들에게, 지혜가 인간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을 강조해서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21절 말씀을 통하여 지혜의 한계를 두 가지로 정리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1:21).

인간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복음을 믿고 주님께 나아오면, 하나님을 알아가게 되고 영혼의 구원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참된 지혜를 주시는 기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철학이나 종교도 해결하지 못하는 구원함을 주시는 기적입니다.

이 기적은 우리의 행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다시 사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십자가가 주시는 참된 지혜로,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기적을 경험하면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십자가는 참된 능력을 주십니다.

그리이스를 중심으로 이룩된 헬라문명은 또 하나의 문명을 탄생시켰습니다.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시오니즘이라고 부르는 “유태문명”입니다. 이 문명은 유태인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의 최고의 선, 최고의 가치는, 헬라인들이 말하는 지혜가 아니라 능력이었습니다. 이들도 역시 자손들에게 “능력의 사람이 되라”고, “돈으로 성공하는 사람이 되라”고, “돈만이 나와 우리들을 지킬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본문 22절은 “유대인은 표적을 구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 1:22).

그렇기에 이런 유대인들에게 예수의 십자가는 실패와 연약함의 상징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십자가는 거리끼는 것이 되고 만 것입니다. 23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합독하시겠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1:23).

그런데 이렇게 무능함과 무력함의 상징인 십자가가, 역설적으로 그들을 구원하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담대하게 선언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 1:25).

기독교 역사를 보면,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십자가의 원리를 붙잡고 손해보고 핍박받고 고난당하던 시절에는 언제나 복음의 영광이 드러났습니다. 초대교회 시대가 그랬고 청교도 시대가 그랬고, 한국교회 초기 선교시대가 그랬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권력을 지배하고 황금을 추구하던 시절의 교회는 언제나 타락했습니다. 교회의 영향력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중세기 암흑시대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 한사람 한사람에게 요구되는 영성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승리의 개가를 울리며 진군했던 십자군의 영성이 아닙니다. 박해를 받으면서도 복음 하나를 붙잡았던 영성, 흩어졌음에도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십자가의 영성입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약할 때 우리를 강하게 해 주시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12:9절을 통하여 바울 사도가 전한 말씀과 같이 우리가 우리의 약함을 알고 주를 의지하며 무릎 꿇는 그 자리가, 바로 하늘의 능력을 경험하는 자리입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 12:9).

우리 자신이 아닌, 우리가 가지고 있는 황금이 아닌, 우리가 추구하는 권력도 아닌, 오직 십자가 앞에 내 모든 것을 드리면서 주님만을 의지하는 그 자리, 바로 그 자리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늘의 능력을 경험하는 자리입니다.

성도 여러분. ◉십자가는 참된 지혜입니다. ◉십자가는 참된 능력의 원동력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십자가를 마음에 새길 때마다, 참된 지혜를 깨닫고 위대한 능력을 경험하시는 은혜가, 성도님들의 삶에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Apr 6, 2025

하나님의 뜻 ⓸
(데살로니가전서 5:16-22)

주원영담임목사

우리는 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에게 소원을 가지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고 하십니다(롬 12:2).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데, 그 뜻을 분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을까요?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않는 것이고(살전 5:19). ◉예언을 멸시하지 않는 것입니다(살전 5:20).

그런데 성경은 이것들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말합니다. 21-22절 말씀입니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1-22).

성도 여러분. 기록된 “좋은 것”은 나에게 유익되고 도움이 되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닙니다. “좋은 것을 취하라”는 주님의 말씀의 뜻은, “내 생각과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택하라.” 이 말씀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좋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 예를 누가복음 10장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윗에게서 좋은 예를 찾을 수 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의 싸움입니다. 다윗이 가지고 있는 것이 골리앗의 모습과는 비교도 되지 않지만, 다윗은 담대하게 말합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 17:45).

골리앗의 손에는 칼과 창과 단창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것이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소년 다윗은,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기에 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선택한다고 생각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가지고 전쟁터에 나아갔던 것입니다. 바로 이 모습이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습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내 마음에 모시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은 선택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택은 일반적인 것이지만, 어떤 선택은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 그 사람의 미래가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선택하여야 하는지에 대하여 분명하고 선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 (마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좁은 길을 가는 자의 결국은 “영생”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신 말씀은, 넓은 의미에서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마태복음 5:1절을 보시면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충격입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은 이미 모두 다 좁은 문을 선택하고 좁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자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에게 주님께서 좁은 길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다 좁은 길로 걸어가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를 믿고도 넓은 길을 걸어가는 자가 많다는 말입니다. “예수 믿는 것”과 “예수 믿는 자의 삶”은 다른 것이라는 말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출발은 참 좋았습니다. 믿음의 역사가 있었고 사랑의 수고도 있었고 소망의 인내도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그 교회를 향하여 내가 더 이상 너희들에게 할 말이 없고 쓸 말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넓은 길을 선택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바울 사도의 표현이 달라졌습니다. “더욱 힘써라. 더 많이 해라. 범사에 감사해라.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예언을 폐하지 말라. 그리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택해라.” 이렇게 말입니다. 좁은 문을 선택했고 어느 정도 좁은 길을 걸어왔지만, 지금은 넓은 길을 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바울 사도가 이렇게 권면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선택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옳은 것 같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선택을 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유는 이사야 55:8-9절 말씀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 55:8-9).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시고, 좁은 길로 걸어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뜻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언을 멸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택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시고 살아가기로 다짐하시는 성도님들에게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부어주시는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r 30, 2025

하나님의 뜻 ⓷
(데살로니가전서 5:16-20)

주원영담임목사

말씀을 묵상하면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하여 살아왔고, 누구의 뜻을 위하여 힘써 왔는가? 나를 위하여 자신의 아들까지 주신 그분의 뜻을 따라서 살아왔는가?” 성도님들께서는 어떠십니까?

다윗은 평소에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시 143:10). 이것이 다윗의 소원이었습니다. 이 소원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이 소원을 따라 살려고 힘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그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행 13:22). 그리고 그를 목동의 자리에서 위대한 이스라엘의 왕의 자리에까지 올려주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라는 말입니까?

하나님의 뜻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살전 5:18). ◉성령을 소멸하지 않는 것입니다(살전 5:19).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또 하나의 하나님의 뜻을 확인합니다. ◉예언을 멸시하지 않는 것입니다(살전 5:20).

예언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말씀”입니다(계 1:3). 그래서 이 말씀에 가감을 하는 자는 용서함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계 22:18-19). ◎그 옛날 당대의 의인이고 설교자인 노아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120년 동안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들었습니다. 그런데 전하는 말씀을 들은 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세상천지가 물로 심판받게 된다는 경고를 믿지 않았습니다. 결과는 물의 심판이었습니다(벧전 3:20). ◎소돔 성에 하나님의 불의 재앙이 경고되었습니다. 그런데 롯의 사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창 19:14). 결과는 불과 유황의 심판이었습니다.

하지만 ◎니느웨 성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경고의 말씀 앞에서 저들은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엎드려 회개했습니다(욘 3:5). 그 결과는 앞의 두 경우와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가 거두신 것입니다.

본문 말씀을 눈여겨 보셔야 합니다. “말씀”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예언”이라고 한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지 말라” 이렇게 기록하지 않고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고 기록한 이 부분입니다.

왜 그렇게 기록하셨는지를 묵상하던 중에 데살로니가서에 특별히 강조된 단어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강림한다”는 단어입니다(1:10. 2:19. 3:13. 4:15. 4:16. 5:2-3. 5:23).

성경은 66권 중에서 5장으로 기록된 데살로니가전서이지만,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말씀이 가장 많이, 그리고 분명하고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재림(강림)의 책이라고 말해도 전혀 과한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성도 여러분. 성경은 모두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거의 전부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아직 한부분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이 예언만 이루어지면, 성경의 모든 예언들은 완성됩니다. 지금까지 모든 내용들이 다 이루어졌기에 남아있는 이 재림도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때문에, 예언이라는 단어는 넓게는 성경말씀 전체를 말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는 마지막 남아있는 한 가지 “주님의 재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0절에 기록된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넓은 의미로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지 말라는 뜻이지만, 좁은 의미로는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다시 오실 것이라는 이 사실을 멸시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강림한다는 “파루시아(헬:παρουσίᾳ)”라는 단어는, 강림한다는 의미와 함께 “가까이 나타나신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내 가까이 나타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강림하신다는 말씀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는 것”과 함께 “내가 주님께 가까이 가는 것”도 강림입니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전서 5:2-3절 말씀을 통하여 죽음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들을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것이 강림이지만, 내가 주님께 가까이 가는 것도 강림이라는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강림을 예언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육신을 가지고 있는 나는 인간의 순리에 따라 시간이 되면 죽게 되지만,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죽는 것과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이 두 가지는 모두 언제 일어날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들은 물론이거니와 하늘의 천사들도 이때를 모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4:36).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이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한 것은, 데살로니가전서 5:4절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살전 5:4). 주님의 재림과 나의 죽음이 도둑같이 갑자기 오는 것은 확실하지만, 어둠에 있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그날이 도둑같이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멘으로 받아들이시고 믿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는 믿음의 자녀들에게는 그날이 도둑같이 임하지 않게 해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소원하는 것은, 우리를 향하는 하나님의 뜻인 주님의 강림을 맛보시는 은혜가, 오늘 예배에 참석한 모든 성도님들에게 확실히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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